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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실 사회1팀장 |
"내 지난날들은 눈 뜨면 잊는 꿈~" 한 인기 그룹의 노래에 나오는 가사다. 몇 해 전, 잘 몰랐던 그 노래를 인천국제공항 가는 길 차 안에서 라디오로 우연히 듣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오랫동안 갇혀 지내다가 다시 여행길에 오르면서 들은 노래의 그 가사가 얼마나 특별했는지 모른다.
당시 우리나라 많은 기자들이 그랬듯 나 역시 코로나19가 불러온 혼란과 슬픔, 그 와중에 벌어진 정치권의 지독한 진영(陣營) 싸움을 수년간 가까이서 취재하고 기록해야 했다. 인생의 힘든 순간들도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찾아왔는데, 노래 가사처럼 내 지난날들이 '눈 뜨면 잊는 꿈'이 되길 바랐다.
우리는 흔히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꿈이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 반대로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 이어질 땐 "꿈이 아니길 바란다"고 말한다.
길어야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꿈이길 바라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현실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거기엔 위정자의 잘못도 크게 한몫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자 생활을 하며 목도한 우리 사회의 지난 10여 년은 대체적으로 꿈이었으면 하는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들은 단순히 '성장' '성숙' 등의 단어로 포장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깊은 절망 같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정치는 마치 '사이비 종교'처럼 양 극단으로 치달았고, 계몽주의자처럼 굴던 사회 지도층의 비리와 부조리는 낯뜨거운 수준이었다. 양쪽 진영이 서로 '네 탓'을 하고 진영 이익만 추구하는 사이 평범한 개인들의 삶은 갈수록 고달파졌다. 한 예로, 장기화된 의-정 갈등 앞에서 자칭 보수·진보 정치권이 대체 뭘 한 건지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온갖 부작용을 나열하고, 누구누구 탓을 하는 동안 제대로 된 해결책이 제시된 적이 있는가. 그러는 사이 중증질환으로 투병 중인 환자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야 했을까. 정책상의 갈등에 대해서도 서로 싸우기만 했지,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욕을 먹더라도 소신 발언을 한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있었나.
지난해 많은 일을 겪고 2025년 새해가 됐다. 설 연휴가 되자 차기 대권 주자들이 본격 몸풀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그들의 강성 지지자들도 함께 보조를 맞추고 있다.
여러 정치인들이 다음 대통령이 되겠다며 출마 가능성을 알리고 있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한 국가를 전부 책임질 만큼 대단한 인간은 없다.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대단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런 인물이 나타나 주기를 고대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타인에게 맡기고 싶다는 태만함이다."(마루야마 겐지 '사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중에서)
그의 말처럼, 한 국가를 전부 책임질 만큼 대단한 인물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대통령을 통해 겪었다. 부디, 대단하진 않더라도 항상 열린 마음으로 생각하고,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는 이가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 특정 진영의 '스타'보다 성숙한 '개인'이 대통령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꿈이 아닌 현실을 살고 싶다.
노진실 사회1팀장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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