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책임지지 않는 권력

  •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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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2 06:38  |  수정 2022-12-02 06:48  |  발행일 2022-12-02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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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 변호사

2008년 2월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KBS 사장이었던 정연주가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랐다. 그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자 MB정권은 검찰을 동원하여 KBS를 샅샅이 뒤진 후에 그를 업무상배임 혐의로 기소했고 이사회는 이를 이유로 정 사장을 해임했다. 그런데 검찰이 찾아낸 혐의라는 것이 KBS가 국세청과 벌인 소송에서 법원이 권유한 합의안을 수용하였다는 것이었다. 이길 수도 있었던 소송에서 일부를 양보하였으니 KBS가 손해를 봤다는 어처구니없는 논리인데, 당시 검찰 내부에서도 반발이 있었지만 정치적인 목적으로 기소를 감행하였던 것이다.

정 사장은 형사소송에서 당연히 무죄를 받고 해임무효소송에서도 승소하여 해임된 기간의 급여도 소급하여 다 받았으니 KBS로서는 소송비용과 함께 소송이 진행된 동안 두 명의 사장 급여를 지급하는 큰 손실을 입게 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정권의 요구에 순응하여 정 사장을 기소한 검사가 자신의 임무에 위반하여 국가에 큰 손실을 입힌 배임의 책임을 져야 할 일이었다. 나중에 검찰과거사조사위원회에서는 이 사건 기소를 무죄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일부러 기소한 것으로 판단하여 검찰총장이 사과까지 하였지만, 수사와 기소를 담당한 당시 부장검사는 그 뒤에도 영전을 거듭하여 이번 윤석열 정부에서는 엉뚱하게도 금융감독위원장 후보에도 올랐다.

2013년 있었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에 대한 간첩 사건은 수사기관에서 직접 허위의 출입국 기록까지 조작한 것이 법정에서 밝혀져 무죄판결을 받았다. 증거 조작과 관련하여 국정원 직원들은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검찰은 정작 담당검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고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무능해서 몰랐다는' 이유로 기소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무능함을 주장하여 책임을 벗은 이 검사는 유우성씨와 그 가족이 오랜 기간 겪은 고통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사건에서도 국가는 엄청난 배상을 하게 되었지만 곽상도를 비롯한 검사들은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책되었다. 검사들의 경우에는 뭉그적거리다 형사상 공소시효나 민사상 소멸시효를 그냥 넘기는 경우가 왜 그리 많을까?

검사도 실수할 때가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일반 공무원들과는 달리 검사는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데에 있다.

검찰이 기소했지만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경우에 담당검사의 과실이 있는지를 심사하여 근무평정에 반영하는 무죄평정제도가 있지만, 최근의 통계를 보면 검사의 과실이 인정된 경우는 10%에 불과하다. 기소된 개인이 무죄의 확정판결을 받기까지는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엄청난 고통을 겪고 기업이 도산하는 경우까지 흔히 보지만,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는 대부분 법적 책임은 고사하고 근무평정에서의 불이익조차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에서 자유로운 권력은 남용되고 오용되기 마련이다. 지금 일부 정치검사들이 보이는 오만과 독선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잘못을 저지른 검사 개개인의 형사적·민사적 책임을 놓치지 않고 엄하게 추궁하는 제도와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면 검찰의 횡포를 막기는 어렵다.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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