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깔랭] 수제비가 운두병이라고?

  • 한유정
  • |
  • 입력 2024-02-07 11:35  |  수정 2024-02-09 12:10
구름 모양을 닮은 수제비
조선시대에는 양반가 잔치 음식

 

 

雲頭餠 운두병 雲 구름 운, 頭 머리 두, 餠 떡 병.

‘운두병’! 이 익숙하지 않은 이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제비의 어원이다. 수제비 하면 1988년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해, 20년 동안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던 배우 고 최진실이 떠오른다. 

 

그녀는 가난하던 시절 지금은 고인이 된 남동생 고 최진영과  자주 해 먹었다고 회고했던 음식이다. 그렇게 수제비는 지갑이 얇은 서민들이 시장 모퉁이 난전에서, 등받이조차 없는 삐걱거리는 긴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호호 불어가며 먹던 음식이다.
 

그러나 6·25전쟁 이전만 해도 수제비는 아무나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밀은 비싼 식재료였다고 한다. 그래서 밀로 만든 음식인 수제비는 양반가 잔치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라, 여름은 덥고 습하고 겨울은 추운 한반도 기후와 맞지 않아 수확이 어려워 중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사치품의 일종이었다.

수제비의 어원은 6세기 전반 발간된 중국의 가장 오래된 농업기술서 ‘제민요술’에 수제비 박(餺), 수제비 탁(飥)이라는 한자어, ‘발탁(餺飥)’이란 말이 있었고, 조선시대 손으로 접는다는 의미의 ‘수접(手摺)이’란 말에서 지금의 수제비가 되었으리라 추측되고 있다.

수제비의 또 다른 이름은 구름을 물에 띄워 삶은 것 같다는 뜻으로 ‘운두병(雲頭餠)’이라고도 한다. 떠도는 야사에 의하면 수행승이 잠시 머물며 공양 받는 사찰음식으로, 끓는 가마솥 장국에 반죽을 툭툭 던질 때 생기는 모양새가 ‘물결치는 파도’와 같다고 해 ‘낭화(浪花)’라는 이름도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조리서에 적힌 ‘운두병’조리법에 따르면 밀가루에 다진 고기, 파·간장·기름·후춧가루·계핏가루 등을 넣고 되직하게 치댄 반죽을 뭉근하게 우려낸 닭 육수에 숟가락으로 떠 넣어 팔팔 끓여낸 후 그릇에 담고 삶은 닭고기를 고명으로 얹어 먹던 상류층 고급 요리였다.

그렇게 고귀하던 수제비의 신분이 지금은 많이 낮아졌다. 서민 음식 중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6·25 이후 전쟁고아와 재산을 잃고 거리를 헤매던 피난민이 먹거리가 없어 맹물로 배를 채우던 시절. 미국이 밀가루를 구호물자로 무상 원조하면서부터 밀가루는 흔한 식자재가 되었다.

아울러 1960년대 중반 이후 쌀이 부족해지자 정부가 내놓은 분식 장려 운동으로 인해 서민 음식에서 가난을 상징하던 음식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같은 밀가루로 반죽해 뜨거운 육수에 끓여 먹는 이 단순한 음식인 수제비가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전라도에서는 떠넌죽, 띠연죽, 다부렁죽, 경상도에서는 수지비, 밀제비, 밀까리 장국이라고 불렀다.

 

북한에서는 뜨더국, 닭 육수를 쓰는 황해도 수제비는 또덕제비, 메밀가루를 익반죽해 멸치 장국과 미역에 함께 끓이는 제주도 수제비는 ‘메밀저배기’라고 한다.

'운두병'에 대한 설명으로 벽 한 부분을 장식하고, 평범함을 거부한 수제비 맛집을 ‘영남일보 TV’가 찾아 나섰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가면 수제비를 조금은 특색있는 방법으로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이곳은 수제빗집 가게 같지 않은 안락해 보이는 외관에 도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다. 맑은 육수에 몽글몽글 아기 구름 같은 수제비 반죽 위로 뿌려진 김 가루는 마치 하늘을 지나간 한 무리의 새들과 같다.

상에 차려진 다진 마늘과 다대기, 그리고 잘게 썰어진 홍청 청량고추를 넣어 휙휙 저어 국물 맛을 한 숟가락 먹어보면 그 맛은 개운하면서도 밀가루 국물 요리의 텁텁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맛이 난다.

거기에 널따란 접시에 담겨 있는 무 무침을 수제비에 얹어 먹으면, 늘 먹던 김치와의 조합이 저절로 잊힌다. 예전에는 수제비 보다 이 무침을 먹고 싶어, 먼 거리를 마다하고 달려오던 손님들이 많았다고 한다.

고디와 미나리 무를 새콤한 양념에 버무려 나오면, 수제비를 먹기도 전에 접시가 비워질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다슬기나 미나리는 찾아볼 수 없지만, 그래도 이 맛은 우리의 입을 행복하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이곳도 세월의 무력함을 피해 갈 수는 없었는지 수제비를 뜨던 할머니들도 세대교체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원조 할머니들은 볼 수 없다. 그러나 2세대 할머니들이 주방을 맡고 있어도 옛 맛을 유지하는 비결은, 주인장 할머니께서 아직도 건강히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게의 상호처럼 이곳에서 수제비 한 숟가락 뜨는 순간만큼은 행복이 머무르기를...

 

한유정기자 kka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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