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 (스티븐 헤렉 감독·2015·미국)…추운 겨울 녹여줄 따뜻하고 포근한 영화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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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08 08:15  |  수정 2023-12-11 15:33  |  발행일 2023-12-08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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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따뜻함이 그리운 계절, 온기 가득한 가족 영화 한 편을 추천한다. 뉴베리상 수상작인 캐서린 패터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원제는 'The Great Gilly Hopkins'이다. 캐시 베이츠, 글렌 클로즈, 옥타비아 스펜서 등 연기파 배우들의 화려한 조합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홀랜드 오퍼스'(1995)의 스티븐 헤렉이 연출했다.

세 살 때 친모에게 버려져 위탁 가정을 전전하는 질리 홉킨스는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말썽꾸러기다. 새로운 가정인 트로터 아줌마네로 가지만 개학 첫날부터 싸움을 벌이고, 아줌마의 친절에도 반항심으로 대하기 일쑤다. 하지만 도둑질과 가출에도 자신을 내치지 않고 품어주는 아줌마를 보고 서서히 마음을 연다. 가족이 되어 행복을 찾아가는 그녀 앞에, 부자인 외할머니가 나타난다. 질리는 트로터의 가족으로 살고 싶지만, 하는 수 없이 외할머니를 따라가게 된다. 하지만 이내 돌아오고 마는데….

따뜻한 가족 영화지만, 정확히는 대안 가족이다. 위탁모 개념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친숙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훨씬 보편적이다. 작가 캐서린 패터슨도 위탁모로서, 자신의 체험을 작품에 녹여냈다고 한다. 상처 입은 아이를 제대로 대해주지 못한 미안함을 작품에 담아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폭신한 트로터 아줌마를 창조했다. 캐시 베이츠가 연기하는 트로터 아줌마는, 세상의 모든 어른이 배워야 할 롤모델 같다.

작가는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요즘 애들은 책을 읽지 않아"라고 중얼거리는 매점 아줌마인 것이 재미있다. 작가의 아들 데이비드 패터슨이 직접 각본을 쓰고 제작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영화 안팎으로 애정이 듬뿍 담겼을 수밖에 없다. 화려한 출연진도 원작에 대한 신뢰 덕분일 것이다. "내 마음에서 나온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서 닿는 것이 기적"이라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몇 년 전 봤던 영화를 다시 보고 나자, 마음이 솜사탕처럼 폭신폭신해졌다. 이런저런 일들로 내 안에 있던, 질리처럼 까칠한 사춘기 아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말이다. 영화가, 트로터 아줌마의 눈물과 미소가 마음을 어루만졌다. "네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다 이해해"라며 언제든 따뜻하게 안아 줄 것 같다. 어른이 된 우리 마음 안에도 그렇게,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있는 것이다. 위로와 사랑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있음을, 서로가 알고 이해했으면 좋겠다.

"인생은 만만치 않지만, 그것을 통과해 나가는 게 행복"이라는 트로터 아줌마의 말이 마음에 오래 머문다. "아줌마는 왜 그렇게 행복하세요?"라는 질리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진짜 어른의 대답 아닌가. 영화는 만만치 않은 인생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를 위로한다. 따뜻한 영화와 함께 포근한 연말 되시기 바란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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