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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획자 |
반달리즘(vandalism)은 5세기 초 유럽의 민족 대이동 당시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지중해 연안에서 로마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약탈과 파괴를 거듭한 민족이라고 잘못 알려진 데에서 유래된 프랑스 말이다. 반달리즘은 문화예술이나 종교 시설 등을 훼손하는 행위로 공공의 재산이나 사유 재산을 고의적으로 파괴하거나 해를 가하는 행위를 뜻하는 용어가 되었다. 의도적으로 혹은 무지의 소산으로 발생하는 반달리즘은 특정 문화에 대한 반발로 발생하기도 한다.
1972년 미켈란젤로의 대표적인 조각상인 피에타(1499년)상을 한 헝가리 출신의 호주 지질학자가 망치로 내리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라고 외치다 검거되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처럼 과거에는 반달리즘적 행동이 주로 개인적 일탈로 여겨진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크리스 오필리가 흑인 성모마리아 그림에 코끼리 배설물을 바른 회화 작품 'The Holy Virgin Mary'나 파리 방돔 광장에 설치되었던 작품 'Tree'(2014)와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설치된 아니쉬 카푸의 'Dirty Conner'(2011)의 경우 작품의 내용이나 형태에 반발한 이들에 의해 표적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유럽의 미술관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2022년 5월 루브르 박물관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한 관람객이 일어나 '모나리자' 작품에 케이크를 던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는 기후 변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려고 이런 행동을 하였다고 한다. 최근 영국에서는 '저스트 스톱 오일'이라는 단체의 급진적인 활동가들이 연쇄적으로 갤러리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에 순간접착제로 자신들의 손을 붙이거나 터너나 고흐 등의 유명한 작품에 토마토 수프를 끼얹고 전시장 바닥과 벽에 스프레이로 글씨를 적는 사건이 발생했다.
반달리즘이 미술관과 유명 작품을 대상으로 전략적으로 확산되는 것에 우려의 시선들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직까지는 작품이 손상될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점차 강도가 높아질 우려가 있다. 예술 작품을 단지 수단으로 간주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진 물건으로 대할 때 예술품들은 언제든지 파괴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스트 스톱 오일'의 행동가들도 지금까지 합법적인 방식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으나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급진적인 행동을 택하였다고 한다. 기후 위기나 환경 문제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도 미래 세대를 위한 현재 세대의 의무이다. 모두 중요한 가치이지만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다른 가치를 수단으로 삼아 훼손할 수는 없다.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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