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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
갑돌이와 갑순이 이야기이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그러나 둘이는 마~음뿐이래요. 겉으로는 음~~ 모르는 척했더래요.' 이어지는 가사에서는 다른 남자, 마음에 없는 여자와 결혼해 서로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품은 채 살아갔다는 내용이다. 만일 둘 중 한 명이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서 결혼으로까지 이어졌다면 어떠했을까? 2·3절이 보여주는 애틋함은 없겠고 둘의 결혼생활이 행복했으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살아가면서 '그때 사랑을 고백해 볼걸'이라는 후회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비단 갑돌이 갑순이뿐이겠는가? 많은 경우 우리는 생각과 마음은 있지만 결심이 서지 않아서 또는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없어서, 가족에 대한 책임감 따위의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지 않는가? 오죽하면 죽기 전에 후회하는 목록의 상위에 늘 생각이 난 그때 미루지 말고 행동에 나서라고 충고하겠는가?
생각이 있은 다음에야 행동이 따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제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어도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결과는 있을 수 없다. 생각 없이 한 행동은 자칫 방향을 잃고 좌충우돌하거나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겠지만 머릿속에만 맴돌고 있는 생각은 결국 허망한 것이다. 이는 마치 다이어트에 관한 책이나 유튜브를 보고 앉아 있으면서 스스로 다이어트를 실천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세상의 변화를 촉발하는 1차적 원천은 사상이다. 일반인이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때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고 길을 제시한 선각자들 덕택에 인류는 발전해 왔다. 자유와 인권에 바탕을 둔 새 시대를 역설한 계몽 사상가들이 없었다면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 독립전쟁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상에 공감하고 거리로 나선 행동파가 없었다면 그 사상들은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행동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제아무리 정교한 구상을 하더라도 실제 상황에서는 수많은 변수로 말미암아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쟁의 진행 상황을 손바닥 보듯 하면서 작전을 지휘하는 제갈공명은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어렴풋하게라도 전망이 보이면 행동에 나서 문제에 부딪히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론은 보강하고 결과물은 완벽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산업발전 과정이 전형적인 예이다. 창의적인 특허나 신기술에 관한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머릿속 구상이나 연구실에서 소규모로 실현된 기술을 산업현장에서 효율적으로 대량생산해 내기까지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한다. 해보지 않고는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다.
행동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할 분야는 비단 거창한 분야만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가족으로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서 남을 바꾸고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아내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기에 앞서 앞치마 두르고 설거지를 하거나 방 청소에 나서는 것이 실질적인 일이다. 체중을 줄이고 싶다면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나설 일이다. 소주잔 앞에 놓고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에 나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도 결국 시간이 흐르고 난 뒤 후회하는 또 다른 형태의 갑돌이와 갑순이에 다름 아니게 될 것이다.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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