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차 대유행 쇼크 딛고 세계적 모범사례 'K-방역' 선도

  • 강승규
  • |
  • 입력 2023-05-12 07:13  |  수정 2023-05-12 07:14  |  발행일 2023-05-12 제3면
3년4개월 만에 '코로나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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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2020년 1월20일 이후 한국은 정치·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지난 3년4개월 동안 전국적으로 3천135만1천686명의 누적 확진자가 나왔고, 사망자는 3만4천583명에 이르는 등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봤다. 대구경북민도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이라는 새로운 생활방식에 적응해야 했고, 상당한 규모의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11일 현재 대구의 누적 확진자는 136만2천749명, 사망자는 2천9명이다. 경북은 누적 확진자 143만856명, 사망자는 2천104명에 이른다.

'31번 환자' 여파 봉쇄 여론 속
드라이브 스루 진료 최초 도입
시민은 자발적 거리두기 실천
안정적인 방역망 유지 밑거름


◆2020년 2월 대구 팬데믹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는 2020년 1월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30대 중국인 여성이다. 검역과정에서 발열 등 의심 증상을 보여 긴급 검사한 결과, 이튿날 양성 판정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19는 정확한 병명도 없어 '우한폐렴'으로 불렸고,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이 엄습했다. 상황이 급변한 건 2월18일 '31번'이라는 번호가 붙은 신천지 대구교회 확진자가 나온 뒤부터다. 2월29일 확진자가 하루 최다인 909명을 기록하면서 '1차 대유행'이 시작됐다. '대구봉쇄'라는 단어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격리병상을 확보하지 못해 확진자가 사망하거나 의료 공백으로 응급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속출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지만 공급이 달려 약국이나 동사무소에서 마스크를 정해진 수량만큼만 지급받는 이른바 '마스크 대란'을 겪기도 했다. 3월22일엔 가족, 지인과의 만남을 자제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초유의 조치가 시행됐다.

방역당국은 2020년 4월 생활방역수칙 40여 종을 발표하면서 방역을 대폭 강화했다. 식당 등 실내에서 사적 모임을 할 때는 시간과 인원까지 제한하는 강제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됐다. 정부는 예방백신을 맞지 않은 미접종자에겐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방역정책을 펼쳤다.

◆드라이브 스루 선별 검사

2월18일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는 패닉 그 자체였다. 그러나 불과 5일 만에 세계 최초의 검사법이 나왔다.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전문의가 2월21일 제안했고, 칠곡경북대병원이 곧바로 도입한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코로나19 검사법이다. 드라이브 스루 검사는 2009년 신종플루 당시 미국 스탠퍼드대병원에서 시뮬레이션으로 시행된 적은 있어도 국가 차원에서 실제로 적용해 성공한 사례는 칠곡경북대병원이 세계 최초다. 이어 영남대병원이 더욱 업그레이드해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로 꽃을 피웠다.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장점은 감염 위험 차단과 신속한 검사다. 검사 대상자는 독립공간인 차 안에 머문 상태에서 체온 측정, 검체 채취 등을 받는다. 감염 위험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검사 시간은 대략 5~10분 정도다. 30분 정도 걸리던 검사 시간을 3분의 1수준으로 단축시킨 것이다. 2020년 2월 말 코로나19가 팬데믹 조짐을 보일 때 세계적인 방역 모범 사례로 찬사를 받았다.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된 것이다.

◆시민정신과 대구메디시티

코로나19 대유행 초반 대구는 사실상 멈춰 선 도시가 됐다. 인구가 250만명이 채 되지 않는 도시에 매일 수백 명씩 신규 확진자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해 4월 초순부터 확진자 수가 한 자릿수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대구가 안정적인 방역망을 유지했던 것은 높은 시민의식 덕분이다. 확진자가 급증한 그해 2월 말 시민은 불안감이 확산한 가운데서도 생필품 사재기를 하지 않았고 대구를 떠나지도 않았다.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졌지만 약국 앞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면서도 질서를 잃지 않았다.

대구시의사회는 '의병(醫兵)' 모집을 전국에 호소했다. 대구동산병원은 병원을 통째로 비워 진료소로 만들었다. 코앞의 서문시장은 반발 대신 일주일 휴장하고 봉사단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법정 감염병을 일반시설에서 치료하는 '생활치료센터'도 처음으로 등장했다. 대구시민도 스스로 격리에 들어가 시민 이동률이 80%나 줄었다. 시민은 확산세가 안정화할 때까지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친지와의 자발적인 '거리 두기'를 실천했다. 생활치료센터 도입, 대중교통 이용자 마스크 착용 의무화, 전자출입명부(QR코드) 도입 등 K방역'의 토대도 이때 마련됐다.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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