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포항 전통시장 감성여행 .5] 구룡포 시장

  • 류혜숙 작가
  • |
  • 입력 2023-09-26 07:47  |  수정 2023-09-26 07:47  |  발행일 2023-09-26 제16면
"싱싱한 광어회 만원에 즐기GO…구룡포 대게 단맛에 놀라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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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구룡포항 바로 앞에 위치한 구룡포 시장에는 바닷가 시장답게 입구부터 해산물이 넘쳐난다. 소라, 해삼, 멍게, 새우, 가리비를 비롯해 국산대게·홍게, 러시아산 대게 등 게 종류가 유독 많다.

내항의 반드러운 바다에 수많은 배가 흥성흥성하다. 항구를 둘러싼 거리는 비할 데 없이 벅적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항구마을 고유의 억양과 온갖 고장의 악센트가 뒤섞여 펄떡인다. 그 길에 구룡포 시장의 아케이드 입구가 높다. 구룡포항 바로 앞에 구룡포 시장이 있다. 후동천이 내항으로 흘러나가는 사거리에서 부두 입구인 수협교차로까지 항구 도로와 구룡포 초등학교 앞 안길도로를 잇는 커다란 직사각형 블록이다. 그 가운데에 아케이드 지붕을 올린 시장통이 십자로 뻗어 있다.

바닷가 시장답게 해산물 양 압도적
입구부터 국산대게 등 대게 가게 즐비
국내 대게 어획량 1위 구룡포 명성 입증

70년 전통 찐빵 맛집 '철규분식'부터
국수 달인이 만드는 해풍국수 등 별미


◆구룡포 시장

바닷가 시장답게 입구부터 해산물 가게가 압도적이다. 갓 건져 올린 바다가 가지런히 넘친다. 금세 숨넘어간 것들, 꿈틀꿈틀 살아있는 것들, 빨래집게에 입을 물린 채 말라가는 것들, 덜 말린 것들과 바짝 말린 것들, 찢어 놓은 것, 잘라 놓은 것, 썰어 놓은 것, 구워 놓은 것, 쪄 놓은 것 등 온갖 모습의 바다가 다 있다. 커다란 대게들이 열 지어 대자로 뻗은 즐거운 가게들도 있고, 순진한 눈빛을 한 별별 날것들의 횟집이 있고, 과메기나 물회와 같은 달큰하고 비린 이름들도 있다. 모든 어패류는 산소 포장해 준다는 안내문을 본다. 만원의 행복을 외치는 광어회, 도다리회, 참돔회, 모둠회 등의 회 도시락도 있다. 주전부리 건어물 3종 세트도 역시 만원의 행복이다. 그 사이사이 채소가게와 과일가게, 식육점, 방앗간, 떡집, 그릇 가게, 반찬가게, 닭집, 참기름집, 각종 식당, 뜨개방, 떡갈비집, 호떡집, 옷가게, 잡화점 등이 자리한다. 건어물 가게에서 즉석으로 문어를 굽고 있다. 시장 호떡집은 그냥 지나칠 수 없지. 국숫집 문이 노상 열렸다 닫히고 곰탕집의 커다란 가마솥에서는 뽀얀 소머리 곰탕이 솥뚜껑을 들썩이며 팔팔 끓고 있다.

특히 국산대게, 국산홍게, 러시아 수입 박달대게 등 게가 많이 보인다. 구룡포에 도착하면 수많은 대게 가게에 일단 놀라게 되는데,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구룡포항은 국내 대게 어획량 1위에 최대 집산지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대게 물량의 절반 이상이 구룡포 산 대게다. 심지어 성수기에는 구룡포에서 잡힌 대게가 울진, 영덕으로 팔려 가기도 한다. 구룡포 대게는 속살이 눈처럼 희고 껍질이 부드러우며 담백한 맛과 쫄깃한 식감을 가지고 있다. '연지홍게'라는 것도 있다. '꿀 홍게'라고도 부르는데 포항 구룡포 앞바다 수심이 낮은 곳에서만 조업되는 품종이라 한다. 장맛이 대게와 흡사하고 단맛이 나며 껍질이 투명하면서도 주홍 핑크 빛을 띤다. 크기는 작지만 짜지 않고 담백하고 고소해 인기가 많다. '배오징어'도 볼 수 있다. 오징어를 잡자마자 바로 손질해 배에서 말린 오징어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의 오징어 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포항의 특산물인 과메기 역시 대부분 구룡포에서 만들어서 유통된다. 겨울이 되면 구룡포 시장 곳곳에서 대게 찌는 소리가 넘쳐나고 정육점이고 닭집이고 국수 공장이고 어디에서나 신우대에 빽빽이 걸려 말라가는 윤기 자르르한 과메기를 볼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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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현대화 과정을 거친 구룡포 시장은 앞으로 다양한 콘텐츠 개발 등을 통해 '문화관광형시장'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구룡포 시장의 명물들

구룡포 시장에는 향토 뿌리 기업인 제일국수공장 해풍국수 점포가 들어서 있다.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줄서서 사가는 국숫집이다. 이곳에서는 한 묶음의 국수가 탄생하기까지 짧게는 이틀, 길게는 사나흘도 걸린다. 반죽을 하고 재래식 기계에서 면을 뽑아내는 데 한나절, 이후 야외 건조장에서 해풍으로 반건조 상태가 되면 창고에 넣어 숙성시키는데 이 시간만 15시간이다. 이마저도 태양과 바람이 도와줄 때만 가능하다. 그렇게 말린 국수 가락을 새벽에 꺼내 다시 널어 완전 건조시킨 후 알맞은 크기로 자르기까지 다시 한나절이다. 국수 재료는 딱 3가지, 물, 소금, 밀가루뿐이다. 그날그날 날씨에 따라 소금 농도와 물의 양과 국수 두께까지 달라진다. 날씨가 흐리면 소금을 적게, 바람이 약하거나 추울 때는 소금을 많이 넣는다. 바람이 강하고 습도가 높으면 물을 많이 넣어 반죽을 약간 질게 만들고,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면 물을 적게 부어 반죽을 되게 한다. 국수를 건조할 때도 날씨에 따라서 국수 가락 너는 간격까지 달라진다. 45년간 국수를 만들어 온 할머니는 자연과 소통하며 국수를 만들고 이제는 소금물에 맨손을 담그는 것만으로 그 염도를 구분해낼 수 있는 국수의 달인이다.

구룡포의 향토음식인 모리국수를 맛볼 수 있는 가게들도 있다. 모리국수는 생선과 갖은 야채를 넣어 얼큰하게 우려낸 국물에 칼국수 면을 넣은 것이다. 집집마다 술안주나 해장용으로 먹던 음식이라 가게마다 각양각색의 맛이다.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맛과 모양새는 호불호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문득 다시 떠오른다. 확실한 것은 이 맛을 보려는 손님이 전국에서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70년 전통의 찐빵집인 철규분식도 널리 알려진 맛집이다. 국수, 찐빵 5개와 단팥죽으로 구성된 찐빵세트, 단팥죽이 메뉴의 전부다. 찐빵이 가장 유명하지만 국수 맛에 놀란다는 것이 맛본 이들의 전언이다.

◆오일장이 열리는 상설시장

구룡포는 조선 시대까지 대체로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다. 1883년 조일통상장정이 체결되고 일본인의 조선 출어가 본격화되면서 조용한 어촌마을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1906년에는 가가와현의 어업단 80여 척이 고등어 떼를 따라와 구룡포에 눌러앉았다. 일제강점기가 되자 구룡포는 최적의 어업기지로 떠올랐다. 구룡포 앞바다는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었고 갈퀴로 쓸어 담을 만큼 고기가 잘 잡혔다. 이에 일본인 수산업자인 '도가와 야사브로'는 조선총독부를 설득해 구룡포에 축항을 추진했다.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든 것이 1923년. 큰 배가 정박할 곳이 생기자 일본인들이 대거 구룡포로 몰려왔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시장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구룡포의 옛 이름은 창주(滄洲)다. 당시에는 5일장 형태로 운영되어 창주장이라 했다. 광복 후 1950~1960년대에는 영일군 전체를 대표하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아케이드 공사는 2014~2019년 4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지난한 시간이었다. 올해는 '2023년도 전통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돼 앞으로 '문화관광형시장'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시장디자인 환경개선, 점포 콘텐츠 개발 등 문화 콘텐츠 사업, 디자인 조형물 제작, 상인교육 등 혁신역량 강화사업과 프리마켓, 시장 내 행사 등 활성화 이벤트가 추진된다.

안길도로에서 구룡포 시장 입간판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구룡포종합시장'이라는 이름이 걸린 박공지붕의 옛 장옥을 볼 수 있다. 이 장옥은 70년이 넘은 건물로 과거에는 잡어선(일명 고뎅구리) 경매어시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라 한다. 각종 고기들이 경매를 거쳐 시판되었고 일부 암컷대게(일명 빵게)는 일본으로 수출할 정도로 시장이 형성됐었다. 암컷대게의 포획이 금지되면서 '구룡포종합시장'은 점차 해체되었고 이후 창고처럼 쓰이며 방치됐다. 상인들과 인근 주민들은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옛 장옥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모르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난다. 항구의 시장 또 어느 곳에서 이런 장옥을 만날 수 있을까.

현재 구룡포 시장은 상설시장이면서 3일과 8일마다 오일장도 열린다. 장날 이른 아침이면 대보, 장기, 삼정, 구포, 오천, 동해면 등에서 온 할매들이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호박, 가지, 고추, 배추, 상추, 호박잎, 늙은 호박. 부추, 파, 깻잎, 양파, 마늘. 오이, 토마토 등 구석구석 크고 작은 밭에서 키운 것들이 많다. 1933년 구룡포에서 태어난 황보출 할머니는 팔십이 넘어 시인이 되었다. 가난 때문에 아홉 살 때부터 식모살이와 행상을 시작했고, 고깃배가 들어오면 고등어, 꽁치, 오징어를 한 '다라이' 받아서 팔았다고 한다. 결혼을 한 뒤에는 밭농사를 지으며 이랑 사이사이 호박과 무, 배추를 심었다. 밤 11시까지 일을 하고도 새벽 4시면 시장으로 채소를 팔러 나갔다. '새벽에 시장가면'이라는 할머니의 시에는 멀고도 생생한 시장 풍경이 눈앞에 흐른다. '새벽에 시장가면/ 검은 털신 신고 검은 비닐봉지도 같이 신었다/ 새벽바람 불어 춥다 나무 주워서 불 때고 발을 쬐는데/ 양말이 불에 타는 줄 몰랐다/ 국수도 있고 미역국도 있지만 1천500원짜리 밥도 못 먹고/ 집에 돌아오면 허리가 휘청였다/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면 목에 걸리지도 않고 잘 넘어갔다/ 그 밥으로 한평생 살았다.' 건어물가게에서 만원의 행복 주전부리 건어물 3종 세트를 사며 한 '다라이'에 담긴 바다를 생각한다. 질겅질겅, 집으로 향하는 차 안이 숫제 바다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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