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30일까지 갤러리오모크에서 개인전을 가지는 엄소영 작가.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전시장은 마치 한여름 납량특집 방송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스타킹으로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괴기스러운 느낌의 작품, 먹으로 그린 소용돌이 속에 갇힌 의문의 캐릭터들, 사람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의 스산한 눈빛들은 심연의 어둠을 벗어나 막 등장한 공포영화 속 의문의 존재처럼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갤러리오모크(경북 칠곡 가산면 호국로 1336)는 오는 30일까지 엄소영 초대전 '畫ː家(화가)'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엄 작가는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정체성 찾아가는 내용을 담은 회화와 소품 등 신작 6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명 '화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나만의 방을 완성해 나간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엄소영 작.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엄소영 작.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버려진 종이박스로 만든 엄소영 작가의 입체 드로잉 작품.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엄 작가는 그동안 밝음과 어둠, 다양한 선 긋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들춰내고 그 결과물을 화폭에 담아왔다. 전시작 속 어두운 분위기의 배경과 결코 유쾌해 보이지 않는 작품 속 피사체들은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에 당당하게 맞선 결과물 중 하나다.
이처럼 다소 괴이한 느낌의 작품을 창작한 배경은 '가장 고통스런 것과 아름다운 것은 통한다'는 엄 작가의 철학 때문이다. 내면의 어둠을 들춰내고 드러내 보여야만 그 안에 숨어 있는 밝음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지난 3일 갤러리오모크에서 영남일보와 만남을 가진 엄 작가는 "어설픈 밝음은 이제 그만하고 더 처절한 질문을 하고 싶었다. 아름다움보다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이번 전시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엄 작가의 설명처럼 전시장 입구의 스타킹 인물 작품들은 죄책감과 수치심 등 평소 감추고 싶은 인간의 감정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모양새다. 피부와 가장 맞닿아 있는 스타킹을 소재 삼아 우리 내면의 어두운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려는 의도를 담았다. 먹물 작업으로 탄생한 회화 작품에도 눈길이 간다. 어둠 속 어떠한 기(氣)의 소용돌이 속 인물들은 각종 의무와 책임감에 짓눌려 살아가는 작가 본인과 현대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또 다른 회화 작품에는 유령인지 사람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나란히 서서 관람객을 응시한다. 이는 엄청난 경쟁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우리의 모습이자, 누군가에게는 부끄러운 과거의 한 장면을 압축한 것이다.
드로잉 작품들은 치유를 갈망하는 엄 작가 자신의 바람을 담고 있다. 엄 작가는 "아주 옛날의 기억이지만 좋았던것 보다는, 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 같은 것을 담고 싶었다. 아직 나올 것이 많이 남았다. 더 꺼내서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버려진 종이박스로 만든 입체 드로잉 작품은 마치 연극 무대를 축소해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무대의 이미지와 형태를 빌려온 이유는 화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관람객에게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 작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슬픔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내 작업은 고통스럽고 처절한 것이라 할지라도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는 내면의 용기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월요일 휴관.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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