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8] 연당마을 서석지 이야기 길

  • 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박관영
  • |
  • 입력 2024-09-26  |  수정 2024-09-26 08:09  |  발행일 2024-09-26 제14면
'자금병·선바위' 석문 들어서면 모든 소음 숨죽인 세상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8] 연당마을 서석지 이야기 길
영양 남이포. 아주 오래 전에는 자양산과 부용봉이 이어져 있었다는데, 도적의 출몰을 염려한 남이장군이 큰 칼로 산맥을 끊었다 전한다. 산맥이 끊어져 반변천과 동천이 만나는 합수부를 남이포라 한다.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8] 연당마을 서석지 이야기 길
영양 선바위(立岩). 신선바위라고도 하며 서석지 외원의 중심이다.
소리 없다. 너무 큰 배가 뱃머리를 쳐들고 다가와서 세상의 모든 소음이 숨죽인 것일지도 모른다. 저 큰 배는 자양산(紫陽山), 뱃머리의 저 불그레한 뺨은 비단처럼 아름다운 벼랑이라 '자금병(紫錦屛)'이다. 자양산의 우현으로는 반변천(옛 대천)이 흐르고 좌현으로는 동천(옛 청기천)이 흘러 자양산 뱃머리에서 만난다. 물길 너머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있다. 일만 대군 같은 부용봉을 거느린 '선바위(立岩)'다. 아주 오래전에는 자양산과 부용봉이 이어져 있었다는데, 도적의 출몰을 염려한 남이장군이 큰 칼로 산맥을 끊었다 전한다. 산맥이 끊어져 반변천과 동천이 만나는 합수부를 남이포라 하고, 선바위와 자금병이 문을 이루니 석문(石門)이라 한다.

자양산 도적 출몰 염려한 남이장군
큰 칼로 산맥 끊어 문 이뤘다 전해

입암 연당리 은거했던 석문 정영방
공들인 '서석지' 조선 3대 민가정원

내·외원 아우르는 호젓한 이야기길
모두 7개 코스로 총길이 28㎞ 달해


◆크고 작은 상서로운 돌의 정원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8] 연당마을 서석지 이야기 길
영양 서석지 경정(敬亭). 서석지는 정영방의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주거공간인 수직사(守直舍), 서재인 주일재(主一齋), 정자인 경정(敬亭), 연못인 서석지(瑞石池)로 구성되어 있는데 담양의 소쇄원, 완도의 세연정과 함께 조선의 3대 민가 정원으로 꼽힌다(왼쪽). 영양 서석지 은행나무 '행단'. 공자가 제자에게 강론한 곳이 은행나무 아래였다.
동천을 거슬러 석문이 열어 놓은 세상으로 들어간다. 영양 입암의 연당리(蓮塘里)다. 조선 초에는 생부동(生部洞)이었다. 뒷산에 흰 돌이 많은 '돌배기', 내가 흐르고 수풀이 울창한 '임천' 등 여러 자연촌락이 자리한 마을이었다. 마을 이름이 연당리가 된 것은 병자호란 이후 이곳으로 들어와 은거한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때부터다.

예천에 살았던 석문 정영방은 광해군 때인 1610년부터 연당리에 초당을 짓고 살면서 오랜 시간을 들여 정원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러다 1636년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 이후 가족과 함께 연당리로 이거해 주거공간인 수직사(守直舍), 서재인 주일재(主一齋), 정자인 경정(敬亭), 그리고 연못인 서석지(瑞石池)로 이뤄진 자신의 별서정원(別墅庭園)을 완성했다. 통칭 서석지로 불리는 정영방의 정원은 담양의 소쇄원, 완도의 세연정과 함께 조선의 3대 민가 정원으로 꼽힌다.

연못 안에 크고 작은 돌들이 놓여 있다. 상서로운 돌, 서석이다. 서석지 이름은 이 돌들에서 왔다. 물 위로 드러난 돌이 60여 개, 잠긴 돌이 30여 개, 이 가운데 19개 돌에 신선이 노니는 선유석, 선계로 가는 다리 통진교, 바둑판 같은 돌 기평석, 바둑 구경하다가 도낏자루 썩는다는 난가암 등의 이름이 있다. 연못 북쪽에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를 심은 네모난 단은 '사우단'이다. 동북쪽 귀퉁이는 산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읍청거', 서남쪽 귀퉁이는 물이 흘러나가는 '토예거'다. 흙담 가 대단한 은행나무는 '행단'이다. 공자가 제자에게 강론한 곳이 은행나무 아래였다.

정영방은 서석지의 경정 대청에 앉기를 즐겼다고 한다. 자금병과 선바위, 그리고 석문이 한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원을 내원(內苑)이라 하고, 정원을 둘러싼 바깥 세계를 외원(外苑)이라 했다. 가시권인 석문까지의 풍경과 북쪽의 대박산에서 남쪽의 문암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스케일이다. '석문'은 정영방의 호이기도하다. 그는 경정에 앉아, 때로는 석문을 드나들며 자신의 커다란 정원을 선유했다. 그리고 지형과 경관, 자연현상, 나무와 돌, 풀과 꽃들에게 각각 이름을 붙이고 시를 지었는데 내원을 노래한 32수와 외원을 노래한 16수가 전한다.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8] 연당마을 서석지 이야기 길
영양 서석지 경정(敬亭). 서석지는 정영방의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주거공간인 수직사(守直舍), 서재인 주일재(主一齋), 정자인 경정(敬亭), 연못인 서석지(瑞石池)로 구성되어 있는데 담양의 소쇄원, 완도의 세연정과 함께 조선의 3대 민가 정원으로 꼽힌다(왼쪽). 영양 서석지 은행나무 '행단'. 공자가 제자에게 강론한 곳이 은행나무 아래였다.
◆7개의 이야기가 흐르는 길

정영방이 노래한 서석지 외원 16곳의 명소는 다음과 같다. '대박산'은 자양산과 서석지의 조산이다. '가지천'은 반변천의 또 다른 옛 이름이다. '청기계'는 동천 또는 청기천의 옛 이름이다. '자양산'은 연당마을의 주산이자 서석지의 배산이다. '임천'은 연당마을의 옛 이름이다. '유종정'은 자양산 기슭에 있던 정자로 석문 선생이 수신하던 곳이다. '구포'는 연당리 앞 동천에 있는 거북이를 닮은 바위다. '자금병'은 자양산의 남쪽 벼랑이다. '나월엄'은 연당마을 앞 동천 맞은편의 언덕으로 달빛이 빛나는 산이다. '입석'은 선바위다. 신선바위라고도 하며 서석지 외원의 중심이다. '집승정'은 부용봉 아래에 있던 정자로 약봉 서성 선생과 석문 선생이 함께 시를 읊고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부용봉'은 선바위의 뒷산으로 산봉우리가 연꽃과 같고 동서로 뻗은 산줄기가 봉황이 날갯짓하는 모양이라 부용이다.

부용봉에서 서석지 외원은 가시권을 벗어나 남쪽으로 점점 확장된다. '골립암'은 부용봉 서쪽 끝자락인 신사리 시래마을 입구에 있는 뼈를 닮은 절벽으로 어사 박문수의 형인 박민수 영양 현감의 순시비가 있다. '초선도'는 입암면 소재지 신구마을 앞 반변천 가운데 있는 바위섬으로 신선을 맞이하는 장소다. '마천벽'은 국보인 산해리오층모전석탑 앞을 굽어 도는 반변천변의 장대한 절벽이다. '문암'은 영양의 길목인 흥구리 마을 앞 반변천 강 가운데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로 흰색 돌에 검은 무늬가 있어 문암(文巖)이다. 이 모든 곳을 두루 거니는 길이 '서석지 이야기 길'이다. 전체 7개 코스로 총 28㎞에 달한다.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8] 연당마을 서석지 이야기 길
영양 애기선바위. 연당동천 깊숙이 숨은 듯 자리 잡은 바위로,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이라 아기 선바위 혹은 안선바위라 한다.
◆전망대 서면 선바위 부용봉이 한눈에

서석지 외원의 중심은 선바위다. 선바위 맞은편에 '선바위관광지'가 있다. 선바위와 자금병이 만드는 석문을 지극히 편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고 두 물길이 합일하는 남이포를 고요히 맞이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외씨버선길 4길인 장계향 디미방 길의 종점이고, 5길인 오일도 시의 길의 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양산의 뱃머리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남이장군 등산로다. 선바위관광지에서 남이포를 가로지르는 석문교를 건너면 남이장군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절벽 아래 남이정으로 가는 강변 산책길은 낙석 위험으로 현재 폐쇄되어 있으니 오른쪽 '남이장군 놀이터' 방향으로 간다. 상당히 가파른 데크 계단을 오르면 갈림길이다. 여기서 '서석지 이야기 길' 안내도를 만날 수 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서석지 이야기 길' 1코스에 속한다.

이제 전통정원 '서석지 이야기 길'을 따라간다. 된비알 길을 조금 오르면 능선 분기점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이 '남이장군 놀이터'다. 쉼터에서 오른쪽은 자양산 정상으로 향하는 '낙원 산책로'다. 왼쪽 '서석지 이야기 길'로 내려간다. 말 잔등 같은 능선이 이어지다 다시 갈림길이 나오면 꼭 전망대로 가 봐야 한다. '남이장군등산로'를 조성하며 만든 '소원봉 전망대'다. 선바위관광지를 물돌이 하는 반변천과 남이포의 물결, 창날 같은 선바위와 훨훨 멀어지는 부용봉이 한눈에 보인다. 장쾌함에 가슴이 한껏 넓어져 돌아서는 걸음이 날아갈 듯하다.

다시 직전의 갈림길로 돌아와 '서석지 이야기 길'로 꺾어 든다. 자금병 산비탈에 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 동천이 가까워질 무렵 애기선바위를 만난다. 자금병의 안자락 연당동천 깊숙이 숨은 듯 자리 잡은 선바위로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이라 아기 선바위 혹은 안선바위라 한다. 여기서 석문이 보인다. 석문을 빠져나가는 동천의 물줄기에 가슴이 뻐근하다. 정영방이 경정 대청에 앉아 보았던 석문의 모습이 꼭 저렇지 않았을까. 애기선바위에서 북서쪽을 바라보면 골입암에서 연당으로 넘어오는 고개가 있다. 사부령, 즉 남편을 생각하는 고개다. 그래서 애기선바위는 남편을 기다리는 은둔의 망부석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애기선바위에서 내려서서 작은 논밭을 지나면 911번 도로에 오른다. 오른쪽으로 가면 서석지다. 왼쪽으로 가면 자금병 단애와 동행하여 선바위에 닿는다. 어느 쪽이어도 좋다. 머지않아 서석지 행단에 열매 떨어지는 소리 호젓하겠고 선바위 창끝 붉게 물들겠다.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영양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