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장미의 이름'을 다시 읽으며

  • 김영우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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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7 06:44  |  수정 2022-12-07 06:48  |  발행일 2022-12-07 제26면
중세 수도원 배경 추리소설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식인
움베르토 에코의 대표 작품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태도
우린 무엇을 장미라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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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

겨울이 되면 움베르토 에코(1932~2016)가 떠오른다. 이탈리아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였던 그는 고아였던 할아버지로부터 '하늘의 선물(Ex Caelis Oblatus)'에서 따온 에코(Eco)라는 성을 물려받는다. 책의 잉크 냄새를 좋아했던 그는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그를 20세기 지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만들어 준 것은 1980년 발표한 첫 소설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이다.

1327년 11월 교황청이 아비뇽에 있던 시절, 윌리엄 수도사가 베네딕트 수도원에 도착하며 일주일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프란치스코 수도원과 교황청 사이의 논쟁을 조정하기 위해 파견되었는데, 이 수도원은 종교적 문제에 비판적이었던 한 화가의 죽음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 몇몇 수도사들이 잇따라 사망하는 사건까지 일어난다.

윌리엄 수도사는 사건의 열쇠를 찾다가 마침내 미궁의 도서관을 발견한다. 하지만 비밀을 지키려는 호르헤 수도사에 의해 기독교 최대의 도서관은 불길에 휩싸이고 수도원도 폐허가 된다. 책의 기본 줄거리는 살인사건의 진상 규명을 둘러싼 수도원 내부의 대립이지만, 교황청과 수도원 간의 신학적 대립, 수도원을 둘러싼 지역세력 간의 알력 싸움도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이 소설은 어렵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도입부가 라틴어로 쓰인 것도 한몫한다. 이는 중세철학 연구자로서 풍부한 지식과 첫 소설작품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코는 훗날 이에 대해 "산에 오르려면 산의 호흡을 알아야 하듯, 내 소설을 읽으려면 내 소설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지금까지 6천만 부나 팔렸고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이 소설을 쓰기 3년 전 에코는 흥미로운 저술을 남겼다. '논문을 잘 쓰는 법(How to write a thesis)'이라는 책에서 논문은 자신의 첫사랑과 같다고 했다. 따라서 주제를 잘 선택해야 하고, 필수 자료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연구문제에 제대로 답할 수 있도록 목차를 꼼꼼하게 적으라고 강조했다. 목차가 제대로 나올 때까지는 논문을 시작하지 말고, 본문에는 되도록 짧은 문장을 쓰라고도 했다. 오늘날 이 책은 지금도 많은 대학에서 읽히고 있는데 단지 이론으로만이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이에게 유용하다는 평가다.

이 소설은 난해하지만 자신의 글쓰기 이론을 잘 지키고 있다. 소설의 두 주인공인 호르헤 수도사와 윌리엄 수도사는 각기 중세와 근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설정해 놓았다. 장님이자 연로한 호르헤 수도자는 절대적 숭배 같은 중세적 도덕성에 집착한 반면, 젊은 윌리엄 수도사는 그 대척점에 서 있다. 이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었던 중세철학과 수도원에 대한 작가의 철저한 고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에코는 작가 노트에서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처음 제목은 '수도원 범죄사건'이었는데, 사람들이 사건에만 집중할 것 같아 상징적 의미가 풍부하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장미를 제목에 넣었다고 한다. 여기서 장미는 무엇일까.

책의 마지막에는 "지난날의 장미는 이름으로만 존재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헛된 이름뿐(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이라는 구절이 있다. 개인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를 위해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한 해를 보내며 우리는 무엇을 장미라고 믿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김영우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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