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 〈2〉 포항시 장기면 계원1리-동해안 별신굿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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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12 07:49  |  수정 2023-11-09 14:04  |  발행일 2023-10-12 제12면
무사·풍어 기원 대규모 굿판…마을 민속자원 명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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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장기면 계원1리는 한때 주변 어촌 가운데 손에 꼽히는 부자마을이었으나 어족 자원이 고갈되면서 한적한 어촌으로 변했다. 계원1리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동해안 전경.
한때 120가구 왕성한 어업 '부촌' 일궈
10여가구만 남아 해녀 활동, 생계 유지
어촌 수호신 모시는 '동제' 별신굿 전통
마을 존속 위한 동력자원 등 지원 절실


포항 감포읍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구룡포 쪽으로 가다 보면 양포항 못 미쳐 도로 아래 조그만 마을이 하나 숨겨져 있다. 장기면 계원1리는 해안도로 밑에 마을이 형성돼 있어 지나치기 쉽지만 조그만 포구와 등대가 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추석을 앞두고 마을을 찾았을 때 너무 한적하고 조용해 놀랐다. 마을 한가운데 정자에 어르신들이 없었다면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라 착각할 정도로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마을 정자로 다가가니 어르신들이 반갑게 맞는다. 미리 약속을 하고 온 터라 김용조 계원1리 이장과 머구리를 오래하신 전영득(75) 할아버지, 김실근(80) 마을개발위원이 담소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볼 거도 없는데 무슨 취재할 게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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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원1리 마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수령 500년 넘은 소나무인 곰솔의 웅장한 자태.
어르신들은 마을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한숨을 지었다. 계원1리는 한때 주변 어촌마을 가운데 소득이 둘째로 많은 부촌이었지만 지금은 10여 가구에서 해녀들이 해산물을 수확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서 보면 마을이 예쁘잖아. 항구를 중심으로 언덕에 100여 가구가 살았어. 마을 뒤에 국민(초등)학교를 설치할 정도로 교육열도 높았어. 이제 자식들은 다 떠나고 우리 노인들만 남아있지…."

김용조 마을이장은 "옛날부터 전복과 성게, 자연산 미역이 좋고 많이 나와 마을 사람들이 풍족하게 살았다"면서 "부산 기장미역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미역은 알아줬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의 마을 자랑이 끝없이 이어진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평생을 살아온 어촌마을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한때 어업활동이 번창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동제(洞祭)인 동해안 별신굿 전통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동해안 별신굿은 동해안의 어촌 마을에서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고 마을의 평화와 안녕, 풍요와 다산, 배를 타는 선원들의 안전을 빌기 위해 무당들을 청해다가 벌이는 대규모 굿이다. 풍어제, 풍어굿, 골매기당제라고도 하는 동해안 별신굿은 1년 또는 2~3년마다 열린다. 굿을 하는 시기는 마을마다 다르나 대체로 3∼5월, 9∼10월 사이에 주로 거행된다. 동해안 별신굿은 굿에서 추는 춤이 다양하고 익살스러운 대화와 몸짓 등 오락성이 강하다. 계원1리는 2년마다 5월 말~6월 초 사이에 동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계원1리는 1952년부터 작성된 동제 장부가 대대로 물려내려 올 정도로 동해안 별신굿은 유명하다. 찬조금 기록부터 행사 참여자 명단까지 꼼꼼히 기록해서 지난 역사를 알 뿐만 아니라 동제 때 어떤 절차에 따라 어떻게 치러졌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어장 수입이 줄어들면서 마을의 공동살림살이도 어려워지고 있지만 포항시의 지원을 받아 마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어촌마을 쇠락과 함께 동해안 별신굿 하는 마을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계원1리 동제는 이제 동해안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예전 동해안 별신굿은 마을의 가장 신성한 의식이고 큰 행사였어. 몇 달을 빈틈없이 준비하고 성대하게 치렀지. 바다 어업활동의 무사기원을 빌고 풍어를 바랐지."

수십 년간 이 마을 동해안 별신굿이 열릴 때마다 찾아서 자료를 기록하고 영상을 담아온 김신효(한국국악협회 대구시지회장) 박사는 "계원1리를 주목하게 된 계기는 동해안 별신굿이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조건들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면서 "마을 주민들의 화합을 이끌어 내는 소중한 민속 자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계원1리도 시대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인구감소에다 어업자원이 고갈되면서 젊은이들은 대부분 외지로 떠나고 해녀들만 고향을 지키고 있는 조용한 포구로 바뀌었다. 이날 마을 정자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해녀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참이었다. 60~70대인 해녀할머니들은 오전 7~8시쯤 바다로 나가면 오후 1~2시가 돼야 뭍으로 올라온다.

한 해녀할머니는 "바다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야간 불법조업이라도 막아주면 그래도 좀 나아질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어촌을 지키면서 머구리와 해녀들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어업활동을 할 수 없는 어촌이 될까 걱정이 됐다.

이날 잠수부를 동원해 바다목장에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돌아온 엄동락 계원어촌계장은 "계원1리 어장은 주변에서 가장 크다. 자연산 미역과 전복이 인기 좋았다. 그러다 양식미역과 전복이 나오고 바다도 고갈되면서 지금은 많이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어장에 해산물이 풍부할 때는 이 마을에 120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김실근(80) 마을개발위원은 "몇 년 전 뉴딜사업으로 해녀박물관을 건립하려고 했는데 사업선정이 안돼서 지금은 마을발전의 동력이 떨어진 상태"라면서 "마을이 사라지지 않도록 행정당국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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