[아침을 열며]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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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07  |  수정 2022-11-07 06:46  |  발행일 2022-11-07 제26면
세월호에 이은 이태원 참사

어른으로서 미안한 맘 앞서

책임 전가와 정쟁화에 분노

무책임한 정치 다음 총선서

국민이 제대로 심판할 것

[아침을 열며]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비행기에서 흑흑 거리며 울어보았는가. 2014년 4월 필자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울었다. 당시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세월호 이야기를 애써 외면했었다. 그 구구절절 가슴 아픈 사연들 앞에 도저히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냥 내 일은 아니니까 이대로 시간이 지나 잊게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가리라 생각했었다.

살다 보면 운명처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광주에서 재판을 마치고 귀경을 위해 비행기에 올라 습관처럼 신문을 펼쳤다. 금쪽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애타는 사연을 읽는데 신문 위로 투둑투둑 소리를 내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자식 또래 아이들이 자리에서 기다리라는 무책임한 어른들의 말을 믿었다가 턱밑까지 차오르는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느꼈을 두려움과 공포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 오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무뚝뚝한 아빠였던 나는 집에 가서 오랜만에 두 아들을 번갈아 안아주었다. 살아있어 주어서 고마웠다.

소중하지 않고, 잃어서 가슴 아프지 않은 가족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어떤 가족을 잃는 것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이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아내나 남편을 잃으면 홀아비나 과부라고 부르고, 부모를 잃은 자식을 고아라고 한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를 부르는 말은 없다고 한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픈 슬픔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이후 정치적 성향과 전혀 상관없이 자식 같은 어린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참척(慘慽)의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갈 부모들과 아픔을 공유하고자 노란색 리본을 변호사 가방에 매달고 다녔다. 어느덧 리본이 떼어지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 믿으며 살아가던 나는 2022년 10월 머나먼 이국땅에서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LA에서 열린 세계한인법률가회(IAKL) 정기총회에 참석해 정신없이 지내느라 이태원의 아픔을 늦게 알게 되었다. 회의장 앞에서 만난 변호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때는 핼러윈 행사가 개최되는 이태원에서 젊은이 몇 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쳤다고 들었다. 모임이 끝나고 호텔 방에 들어와 뉴스를 켰다.

어떻게 꽃다운 생명들을 또 이렇게 보낸단 말인가. 보도되는 눈물겨운 사연들을 보며 소리 내어 울었다. 미안했다. 가슴 아픈 과거를 반복시켜 피어보지도 못한 채 떠나게 해서 미안했고, 무책임한 어른으로 살아있는 것도 미안했다. 눈물이 마른 지금 나는 분노하고 있다. 잘못은 오롯이 어른들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책임 떠넘기기와 정치적 주판알을 튕기는 모습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비극이 전 정부의 책임인지, 현 정부의 무능 때문인지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 희생자들에게 "미안하다. 어른으로서 정말 미안하다"라고 신속하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었는가. 처벌과 경질 요구에 앞서 상처받은 국민의 아픔을 위로할 수습책과 향후 재발하지 않을 구체적인 방안부터 먼저 제안할 수는 없는 것인가.

어느 쪽이 좋아서가 아니라 저쪽이 미워서 상대편을 지지하는 정치판 속에 사는 것도 이제 지겹고 지친다. 여야 모두 2024년 총선에 목숨을 걸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국민적 아픔을 어떻게 보듬고 치유해주는지 지켜보며, 세월호에서 그리고 이태원에서 살아남은 우리 국민은 무책임한 쪽의 정치적 생명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그때는 정말 억울하게 희생당한 우리 아들딸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제대로 심판할 것이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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