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영남일보 책읽기상 수상작] 대학·일반부 최우수상/이정윤 '고뇌를 사랑하는 법'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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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16 16:35  |  수정 2023-11-16 16:45  |  발행일 2023-11-16
[제30회 영남일보 책읽기상 수상작] 대학·일반부 최우수상/이정윤 고뇌를 사랑하는 법
대학일반부 최우수상 수상자 이정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사건에 대한 윤리적인 담론을 펼치는 것을 연습해왔다. 마이클 샌델의 '청소년을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에 소개되는 사례들은 토론의 단골 소재였다. 트롤리 딜레마를 어린 시절부터 접하게 된 나는 어린 나이에 사람을 몇 명을 죽여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상상 속에서 내가 저지른 최초의 살인이었다. 우리 사회는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시나리오에 관심이 많았다. 무인도에 조난 당한 선원들의 생을 연명하기 위해 어린 선원을 죽여 그들의 먹이가 되도록 하는 잔혹한 이야기를 두고 그들의 행동의 옳고 그름을 논하도록 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알맞은 선택을 하기 위해 학생들은 치열하게 고민하였다. 그리고 토론장이 열리면 양극에 서서 그동안 정리해온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우리는 공리주의의 개념을 알기도 전에 공리주의를 이해하게 되었다. 다수의 쾌락을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딜레마를 지속해서 겪었기 때문이다. 사실 극단적인 상황까지 제시하지 않아도 우리는 교실 내에서 윤리적인 이론을 습득할 수 있었다. 교실이라는 사회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윤리적인 동물이 되기 위해 양육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실이 본격적인 이론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공간이 되는 시기는 고등학교 때였다.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변장하고 있던 학문은 '윤리'라는 이름으로 변모하여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철학에 무한한 갈증을 느낀 것도 이 시기였다.

철학은 많은 것을 파헤치려 든다. 우주의 기원, 사물의 본질, 인간의 본성…. 수많은 것들이 그들이 논의하는 주제가 된다. 그 모든 소재가 내게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선택과목을 고르는 때에 주저 없이 '윤리'라는 과목을 선택한 이유였다. 윤리는 여러 철학 이론을 쏟아내는 과목이었다. 물론 그 모든 이론들을 수용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윤리를 좋아한다고 발언한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러한 내가 배운 서양 이론은 '좋은 삶을 위한 철학'에도 등장하는 것들이다. 서양 철학의 대표적인 이론인 덕 윤리, 공리주의, 의무론 같은 것들 말이다.

추상적인 세 이론은 다른 주장으로 '도덕'을 설명하려 한다. 덕 윤리는 '중용'을 중심으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공리주의는 더 많은 쾌락을 산출하는 방식을 따르기를 주장한다. 반대로 결과론적인 공리주의에 대항하는 의무론은 '정언명령', '선의지' 같은 독자적인 언어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며 말 그대로 의무적인 선 실행을 주장하려 든다. 책은 더 많은 이론들을 우리에게 설명한다. 스캔론의 계약주의나 제임스의 실용주의 같은 유명 사상들은 물론이고 현대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피터 싱어도 이 책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이론들이 알려주는 지침은 평범한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조건이 된다.

나에게 큰 인상을 준 실존주의도 '더 좋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실존주의는 내가 아는 사상 중 가장 인간에게 애정이 있는 사상이다.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을 인간의 세계로 방생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고뇌'를 좋아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더 좋은 삶을 위한'과 같은 수식어는 이 고뇌를 통해 만들어진다. 삶과 삶을 잇고 삶을 끌어안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철학자들은 많은 이론을 정립해왔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정의하기 위한 노력들을, 인간들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문명을 설명하기 위한 모든 발자취를 '고뇌'라는 단어 속에 포섭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고뇌'라는 단어로 이 책의 내용들을 내 방식대로 정리해나갈 수 있다. 더 좋은 삶을 위해 현재의 자신을 인지하고 나아가려고 하는 고뇌의 자세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자세이다. 수많은 일상적 상황들을 여러 이론을 대입하여 풀어내고자 하는 책의 방식 또한 내게는 고뇌로 보인다. 친구에게 선의의 거짓말을 할 것인지, 칙필레의 치킨 샌드위치를 소비할 것인지에 관한 현실적인 고뇌들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윤리적 고뇌들이다.

그리고 고뇌들은 주로 골치가 아프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고 말하기에 곤란한 것들이다. 나의 숱한 고뇌들은 토론장에서 이루어졌다. 어린 나이에 나름대로의 인간 연습을 통해 나의 실존을 찾으려 한 것이다. 책에서는 지속적으로 철학 사상을 내밀며 우리에게 여러 상황에 대해 고민해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내가 건진 것은 여러 철학과 고뇌하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책에서 의논하고 하는 상황은 언뜻 보면 딜레마이다. 기부를 했음에도 도리어 싱어에게 욕을 먹는 빌 게이츠의 상황, 불매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의 소비를 멈추어야 하는 상황들이 그 예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불매 대상이 되는 식품 회사가 존재한다. 먹고 싶은 것을 소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는 한동안 우리 사회를 들쑤시며 많은 갈등 상황을 빚어냈다. 불매 운동이 벌어지자 나는 그 식품 회사의 음식을 기피하게 되었다. 나는 윤리적 고찰 없이 군중 심리를 따르며 불매 운동을 했고 그럼에도 윤리적 피로감에 금방 지쳤다. 지속적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한다는 품위있는 행위는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책에서는 행운과 사과에 대해 언급한다. 행운은 뜻밖의 상황에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의 노력에는 항상 행운이 가미되어 있었다. 최근 나의 고뇌는 이 행운에 대한 것이다. 내 능력을 부정하는 자존심 구겨지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꽤 고달픈 일이었다. 내가 누린 것을 그리고 이룩해낸 것을 당연하게 수용하던 세상에서는 지금 내가 겪는 고뇌 따위는 없을 테니 말이다. 노력하면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채찍질로 수많은 이들을 절망에 몰아넣는 사회는 부조리를 외면하기에 바쁘다. 그렇기에 사회는 사과를 할 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고뇌'는 직시로부터 시작되는 개념이다. 나는 얼마만큼 직시하고 있는가? 그것은 철학이 세상에 묻는 질문과도 닮아있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더 좋은 삶을 꿈꾸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과 세상을 철저하게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이 뜻을 세우기 위한 고뇌는 더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 믿는다. 더 좋은 삶을 위해서 고민해보며 책을 읽는 과정이 내게 굉장한 경험이었음을 말하고 싶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인인 저자와 다르게 동양 윤리에 기대어 나의 삶을 찾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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