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자작나무(2) 기름기 많은 껍질, 가난한 자에 촛불로…신비스러운 자태, 문학·예술 소재로…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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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17 09:10  |  수정 2023-02-17 09:11  |  발행일 2023-02-17 제34면
솔잎혹파리 병충해로 소나무 베고 70만 그루 심은 인제 자작나무숲
나무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크게 들려 자작나무라 이름 붙여져
종이·가죽염색·지붕 등 사용…각 나라 민족이 영험한 나무라 신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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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자작나무숲 5월 풍경. 〈영양군 제공〉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첩첩산중에 자리한 자작나무숲에는 수령 30년생 자작나무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다. 겨울의 이 숲에 들어서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순백의 나무들이 별천지를 선사한다. 자작나무숲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죽파리 마을은 조선 시대 보부상들이 정착하면서 개척한 마을로 대나무가 많아 '죽파(竹坡)'라 불렀다고 한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은 인공 숲이다. 산림청이 1993년 죽파리 검마산(해발 1천17m) 자락 일대에 자작나무를 심어 조성했다. 솔잎혹파리로 소나무들이 죽으면서 황폐화한 곳에 자작나무를 심어 가꿔온 숲으로, 축구장 40개에 해당하는 30.6㏊에 12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다.

자작나무숲에는 2㎞ 정도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이 자작나무숲은 2020년 국가지정 국유림 명품 숲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직 정식 개장 전인데, 진입도로와 주차장을 비롯해 화장실, 자작나무숲 힐링센터, 자작나무 체험숲, 카페 등 관련 시설을 준비 중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현재 시험 운영 중인 전기차도 정식 운영할 예정이다.

영양 자작나무숲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 자작나무숲으로 인제 자작나무숲이 있다. 영양 자작나무숲보다 더 일찍 유명해진 숲이다. 남한에서는 자생하는 자작나무를 보기 어려운데, 한반도에서는 중부 이북이나 고산 지역인 강원도 산간에서 드물게 보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자작나무숲인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도 산림청에서 조성한 국유림이다. 1974년부터 1995년까지 자작나무 약 70만 그루를 심어 가꾸어 온 곳이다. 원래 소나무 숲이었지만 솔잎혹파리로 병충해가 심해 소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자작나무를 심었다.

원대리 자작나무숲 중에서도 자작나무가 특히 많은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6㏊)은 명품 숲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해발 800m 정도 위치에 자리한 이 숲은 2012년부터 개방돼 찾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 숲의 자작나무들은 높이가 20∼30m에 이르고, 사람 가슴 높이 지름은 15∼20㎝ 정도.

숲 안에는 정자처럼 지은 숲속 교실과 전망대, 인디언 집 등이 있다. 특히 자작나무를 엮어 만든 인디언 집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자작나무숲을 궁금해하며 찾아오는 발길이 늘어났다.

영양 죽파리 및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숲과 함께 김천 수도산 자작나무숲, 청송 무포산 자작나무숲도 산림청이 조림해 가꿔온 대표적 자작나무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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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자작나무숲. 멀리 산 아래 보이는 숲의 나무 대부분이 자작나무다. 짙게 보이는 나무는 소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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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의 자작나무숲. 다른 나무와 어우러져 있는데, 지금도 이 멋진 숲을 보며 느낀 기분이 생생하다.

◆자작나무는

'자작나무'라는 이름은 이 나무를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나서 붙여졌다고 한다. 다른 나무도 불을 붙이면 타는 소리가 '자작자작' 나지만, 자작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그 소리가 크다.

자작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소리가 많이 나는 이유는 자작나무의 성분 때문이다. 이 나무에, 그 껍질에 기름기가 많아서 그렇다. 기름 성분이 들어 있어 불이 잘 붙는 자작나무를 사람들은 불쏘시개로 쓰기도 했다. 그리고 흔히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화촉을 밝힌다'라고 하는데, 이때 화촉이 바로 자작나무 껍질 기름을 활용한 초를 말한다. 옛날 다른 기름이 흔치 않을 때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을 대신했다. '화촉(樺燭)'의 '화(樺)'자는 자작나무를 뜻한다. 같은 의미로 간혹 '화(華)'자를 쓰기도 했다는데, 지금 쓰는 '화촉(華燭)'이라는 말도 '화촉(樺燭)'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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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줄기의 껍질 모습.

자작나무 둥치를 만져보면 매끈매끈하면서 약간 폭신한 느낌이 든다. 기름기 때문인지 아주 부드럽고 매끄러운 가죽을 만지는 느낌이다.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은 잘 벗겨지는데, 이 껍질은 종이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이나 중국도 자작나무 껍질에 부처의 모습을 그리거나 불경을 적어 남겼다. 1973년 경주 천마총에서 하늘을 나는 천마(天馬)가 그려진 말다래가 출토되었는데,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의 주재료가 자작나무 껍질이다. 말다래는 말안장에 늘어뜨려 진흙이 말에 튀는 것을 막는 장식품을 말한다.

자작나무를 '백서(白書)'라고도 하는데, 옛날 그림을 그리는 화공들이 이 나무의 껍질을 태운 것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거나 가죽을 염색하는 데 사용하면서 부른 이름이라고 한다.

자작나무가 추운 날씨에도 잘 버텨 낼 수 있는 것도 줄기의 이런 껍질 덕분이다. 기름 성분이 있는 여러 겹의 얇은 껍질이 자작나무 줄기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혹한의 추위를 버틸 수 있게 하는 이 기름 성분은 자작나무 줄기를 안 썩게 하는 기능도 있다. 백두산 근처의 집은 너와집이 많은데, 지붕을 자작나무 껍질로 덮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그 위에 돌을 가득 올려놓았다. 자작나무 껍질에 기름기가 많아 잘 썩지 않기 때문이다.

활엽수인 자작나무는 위도가 높은 곳에서 자라는데, 시베리아나 북유럽, 동아시아 북부, 북아메리카 북부 숲의 대표적인 식물이다. 실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몽골을 여행하며 자작나무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함경도와 평안도 지역에서 자작나무가 자생하고, 백두산에 오르면 자작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여러 지역의 많은 민족이 자작나무를 영험한 나무라고 여기며 신성시했다. 중앙아시아 및 북아시아에서 굿을 할 때 샤먼은 자작나무와 말을 이용하여 제례를 치렀다. 말의 등 위에서 자작나무 가지를 흔들며 말을 죽인 뒤 자작나무 가지 불 속에 던진다. 몽골의 부랴트족은 자작나무를 천상계의 문을 열어 주는 문의 수호자로 생각했다.

자작나무에 얽힌 이야기도 적지 않은데, 특히 이 나무의 탄생 설화가 유명하다. 몽골의 영웅이자 세계 역사를 바꿔 놓은 칭기즈칸이 유럽을 침략하던 시절, 칭기즈칸을 도운 유럽의 한 왕자가 있었다.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은 그 왕자는 칭기즈칸 군대의 우수함을 과대 선전해서 유럽 군대가 싸우지도 않고 도망가게 했다.

이 사실을 안 유럽의 왕들이 이 왕자를 잡으려 하자 왕자는 홀로 북쪽의 깊은 산 속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더는 도망갈 곳이 없자 땅에 큰 구덩이를 파고, 자신의 몸을 흰 명주실로 친친 동여맨 후 그 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듬해 어느 봄날, 왕자가 죽은 곳에서는 나무가 한 그루 자라났다. 이 나무가 마치 흰 비단을 겹겹이 둘러싼 듯, 하얀 껍질을 아무리 벗겨도 흰 껍질이 계속 나오는 자작나무라고 한다.

자작나무는 문학과 예술 등의 소재로도 애용되었다.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에는 대부분 자작나무숲이 등장한다. '닥터 지바고'는 특히 자작나무숲이 인상적이다. 광활하게 펼쳐진 설원(雪原)의 눈보라 속에 쭉쭉 뻗은 늘씬한 몸매와 하얀 피부를 자랑하던 자작나무숲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 지바고와 라라는 언제나 흰 눈과 자작나무를 배경으로 만남과 헤어짐을 이어갔다.

최근 개봉한 영화 '영웅'에도 자작나무숲이 등장한다. 영화는 흰 눈이 쌓인 자작나무 숲에서 안중근과 동지들이 구국 투쟁을 맹세하며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에서 안중근은 이런 가사가 들어있는 노래를 부른다.

'내 조국의 하늘 아래 살아갈 그 날을 위해/ 수많은 동지들이 타국의 태양 아래 싸우다/ 자작나무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간절했던 염원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도록/ 뜨거운 조국애와 간절함을 담아/ 저 안중근 이 한 손가락 조국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북한의 시인 백석(1912~1996)이 1938년에 쓴 시 중에 '백화(白樺)'라는 시가 있다. 백화는 자작나무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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