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미 작전명이유 대표
'계추' '회추' '희추'. 오랫동안 마을의 일상 속에서 불려온 이 이름들은 단순한 단어를 넘어선 공동체의 언어다. '계추'는 계모임에서 돌아가며 돈을 내고 받던 날, '회추'는 마을 운영을 위한 회의가 있던 날, 그리고 '희추'는 여성들끼리 한 달에 한 번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졌던 특별한 날이다. 이 세 단어에는 공동체의 질서와 운영, 그리고 정서적 해방이 스며 있다.
'희추'는 원래 '회추'에서 유래한 경상도 사투리라고 전해지지만, 마을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단순한 발음 변화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정말로 '기쁠 희(喜)'의 의미가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만큼은 여성들이 가족과 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희추'는 오랫동안 '기쁜 하루'로 기억되었다.
칠곡의 몇몇 마을에서는 이 '희추'가 더 특별한 방식으로 이어졌다. 왜관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 시내 콜라텍에 가서 춤을 추거나, 여름이면 계곡으로 목욕을 떠나는 일탈의 날이 되기도 했다. '희추'는 단지 공동체 규칙을 지키는 날이 아니라, 여성들이 자율적으로 기쁨을 나누는 해방의 문화였다.
그러나 지금, '희추'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80대가 되어 다시 춤을 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희추'는 어떤 모습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까? 굳이 춤이 아니어도 좋다. 나이 든 몸으로 가볍게 소풍을 떠나거나, 쉬운 악기를 연주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애를 많이 쓰지 않아도 일상 속 활기를 줄 수 있는 활동이면 충분하다. 중요한 건, 과거의 형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 몸과 마음에 맞춘 우리의 문화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문화가 단절되지 않도록 다음 세대와 연결할 방법을 찾는 일이다. 어르신들의 '희추'가 지금의 중장년 여성들에게도 이어지고, 다시 젊은 세대에게도 스스로를 돌보는 일상의 의식으로 전해질 수 있도록, 그 의미와 구조를 현재화하는 실험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날의 마음을 오늘의 방식으로 되살리는 문화적 상상력이다. '희추'는 과거의 언어에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는 여성의 존재를 존중하고,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기뻐할 권리가 있다는 선언이 담겨 있다. 이제는 그 문화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오늘의 삶 속에서 실천할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할 때다. 초고령화 사회, 우리가 다시 만들 '희추'는 바로 이런 작고 느린 활동들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함께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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