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의 세상만사] 거리 정치를 끝내자

  •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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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30  |  발행일 2025-06-30 제22면

1987년 6.29 민주화 항쟁


보기드문 성공한 시민혁명


거리시위 원인은 정치불통


안정된 국가발전 위한다면


제도권정치가 제 역할해야



2025년 6월29일. 초여름 더위에다 장마까지 몰려와 후텁지근한 하루였다. 휴일이라 더위를 피해 누군가는 물놀이를 찾아 떠나고, 도심에 남은 사람들은 땡볕을 피할 그늘에 몸을 숨겼다. 평범한 하루였다. 38년 전 1987년 6월29일도 텁텁했다. 며칠째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로 경찰이 쏘아 댄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가 대구도심을 유령처럼 감싸고 있었다. 여러 날 이어져 오는 가투(街鬪·길거리에서 하는 시위나 데모)로 이날 하루도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시민들은 전투경찰을 피해 도망다니다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제11대·제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의 뒤를 이어 간선제 대통령으로 앞 길을 보장받은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와 야당 지도자 김대중 등의 사면복권과 시국사범 석방 등 8개 항을 발표했다. '6.29 민주화 선언'이다. 1987년 6월10일부터 20일동안 이어졌던 '6월 민주화 항쟁'에 나섰던 국민들이 이끌어 낸 결실이었다. 이후에 6.29민주화 선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지만, 당시 수많은 국민들은 승리에 환호했다.


12.12쿠데타 이후 많은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지만 6월 항쟁은 달랐다. 평범한 시민과 학생들이 시위의 주체였다. 당시 언론에 따르면 6월 26일에는 전국 37개 도시에서 당시 기준 사상 최대인 100만여 명이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정치적 진영논리도 동서갈등도 존재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20일 동안 최루탄과 위협적인 전투경찰의 군화발 소리·백골단의 무자비한 폭력 체포가 이어졌지만, 하나된 국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6월 항쟁으로 얻은 민주화와 직선제로 대한민국 정치는 한 단계 올라섰다. 더 이상 시민들이 거리에서 아픔을 삭이는 일은 없을 줄 알았으나, 대규모 거리 시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민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정치적 의견을 내는 것은 긍정적 에너지의 발로(發露)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지시하고 주입시키는대로 끌려 가거나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능동적인 주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거리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 거리 시위가 발생하는 것은 제도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자신의 정지적 의견을 나타낼 기회가 없거나 정권이 국민들을 제대로 된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제도권 밖에서는 갈등을 조장하는 특정 정치세력의 개입 가능성도 높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나선 시위에 누군가 의도적으로 개입한다면 민주주의 근간까지 흔들린다. 최근 시위에서도 당리당략을 위해 국민의 진정성을 악용하는 의심사례가 적지 않았다.


38년 전 그날 이후 지금까지 정치·사회 등 전 분야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이건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기때문이다. 지난 겨울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을 침대삼아 내리는 눈을 이불삼아 밤을 지새웠던 것도 마찬가지다. 축제같은 K-시위 문화라고 세계가 치켜세웠지만, 제도권 정치가 잘못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한민국은 지금 안정을 기반으로 다시 도약해야 할 시기다. 제대로 된 제도권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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