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지역 침구 제조업체인 '한빛침장' 직원 주은숙(66)씨는 회사가 퇴직 연령을 넘긴 근로자도 '촉탁계약직'으로 고용할 수 있다고 사규를 변경한 덕분에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다. <한빛침장 제공>
대구 달서구청에서 단속업무 공무직으로 일해 온 A(61)씨. 불법 노점상 단속업무를 도맡았던 그는 지난해 법정 은퇴 연령(60세)에 이르면서 직을 내려놓아야 할 처지가 됐다. 그런데 달서구청에서 다자녀 가정 공무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정년퇴직 후 재고용' 정책을 실시하면서 현장을 계속 누빌 수 있게 됐다. A씨는 “퇴직을 앞둔 시점에서 일을 더 하겠다고 하니 가족이 만류했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 벌써 현장을 떠나고 싶진 않았다"며 “월급은 줄어도 노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 자녀가 2명이라 연장기간이 1년으로 제한되는 게 아쉽긴 하다. 가능하면 70세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이른바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생)' 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고용시장 충격을 완화할 대안으로 '퇴직 후 재고용' 제도가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근로자는 정년 후에도 익숙한 업무를 이어갈 수 있고, 기업은 숙련된 인력을 유지하면서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어서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국내 총인구의 18.6%를 차지한다. 한국은행은 이들의 은퇴가 시작된 작년부터 2034년까지 현재와 같은 60대 고용률이 이어진다면 경제성장률이 0.3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고령층 재고용 의무화, 탄력적 직무 및 임금체계 도입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대구시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지난해 4월 다자녀를 둔 공무직 직원은 정년퇴직 이후에도 최대 2년간 더 일할 수 있도록 했다. 2자녀를 둔 공무직 직원은 1년, 3자녀 이상인 공무직 직원은 2년까지 기간제로 재고용하는 형태다. 올해 대구시에선 5명이 혜택을 봤다. 달서구청도 뒤를 따랐다. 올해 2명의 구청 공무직 직원이 은퇴 연령을 넘기고도 현직에 남았다. 달서구청 측은 “다자녀 가구 지원과 고령자 고용 촉진을 함께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만성적 경기침체, 저임금, 인력 부족으로 고충을 겪는 지역 영세 제조업체들엔 '퇴직 후 재고용'이 현실적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구 침구제조업체 '한빛침장'은 2023년 사규를 변경했다. 퇴직연령을 넘긴 근로자를 '촉탁계약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한 것. 30년 베테랑 직원인 주은숙(66)씨는 “회사 설립 때부터 일하고 있는데, 어느새 정년퇴직할 나이가 됐다. 한동안 우울했는데 계속 일할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했다. 기업도 인력난 해소를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운영 결과는 '대만족'이라고 한다. 김재국 한빛침장 부장은 “업무 특성상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신입이 만든 제품과 30년 경력자의 제품은 한눈에 봐도 차이가 있다. 숙련공을 재고용하니 생산성이 1.5배 증가했다. 직원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고용할 생각"이라고 했다.
대기업 역시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2025년 임단협에서 3자녀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정년 후 재고용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 SK하이닉스는 기술 전문가의 재고용, 임원의 사내대학 교수직 근무 등에 나서고 있다. iM뱅크(옛 대구은행)는 '기업영업지점장' 제도를 통해 퇴직 지점장에게 대출 영업을 맡겼다. 전문가들은 보다 체계적인 제도 보완을 강조했다. 영남대 허창덕 교수(사회학과)는 “요즘 5060은 전문지식을 갖췄고, 건강도 좋다. 이들을 적극 활용한 일자리 정책이 필요하다. 만성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은 퇴직 후 재고용이 현실적"이라며 “단 특정인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것과 같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보완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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