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젊은 피는 뇌의 노화를 늦춥니다!

  •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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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18  |  수정 2023-09-18 09:27  |  발행일 2023-09-18 제13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젊은 피는 뇌의 노화를 늦춥니다!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어릴 적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이야기 중에 자신의 피를 먹여 노모를 살린 효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날마다 한 번씩 발작을 하며 기절하는 난치병(아마도 현대의학에서 뇌전증이라 부르는 병으로 추측됩니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신 효자가 있었는데, 아버지 병간호로 늘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한 스님께 시주를 하였더니 고맙다고 하던 스님이 우연히 효자의 아버지 상태를 보더니 "자네 아버지 병에는 살아 있는 사람의 피를 먹이면 낫는다"고 말해줍니다. 이 말을 들은 효자는 바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서 아버지에게 먹였더니 그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너도 나중에 내가 나이 들어 아프면 그렇게 해줄거냐"고 물으셨죠. 지금이라면 당장 제 피를 다 드린다고 했을 텐데, 철없던 그때 그 시절 향기박사는 어머니에게 "그럼 엄마는 내가 아프면 엄마 피 줄 거야?"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향기박사가 굳이 손가락을 잘라 어머니에게 피를 드리지 않아도 어머니를 오래도록 건강하게 해드릴 방법이 생겼습니다. 2023년 8월, 노화를 역행할 수 있는 물질에 관한 논문이 3편 연달아 발표되었는데, 흥미롭게도 모든 논문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물질은 바로 우리 핏속에 있는 혈소판 인자(platelet factor 4, PF4)라는 단백질이었습니다. PF4는 혈소판에서 만들어져 혈액 응고 촉진 및 염증과 상처 회복에 관여합니다. 그럼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해부학과 사울 빌레다(Saul Villeda) 교수가 Nature지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먼저 보겠습니다.

빌레다 교수는 10여 년 전 어린 쥐의 혈액을 제공받은 나이 든 쥐는 학습능력이 개선된다는 연구결과를 보고 처음으로 호기심을 느꼈고 그 후 혈액 속의 어떤 물질이 그런 일을 하는지 알아보는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빌레다 교수는 혈액 속의 많은 인자 중에서 나이 든 쥐와 비교할 때 젊은 쥐 혈액에 훨씬 많이 존재하는 PF4에 주목하였고, 나이 든 쥐에 PF4를 주입하고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를 관찰하였습니다. 그 결과, PF4 주입으로 해마 속 신경세포의 감염이 감소하고 인지 장애가 개선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빌레다 교수는 PF4가 시냅스 가소성(신경 세포들 사이의 연결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촉진하는 분자들의 발현을 증가시켜 인지기능 개선이 일어났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같은 대학교의 신경과에서 연구하는 데나 듀발(Dena B. Dubal) 교수는 Nature Aging 지에 PF4가 장수와 인지기능 개선에 관여하는 단백질인 클로토(Klotho)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표하였고,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 뇌연구소 타라 워커(Tara L. Walker)는 운동을 통한 뇌 노화 억제 효과에 PF4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Nature Communication지에 발표하였습니다. 독립된 3건의 연구 모두 혈액 속 물질, PF4가 뇌의 노화를 억제하고 인지기능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돕는다는 것을 밝힌 거죠. 이번 연구들을 통해 노화와 인지기능 저하를 위해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는 약을 만들기까지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이제 우리는 적어도 노화 억제제를 개발할 수 있는 단서는 찾은 셈입니다.

논문을 읽고 나니, 혹시 역노화를 도와주는 PF4 물질이 너무 효과가 좋아 주름이 자글자글한 인간 뇌를 생쥐 뇌처럼 매끈하게 만들어버리면 어쩌나, 그래서 사람들이 생쥐 수준의 인지기능을 가진, 더 이상 지혜롭지 않은 존재가 되면 어쩌나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젊은 피 수혈이 우리 몸의 노화를 역행시킨다는 사실은 단순히 의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는 진리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젊은 인재들을 수혈해야 하니까요. PF4처럼 시대에 뒤처진 것들을 되돌려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어주는 젊은 인재들의 참신한 생각과 도전의지에 먼저 사회에 발을 내디딘 사람들이 시간과 경험으로 축적한 지혜가 더해진다면, 예쁘게 주름진 성숙한 뇌처럼 과거와 미래가 균형 잡힌 이상적인 사회로 발전하지 않을까요?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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