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 꿈 이룬 '무국적 소녀'

  • 황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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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8  |  수정 2023-02-28 07:15  |  발행일 2023-02-28 제10면
중국서 태어났지만 출생 미등록

체류자격 없어 대학진학 못해

출입국 등 도움으로 학업 계속

대구에서 '무국적자'로 지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소녀가 주변의 도움으로 희망을 되찾았다.
 

대학 새내기 꿈 이룬 무국적 소녀
무국적자로 살아오다 최근 체류자격을 얻게된 A씨가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A씨 본인 제공

지역의 한 대학에 입학을 앞둔 A(20) 씨. 그는 의무 교육인 고교까지는 졸업했으나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A씨의 사연은 이렇다. 미혼모인 어머니가 중국에서 낳은 A씨는 5살 때 한국에 들어왔다. 출생부터 서류상 존재하지 않았던 A씨. 어머니와 대구에서 만난 한국인 '아버지'는 A씨에게 중국 국적이나 국내 체류 자격을 얻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대구에서 자라고 성장한 A씨지만 보통의 '대구 사람'과는 달랐다. 본인 명의 통장과 휴대전화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병원비는 남들보다 두 세배는 더 많이 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아버지마저 다친 뒤엔 생활고가 가중됐다. 아르바이트를 해 생계에 보탬을 주고 싶었지만, 무국적의 벽은 높았다.

고교 졸업을 앞둔 지난해 봄부터 A씨는 고민이 적지 않았다. 취업·대학 진학에 기대하는 친구들과 달리 A씨는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상담교사를 통해 '미래가 살고 싶지 않다'는 고민도 털어놨다. 학교는 A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수소문 끝에 박정선 대구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사회통합협의회 부회장과 연락이 닿았다.

박 부회장은 그때부터 A씨에게 '꿈'을 선물할 수 있는 방법 찾기에 나섰다. 쉽지는 않았다. 사실상 불가능했다. 서류상 중국에서도 출생 등록이 돼 있지 않아서다. 수차례 체류 자격을 얻으려고 노력했던 과거에도 같은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박 부회장은 "'무국적자'로 계속 남는다면, A씨는 인권유린, 임금 체불 등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A씨가 적법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걸 용인할 수 없어 할 수 있는 건 다해봤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 등에서도 A씨의 딱한 사정에 힘을 보탰다. 1년 가까운 노력 끝에 A씨는 최근 'D-4-3 체류자격'(유학비자)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 A씨는 상황별 체류 비자를 발급받으며, 추후엔 대한민국 국적도 취득할 계획이다. 현행법엔 외국인 등록을 마치고 5년 간 국내에 주소를 두는 등 요건을 갖추면 일반 귀화가 가능하다.

국적이 없어 학창 시절 제주도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었던 A씨는 대학 '새내기'로 희망을 품고 있다. A씨는 "의료기관에서 일하고 싶어 전공도 그 쪽으로 정했다. 앞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일하고 싶다"며 "큰 고민을 해결했으니, 대학에 가 친구들도 사귀며 한국에서 즐겁게 살고 싶다"며 웃었다.

박 부회장은 "시대가 변했다. 국내 이민자 수도 늘었고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삶이 강조되는 한편, 이민정책 방향도 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A씨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법·제도적으로 무국적자를 발굴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사회통합 차원에서 구제방안 모색에도 나서야 한다"고 했다.

 

 

황지경기자 jghw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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