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 약 먹고 운전했다고, 죄인입니까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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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27  |  발행일 2025-06-27 제26면

개그맨 이경규 씨가 최근 약물 운전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그는 공황장애로 처방받은 약을 먹고 운전한 것이 문제가 됐다. 사건의 발단은 사소한 실수였다. 차량을 맡긴 주차 관리 요원의 착오로 다른 사람의 차를 운전한 것이 절도 의심 신고로 이어졌다. 이어 출동한 경찰이 시행한 검사에서 공황장애 치료제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조사에서 이씨는 "약을 먹고 운전하면 안 된다는 것을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며 혐의를 시인했다. 그는 10년 가까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전날에도 몸 상태가 악화돼 직접 병원을 찾을 만큼 그의 증세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처방된 약을 복용한 뒤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경규 씨는 오랜 시간 개그맨으로 활동하며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위로를 줬다. 그의 유쾌한 개그와 사람에 대한 따뜻한 통찰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그는 "지금이 제일 좋다"는 말로 불안과 고민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아픔을 숨긴 채 살아가야 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처방약을 복용한 후 운전이 가능한가'이다. 도로교통법은 약물로 인해 운전 능력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면 운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공황장애 치료제는 마약류나 불법 약물이 아니다. 그저 병의 악화를 막기 위해 복용하는 일상적으로 처방되는 의약품이다. 심지어 처방을 내린 의사나 약을 제공하는 약사조차 이 부분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병원에서 흔히 감기약이나 안정제를 처방받아도 '운전을 피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을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졸릴 수 있어요"가 전부였다. 이를 오롯이 환자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엔 의사나 약사의 설명 부족도 간과할 수 없다.


뭐가 됐건 결국 이경규 씨는 경찰조사를 마친 뒤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건에서 짚어봐야 할 것은 그가 범죄자인가 하는 것이다. 공황장애는 현대 사회가 만들어 낸 질병이다. 누구라도 걸릴 수 있고, 누구라도 약을 먹으며 살아가야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병을 앓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무지와 오해, 그리고 규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만들어 낸 불편한 단면이다.


이제는 사회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할 때다. 처방약 복용자의 운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환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약을 먹지 않으면 오히려 운전이 위험한 공황장애 환자들에게 '운전금지'를 권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이 제일 좋다"는 이경규 씨의 명언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아직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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