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베르히만 아일랜드' (미아 한센러브 감독·2021· 프랑스 외)…포뢰섬에서 쓴 사랑의 마지막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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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9 08:51  |  수정 2022-12-09 08:54  |  발행일 2022-12-09 제39면

배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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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내보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자신의 한 부분이 드러나는 게 작가의 숙명이지만, 대놓고 자전적 이야기를 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다가오는 것들'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던 미아 한센러브 감독이 자신의 창작과 사랑 그리고 이별 이야기를 영화에 담았다. 그녀는 '퍼스널 쇼퍼'의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과 오랜 연인이었다.

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에서 영화감독 커플인 크리스와 토니는 각자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스웨덴의 포뢰섬으로 향한다. '20세기 최고의 감독' 잉마르 베리만(제목의 베르히만은 틀린 표기다)이 말년에 기거한 곳으로,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페르소나' '결혼의 풍경' 등을 촬영한 곳이다. 아름다운 포뢰섬에서 남편 토니는 순조롭게 작업이 진행되지만, 크리스는 집필에 어려움을 겪는다.

배우 탕웨이와 김태용 감독이 결혼식을 올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포뢰섬은 영화인들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섬 곳곳에는 베리만 감독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재미있는 건 섬사람들은 감독을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토니는 단체로 섬 투어를 하며 베리만 감독의 자취를 따라다니지만, 크리스는 우연히 마주친 영화과 학생의 안내로 포뢰섬의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에 한껏 취한다. 작업에 진전이 없어 섬을 헤매던 크리스는, 마침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야기를 토니에게 들려준다. 하지만 그는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의 업무에 바쁘다. 크리스는 홀로 에필로그를 완성한다.

가장 흥미로운 건 에필로그에서 자신과 상상 속 인물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별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파하며, 미련을 떨치지 못했던 상상 속 여인이 자신임을 섬세하게 전한다. 이 영화가 '경계' 혹은 '사이'에 관한 이야기임을 또렷하게 말한다. 사랑과 이별 사이, 현실과 픽션 사이 그리고 예술과 일상 사이의 간극 말이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위대한 예술가' 베리만 감독의 사생활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5번의 결혼과 9명의 아이들. 그중엔 아버지 얼굴을 모르고 자란 아이도 있었다는 것 등등. 토니는 "50편의 영화와 수백 편의 연극을 만든 예술가가 아이 기저귀 갈아줄 시간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크리스는 존경하는 감독이지만, 사생활이 문란한 건 싫다고 말한다.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영상 철학자'였던 베리만 감독은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베리만 감독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관찰했지만, 내가 추구하는 건 우리 삶 속에 있는 빛을 발견하는 것"이라 했다. 그 말을 입증하듯, 엔딩 장면에서 감독의 '페르소나'인 크리스는 어린 딸을 힘껏 껴안는다. '어떤 아픔과 상처 속에서도 삶을 사랑하고 끌어안을 것'이라 말하는 것 같다. '다가오는 것들'에서 삶의 위기를 뚫고 나가는 것이 독서(철학)였다면, 이 영화는 사랑과 이별, 아픔과 행복, 그 모두를 있는 그대로 껴안는 거라 말한다. 불안과 염려로 잠을 뒤척이다 깬 날, 엔딩 장면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두려움 없이, 다만 삶의 모든 부분을 그렇게 껴안자고.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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