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빌헬름 텔과 홍길동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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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09 08:18  |  발행일 2025-05-09
정만진 소설가

정만진 소설가

1805년 5월9일 독일이 낳은 세계적 문호 프리드리히 실러가 타계했다. 실러가 문인이 된 데에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을 읽고 받은 감명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 점에서 실러는 크게 성공했다. 독일 바이마르 국립극장 앞에 자신의 우상 괴테와 손을 잡고 나란히 서 있는 동상을 남겼으니!

실러의 희곡 '빌헬름 텔'은 우리나라 국어 교과서에 일부가 실려 한국인에게도 더욱 유명세를 얻었다. 중세인 13세기, 오스트리아 식민지 스위스가 무대이다. 스위스 총독 게슬러는 재미삼아 사람을 죽이는 등 학정을 일삼았다. 석궁 전문 명사수 빌헬름 텔이 아들 발터와 함께 장터에 나갔다가 게슬러의 군사들에게 포위된다.

빌헬름 텔 부자는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위험에 빠졌는지 알지 못한다. 게슬러는 얼마 전 장터 한복판 높은 장대 꼭대기에 제 모자를 걸어놓고 그 아래를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인사할 것을 명령했다.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엄벌에 처해졌다. 산 아래 외딴집에 살던 빌헬름 텔은 미처 그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 바람에 지금 지독한 비인간적 곤욕에 내몰리고 말았다.

게슬러는 80보가량 떨어진 곳에 발터를 세운 뒤 후 머리 위에 사과 한 알을 얹는다. 그리고는 빌헬름 텔에게 “사과를 명중시키면 너희 부자를 풀어주겠다"라고 윽박지른다. 마을사람들이 용서를 빌지만 게슬러는 막무가내일 뿐이다. 결국 빌헬름 텔이 화살을 날려 아들 머리 위의 사과를 명중시킨다.

교과서에 실린 부분은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사과 일화는 '빌헬름 텔' 도입부 중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중심 서사는 결말까지 파도처럼 펼쳐지는 스위스 독립운동이다. 실러는 정복자의 비인간성을 서두에 묘사함으로써 식민지인들의 독립운동에 깃든 당위성을 강조하려 했다.

중학교 국정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홍길동전'도 소설의 본 주제가 아닌 단편적 사건을 강조한 대표 사례이다. 당시 우리나라 중학생들은 길동이 자신을 암살하려 든 자객 특자를 죽이고, 자객을 보낸 아버지의 첩도 살해하는 장면을 읽었다.

'홍길동전'의 중심 서사는 적서차별 철폐 수준이 아니다.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교과서에 굳이 죽이고 죽는 장면이 필요했을까? 국정 교과서의 내용이 교육적 또는 문학적 관점이 아니라 게슬러 같은 인물들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빌헬름 텔'과 '홍길동전'은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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