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좋은 제도와 그렇지 못한 사람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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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7-17  |  수정 2024-07-17 07:06  |  발행일 2024-07-17 제26면
어떤 지방의원들은 삭발행진

한 시의회는 회의장에 쇠사슬

아이들 보기 부끄러운 모습은

대의 민주주의 운영자 수준

'지방의회무용론' 확산 이유

[동대구로에서] 좋은 제도와 그렇지 못한 사람
홍석천 경북부장

#1. 경기도 지역의 A 시의회. 국민의힘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원 구성을 놓고 갈등을 벌이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릴레이 삭발'을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 측이 대화 제안을 무시하고 의장단과 상임위원장·특위 위원장까지 모두 독식했다며 원 구성을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6명이 차례로 머리를 밀고 의장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B 시의회에서도 상임위원장 선출을 놓고 여야가 갈등을 빚으면서 본회의를 거부하며 쇠사슬로 본회의장 출입문을 걸어 잠가버리는 보기 힘든 해프닝이 있었다.

#2. 인근 경남도의회에서는 후반기 의장단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이 같은 당 의원들에게 금품을 살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결국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C 시의회에서는 본회의에서 치러진 의장, 부의장 선거가 '비밀투표 위반' 논란이 제기되면서 보는 이들을 실소하게 했다. D 군의회 의장선거에서는 한 출마자가 호적을 정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득표수가 같을 경우 연장자가 선출된다는 규정 탓에 출생연도를 조정했다는 의혹이다.

당장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로 쓰여도 손색 없을 소식들이다. 만약 한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당장 난리가 날 것이다. 잘잘못을 떠나 아무리 아이들이지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냐며 어른들의 질책이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 하물며 민의의 대변인이라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탈에는 말문이 막힌다. 민의는 철저히 외면됐기에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하는 최악의 다큐멘터리다.

혹 대구경북은 다른 지역 일이라고 위안 삼을 수 있을까. 영남일보 홈페이지를 검색해 봤다. 대구 중구의회는 불법 수의계약, 보조금 부정수급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을 의장에 선출했다. 영천시의회에서는 재선 의원들이 위원장 자리를 놓고 같은 당 초선 의원들과 갈등하며 탈당하기도 했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꽃이며, 지방의회는 지방정부 권력을 견제할 시민권리의 상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1991년 지방선거로 부활하면서 33년이 지났지만 위상과 평가는 처참한 수준이다. 검색창에 '지방의회'라는 말을 쳐보면 대부분 '감투싸움'이나 '파행' '의정농단'이라는 부정적 단어들이 주를 이룬다.

시민의 권리가 지방의회 의원들의 감투나 사적 이익을 위해 쓰이면서 대의민주주의의 정신은 타락했다는 지적이다. 지방의회 무용론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이유다.

30여 년 전 군 입대를 앞두고 재미있는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 '은하영웅전설'이었던 것 같다. 제목만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우주적 규모의 가상 세계관을 무대로 펼쳐지는 SF(Science Fiction)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의 핵심 스토리는 권력자들의 정치 암투와 이데올로기 대립 그리고 이에 따른 국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한 주인공들의 노력이어서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

갑자기 30여 년 전에 읽었던 책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이 소설이 제시하고자 했던 내용들이 현재에도 꼭 들어맞고 있기 때문이다.

그 책의 주인공 중 한 명이 한 말이다. "좋은 사람이 운영하는 나쁜 제도와 나쁜 사람이 운영하는 좋은 제도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골라야 할까."
홍석천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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