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60%가 실화·소각 탓…'솜방망이 처벌'에 재앙 되풀이

  • 손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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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01  |  수정 2025-04-01 07:33  |  발행일 2025-04-01 제4면
작은 부주의가 참혹한 결과로…전국서 반복되는 실화
산불 60%가 실화·소각 탓…솜방망이 처벌에 재앙 되풀이
지난달 31일 오후 경북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산불 최초 발화 추정지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소방당국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최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작은 부주의에서 시작됐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인명과 재산피해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가 큰 문화재마저 불길 속에 사라졌다. 의성 산불처럼 '실화'로 분류되는 산불은 전국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매우 약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 3월24일까지 총 2천108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이 중 방화나 실화로 검거된 사례는 817건(38.6%)이었다. 하지만 이 중 징역형이 내려진 것은 43건(5.3%)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벌금이나 사회봉사 명령, 기소유예 처분으로 마무리됐다. 2019년 고성 산불과 관련해서도 한전 관계자 7명이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자로 전선이 끊어져 불이 발생했지만 업무상 과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다.

5년간 산불 발생 2천108건 중
방화 검거 39%·징역형 43건뿐
美, 거액의 징벌적 배상 부과
韓, 진화 작업 순직·대피 사망
과실치사죄 추가 적용도 한계

지자체 쓰레기 소각 지원 확대
행정적 예방책 먼저 강화 필요
기후변화 맞춤형 대책도 시급


◆피해 회복조차 어려운 민사배상

실화자가 법정에서 마주하는 또 다른 책임은 민사상 손해배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법적 기대와 큰 차이가 있다. 2019년 강원 고성·속초 산불 당시 피해액 370억원을 한국전력에 청구했지만, 법원이 인정한 금액은 27억원뿐이었다. 이처럼 법원은 화재 당시 자연환경, 바람 세기, 가해자의 경제적 상황 등을 감안해 배상액을 결정한다. 결국 피해 복구 비용 대부분은 국가와 피해 주민이 떠안는 구조다.

반면 해외는 우리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바로 엄벌과 징벌적 배상이 있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2017년 폭죽 놀이를 하다, 산림을 태운 15세 소년에게 418억원이라는 거액의 징벌적 배상을 부과했다. 미국은 실화자에게 징벌적 배상을 요구하거나 화재 진압 비용을 청구할 수 있어 처벌의 실효성이 높다. 2013년 방화로 산불을 일으켜 5명을 숨지게 한 범인에게는 사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일본은 실화자에게 최대 50만엔(약 5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며, 독일은 최대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 스웨덴은 최대 6개월 징역 또는 벌금형을 부과하고 있다. 처벌 강도는 우리와 유사하지만 실제 집행과 징벌적 배상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 '과실치사' 적용, 왜 어려운가

형사법상 우리나라는 실화죄에 과실치사죄를 추가해 처벌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한 법률 전문가는 "화재 발생지점과 인명 피해 지점 사이의 거리가 멀다면 인과관계를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진화 작업 중 순직하거나 대피 도중 사망한 경우 실화자의 책임을 묻기가 사실상 힘들다는 것이다.

법률 전문가 안형진 변호사는 "처벌 강화나 징벌적 배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행정적 예방책을 먼저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변호사는 농촌에서 소각행위로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만큼, 과태료를 상향하면서도 지자체에서 농촌 쓰레기를 직접 수거하고 소각하는 지원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10년간 발생한 산불 5천400여건 가운데 실화나 각종 소각이 원인으로 파악된 건 60%가 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최근 기후변화로 산불 양상이 달라져 이에 대한 맞춤형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 인식 전환과 처벌 현실화가 핵심

한 소방교육 전문가는 "미국처럼 엄격한 추적과 처벌이 필요하다"며 "한 번의 부주의로도 엄청난 재앙이 발생한다는 인식을 높이는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실제 2022년 경북 울진·삼척 산불의 피해액이 9천86억원에 달했지만, 처벌은 벌금형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국민적 안전의식 제고와 엄격한 법 집행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약한 처벌과 낮은 배상 책임으로 인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실질적인 처벌 강화와 예방 중심의 행정지원, 그리고 국민적 인식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와 사회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또 다른 인재를 막을 수 있다.

손병현기자 why@yeongnam.com

■ 전국 산불 및 가해자 검거 현황
(2021년~올해 3월 24일)
▶총 발생 산불 건수: 2108건
▶검거 건수: 817건 (38%)

■ 산불 가해자 처벌 현황
▶징역형: 43건 (5%)
▶벌금형: 161건 (20%)
▶기소유예 등 기타 : 613건(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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