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한국 골프장의 화무십일홍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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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20 06:54  |  수정 2023-12-20 06:55  |  발행일 2023-12-20 제26면
비싼 카트 이용 강제 등
골프장 불합리성 부각
코로나19 끝나자마자
참았던 골퍼 불만 봇물
골프장 위기론 재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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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체육부장 겸 NFT 팀장

미국으로 이민 간 후 한국의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귀국한 친구를 만났다. 이민 과정의 여러 에피소드를 말하던 중 재미난 이야기가 나왔다. 미국에서 골프를 치러 다니다 보니 골프 문화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클럽하우스 식당이나 로커, 사우나 시설 등이 고급 호텔 같은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로커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만큼 실용적이었다는 것이다. 골프장에 도착하면 차에서 골프화로 갈아 신은 후 골프백을 들고 바로 필드로 나가면 된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골퍼에게 가장 비판받고 있는 카트비의 경우 미국은 선택사항이라고 한다.

친구는 "같은 골프를 즐기는 데 드는 비용이 두세 배나 차이가 나는 이유를 알겠다"면서 "한국에서는 이제 돈 아까워서 골프 못 치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발간한 '레저백서 2023'에 따르면 비회원제 골프장의 1인당 주중 평균 이용료는 2022년 기준 17만4천원이었다. 이는 미국의 4만7천400원이나 일본의 5만5천400원의 세 배가 넘는 가격이다.

우리나라 골프장 가격이 오른 것은 코로나19 영향이 컸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된 2020년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골프장 전체가 담합하듯, 경쟁하듯 이용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2019년 1인당 주중 평균 이용료가 12만9천원이었으니 골프장들이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격언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골프장들의 배짱영업으로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골프장 이용 관련 소비자 불만은 코로나19 기간 매년 400건 이상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터무니없는 가격에 더 터무니없는 서비스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견디던 골퍼들의 반란은 코로나19가 끝난 올해 본격화됐다.

올 상반기 제주 지역 내장객이 20% 가까이 감소하며 적자로 돌아선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이나 동남아 골프 비용이 제주도보다 저렴하다고 알려지면서 국내 골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다.

또 경기침체도 골프장 위기에 한몫하고 있다. 최근 한 유통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올 1~10월 골프용품 구매금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안팎 줄었다. 특히 골프장 이용 등에 지출하는 골프시설 이용액은 같은 기간 11%나 급감했다.

이런 상황에도 우리나라 골프장들은 지난 50년의 호시절 동안 유지했던 영업방식과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골프 인구가 폭증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비싼 골프장의 고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새롭게 골프를 시작하는 세대는 비싼 그린피나 호화 시설을 감당하지도, 기대하지 않는 것과 배치되는 것이다.

10여 년 전 퍼졌던 '골프장 부도'라는 테마가 재부각되는 상황이다. 팬데믹 기간 늘어난 수요로 가격을 끌어올렸던 골프장 등 국내 골프업계는 이제 동남아 및 일본 골프장 등 글로벌 공급자와 경쟁해야 한다. 동시에 저출생에 따른 골프 인구 감소와 함께 다른 종목과의 경쟁도 불가피해졌다.

가격과 서비스 경쟁력에 뒤져 해외 골프장에 고객을 빼앗기고 있는 국내 골프장들에 10년 전 위기가 다시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홍석천 체육부장 겸 NFT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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