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人사이드] 취임 100일 맞은 한인국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 "창업 아이템은 감출 게 아냐…수많은 조언 자양분 삼아 고도화해야"

  • 손선우,이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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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06 08:55  |  수정 2023-12-06 12:54  |  발행일 2023-12-06 제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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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만난 한인국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창업에 대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추면 고난과 역경을 마주해도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한인국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35년간 근무했다. 임원만 12년을 지냈다. 전형적인 대기업 엘리트 샐러리맨을 상상했다. 멀끔한 정장 차림에 교과서적인 발언을 쏟아낼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최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실에서 직접 만난 그는 머릿속에서 그려본 모습과 사뭇 달랐다. 큰 격자무늬의 체크 패턴 정장 재킷을 입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자신을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표현했다. 취임과 함께 주소지를 서울에서 대구로 옮긴 지는 석 달이 넘었다. 주변에선 굳이 주소지를 옮길 필요까지 있느냐고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마음은 서울에 두고 몸만 대구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싫었다고 했다. 그는 대구에서 보낸 생활에 대한 불만이 있느냐고 묻자, 주저 없이 한 가지를 꼽았다. "너무 더웠어요. 대구의 더위를 체감했어요. 대구사람들이 왜 화끈한지 실제 와보니 알겠어요." 


대구창경센터 태동 시기부터 관여
지역연고 없지만 친근하게 느껴져

몸담았던 삼성전자 벤처 투자·협력
로컬 스타트업 기회 얻을지 기대도

美 실리콘밸리서 급성장한 수재들
글로벌 인큐베이팅 통해 역량 닦아
국내 아닌 세계무대로 시야 넓혀야


▶연고도 전혀 없는 대구에 내려오게 됐다. 대구창경센터장을 맡게 된 계기는.

"센터장 면접을 볼 때 심사위원 중 한 분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개인적으론 대구와 인연이 없었다. 2014년 대구창경센터를 설립할 때 인연을 맺게 됐다. 기공식 때도 참석하고 당연직 이사로 이사회에도 배석한 적이 있다. 대구창경센터의 태동 때부터 관여해와서 무척 친근하게 느껴진다. 사실 대구창경센터장에 지원하기까지 닷새간 절치부심했다. 한 직장에서 35년이나 근무한 탓에 지난해 퇴임한 뒤로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삶을 꿈꿨다. 무작정 자전거여행을 떠났다가 강원도 속초에서 한 달간 살았다. 당시 바다를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대구창경센터장으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연거푸 받았다. 무조건 안 된다고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자유로운 영혼생활에 너무 얽매이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대구로 오게 된 계기는 퇴임 전까지 4년간 삼성전자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C-Lab)을 총괄하면서 창업 생태계에 대한 흥미가 솟아났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기획 업무만 보다가 스타트업을 직접 발굴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아이디어를 선별하고 과제화시키는 과정인데, 이를 4년간 신나게 즐겼다. 대구창경센터장을 맡으면 사실상 스타트업 생태계 지원업무를 연장하게 되는 것이다. 쉬는 건 나중에도 쉴 수 있으니 지금은 제가 잘 알고 또 신나게 일해볼 수 있는 일을 마음껏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C-Lab에서 모티브를 얻어 대구창경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가.

"C-Lab과 대구 창업 생태계는 환경과 목적, 취지가 너무 다르다. 삼성전자에서 벤처를 권장한 건 직원들의 창의적 욕구를 채우고 조직문화를 젊게 바꿔보자는 목적이었다. 사내에서 조직 만족도 평가 때 창의혁신성을 묻는 문항에서 실망스러운 점수가 매겨져 충격을 받았다. 경영진이 아이디어를 지닌 청년의 욕구를 해소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다. 1988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의 사내 문화는 구식이었다. 하지만 젊은 직원들이 입사하면서 조금씩 조직 문화도 바뀌어 갔다. 삼성전자 사내 혁신에는 C-Lab의 영향이 컸다. 청년들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선별해 과제화시킨 뒤 실제 창업으로도 이어지게 되자 사내 환경도 급속도로 변했다. 나중엔 삼성전자 사업에 도움 될 만한 아이템 발굴에도 신경을 썼다. 하지만 원래 사내 창의혁신적 분위기 확산에 초점을 맞춘 거라서 C-Lab을 그대로 창경센터 시스템에 그대로 녹여내는 건 무리가 있다. 추가로 덧붙이면 삼성전자 자체적으로도 스타트업과 사업적 연계에 거리를 뒀다. 그래서 스타트업을 육성할 때는 애지중지하다가 성장 궤도에 들면 자립하도록 내버려뒀다. 나중엔 그것도 진전돼 협력이나 투자, 인수합병(M&A) 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대구의 로컬 스타트업을 삼성전자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쉽지 않겠지만 대구에서 발굴·육성한 스타트업들이 어떤 식으로 기회를 얻게 될지 나 스스로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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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풍처럼 불던 창년창업의 성과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청년창업에 대해 평가한다면.

"가장 안타까운 건 창업을 쉽게 인지하는 것이다. 창업 공모에서 사업계획서를 살펴보면 절반 이상은 얕은 수준의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물론 논문 수준의 아이디어도 있다. 이런 다양한 아이디어를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얼마나 발전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창업 아이템을 복권처럼 여기고, 드러내지 않고 감추면 안 된다. 일례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급성장한 스타트업의 공통점은 세계적인 수재들이 전공 분야나 관심 분야로 창업했다. 글로벌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조언을 얻으면서 쉼없이 역량을 갈고 닦았다. 그런데 전문성 없는 아이디어로 창업하게 되면 얼마나 성공할 가능성이 있겠느냐? 일단 남다른 아이디어가 생성되면 경쟁력 있게 구현해야 한다. 수많은 조언을 자양분 삼아 초기 아이디어에서 고도화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아이디어의 착안자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창업의 결과물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느냐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국가 재산으로 창업 풀(Pool)을 키우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 빨리 성공해 상장(IPO·기업공개)하는 게 중요하진 않다. 사업 역량이 들불처럼 번지도록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메타인지력을 키워야 한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인지능력에 대해 알고 이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다시 말해, 내가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아는가를 파악하는 인지능력이다. 메타인지는 창업 성과와도 직결된다. 창업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지 못하면 시행착오를 더 많이, 오래 겪을 수밖에 없다. 무작정 좋은 기술, 좋은 방법을 찾기 전에 내가 아집(我執)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젊을 때 자기계발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정답은 방법론이 아니다. 운명론에 가깝다.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로 창업하면 초기 목적에서 변질되기 쉽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없다. 내 기술과 경험을 녹여낸 창업 아이템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꿈을 품을 줄 알아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누군가 편해질 수 있겠구나, 이런 목적의식이 있다면 사업적으로도 안정되고 유효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어떤 어려움을 마주해도 고유의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다. 또 국내가 아닌 세계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좁은 내수시장에서 경쟁에 치이지 말고 가능성을 전 세계에 보여주길 바란다. 그리고 나서 글로벌 인큐베이터들이 볼 수 있는 국제적인 커뮤니티나 사이트를 활용해야 한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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