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우출 선생님의 종루(鐘樓)를 읊다

  • 이무열 시인·대구문화관광 해설사회장
  • |
  • 입력 2024-01-31 08:15  |  수정 2024-01-31 08:16  |  발행일 2024-01-31 제23면

이무열
이무열 (시인·대구문화관광 해설사회장)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이우출 교장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검은 뿔테안경이 인상적이었는데 월탄 박종화의 '흑방비곡' 말고도, 최독견이 쓴 '승방비곡'이 있다고 하셨다. 비극적 사랑을 다룬 소설인데 사랑하는 두 남녀가 나중에 알고 보니 이복 남매 간이더란다.

이우출 선생님이 들려준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어느 일요일 대학교수 몇 사람이 모여 희방사에 가기로 했다.

"선생님 희방사가 어디에 있는 절입니까?"

"아니 고전문학을 한다는 친구가…. 앞으로 대학교수가 될 사람이 석보상절이 발견된 희방사를 모르다니…. 세종임금 시절 한글과 한자를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 석보상절인데…."

젊은 강사는 끝내 전임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대학졸업 후 어느 가을날. 만촌 조기섭 시인이 이력서 한 통 써 오라시더니 나를 이우출 선생님 댁으로 데리고 가셨다. 대구 수성구 파동 어느 구석진 자리 골목길 끝에 선생님 댁이 있었다.

"아니 조, 조, 좃, 좃기섭 선생이 여까지 웬일이신교."

두 분은 만나자마자 대번에 술판부터 벌였다.

"어이, 이군 술 좀 사온나!"

그날 저녁 늦도록 두 분의 술자리 시중을 드느라 양복 안쪽 주머니에 넣어둔 이력서는 끝내 꺼내 보지도 못했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1986년 대구MBC 구성작가 시절 고(故) 이우출 선생님 시비 제막식 취재를 위해 문경새재를 찾았다. 그 현장에서 모교의 이술 선생님과 황호 선생님을 만났다. 또 한 분의 선생님은 나중에 경남대 국어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가셨다.

지금 대구문학관(중구 향촌동)에서는 탄생 100주년을 맞은 여영택(시인·아동문학가)·전상열(시인)·이우출(시조시인) 작가 3인전이 열리고 있다. 2월19일까지 전시될 예정인데 대구지역에서 평생 후학을 기르며 쌓은 문학적 업적과 인간적인 면모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리이다.

초운(樵雲) 이우출(李禹出) 선생님은 1940년 호국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영천 은해사에 설립된 오산불교학교 출신이다. 문경 김룡사에서 잠시 스님생활도 했으며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를 졸업하셨다. 졸업 후 능인고에 발령받은 이래 능인학교에 뼈를 묻은 분이시다. 1961년 '종루(鐘樓)'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1965년 이호우 시인과 영남시조문학회를 창립한 이래 1967년 낙강(洛江) 동인지를 발간하는 등 지역 시조문학 활성화를 위해 힘쓴 분이시다.

작년 대구박물관 '이건희 컬렉션' 전시장에서 뜻밖에 월인석보를 만났다. 그 후 부석사 가는 길에 일부러 찾은 천년고찰 희방사 5층 불사리탑 앞에서 50년 전 국어시간의 당신을 떠올렸다. 시간은 참 속절없이 저 홀로 깊어가는 것이어서 만촌 조기섭 선생님이나 당신의 시비 제막식에서 만난 은사님 두 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다. 나는 아직도 승방비곡이라는 소설을 읽지 못하고, 오늘 당신이 쓴 시조를 가만가만 가슴 속으로 읊조려 보고 있다.

'청태(靑苔)빛 돌층대를 눌러 앉아 솟은 다락/ 서역(西域)길 문을 열어 범종(梵鐘)이 울려오면/ 새벽달 푸른빛 여울을 헤엄치는 저 여운(餘韻)…선향(線香) 끝 타오르는 포오란 연기 너머/ 터질 듯 머금으신 미소를 보옵나니/ 두 손에 마음을 접어 고개 숙는 이 기원(祈願)'(이우출의 '종루(鐘樓)' 중에서)

이무열 (시인·대구문화관광 해설사회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