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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
지난 한 세대 동안 '정치의 사법화'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대표하는 표현 중 하나가 되었다. 정치세력들은 타협과 조정으로 합의할 수 있는 사안마저 쉽게 헌법재판소와 법원과 검찰로 가져가곤 한다. 정치가 이러하니 시민들의 일상에도 최종적인 결정을 사법에 맡기는 관성이 뿌리를 내린다. 넘쳐나는 형사고소와 이혼 사건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 되어버린 민사소송 제기율 등은 한국 사회를 극단적인 소송사회로 내몰고 있다.
정치와 일상이 극도로 사법화되면, 당연히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판검사들에게 사회 전체의 주목이 쏠리게 된다. 누가 판사고 누가 검사냐가 실질적인 권력 행사의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주목도의 상승은 그 자체로서 강력한 정치적 자원이 되어 역으로 '사법의 정치화'를 추구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우선 이 두 현상이 부인할 수 없는 정치적 현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공정하고 상식적인 인물들이 판검사가 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법조일원화에 어울리도록 판검사 임용 절차를 개선하고, 형사재판의 배심제와 함께 행정·가사·노동·사회보장재판의 전문가법관제를 시행하며, 지방검사장의 주민직선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제도 개선의 출발점은 바로 판검사들에 대한 정기적이고 공식적인 법의식 조사이다. 지금껏 한국 사회는 초임 판검사를 실질적으로 판검사조직이 스스로 충원하는 체제를 유지해 왔다. 고위직 판검사 인사에 대해서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회와 대통령이 관여할 수 있고, 부분적이지만 법원과 검찰의 외부인사들이 후보추천과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외의 판검사들은 사실상 판검사조직이 스스로 선발한 인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와 같은 체제는 판검사집단의 조직적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이점이 있으나, 자칫 판검사집단을 일반 국민의 상식이나 정의감으로부터 유리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법률적 전문성을 다루는 선발시험 성적을 위주로 초임 판검사를 선발할 경우, 경험 법칙상 판검사가 되려는 사람들은 일반 국민의 상식과 정의감보다는 기존 판검사집단의 지식과 가치지향에 맹종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들어 평생 판검사로 일한 인사들로부터 판검사집단 내부의 문화와 분위기가 과거와 매우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와 같은 변화는 관점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으나, 문제는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변했고, 그 결과가 일반 국민의 상식과 정의감과 어떻게 다른지를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일반 국민의 상식과 정의감에 대해서는 1990년대부터 관련 연구기관에서 '국민 법의식 조사'를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판검사집단에 대해서는 유사한 조사가 없었던 것 같고, 혹 있었더라도 일반 국민에게 공표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권자인 국민의 법의식은 조사하면서도, 그 주권에서 나온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검사의 법의식은 조사하지 않는 셈이다.
'정치의 사법화' 및 '사법의 정치화'가 심하지 않다면, 이와 같은 비대칭은 대수로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실질적인 권력이 사법과정으로 넘어간 상황에서는 최종권력을 행사하는 판검사집단의 법의식이 일반 국민의 상식과 정의감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를 모두가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조사 문항의 조정과 개발, 익명성의 철저한 보장, 분석 결과의 투명한 공표를 전제로, 국민 법의식 조사에 병행하여 정기적이고 공식적인 판검사 법의식 조사를 제안한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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