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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문화부장 |
시집 전문 독립서점 '산아래 詩'가 문을 연 지 1년이 되어간다. 지난해 6월이었다. 산아래 시는 '오로지 시집만 팔겠다'며 대구 앞산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책방을 시작한 이유부터 남달랐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일반 서점 구석 자리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시인들의 작품을 독자와 만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기실 국내 출판·유통 시장은 유명 작가 중심이다. 이름값이 없으면 출판사에서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서점에서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다. '그 리그'에 끼지 못한 시인들의 현실은 냉혹하다. 그럼에도 자식 같은 작품을 묵혀둘 수 없어 상당수가 자기 돈을 들여 자비 출판을 하게 된다. 적게는 수백 권 많게는 1천권 정도를 찍어낸다. 하지만 판로가 부족해 독자와 만날 기회조차 없다. 결국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대부분의 시집들은 자신의 집 한편에 쌓아두게 된다. '시집 한 권 냈다'는 만족감에 스스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산아래 시는 이러한 현실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서 문을 열었다. 집에 쌓여 있는 시인들의 '자식 같은 시집'을 독자와 만날 수 있게 하는 접점,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지난 1년을 달려왔다. 그래서다. 산아래 시에 들어서면 유명 시인보다는 이름이 덜 알려진 시인의 시집들로 가득하다. 커피나 굿즈도 팔지 않는다. 오로지 시에 집중해 주길 바라는 책방지기의 원칙이다.
시집의 서열도 없다. 잘 팔리는 책을 '명당 자리'에 진열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시집이 동등하다. 주기적으로 시집의 배치를 바꿔 모든 작가의 작품이 한 번씩은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놓아 독자와 만나게 한다. 이 역시 책방지기의 원칙이다.
시집 유통 방식은 혁신적이다. 시집을 별도로 구매하지 않는다. 시인들이 직접 책을 보내오면 판매하는 일종의 위탁형식으로 운영한다. 서점에 들어온 시집은 정가의 90% 가격에 판매하고, 그중 60%를 시인에게 돌려준다. '남는 게 없는 장사'지만 산아래 시는 이 원칙을 1년째 유지하고 있다. 한사코 시집 수익금을 받지 않겠다는 시인들도 더러 있다. 이들은 "내 시집이 이름 모를 독자에게 팔려 읽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사양한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책방지기는 돈을 받을 때까지 그 시인의 시집을 판매대에 다시는 내놓지 않는다. 이 또한 이곳만의 원칙이다. 시인과 시집에 대한 존경심이면서 배려인 셈이다.
산아래 시가 알려지면서 책방을 열고 싶다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월에 이어 이번 달에도 '시집 전문서점 창업교실'을 무료로 열었다. 창업교실 이후 '산아래 詩 개정 칠곡책방' 등 대구·경북에 4곳의 책방이 문을 열고 운영 중이다. 충북 청주, 대구 복현동 등에서도 창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롭게 문을 연 책방들도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한 시인과 독자와의 접점 역할을 하고 있다. 판매방식도 거의 유사하다. 산아래 시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생겨나는 셈이다. 그렇다고 산아래 시 책방지기가 그에 따른 비용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는 오로지 '세상에 詩를 뿌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한 집 건너 생기는 카페나 골목골목 들어서는 편의점처럼 크고 작은 책방들이 여기저기에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책이 '많이 팔리고' '많이 읽히는' 그런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일흔의 책방기지의 꿈은 이것뿐이다. 그 꿈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 더할 나위 없다.
백승운 문화부장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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