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출입처제도, 언론자유를 비웃다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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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2 06:38  |  수정 2022-12-02 06:49  |  발행일 2022-12-02 제22면
언론의 역할은 권력 감시
출입처제도 아래서는
그 기능 오롯이 작동 못 해
진짜 언론자유를 원한다면
기자 출입처제도 손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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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분쟁 전문기자

"형, 서울 취재 온 김에 청와대 기자실 가보게 일정 좀 살펴줘."

꼭 10년 전 이맘때였다. '뗌뽀' 기자인 내 친구 아하맛 따우픽이 대뜸 꺼낸 말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인도네시아를 취재할 때
국제분쟁 전문기자마다 제 일처럼 함께 뛰어준 놈한테 서울에서 그 빚을 좀 갚으려고 했더니 되레 부끄럽고 미안한 꼴만 보이고 말았다. 놈은 내게 2000년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 단독 인터뷰 자리까지 깔아주었는데 정작 나는 기자실 구경조차 시켜줄 수 없었으니.


대통령 윤석열이 부리는 얄궂은 언론 투정 탓에 요즘 언론자유가 화두로 떠올랐다는 서울발 뉴스를 보다 문득 꺼내 본 옛날 이야기다.

언론자유,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에 못 박아두었듯이, 온 세상이 적어도 헌법에서만큼은 신줏단지처럼 떠받드는 기본권이다. 그게 해코지 당하면 세계시민사회는 어김없이 언론자유 투쟁이라는 칼을 뽑아 들었다.

이제 우리 사회의 그 칼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고민할 때가 됐다. 한동안 바이든이니, 욕질이니, 언론사 고발이니, 비행기에 기자 안 태우기니, 출근길 문답 접기니 따위로 이어져 온 아주 시시껄렁한 윤석열식 우격다짐이 통할 수 있었던 배경을 보자는 뜻이다. 정치 훈련이 전혀 안 된 희한한 대통령 탓만 한들 언론자유란 게 저절로 굴러오는 떡이 아니므로.

진짜 언론자유를 원한다면 제도부터 손 봐야 한다. 기자들 출입처제도다. 이건 일본제국주의 잔재로 독재자들이 언론통제 연장으로 써먹으며 대물림한 전근대적 폐습이다. 한마디로 정부와 언론이 뉴스거리를 뒷구석에서 주고받는 흥정판이다.

원칙은 이렇다. 시민사회가 명령한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가운데 고갱이는 권력 감시 기능이다. 정치와 언론이 필연적 적대관계여야 옳은 까닭이다. 그게 건강한 사회다. 한데, 출입처제도 아래서는 그 기능이란 게 오롯이 작동할 수 없다.

예컨대 기자한테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같은 꼬리표가 붙는 순간 독립적인 취재는 물 건너가고 만다. 그 '단' 속에서 기자와 취재원이 한솥밥을 먹는다는 패거리 의식에 사로잡혀 정보를 주고받고, 기자들끼리 입을 맞추는 일이 벌어져 왔다. 그 '단'에 밉보이면 외톨이가 되고, 정보를 얻을 수 없고, 마침내 출입 자격까지 빼앗기는 조폭식 문화에서 일탈을 꿈꿀 만큼 간 큰 기자는 흔치 않다. 이번 MBC 건이 그 좋은 본보기였다.

보라. 대통령이 MBC 기자를 비행기에 안 태울 때도, MBC 기자 제재 방법을 물었을 때도, MBC를 고발했을 때도 용산 기자들이 달려들어 함께 싸우기는커녕 입 닫지 않았던가. 이건 진영 논리나 정치적 이념과 상관없이 기자들의 언론자유 의지를 시험한 사건으로 꼽을 만하다. 으레 거기엔 동료애 같은 낭만이 끼어들 구석마저 없었고. 이게 바로 대통령 윤석열이 기자들을 쥐락펴락하며 맘껏 투정 부릴 수 있었던 뒷심이다. '허울 좋은 하눌타리'란 말이 있다. 출입처제도를 둔 채 언론자유를 외치는 게 딱 그 짝이다.

그동안 나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일흔 나라쯤을 취재하면서 출입처제도 따위에 발목 잡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딜 가나 대통령실도 총리실도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었고.

서울에서 내 친구 따우픽한테 못내 미안했던 까닭이다. 수하르또 독재 시절 감방을 드나들며 언론자유 투쟁 챔피언으로 이름 날린 놈이 참 그리워지는 아침이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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