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길거리 클래식 음악을 추억하며

  • 박철하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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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14  |  수정 2023-09-14 07:40  |  발행일 2023-09-14 제17면

[문화산책] 길거리 클래식 음악을 추억하며
박철하<작곡가>

아직 낮에는 꽤 덥지만, 밤에는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이불을 끌어당기게 된다. 서서히 기나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추분이 되면 밤과 낮의 길이는 그 균형을 이룰 것이다. 7080세대에서는 계절이 바뀌어서 가을이 되었다는 것을 LP레코드 가게 앞 스피커를 통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김없이 그맘때 들려오던 음악은 이탈리아 작곡가 비발디(Vivaldi,1678~1841)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四季)'였다.

1723년,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에 작곡된 '사계'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으로 꼽히곤 했는데, 사랑받던 연주 음반은 이탈리아 출신의 실내악단 '이 무지치'가 연주한 것이었다. 물론 가을날에는 '사계' 중에서도 그 세 번째 곡인 '가을'이 들려왔다. 아주 간결한 리듬으로 연주되는 모티브가 "짠짠짠짠 짜안짠짠"하고 들리면 깨끗한 가을하늘과 풍성한 가을축제가 느껴졌고, 발걸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 실내악단의 이름 '이 무지치'도 그 발음이 곡의 느낌과 잘 어울려서 입에 착 붙었다. 그 시절의 길거리 음악(?) '사계'를 추억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된 이 곡의 악기편성은 독주 바이올린과 현악합주, 그리고 바쏘-콘티누오로 구성되었다. 독주 바이올린과 현악합주가 번갈아 가며 나오는 동안 바쏘-콘티누오 악기들은 쉬지 않고 계속하여 반주 역할을 한다.'바쏘-콘티누오'는 쳄발로(영어로는 하프시코드)와 저음 선율악기가 같이 연주하는 성부이다. 저음 선율악기는 악보에 기보된 음표를 그대로 연주하면 되는 것에 반해, 화음 악기인 쳄발로 연주자는 그 저음 음표에 추가로 기록된 숫자를 보고 화음을 유추해 즉흥연주 한다.

이러한 바쏘-콘티누오 즉흥연주 양식은 유럽 바로크 시대의 음악적 특징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다. 이는 오늘날 대중음악에서 선율 악보에 적힌 코드 기호를 보고 즉흥연주 하는 대중음악의 방식과 비슷한 점이 있다. 기본이 되는 저음과 그에 어울리도록 제시된 화음, 그리고 그 음악의 스타일 등을 고려하여 '제한과 자유'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도록 즉흥연주 하는 것이다. 이 즉흥연주 전통은 고전과 낭만의 시기에는 사라졌다가 20세기가 되면서 다시 중요하게 사용되었고, 오늘날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 가을날 '제한과 자유' 사이의 균형을 잘 이루며 하루하루 살아가길 원한다. 트로트와 아이돌 음악만이 여기저기 들리는 요즈음, 어린 시절 들려오던 길거리 클래식 음악이 그립다. 오늘은 오랜만에 LP 레코드판을 얹어 먼지 낀 바로크음악을 들어봐야겠다. 박철하<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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