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우리가 몰랐던 퇴계의 사랑

  •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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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26 06:51  |  수정 2023-06-26 06:50  |  발행일 2023-06-26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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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경북본사 총괄국장

경북 안동에서 자주 듣는 이름의 하나는 퇴계 이황이다. 안동 출신의 대학자이니 그럴만하다. 퇴계에 대한 필자의 인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천원 권 지폐의 주인공으로 기생 두향과 애틋한 사랑을 한 인물, 또 다른 하나는 권력욕 없는 학자다. 필자가 '화폐 속 주인공들의 사랑'이라는 주제의 특강을 준비할 때, 쉽고 재미난 이야기를 찾다가 갖게 된 이미지다.

두향과의 사랑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퇴계가 단양군수를 했던 9개월 동안 두향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으나, 이후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매화를 사랑했던 두향 때문에 퇴계는 매화를 그녀 보듯 했다. 그래서 천원 권에 그려진 퇴계의 배경으로 있는 매화는 두향을 의미해, 두 사람은 천원짜리 지폐 속에서 영원히 함께 있는 셈이다.

권력욕 없는 학자라는 이미지는 '물러날 퇴(退)'를 쓰는 그의 호 때문이다. 수많은 중앙 관직 제안을 마다하고 말년에 고향에서 후학을 양성했던 그의 삶이 퇴계라는 호와 맞물리면서 권력욕 없는 학자로 각인되게 했다.

요즘 필자는 경북도청 안팎에서 나오는 퇴계에 대한 색다른 해석에 주목한다. 퇴계 정신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기치로 내세우는 지방시대 정신이 같다는 것이다. 퇴계가 안동에 머무를 때 그에게 배우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당시의 첨단 농경법을 안동 사회가 잘 접목해 잘 사는 지방이 됐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지방이 잘 사는 시대를 퇴계가 당시의 버전으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 도지사는 퇴계 정신을 지금에 맞게 계승·발전시키겠다고 한다.

퇴계 정신을 요즘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필자는 퇴계가 살았던 16세기와 퇴계의 흔적이 남긴 17세기 이후, 조선과 안동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냉철하게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퇴계는 1501년에 태어나 1570년 세상을 떠난 16세기 인물이다. 그가 살았던 때의 왕은 연산군·중종·인종·명종·선조다. 폭정·반정과 이에 따른 사화(士禍)로 얼룩졌던 시대다. 이 때문에 농사가 백성들의 삶을 지탱하는 산업이었지만, 수리시설을 만들고 관리하는 국가의 의지와 역량은 떨어졌다.

그래서 계곡의 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산으로 백성들이 들어간 시대가 16세기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안동에 사람이 모이고, 경상도의 중심 나아가 조선의 중심도 될 수 있었다. 여기에 퇴계라는 걸출한 인물과 새로운 농경법 도입이 맞물린 것이다. 그래서 당시로써는 가장 완벽한 지역개발이 안동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데 안동은 17세기 중반 이후 퇴계학을 종교 수준으로 추종하면서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아, 폐쇄적인 사회로 전락했다는 분석도 있다. 16세기에 도움이 됐던 지역개발 모델이 세상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 오히려 지역을 퇴보시켰다는 것이다. 퇴계 정신을 지방시대 정신으로 계승시킬 때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동시에 퇴계 정신을 요즘 세상으로 소환할 때, 재미와 첨단기술이 가미돼야 한다. 퇴계는 우리나라 화폐 속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인기 사극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재미난 이야기 거리를 찾아야만 많은 사람이 퇴계 정신에, 나아가 지방시대에 관심을 가진다. 첨단기술이 접목되면 금상첨화다. 그러면 우리가 몰랐던 퇴계의 사랑은 지방이라고 말할 수 있다.김진욱 경북본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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