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부담 후계자 못 찾고 '늙는' 中企…M&A가 답이다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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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1-02  |  수정 2025-01-02 07:57  |  발행일 2025-01-02 제6면
기업승계 M&A
상속세 부담 후계자 못 찾고 늙는 中企…M&A가 답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윤아기자
#1

대구 성서산업단지에서 자동차부품업체를 운영하는 김진영(56·가명)씨는 가업승계라는 말만 나와도 머리가 아플 정도다. 그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부친의 병환으로 회사를 물려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속앓이를 했기 때문이다. 상속세를 주식물납(이하 주식)으로 납부했다가 공매 과정에서 경영권을 빼앗길 뻔 했다. 그는 "상속세라는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 선친이 피땀으로 이룬 회사를 엉뚱한 사람에게 넘길 뻔 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상속세 대부분이 다시 부채로 돌아왔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2

경북 성주에서 대기업에 식품 원료를 납품하는 업체 대표 성욱현(74·가명) 사장은 요즘 고민의 나날이다. 날이 갈수록 힘이 부친다는 걸 느끼면서 기업을 승계하고 싶지만 미국과 서울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아들 둘은 회사 경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업체도 소개해 줬지만 길게는 수십년 간 함께한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확답을 받지 못해 결정을 못하고 있다.

◆상속세 지분 납부 기업 40% 문 닫아

국내 최고 기업집단인 삼성그룹 특수 관계인인 홍라희 전(前) 리움관장 등은 선대 회장의 별세 이후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느라 주식담보 대출뿐 아니라 주식 매각까지 진행해야 했다. 2020년 한미약품 창업주 임성기 회장 별세 이후 5천400억원 규모의 상속세 부담을 놓고 상속인 간 갈등을 벌이다 경영권 분쟁까지 벌어졌다. 최고 세율이 60%에 달하는 징벌적 상속세가 기업의 지속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물납증권 연도별 수탁 현황'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24년 3분기까지 상속세를 주식으로 납부한 기업 311곳 중 휴업이나 폐업상태인 회사는 126곳으로 나타났다. 10곳 중 4곳이 경영 지속성을 상실한 것이다. 대부분 상속세를 내고 난 뒤 수년 안에 문을 닫았고, 서너 달 만에 파산한 사례도 있었다.

주식 물납 제도는 기업주가 상속세를 주식으로 대신 납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정부는 이 주식을 시장에 공개 매각해 현금으로 회수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세금으로 받은 주식을 현금화한 금액은 11%에 그치고 있다. 2011년 이후 물납 받은 비상장주식 가치평가액은 6조2천795억원어치에 달하지만, 이 중 공매에 성공한 것은 단 6천955억원에 그쳤다.

◆늙어가는 中企, 가업승계 대신 '기업승계'

고령화 中企 CEO
60세 이상 경영자 비중 33.5%
10년간 두배↑ 경영·승계 과제
稅부담에 회사 문닫는 것보다
명맥유지 '기업승계'대안 부상

중소벤처기업부의 '2023 중소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 CEO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33.5%로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 중 업력 30년 이상 중소기업 CEO의 경우 60대 이상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기업 경영과 승계가 당면한 과제로 꼽히는 배경이다.

이에 따라 최근 기업의 지속성과 함께 상속세 부담을 벗어나기 위한 '가업 승계'가 아닌 '기업 승계'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 시 내는 세금보다 M&A(인수·합병) 과정에서 내는 양도소득세, 증권거래세 등이 적고 기업의 유지 측면에서도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하는 것보다 M&A를 통해 기업 가치를 유지하며 명맥을 잇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을 내리는 CEO가 늘고 있는 것이다.

가업승계란 기업의 경영상태가 지속 되도록 소유권 및 경영권을 차세대경영자에게 물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기업 형태의 중소기업이 많아 대체로 경영권 승계와 소유권 승계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기업의 재산을 후계자에게 물려주는 '가업승계'에서 한 걸음 나아가 경영자의 창업정신, 경영 노하우 등 무형자산까지 이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기업승계'로 확대되는 것이다. 가업승계는 친족 승계만을 의미 하지만 전문경영인 승계, M&A를 포함하는 넓은 범위의 가업승계 개념이 기업승계인 것이다.

실제, 중소벤처기업부도 최근 '중소기업 도약전략'을 통해 고령화와 이에 따른 안정적 기업승계를 돕기 위한 정책 개발에 나서고 있다. 친족 승계가 곤란한 중소기업의 지속경영을 위해 현행 가업승계 개념을 기업승계(M&A 등)로 확대하는 기업승계 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M&A 방식의 기업승계를 희망하는 중소기업에는 준비·컨설팅, 매칭·중개, 합병 후 경영통합까지 전(全) 단계를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기로 했다.

◆일본의 기업 승계는 어떻게…

일본의 사례
후계자 부재로 흑자 폐업늘자
중소M&A 주목 年 4천건 성사
중개기관도 등장 시장폭 넓혀
日정부 지원책 마련 적극 지원

우리나라보다 기업인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됐던 일본의 경우,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하는 기업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 경영인들이 후계자를 찾지 못하자, 대안으로 M&A가 부상한 것이다.

보험연구원의 '일본 중소기업 기업승계 문제와 대응'에 따르면 일본 중소기업 경영자의 연령 분포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연령은 2005년 58세에서 2017년 68세로 변화하는 등 중소기업 경영자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2025년에는 70세를 넘는 중소기업 경영자가 10명 중 6명 수준인 245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또 2020년 기준 일본의 휴·폐업 중소기업 경영자 연령대는 60대 24.5%, 70대 41.%, 80대 이상 17.9%를 차지할 정도로 경영자 고령화가 진행된 상태였다.

경영자의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가업승계가 원활하지 못한 배경에는 저출산에 따른 자녀 수 감소, 자녀들의 전통산업 기피, 자녀들의 역량 부족 등이 꼽히고 있다. 2023년 일본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2025년까지 70세를 넘는 중소기업 경영자 245만명 중 50%가 넘는 127만명이 후계자를 정하지 못한 상태다.

가업승계 부진에 따른 흑자 상태에서도 폐업하는 기업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됐다. 일본 정부는 후계자 부재에 의해 흑자임에도 폐업 위기에 놓여 있는 기업을 60만개사(社)로 추정했다.

하지만 최근 후계자 부재 중소기업들이 M&A를 주목하면서 가업승계형 M&A가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일본 중소기업청에 의하면 중소 M&A의 성사는 매년 3천에서 4천건에 이르고, 잠재적인 M&A 양도자는 60만명에 달한다.

특히 이 같은 수요에 기반해 중소기업 M&A 전문 중개기관들이 잇따라 출현하며 시장의 폭을 넓히고 있다. 니혼M&A센터(1991년 설립), Strike(1997년 설립), M&A캐피탈파트너스(2005년 설립) 등이 대표적이다. 이 3곳의 M&A 계약 건수는 2012년 232건에서 2017년 682건으로 5년 만에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일본 정부 역시 중소기업 승계·계승을 위한 M&A 지원책을 마련했다. 공공부문인 사업승계·인계지원센터(중소기업기반정비기구)와 민간 M&A 중개업체가 상호보완적으로 시장을 주도했다.

KDB미래전략연구소 박희원 전임연구원은 "일본 정부도 M&A를 가업승계 수단으로 적극 인정해 2018년부터 사업양도의 경우 등록면허세, 부동산취득세 인하 등의 세제 우대를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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