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책방 6.6개 vs 편의점 88개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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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15 06:51  |  수정 2024-02-15 19:15  |  발행일 2024-02-15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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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문화부장

시집전문 책방 창업교실이 열린다고 합니다. 쇼핑몰이나 카페, 벤처 창업교실은 종종 들어봤지만, 책방 창업교실은 생소합니다. 다소 생뚱맞은 창업교실은 지난해 대구 앞산 카페거리에 문을 연 시집전문 독립서점 '산아래 시(詩)'에서 열립니다. 시간은 오는 17일 오후 2시입니다.

이미 기사로 알려진 것처럼 산아래 시 책방지기는 일흔의 은퇴자입니다. 시집을 펴냈지만 서점 매대는 물론 구석진 책꽂이에조차 자리를 잡지 못한 수많은 지역 시인들의 시집을 산아래 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펜으로 꾹꾹 눌러 쓴 그의 결심들도 책방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산아래 시에서는 꼭 책을 사지 않아도 됩니다. 건성건성 시집을 펼치다 마음에 드는 시의 구절을 만나 위로를 받고 가면 그걸로 만족하는 책방입니다. 시인과 독자를 섬기는 책방지기의 마음 씀씀이가 더 와닿는 그런 곳입니다.

이번 창업교실 강좌도 일흔의 책방지기가 맡습니다. 남들은 일을 접는 나이에 기어코 책방을 차린 그의 창업 노하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왜 시집만 파는 책방을 열었는지에 대한 창업 배경은 물론 운영의 차별화, 홍보전략, 초기 투자 예산 등 책방창업의 A부터 Z까지 전할 예정입니다. 은퇴 후 동네책방을 차리는 것이 꿈인 필자 역시 기대가 됩니다.

책방지기가 보내 온 창업교실 홍보 포스터를 보면서 이번 행사의 '슬로건'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세상에 詩를 뿌리자!'

이 슬로건에는 산아래 시 책방지기의 '담대한 꿈'이 담겨 있습니다. 가끔 책방에 들를 때면 그는 늘 "한 집 건너 생기는 카페나 골목골목 들어서는 편의점처럼 크고 작은 책방들이 우리 주위 여기저기에 늘어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책방들이 저마다 먹고살 만큼 돈벌이도 되는 세상, 책이 '많이 팔리고' '많이 읽히는' 그런 세상이 열리길 바란다"고 덧붙입니다. 그가 쓴 단행본 '일흔에 쓴 창업일기'에도 이 문구가 나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지역 서점 수는 인구 10만명당 평균 5.3개입니다. 대구는 6.6개, 경북은 6.5개입니다. 전국 평균을 웃돌긴 하지만 초라한 수준입니다. 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지난해 전국의 편의점 수는 5만2천여 개에 달합니다. 대구는 2천100여 개입니다. 대구 인구가 237만명이니 인구 10만명당 편의점은 88개 정도 됩니다.

6.6 대 88, 동네책방이 편의점처럼 증가하려면 지금보다 10배 이상은 늘어나야 합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편의점은 그래도 '돈'이 될 수 있으니 골목골목 늘어나지만, 동네책방은 돈 벌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늘어나기는커녕 문을 닫는 책방이 더 많은 게 현실입니다

현실은 막막하지만, 산아래 시 책방지기의 담대한 꿈은 귀해 보입니다. 골목골목 들어서는 작은 책방들이 우리 문화생태계에 새로운 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바람이 소중해 보입니다. 굽어진 골목에서 솟아나는 에너지는 우리 삶의 자양분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 에너지가 카페나 편의점보다는 책방이면 우리 삶은 더욱 다채롭고 융성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문자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는 시대이지만, 클릭 한 번으로 편하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일흔 책방지기의 꿈을 응원하는 이유입니다.

창업교실 참가신청은 010-3529-7227로 하면 됩니다.
백승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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