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Ⅰ대구경북 소멸보고서] 철거비 지원 받았다고 집터에 과세…재산세제가 빈집 늘린다

  •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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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05  |  수정 2023-11-09 15:25  |  발행일 2023-09-05 제5면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Ⅰ대구경북 소멸보고서] 철거비 지원 받았다고 집터에 과세…재산세제가 빈집 늘린다
경북 청도군 청도읍에 위치한 한 빈집. 〈영남일보 DB〉

전염병처럼 번지는 빈집(영남일보 7월31일자 1·4·5면 보도)의 증가가 지방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운데, 정부가 오히려 빈집을 양산하는 제도를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한국지방세학회와 제주대가 지난 8월24~25일 개최한 2023년 하계 공동 학술대회에서 김민수 박사(대구시청 세정담당관실)와 황헌순 박사(한국법제연구원)는 '빈집정비사업 토지에 대한 재산세 과세 쟁점'에 대해 발제했다. 한국의 재산세제는 빈집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지자체가 지원한 빈집철거비
토지 유료 사용 대가로 간주
소유자에 토지분 재산세 부과
철거 않을 때보다 세부담 커져

거주 여부 무관 세금 감면하는
'1세대1주택' 비과세도 역효과

◆빈집 터에 재산세 부과 과중

지자체는 빈집 소유자의 동의를 전제로 빈집 정비사업을 실시한다. 빈집 철거 비용은 지자체에서 전부 또는 일부 지원하며, 철거 부지에는 통상 3년 정도 공공용지로 조성해 주차장, 텃밭, 쌈지공원 등으로 사용한다. 문제는 철거 후 토지 사용권은 지자체에 있지만, 소유권은 기존 빈집 소유자가 가진다는 데 있다. 지자체가 토지소유자에게 지불한 '빈집 철거 비용'을 '토지를 유료로 사용하는 대가'로 보면서 소유자에게 과중한 토지분 재산세가 부과된다. 공공의 이익 증대를 위해 실시하는 지자체 사업에 협조하는 집 주인에게 '불이익 부담'을 발생시켜 조세부담을 강요하는 셈이다. 지방세법상으로 국가와 지자체가 1년 이상 공용 또는 공공용으로 사용하는 재산에 대해서는 재산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유료로 사용하는 경우'는 재산세를 부과하는 예외에 해당한다.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도 이 경우 재산세 비과세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Ⅰ대구경북 소멸보고서] 철거비 지원 받았다고 집터에 과세…재산세제가 빈집 늘린다
김민수 박사·황헌순 박사.(사진 왼쪽부터)

물론 빈집에 대해서도 재산세는 부과된다. 그러나 빈집을 철거하고 난 후 나대지에 부과되는 재산 세액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법은 주택에는 많은 혜택을 주고 있는 반면, 토지 특히 나대지에 대해서는 중과세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철거 이후 부과되는 재산세가 철거 이전에 비해 4~5배가 넘는 경우도 발생한다.

김민수 박사는 "세계적으로도 집보다 나대지에 대한 세 부담이 일반적으로 큰 편"이라며 "특히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나대지에 대한 세 부담이 무겁다"고 지적했다. '1세대 1주택 비과세' 정책의 역효과도 꼬집었다. 김 박사는 "1세대 1주택에 대해서는 거주 여부와 상관없이 과다할 정도로 재산세를 감면해주고 있다"며 "그래서 빈집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더라도 계속 빈집으로 내버려 두는 것이 세금을 덜 내는 방법"이라고 했다. 또 "부동산이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인해 빈집을 팔지 않는다"라며 "더욱이 별장 중과세 폐지 법안이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하면서 빈집 문제 해결이 요원해졌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 "현행 재산세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빈집 정비에 협조한 집 주인에게 세제 혜택을 부여해야 하고, 법적 강제력을 부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빈집 철거 후 토지, 재산세 부과 논란

행안부는 빈집 철거 후 대지에 대한 재산세를 부과하라는 입장이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지난해 조세심판원은 대구 서구에서 발생한 사례에 대해 행안부와 다른 해석을 내놨다.

A씨는 2017년 "빈집정비사업으로 주택을 철거하면 철거비를 지원해주고 재산세도 부과하지 않는다"는 서구청의 말에 지상 주택을 철거했지만, 지난해 재산세 등 23만2천40원의 세금이 찍힌 고지서를 받아들었다. 당시 서구청은 A씨의 주택을 철거하고 난 후 남은 토지를 꽃밭으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A씨는 조세심판원에 재산세 부과가 부당하다는 심판 청구를 제기했다.

서구청은 "빈집 정비사업을 위해 500만원 상당의 철거 비용을 구청에서 부담했고, 지방세법 단서에 따라 재산세 비과세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조세심판원은 서구청의 재산세 부과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조세심판원은 "서구청이 빈집 정비사업을 수행하면서 건물을 철거했고, A씨는 이에 동의했을 뿐, 건물 철거 비용을 직접 수령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서구청의 논리대로라면, 단 1회 건물 철거 비용이 지급됨을 이유로 A씨가 토지 사용 대가를 계속 지급받고 있다는 것인데, A씨는 토지를 공공용으로 제공하면서도 무기한 재산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불합리한 결론이 도출된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자체마다 빈집 정비사업 방식이 다양해 A씨의 사례가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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