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家業(가업)승계를 넘어 企業(기업)승계로

  •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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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1-04  |  수정 2024-11-04 06:57  |  발행일 2024-11-04 제23면

[월요칼럼] 家業(가업)승계를 넘어 企業(기업)승계로
김진욱 논설위원

필자가 경제부 기자였던 1996년에 만났던 경제인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쌍용중공업 대구공장장이었던 강덕수 상무다. 대구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는 필자에게 대구경제계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훗날 그는 STX그룹의 총수가 됐다. 세상은 그를 샐러리맨의 신화라고 불렀다. 평범한 직장인이 2008년 기준 국내 재계 순위 7위인 그룹의 회장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업 인수·합병(M&A)이 있었다.

10년 전 광고사업국장을 할 때 몇 차례 만났던 전(前) 거평그룹 나승렬 회장도 M&A로 한때 국내 재계 순위 28위 그룹의 총수가 됐던 인물이다. 당시 그는 대구에서 아파트 단지 건립을 추진하면서 필자에게 대구의 아파트 분양 광고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파트 건립은 실행되지 못했지만, 나 회장을 만나면서 거평그룹의 성장과 몰락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필자가 만났던 두 사람은 M&A로 기업을 급성장시켰지만 머지않아 그룹이 해체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M&A에 대한 필자의 인식은 회사를 키우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 하지만 무리하면 회사를 망치게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다 IMF 외환위기 때 있었던 대기업간 빅딜(Big Deal)이 오버랩 되면서, M&A는 대기업에게 해당 되는 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중소기업의 M&A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폐업이나 매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중소기업 창업주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다. 고령화된 창업주들이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가업(家業)을 승계하지 않으려는 2세가 많은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서 우량 중소기업이 문을 닫는 것은 국가 경제에 큰 마이너스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기업(企業)승계다. 2세가 물려받지 않겠다면 M&A를 통해 기업이 지속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중소기업 창업 1세대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업승계가 이뤄지지 않으면 향후 10년간 폐업하는 중소기업 수는 32만여 개에 이르러 307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 때문에 중소벤처기업부는 내년 상반기 제정을 목표로 가칭 '기업승계특별법안'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특별법안에는 민간중심의 중소기업 M&A를 활성화하기 위한 각종 세제 혜택 및 금융지원책이 담길 예정이다. 지방에 중소기업이 많은 현실을 감안할 때, 기업승계 차원의 M&A에 대한 지방 수요는 매우 많을 것 같다. M&A는 고도의 전문지식을 갖춘 조력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중개업체의 신뢰성도 담보돼야 한다. 앞으로 전문 조력자와 신뢰도를 갖춘 M&A 중개업체가 지방에도 나타날 것이다. 신뢰할만한 지방 M&A 중개업체는 지역 사정을 잘 알기에, 정부 지원이 가미된다면 기업승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기업승계특별법안에 지방 중소기업의 M&A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담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 대한민국은 지방소멸이 눈 앞의 현실로 와 있다. 정부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지방 중소기업의 승계는 지방소멸을 막는 중요한 해법이라는 인식을 갖고 기업승계특별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김진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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