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자작나무(1) 겨울 숲에서 마주한 순백의 지조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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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17 09:04  |  수정 2023-02-17 09:11  |  발행일 2023-02-17 제33면
영양 검마산 첩첩산중 자리한 韓 최대규모 자작나무숲
구름 한점 없는 파란하늘과 어우러진 풍경에 마음 충만
국내서 보기 드문 숲…시간 흐를수록 관심·사랑 더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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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겨울 하늘과 어우러진 영양 자작나무숲.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 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웠다// 내가 자라던 곳에는 어려서부터 바람이 차게 불고/ 나이 들어서도 눈보라 심했다/ 그러나 눈보라 북서풍 아니었다면/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몸짓을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외롭고 깊은 곳에 살면서도/ 혼자 있을 때보다 숲이 되어 있을 때/ 더 아름다운 나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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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가 본 영양 자작나무숲. 1993년 검마산 자락 30여㏊에 심어 가꾼 자작나무숲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영양군이 각종 편의시설을 조성 중인데, 아직 정식 개장하지 않았다.

도종환의 시 '자작나무'다. 한겨울의 자작나무숲을 보기 위해 영양 자작나무숲을 찾아갔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검마산 깊은 산속에 있다. 지난달 31일 아침, 대구에서 죽파리로 향했다. 최강 한파가 마무리되는 시기, 대구의 낮 온도가 영상인 날을 택했다.

처음 가보는 자작나무숲도 좋았지만, 그보다는 자작나무숲에 도달하기까지 계곡 옆길을 따라 혼자 깊은 산속을 10리 정도 걷는 시간이 더 좋았다. 깊은 산속의 자연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산 입구에서 계곡의 얼음 위로 걸어보기도 하며 천천히 1시간 이상을 걸어 올라갔다. 평일 오전 낮 12시쯤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도착해 자작나무숲을 돌아볼 때까지 나 혼자였다.

산속 계곡을 따라 낸 임도가 이어진다. 자갈과 흙으로 잘 만든 넓은 임도는 가파른 곳이 거의 없는, 걷기도 좋은 평탄한 길이다. 더불어 임도 옆으로 계곡 가까이에 따로 조성한 숲속 오솔길이 곳곳에 있는데, 이 길을 걸으면 더 호젓함을 누릴 수 있다.

길은 양쪽에 높은 산줄기가 있어 햇빛이 들지 않는 구간이 훨씬 많았고, 계곡에는 얼음이 꽝꽝 얼어 있었다. 이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고, 추위는 많이 풀렸으나 산 계곡은 영하의 기온이었다. 무성하던 잎들이 모두 떨어진 활엽수 나목이 대부분이고, 곳곳에 멋진 적송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들리는 건 내 발걸음 소리와 바람 소리, 새소리 등이 전부였다. 바람도 별로 없는 날씨였지만, 산 능선 위로는 바람이 지나가는지 멀리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간혹 청설모 등이 오가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두어 번 들렸다. 어릴 때 어른들이 들려준, 사람을 해치는 짐승이 지나가며 내는 소리가 아닌가 싶어 마음이 잠깐 움츠러들기도 했다. 너무 적막한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길 곳곳에는 아직 내린 눈이 녹지 않은 곳도, 빙판으로 변한 곳도 많았다. 식물이 피우는 꽃은 없지만, 대신 겨울이 만들어낸 다양한 얼음꽃을 계곡 옆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나무나 큰 바위 아래에 보이는, 스며 나오는 땅속의 물과 영하의 날씨가 싸우며 만들어낸 얼음꽃들은 물론, 계곡 옆 곳곳에 흘러내리는 폭포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얼음 조각을 보는 즐거움도 각별했다. 고개를 들면 나목들이 늘어선 산 능선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이 또한 마음을 충만하게 했다.

그렇게 자연을 느끼며 걷다 보니 눈앞에 큰 계곡이 끝나고 세 개의 작은 계곡이 합쳐지는 산자락이 나타나면서, 거기에 자작나무숲이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자작나무숲을 거닐며 한겨울 자작나무숲 정취를 만끽했다. 오래 기억될 시간이었다. 심은 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 줄기가 그리 굵지 않은 터라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해가 갈수록 사람들의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차지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자작나무(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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