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메일] 후진하는 '국회선진화법'

  • 류성걸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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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26  |  수정 2022-12-26 06:50  |  발행일 2022-12-26 제25면

[여의도 메일] 후진하는 국회선진화법
류성걸 국회의원 (국민의힘)

2012년 5월2일 제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날치기와 몸싸움으로 얼룩진 '동물 국회'의 종지부를 찍고, 대화와 타협으로 선진 국회를 만들기 위해 여야가 함께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개정된 국회법은 국회의원들의 선량한 양심과 정당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국회의 후진적 행태를 제거하고 선진적 정치문화를 만들겠다는 소망을 담은 것이었다. 남용되었던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 강화 등을 통해 다수당의 일방적 횡포를 막고, 여야 협치를 통해 안건을 더욱더 세밀하게 심의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등 국회 전반의 선진화 의지를 담았다는 상징적 표현으로 학계와 언론 등에서 이를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렀다.

내용은 크게, 여야 간의 이견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 안건을 심사하기 위한 안건조정위원회 구성과 최대 90일간의 활동, 시급하고 중요한 안건이 무한정 위원회에서 방치되어 처리되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안건의 신속 처리, 예산안과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의 본회의 자동부의를 통한 예산안의 법정기한 내 처리, 의장석 등 점거금지 및 처벌 강화, 그리고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도입 등이다.

선진화법 시행 1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여의도의 정치는 크게 선진화되었는가? 대체로 그렇지 않아 유감이다. 거대다수당은 절대 의석을 앞세워 소수당과의 협치 없이 그들이 처리를 원하는 안건을 밀어붙이면서 선진화법을 무력화하고 있다. 여야 동수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원회는 그 취지에 반하여 위장 탈당 인사 등을 상대편 몫의 조정위원으로 배정하여 불과 몇 시간 만에 일사천리로 안건을 처리하곤 했다. 선량한 양심과 선의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합법적 무제한 토론은 회기 쪼개기 꼼수로써 원천 봉쇄하니, 의회 민주주의는 실종되어 온데간데없다.

예산안의 법정기한 내 처리는 어떤가. 국회법에서는 예산안 등과 세출예산안 부수 법률안 심사를 11월30일까지 마치지 않으면 그다음 날(12월1일)에 바로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매년 지체되었던 예산안 심사를 앞당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규정이 시행된 이후 예산안 법정 처리기한을 지킨 사례는 2014년과 2020년 두 차례뿐이다. 이 규정이 없었을 때와 무엇이 다른가. 거대 야당의 몽니와 새 정부 발목잡기로 올해도 예산안 처리기한을 훌쩍 넘겨버렸다.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라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선정했다. 스스로 만든 법을 거리낌 없이 어기는 정치권의 행태를 꼬집는 듯하다. 그전에는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라는 아시타비(我是他非), '도둑과 도둑 잡을 사람이 한패가 되었다'라는 묘서동처(猫鼠同處)가 선정되는 등 시간이 갈수록 정치 냉소주의가 심화하는 듯하여 걱정이 깊어진다.

고물가·고금리를 포함한 복합경제 위기의 파도가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유수의 전문기관과 정부조차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대로 예측하는 등 한국경제에 대한 우울한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 퇴행적 모습은 국민의 정치불신을 심화시킬 뿐이다. 다수의 완력에 의해 후진하는 여의도 정치를 하릴없이 바라보니 국민께 송구할 따름이다. 여의도 정치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절대다수의석에 꼼수와 몽니까지 부리는 정당과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지 않는지 궁금하다.

류성걸 <국회의원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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