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의 정변잡설] 명복을 빌 수 없는 이유

  • 정재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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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16  |  수정 2022-11-16 06:53  |  발행일 2022-11-16 제30면

[정재형의 정변잡설] 명복을 빌 수 없는 이유
정재형 변호사

사람 탓으로 돌릴 수 없는 큰일이 종종 벌어진다. 우리는 십시일반 성금을 모으고 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피재자를 위로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유족에게 심심한 조의를 전하고 떠난 이의 명복(冥福)을 빈다. 고인더러 '저세상에서는 부디 행복하시라'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문상객은 일상으로 총총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사람이 생명을 빼앗기게 된 원인이 따로 있다면 초상집에서 곡(哭)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비감한 표정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왜 죽었는지를 반드시 물어보아야 한다. 멀쩡했던 사람이 불귀의 객이 된 까닭을 밝혀야 할 책무가 산 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방기한 자를 밝히고 가해자를 문책하는 것, 문책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을 미루고 내세의 발복부터 기원하는 것은 그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며, 문책 없이 문명국이 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상할 수 없는 참사가 또 벌어졌고 젊은이 158명이 죽었다. 황망하게 생을 마친 사람은 물론 그 유족들의 생살 찢어지는 고통보다 더할 아픔과 슬픔은 가늠조차 어렵고 어찌 위로할 말을 찾지도 못하겠다. 국가는 일주일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조기를 걸었다. 공무원들에게 상장(喪章)을 가슴에 달도록 하며, 자치단체는 저마다 분향소를 열었다. 한편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논하는 언동을 두고 국가애도기간에 동참하지 않는 무례한 짓이라고 비난하면서 참사가 아닌 '사고',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라는 표현을 쓸 것을 요구하고, 뜬금없이 검은 리본에 근조 글씨를 빼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든, 떼죽음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면서 가해자의 책임을 줄여 보려는 술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서울 한복판에서 단지 길을 가려던 수백 명의 젊은 목숨이 희생되었는데도, "주최 측이 없으니 책임질 일도 없다"면서 수수방관하던 태도와 같은 맥락이다. 제발 살려달라고 참사현장에서 보낸 112, 119신고가 진작부터 수십 차례나 있었음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극도한 혼잡' 상태에 경찰관이 개입할 의무를 경찰관직무집행법이 명시하고 있음이 지적되지 않았으면 '미안한 마음'이라는 사과는 하지 않았을 사람들의 속내일 것이다.

대구지하철과 세월호의 비극이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는 외침이 곡소리에 묻히고 외면되면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같은 참사를 다시 겪어야 한다. 그 참극의 관람객으로 다시 초대받지 않으려면 지금 복수를 다짐해야 한다. 책임자를 밝혀 애먼 희생자들의 목숨값을 받아낸 후에 명복을 빌겠다고 맹세해야 한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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