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루나' (엘자 디링거 감독 · 2017 · 프랑스)…어두운 세상, 작은 희망 하나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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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10 08:03  |  수정 2023-12-12 10:55  |  발행일 2023-11-10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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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마음 무거운 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날 영화를 봤다. 이런 날도 영화를 볼 수 있구나 싶었다. 엠마 스톤의 하이틴 코미디 '이지 A'(2010)와 북유럽 영화 '호프'(2020)를 봤다. '이지 A'는 엠마 스톤이 '라라랜드'로 일약 스타가 되기 전 출연했던 영화고, '호프'는 말기암 환자의 내면을 생생하게 다룬 영화다. 마음이 편할 때만 영화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란 걸 알았다. 좋은 영화는 언제나 좋다.

요즘은 자주, 영화가 참 힘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이 영화보다 훨씬 더 극적이다. 영화가 아무리 평화와 인권과 공존을 말해봐야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영화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희망이다. 희망 없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서 말한 영화 '호프'가 그랬다. 암환자가 주변의 말 한마디에 희망과 절망의 시소를 타는 이야기였다.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 긍정의 힘이 사람을 살린다. 오래전 봤던 프랑스 영화 '루나'는 이런 소망과 긍정이 담긴 영화다. 암울한 세상에 긍정의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는 젊은 감독의 바람이 담긴 영화다.

일찌감치 직업전선에 뛰어든 10대 소녀 루나는 남자친구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다. 문제는 그가 동네 양아치라는 건데,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나쁜 남자'인 거다. 어느 날 이 불량배 일당에게 걸려든 10대 소년이 집단 괴롭힘을 당한다. 술에 취한 루나도 가담자가 된다. 우연히 피해자인 알렉스가 루나의 농장에 오게 되는데, 그는 루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착한 남자' 알렉스는 루나에게 호감을 보이고, 둘은 조금씩 사랑에 빠진다. 루나는 갈수록 죄책감에 시달리며 갈등하지만, 알렉스를 놓치기는 싫다. 결국 루나의 과거를 알게 된 알렉스는 어떤 선택을 할까.

'탄탄한 시나리오와 정교한 미장센' '서스펜스가 있는 영리한 영화' 등 프랑스 비평 매체에서 고른 지지를 받았다. 각본, 감독을 겸한 엘자 디링거의 섬세한 연출과 루나 역 레티샤 클레망의 연기가 특히 찬사를 받았다. 신인 감독, 신인 배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 지역의 풍경과 빛, 소리가 아름답게 담겼다.

개봉 당시 내한했던 감독은 인터뷰에서 "망가진 상황 속에서도 사랑이 가능할까? 폭력과 야만성보다 사랑이 더 강할까?"라는 문제를 파고들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서 폭력의 피해자인 알렉스의 선택을 통해 인류의 긍정성을 기대해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10대 청소년들의 일탈과 폭력, 왜곡된 사랑이라는 가볍지 않은 소재로,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중·고등학교 촬영 수업 때 만난 청소년들의 일화, 어린 시절 친구의 이야기 등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문화 차이로 인한 거리감이 있고, 청소년들의 일탈과 자유분방한 행동이 놀랍지만, 결론은 남프랑스의 햇살만큼이나 따스하다. 어두운 과거를 뒤로 한 채, 환하게 웃는 루나의 내일을 응원하게 된다. 암울한 세상에서 영화를 통해 작은 위로와 희망을 얻는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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