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우리가 한 수 위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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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5 08:08  |  수정 2024-04-05 08:12  |  발행일 2024-04-05 제17면
정만진 소설가

매년 4월5일은 하늘이 맑아지는 청명이다. 그래서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라는 속담이 생겨났다. 그만큼 이 시기는 '춘삼월 호시절'이다. 농부는 논밭에 가래질을 시작하고, 일반인은 나무를 심는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라는 관용어는 청명과 한식이 같은 날이거나 한식이 청명 하루 뒷날이라는 속뜻을 담고 있다. 한식은 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였던 아득한 과거, 임금이 새 불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면 신하들이 그것을 다시 백성들에게 분배한 옛일에서 유래했다.

신하와 백성들은 임금의 불이 올 때까지 밥 짓는 일을 미루어야 했다. 아니면 찬밥을 먹는 도리뿐이었다. 찬밥의 한자어 표기가 한식(寒食)이다. 물론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사람 개자추의 고사에서 연유된 풍습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진 문공이 제후의 자리에 오르기 전 한미할 때 개자추와 참된 우정을 나누었다. 문공은 보잘것없는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는 개자추가 참으로 고마웠다. 그는 개자추에게 "내가 장차 빛을 보게 되면 그대를 결코 잊지 않으리!" 하고 다짐했다.

세속적 인간은 흔히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다른' 면모를 보인다. 제후가 된 문공은 개자추를 잊었다. 개자추는 한탄하며 산에 은거했다. 뉘우친 문공이 부랴부랴 산 아래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요청해도 개자추는 요지부동이었다.

문공은 산에 불을 질렀다. 개자추는 나오지 않고 불에 타 죽었다. 이후 문공은 개자추가 죽은 날마다 찬밥을 먹었다. 신라 효성왕과 신충도 닮은 듯한 인연을 쌓았다. 즉위 이전 신충과 대단한 교유를 나누었던 효성왕 역시 옥좌에 오른 뒤 벗을 잊었다.

신충은 향가 '원가(怨歌)'를 지어 부르고 산으로 은둔했다. 효성왕이 신충에게 나오라고 했다. 신충은 개자추와 달리 재상을 맡아 선정을 베풂으로써 신(信)과 충(忠)으로 이루어진 이름값을 했다. 공자의 정명(正名) 철학이 상기되는 대목이다.

개자추와 문공은 "가난할 때 친구는 잊어선 안 된다"는 빈천지교(貧賤之交)의 교훈을 준다. 거기에 보태어 신충과 효성왕은 신분(이름)에 어울리게 살아야 올바른 사람이라는 가르침까지 준다. 배운 바를 실천해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참된 지식인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우리나라 신충과 효성왕은 중국 개자추와 문공보다 한 수 위 인격이다. 신충이 향가 '원가'를 지어 부른 일은 그 상징이다. 상대의 사소한 실수를 너그럽게 품고, 백성들에게 이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꿈을 실현해낸 언행일치는 빛나는 열매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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