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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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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화광동진(和光同塵)
누군가 삶의 모토로 '깨끗하게 살자'를 정했다. 이런 모토를 내걸 정도라면 대개 그 사람이 공직자이거나 혹은 이권과 관련된 업을 하는 사람들로 생각하기 쉽다. 고려 중기의 명신 홍자번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여 옷을 갈아입을 때에는 반드시 손을 씻었으며, 날마다 목욕하고 밤에는 반드시 의관을 갖추고 하늘에 절했다고 '고려사절요'에 전한다. 한중록에 나오는 조선 영조의 결벽증은 또 어떠한가. 그는 밖에서 입던 옷은 반드시 갈아입은 뒤 실내로 들어오고, 불길한 말을 하거나 들으면 곧바로 양치질을 하고 귀를 씻었다고 한다. 구약성서 시편에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는 곧 손이 깨끗하여 마음이 청결한 자로다'라는 표현도 나온다. 하지만 깨끗한 삶을 지향하는 모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지구촌 인간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유대인의 지침서 탈무드는 '몸을 깨끗이 하면 마음도 깨끗해진다'고 했다. 손만 깨끗해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청렴거사'로 불릴 정도로 신변이 청결하고 검소했다고 한다. 그 엄격함이 단두대라는 공포 정치를 낳았다고 후세 역사가들은 분석한다. 그런 그도 단두대에서 사라졌으니 자업자득인가. 예부터 '깨끗하면 외롭다'고 했다. 외로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모함을 당한다고 했다. 손자병법에는 전쟁에 임하는 장수의 다섯 위험인 오위(五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위험의 하나가 염결(廉潔)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친 염결은 욕을 당한다'고 썼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비분의 지사 굴원은 모함을 당해 추방된다. 그는 "세상이 다 탁한데 나 혼자 맑고, 뭇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혼자 깨어 있다"고 탄식하고는 멱라강에 투신한다. 로마의 황제 중 청렴결백으로 유명했던 사람은 페르티낙스였다고 로마제국흥망사에 나온다. 그는 그러나, 그의 너무나 고결한 청렴성을 견디다 못한 근신들에게 암살당했다고 한다. 중국 당나라의 장온고는 태종에게 올린 글에서 '군주의 마음은 혼탁하고 흐려서는 안되지만, 너무 깨끗하고 맑기만 해서도 안된다'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흰 백합도 검은 그림자가 있다'는 표현은 헝가리 속담이다. 세익스피어는 '어떤 불결한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적으로 완전한 것은 없다'고 규정했다. '결벽증'을 경계한 것이다.청렴은 공직자뿐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어려운 처신이다. 채근담에는 '청렴하면 위엄이 생긴다'고 나온다. 그러나 위엄만으로는 부족하다. '청렴결백하면서도 아량이 있어야 한다'는 게 선각자들의 요청이다. 요약하면 '화광동진(和光同塵)'하라고 했다. '지나친 빛을 부드럽게 하고, 더러움에 동화하라'는 뜻으로 '노자'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를 감추고, 세속을 좇아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라는 명심보감에 나오는 명구를 들이댈 것도 없다. 2021년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들여다보자.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권주자들의 면면이 연일 상대 진영에 의해 까발려지고 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이러니 맑은 세상, 깨끗한 세상을 기다린다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흙탕물 투성이의 강으로 유명한 중국 황하(黃河)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고나 할까.원도혁 논설위원원도혁 논설위원
[자유성] 신육조지
'형사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집구석은 팔아 조진다.' 작가 정을병이 1974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육조지'의 골자다. 여섯 부류의 조지는 형태를 잘 표현했다. '조진다'는 얼핏 그 어감과 곱지 않은 뜻 때문에 사투리 같아 보이지만 표준어다. 1)망치거나 그르치다 2)허술하지 못하게 단단히 단속하다 3)호되게 때리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작가 정을병이 활동하던 1970년대의 법조계 등 우리 사회의 일면을 아주 재미있고 적나라하게 풍자한 글이다. 형사는 혐의자가 죄를 빨리 실토하도록 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다. 검사는 구치소에 수감된 범죄 혐의자의 죄목을 확정하기 위해 그를 자꾸 불러서 이리저리 캐물어야 할 것이다. 판사는 판결을 빨리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룬다. 판결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이다. 간수는 철장안 수용자가 한 사람이라도 없어지면 안 되므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세어 점검하기에 바쁘다. 배고픈 죄수는 친지나 가족이 넣어주는 사식에 늘 목말라 하는 존재다. 시원찮은 남편을 둔 아내는 생활이 안되자 집의 가재도구들을 내다 팔아서 생활비를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2021년인 현대에도 육조지 형태는 없지 않다. 이른바 '신육조지'인 셈이다. 현시대는 그러나 70년대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법조계 주변만이 아니라 이 시대 사회의 종합적인 현상들이다. 조지는 행태들이 다양하다. 일례를 든다면 주당들은 거의 매일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다. 한마디로 '마셔 조진다'. 마누라는 그런 주당 남편을 그냥 둘 리 없다. 온갖 잔소리질로 '갈궈 조진다'. 기업은 사원들로부터 수익 극대화 묘안을 짜내기 위해 수시로 회의를 소집한다. '짜내어 조진다'고 할 수 있다. 아이디어가 바닥난 사원들은 친한 지인들에게 '답을 내놓으라' 닥달한다. '닥달해 조지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조지는 행위는 성과를 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필요악'이다. 원도혁 논설위원
[자유성] 협쟁 시대
이 세상 생명체들은 경쟁 속에서 생존한다. 심지어 식물들도 경쟁하면서 자란다.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게 돼 있다. 복잡다단한 인간 세상의 구조는 더욱 그렇다. 패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게 이 인간세상의 가동 법칙이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는 "행복은 일에서 탈출할 때가 아니라 경쟁하는 데서 생긴다"고 설파했다. 극심한 경쟁에서 이겼을 때의 성취감과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경쟁만이 능사인가? 협력도 있지 않은가. 현대를 흔히 '협쟁(co-opetition) 시대'라고 한다. 협쟁은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합성어다.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갈라지는 제로섬(zero-sum) 경쟁이 아니라, 경쟁자들과 때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면서 동반성장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상호 이익을 극대화하는 현대식 경영전략으로 '적과의 동침'인 셈이다. 이 협쟁이라는 용어는 1944년 미국 수학자 존 폰 노이만과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오스카 모르겐슈테른이 공동으로 저술한 '게임이론과 경제행동'에 처음 선보였다.협쟁은 금융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은행·카드사 등의 전통 금융사와 신흥 경쟁자인 빅테크·핀테크 등의 금융 기술기업들이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간편결제 시장에서 카드사들은 각 사의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에서 타사 카드도 등록해 결제할 수 있도록 손을 잡았다. 빅테크와 핀테크가 선보인 '페이' 서비스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은행과 증권사가 네이버와 손잡고 대출상품과 종합자산관리계좌 등을 선보이는 것도 협쟁의 사례다. 치열한 경쟁만 있는 사회는 너무 긴장되고 각박할 것이다. 그렇다고 경쟁 없이 협력만 있어도 그 사회는 뭔가 나태해질 것이다. 적당한 경쟁이 있고, 또 적절한 협업이 있어야 그 사회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협쟁, 조직의 건강과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다. 원도혁 논설위원
조득환 금강알텍 회장 '품질명장'
조득환 〈주〉금강알텍 회장은 최근 사단법인 국가품질명장협회로부터 품질명장에 선정돼 증서를 받았다.
[자유성] 로또
"당신은 내 인생의 로또야! 혹은 로또 같은 존재야." 누군가 배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치자. 그런 말을 듣는 아내나 남편은 필시 "아이 좋아라~" 했을 것이다. 그렇게 1절만 하고, 그런 줄 알고 그냥 넘어갔으면 당연히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그 몹쓸 궁금증과 캐물어야 직성이 풀리는 별난 성격이 분위기를 망쳐버린다. "왜 로또인데?" "이유가 뭐지?"라고 바짝 다가오며 진지하게 묻는다. 그러면 로또라고 비행기를 태운 사람이 난감하지만 답을 해줘야 한다. "하나도 안 맞으니까."이 대목에 이르면 "에라이~" 또는 "이 몹쓸 인간아!"와 같은 질책이 돌아오게 돼 있다. 그러게 1절만 하지 왜 2절까지 하게 해서 이 낭패를 유발하느냐고. 원망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진짜로 로또에 당첨됐다면 어쩔 것인가. 사람마다 대처 방식은 다르겠지만, 당첨 사실을 숨기고 당첨금을 혼자만 쓰려는 부류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기혼자라면 '설거지 하는 배우자를 잘 살피라'고 했다. '하기 싫은 설거지를 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면 두 가지 케이스 중 하나'라는 조언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두 케이스는 복권에 당첨됐거나 애인이 생겼을 경우라는 것이다. 교훈을 담은 만담(漫談)이다.이 지구상의 경제인은 누구나 로또라는 대박을 원한다. 일확천금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난 8월 초 제주도에서는 중고 김치냉장고 속에서 현금 1억1천만원이 발견돼 세인을 놀라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양심적인 냉장고 구매자였다. 그는 현금 뭉치를 발견한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이에 따라 돈의 출처가 확인됐고, 돈은 이미 사망한 돈 주인의 유족에게 돌아가게 됐다. 이런 미담은 흔치 않다. 경제동물인 인간이 돈 뭉치의 유혹을 물리치기란 어렵다. 예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돈과 황금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어떤 문도 황금으로 다 열린다'(라틴어 격언). '돈은 제3의 손'(프랑스 작가 폴 장 톨레). '부는 지혜요, 부자는 현명하다'(영국 작가 다니엘 디포) 등등. 부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다. 원도혁 논설위원
[월요칼럼]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봄 여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우리 한민족의 정서를 향토적인 시어로 애잔하게 노래한 김소월의 대표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의 앞 구절이다. 오래전 대학가요제에서 그룹사운드 '라스트포인트'가 이 시로 가사를 붙인 노래를 불러 주목받기도 했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나이 들면서 이 노래 후렴구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읊조림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예전엔 미처 몰랐다고? '뜬금없이 왜 예전에 미처 몰랐던 일들을 지금 와서 소환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주변 동년배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일맥상통하는 게 있었다. 다들 "세상사, 나이 60을 넘겨보니 이제야 좀 알겠더라"고 했다. 도대체 뭘 안다는 것인가.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와 이치겠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자면 지난 60여 년간의 허장성세·천방지축·오만독선·자아도취의 해악들이 내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이제야 조금 알겠다. 유감스럽게도 젊었을 때는 전혀 몰랐다. 하지만 세파에 내공이 쌓이고, 우주와 세상이 돌아가는 섭리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서 뒤늦게 얻은 깨우침이라고나 할까. 어느 시인이 읊은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라는 표현만 해도 그렇다. 그 깨달음이 지금 얼마나 절실하게 와 닿는지 모른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노년의 배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어 더 배움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하며 한때 회의적인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생각을 바꿨다. 공자는 스스로를 "학문을 즐김에 늙는 줄조차 모르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렇듯이 '배우지 않으면 곧 늙고 쇠약해진다'는 주장에 동조하게 됐다. 혹자는 '노년의 독서는 인격이 정장차림을 하는 것'이라는 그럴듯한 해석도 내놓았다. 스위스 철학자 힐티의 표현도 위안이 된다. 힐티는 "나이 들어서도 젊음을 잃지 않을 정신적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했다. 옛말에 '지는 해 아름답지 않은 풍경 없다'고 했다. 또 '사귀어서 조금도 마음 상하지 않는 사람은 고인(故人)밖에 없다'고 했다. '여자는 가장 큰 원수가 될 사람을 사랑한다'고도 했다. 몰랐다. 대다수 잘 모르고 산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는 평소 잘 모른다. 한 달여 지속된 긴 가을 장마 끝에 햇살이 반짝 났을 때 우리는 평소 햇볕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몇 끼 굶어보지 않으면 또 모른다. 평소 싸구려라고 무시했던 우정식당 7천 원짜리 된장찌개·김치찌개가 얼마나 소중하고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지독한 장염으로 입원해 물만 먹는 생활을 일주일 해 보면 그때서야 그 음식의 소중함을 알고 그리워하게 된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다. 각자 살면서 어쩌는 수 없이 거대한 벽면에 직면하거나 처절한 궁지에 몰려 봐야 반성하게 돼 있다. 우리 인간은 그런 존재다. 그러나 어떡하랴. '철들자 망령난다'고 했다. 좀 알 만하면 다들 떠나게 돼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제길, 이제 일 좀 제대로 하나 싶으니 고향 갈 때가 돼 버렸군." 육군 통신병 시절 소대장 최 중위가 제대를 목전에 둔 말년 병장들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듯이 내뱉은 말이다. 그 말과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것이 새롭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뒤늦게 철이라도 좀 들려는 건지…. 원도혁 논설위원원도혁 논설위원
[자유성] 빙하 장례식
지난 8월18일 아이슬란드에서 특별한 장례식이 거행됐다. 이름하여 '빙하 장례식'이다. 영국 북서쪽에 위치한 아이슬란드는 화산과 빙하가 함께 있어 '불과 얼음의 나라'로 불린다. 700살이나 된 빙하의 임종을 맞는 빙하 장례식의 대상은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의 북동쪽에 있는 '오크 빙하(오키외쿠틀)'였다. 오크(OK) 화산을 무려 700년간 덮고 있던 이 오키외쿠틀은 1980년대까지 해발 1천198m의 오크 화산 정상 일대에 있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관찰에 의하면 한 때 면적이 16㎢에 달했다. 그런 오크 빙하는 그러나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면적과 두께가 서서히 줄어들었고 2014년부터는 빙하연구자들로부터 '죽은 빙하'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그래서 빙하 장례식이 열린 것이다.빙하 장례식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하기 위한 것으로 미국 라이스대학 기후학자들이 마련했다. 이날 장례식은 오크 화산 정상 부근에서 열렸는데 아이슬란드 총리와 전세계 기후전문가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오크 빙하 앞에는 '미래로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추모비도 세워졌다. 추모비에는 '오크는 빙하의 지위를 잃는 최초의 아이슬란드 빙하다. 앞으로 200년 이내에 다른 빙하들도 이와 같은 길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이 기념비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인정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그것을 해냈을 때만 알게 될 것이다'라고 새겨졌다. 의미심장한 문구다. 한 달 뒤인 9월23일 스위스에서도 빙하 장례식이 열렸다. 환경운동가들이 해발 고도 2천700m의 스위스 알프스 산악지대인 방스 지역에서 상복을 입고 '피졸 빙하'의 사망을 추모했다. 이날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의 빙하학자 마티아스 후스는 추도사에서 "스위스에서 1850년 이후 빙하 500개 이상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때문에 알프스 빙하의 90% 이상이 이번 세기 말에는 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빙하 다음에 사라질 것은 무엇일까. 원도혁 논설위원
[자유성] 명당 유감
2주 전 주말 경남 산골의 조상 묘소에 가서 벌초(伐草)를 하고 왔다. 추석을 한 달 정도 앞둔 시점부터 시골 묘지마다 벌초하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게 대한민국 특유의 가을 풍경이다. 고향 선산에서 선대 묘지 10여 기의 풀을 깎고 정리하는 작업을 두 형과 함께했다. 진주의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선산 벌초는 지난해부터 우리 삼형제의 몫이 됐다. 묘지들은 집에서 멀지 않아 무난히 하루 만에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이전에 아버지와 삼촌들이 살아계셨을 때는 사촌·육촌 형제들까지 모여서 수십 기의 묘지를 벌초했다. 새벽부터 모여 마을 앞의 넓은 들을 가로질러야 했고 뒷산도 넘어야 했다. 묘지들은 대개 '명당(明堂)' 소리를 듣는 심산유곡에 있었다. 그곳에는 비싼 석재로 장식한 무덤도 더러 있다.오래된 모든 것이 그러하듯 명당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한자공부를 엄격히 한 세대는 명당에 대해 '좌 청룡(靑龍), 우 백호(白虎), 남 주작(朱雀), 북 현무(玄武)'로 기억할 것이다. 무덤 주변이 이런 상서로운 동물들로 둘러싸인 모양새여야 명당이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세대엔 이런 동물 자체가 생소하다. 차라리 '좌 주차장, 우 도로, 남 슈퍼마켓, 북 주유소'라고 명당 조건을 설명하는 게 훨씬 빨리 와 닿을 것이다. 명절 때 조상 산소에 애들을 데리고 가려면 이런 여건이어야 훨씬 유리할 것이다.주변 풍광이 수려한 좋은 땅에 묻히는 것을 선호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화장해서 나무밑에 묻는 수목장이나 그냥 화장해서 없애는 장례 문화가 대세다. 죽고 나서 좋은 곳에 묻히면 뭘 하나. 풍광이 빼어난 지역에서 살아보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재력이 여유롭다면 살아 생전에 즐기고 주변에 많이 베풀 일이다. 죽으면서 갖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등바등 살고, 모은 재산이 아까워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죽은 생은 불쌍한 생이다. 큰아버지 등 이미 고인이 된 여러 사례들에서 느꼈다. 매년 벌초 시즌마다 맞는 상념들이지만 진지하게 되짚어 보게 되는 사안이다. 원도혁 논설위원
[자유성] 젊은 국가, 늙은 국가
지구상에서 힘·영향력이 우세한 나라는 대개 땅과 인구 규모가 큰 나라들이다. 미국·중국·소련·브라질이 대표적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는 땅덩어리는 크지만 온순한 국민성 탓인지 대외 장악력은 약하다. 그런데 이런 땅덩어리나 인구수에 의한 국가의 대소(大小)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있다. 바로 그 나라가 얼마나 젊었느냐 혹은 늙었느냐 하는 노소(老少) 기준이다. 한 국가가 노쇠했다거나 혹은 혈기 왕성하다는 판단 기준은 모호하다. 하지만 해당 국가 구성원인 국민이 얼마나 젊은 사람들 위주인가, 아니면 늙은 사람들 위주로 구성돼 있느냐 하는 것이 기준이 될 수 있다. 유럽의 나라들처럼 인구가 노령화돼 있으면 늙은 국가다. 반대로 출산율이 높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처럼 젊은 백성들이 전체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는 젊은 국가로 분류된다.바야흐로 저출산 시대다. 독일·프랑스·스웨덴 등 유럽 쪽 선진국 대부분이 젊은 인구 부족으로 노령화가 심각하다. 신혼부부들이 아기를 거의 낳지 않으니 젊은 층은 적은 반면, 나이 든 노령층만 상대적으로 많다. 선진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2015년 전체의 18%를 차지했으나 15년 뒤인 2030년에는 23%로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때문에 2030년경에는 젊은 국가와 늙은 국가 간 노소 격차가 더 뚜렷해진다고 한다. 젊은 국가군에는 니제르·소말리아·앙골라·차드·말리·우간다·감비아·부룬디·잠비아·콩고·탄자니아·모잠비크 등이 꼽힌다. 모두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는 기대수명은 낮고 출산율은 높다. 늙은 국가는 일본·이탈리아·포르투갈·스페인·그리스·독일·슬로베니아·대한민국·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불가리아·루마니아·싱가포르·체코·크로아티아·오스트리아 등이다.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대다수 유럽 국가들이며, 높은 기대수명에 낮은 출산율을 보이는 나라들이다. 다른 나라들은 그렇다 쳐도 한국이 15년 뒤에는 늙은 나라 반열에 든다니 예사롭지 않다. 국가의 노령화에 대한 대안은 정녕 없는 것인가. 원도혁 논설위원
[자유성] 同伴(동반)
최근 영국의 한 언론사에서 독자를 대상으로 '영국 끝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가는 법'을 물었다. 1위 응답은 '좋은 동반자와 함께 가는 것'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예상 못한 결과는 아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도 있지 않나. 동반(同伴)은 '함께 감' 혹은 '데리고 감'을 의미한다. 좋은 사람과 즐기면서 재미있게 갈 수 있다면 어떤 행로든 마다할 이유가 없다. 현대인들이 고양이·개 등 반려(伴侶)동물을 키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아내를 서로 반려자라고 부르듯이 짝이 되는 동무, 또는 늘 가까이 하거나 지니고 다니는 것이 반려다. 결혼한 남녀는 결국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함께 생의 파고를 넘는다. 순탄한 순경(順境)은 물론 힘든 역경(逆境)도 같이 헤쳐나가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순경에서는 친구를 쉽게 발견하지만 역경에서는 친구 찾기가 아주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순경은 친구를 만들고, 역경은 친구를 시험한다'는 금언이 생겼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공자는 일찌감치 친구에 대해 엄격하게 정리했다. 그는 '유익한 벗 셋'과 '해로운 벗 셋'을 분류하며 잘 사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자는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박학다식한 사람과 벗하면 유익하다고 했다. 반면 편벽한 사람, 굽실거리는 사람, 빈말 잘하는 사람과 벗하면 해롭다고 지적했다. 공자의 주장처럼 유익한 벗과 동반해야 인생행로가 즐거운 것은 당연하다. 결혼해 함께 사는 부부는 동반자다. 서로 현인·현처를 만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으니 난제다. 악처 크산티페를 만난 소크라테스는 "왜 당신 같은 현인이 그런 악처를 만났느냐"는 주변의 물음에 "마술에 능하려면 사나운 말을 타야 하는 법"이라고 답했다나. 악처를 둔 남편들에게 위안이 될 만한 현답이다. 친구든 배우자든 동반에 있어서 간과해선 안되는 지혜가 있다. 바로 '거리두기'다. 좋은 동반을 위해서는 두 사람 사이에 공간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원도혁 논설위원
[월요칼럼] 六德(육덕)·五德(오덕)
이 지구상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물이 존재한다. 그 사물들 중에는 다이아몬드나 금처럼 존재가치가 아주 높은 것이 있는 반면, 돌멩이·풀·나무·종이와 같이 존재가치가 아주 낮은 것도 많다. 존재가치가 높은 물질은 귀한 대접을 받지만 흔한 것은 푸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78억년이라는 긴 나이를 먹은 지구는 이런 저런 존재물로 채워져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다양한 존재물 중에서 물은 이 지구상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다. 그런데 너무 흔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소중함과 참된 가치를 잘 몰라 탈이다. 아끼지 않고 함부로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물에는 여섯 가지 장점이 있다고 한다. 오래전 중국의 철학자 노자가 주창한 이른바 '물의 육덕(六德)'이다. 우선 물은 어떤 그릇에나 담기는 융통성(融通性)을 지녔다. 가장 손꼽히는 덕목이다.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것은 겸손(謙遜)에 다름 아니다.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지혜(智慧)도 지녔다. 바위도 뚫는 물방울의 인내(忍耐)·끈기는 또 어떠한가. 강이나 바다에서는 온갖 오염 성분도 받아주는 포용력(包容力)까지 갖췄다. 흐르고 흘러 끝내 큰 바다에 이르는 성질은 대의(大義)에 비견된다. 그냥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하지 말고 물의 이러한 덕목을 생각하면서 잘 활용해야겠다. 덕목을 갖춘 식재료는 물만이 아니다. 또 있다. 한국 음식에서 가장 바탕을 이루는 양념 중 하나인 된장에 관한 것이다. 콩과 물, 소금으로 조합해 숙성시킨 된장은 간장과 함께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오묘한 양념으로 꼽힌다.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집집마다 손맛에 의해 서로 다른 맛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어떤 선각자는 그런 된장에서 다섯 가지 지혜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된장의 오덕(五德)'으로 꼽히는 그 가르침도 예사롭지 않다. 된장의 첫 덕목으로 일편단심의 단심(丹心)이 꼽힌다. 다른 음식과 섞여도 결코 본연의 맛을 잃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졌다. 세월이 흘러도 본연의 맛이 변하지 않는 것은 항심(恒心)에 비유된다. 맛이 변하지 않고 세월 따라 오히려 더 깊은 맛을 품는 게 된장이다. 또한 된장의 무심(無心)도 빼 놓을 수 없다. 각종 병을 유발하는 기름기를 없애주기에 성질이 무심이다. 맵고 독한 성분을 부드럽게 유도하는 선심(善心),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뤄내는 화심(和心)도 된장의 중요한 덕목이다. 한국인의 밥상을 점유하는 중요 양념인 된장은 한국이 자랑해도 될 만한 토속 음식이다. 된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발효과학의 한 단면으로 마냥 신비롭다. 상당수 외국인에게는 신비를 넘어 미스터리 그 자체로 다가가기도 한다. 담글 때 다들 같은 재료를 써도 집집마다 맛이 다른 음식이 바로 한국의 된장·김치·간장이기 때문이다. 물의 육덕과 된장의 오덕을 거론하면서 우리 인간은 어떤 덕목을 갖췄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경주 최씨 가문의 가훈이었다는 육연(六然)을 소환해 본다. 스스로 초연하고(自處超然), 사람에게 부드럽게 대하며(對人靄然), 일이 생기면 용감히 응하며(有事敢然), 일 없을 땐 맑게 지내며(無事澄然), 무슨 일에 성공해도 담담하게(得意 淡然), 낙담해도 태연하게(失意泰然) 지내라고 했다. 구구절절이 수긍되는 가르침이다. 살면서 매 순간 물의 육덕과 된장의 오덕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원도혁 논설위원원도혁 논설위원
[자유성] 욕설의 미학
흔히 말하는 '욕(辱)'은 욕설(辱說)의 준말이다. '욕'의 정의 중 '억눌린 자의 악다구니'라는 표현이 와닿는다. 욕의 그 불가피한 충동성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욕은 감정의 발산인 동시에 감정의 달램이고, 감정의 삭임이다. 어떤 학자는 '욕할 대상에 대해 마땅히 욕하지 않으면 세상은 언제까지나 욕다울 것'이라고 했다. 욕먹어 싼 인간이 있고, 욕먹어 마땅한 세상이 있기에 욕할 경우가 생기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명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험한 입 때문에 오래전부터 구설수에 올라 있다. 형수에게 듣기 거북한 쌍욕을 했다는 것인데 인터넷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돌아다닌다. 호사가들이 유명인사의 약점·실수를 이용하는 것은 선거철마다 나오는 단골메뉴에 불과하다. 어쨌거나 욕은 '하지 말아야 할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먹지 말아야 할 그 무엇'이다. 분노(憤怒)를 욕으로 발산하는 것은 삶의 한 과정으로 필요하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마치 태풍이 바닷물을 맑게 만드는 이치와 같다는 것. 분노가 속기(俗氣)와 잡기(雜氣)를 불태워 정신을 정화한다는 이론이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분노를 예찬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성이 났을 때 글을 잘 쓴다. 잘 기도하고, 잘 설교할 수 있다. 그때 나의 온 기질은 자극되고, 나의 이해력은 예리해지며, 모든 세속적인 번거로움과 유혹이 떠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주 변영로는 임진왜란 때 의기 논개가 진주 촉석루 의암바위에서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순직한 사실에 대해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다'고 읊었다.양(洋)의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욕은 언어와 함께 존속해 왔다. 욕설은 언어의 가장 강력한 발로이기도 하다. 인간이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울화가 치밀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 감정을 표출해야만 한다. 그러지 못하면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억눌린 자의 악다구니로써 욕설의 당위성과 정당성이 그래서 인정된다. 그렇더라도 욕설을 내뱉거나, 욕먹을 상황을 가능하면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올바른 처신이 아닐까? 원도혁 논설위원
코리아세이프, 대구 인제요양원에 살균·소독제 후원
<주>코리아세이프(대표 이정윤)는 최근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대구 수성구 인제요양원에 살균·소독·탈취제인 '디펜더 시그니쳐' 230개를 후원했다.
[자유성] 포노 사피엔스
현생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불려온 지 꽤 오래됐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혜 있는 사람'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스웨덴의 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e)가 처음 분류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사이래 통용된 이 명칭은 이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시대에 걸맞는 새 명칭으로 '포노 사피엔스'가 어떨까? '호모'는 가고 요물 휴대폰이 붙었다. '휴대폰 인류'가 신 인류로 등장한 것이다. 잠시라도 곁에 두지 않으면 불안한 물건, 어딜 가든 항상 지니고 가야 하는 필수품이 휴대폰이다. 통화 기능뿐만 아니라 시계·계산기·게임기·만보기 등 다양한 컴퓨터 기능까지 갖춘 문명의 이기(利器)다. 최근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서 휴대폰의 가치는 여실히 드러났다. '섹스 파트너·휴가·친구를 포기하더라도 반드시 선택하겠다'고 응답한 대상이 바로 '스마트 폰'이었다.스마트 폰이 현 인류의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 그 시대에 사는 '포노 사피엔스' 신인류는 이 문명의 이기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혜택보다는 '폰 중독'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지하철안에서 승객의 동태를 살펴보면 인간의 폰 중독이 얼마나 심각한지 바로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폰을 조작하거나 들여다 보고 있다. 이제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펴놓고 읽는 시민을 보기란 '희귀한' 일이 돼 버렸다. 길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걸어가면서 다들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러다 인도나 횡단보도에서 위험천만한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한다. 인도나 횡단보도라고 해서 오토바이 등 모든 차량이 다 정지해 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되는 게 우리의 교통문화다. 걱정스럽다. 우리 모두 기계의 노예가 돼 가고 있는데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공감능력과 창의성을 저해하는 스마트 폰 중독이 향후 우리사회를 얼마나 나쁘게 변화시킬지 모른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원도혁 논설위원
[월요칼럼] 당신의 버킷 리스트, 아직 유효한가요?
책장을 정리하다가 이전 수첩들을 들여다보게 됐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수첩의 기록은 2015년 10월27일 화요일 오전 7시30분으로 돼 있었다. 제목은 '나의 버킷 리스트'. 그런데 내용은 생경했고 혼란스러웠다. 기록이 6년여 전의 것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버킷 리스트의 내용 때문이다. 세 가지 리스트는 1)뉴질랜드 원시림 트레킹하기 2)융프라우 등 알프스 등반하기 3)무인도에서 살아보기로 돼 있었다. 어느 가을 아침 호기롭게 작성하며 '죽기 전 반드시 실행에 옮겨보리라' 다짐한 '희망사항'을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것이다. 난감했다. 당시 내 나이 50대 중반일 뿐인데, 지금 보니 너무 거창했고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 몇 년 사이 내 결기가 너무 위축된 것일까?버킷리스트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해보고 싶은 희망사항(리스트)을 적어 통(버킷)에 넣어 둔 '미완의 과제'다. 2008년 4월9일 개봉되고, 2017년 11월29일 재개봉된 미국의 모험·코미디 드라마 '버킷 리스트'는 백인 배우 잭 니콜슨과 흑인 배우 모건 프리먼이 주연해 강력한 이미지를 남긴 영화였다. 당시 관객 평점이 10점 만점에 9.1점을 받았을 정도다. 나이 많고 암에 걸려 병실에서 만난 두 흑백 노인이 "죽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일을 실천하자"면서 병실을 박차고 나간다는 극적인 설정이 관객에게 먹혀든 것이다. 그리고 카 레이싱과 스카이 다이빙, 세렝게티 평원에서의 사냥, 문신하기,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등에 도전하면서 버킷 리스트 목록을 지워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다들 대리 만족을 느꼈다는 얘기다. 버킷리스트, 각자 그 미완의 숙제를 실현하기 위한 준비는 치밀해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작금 나의 상황은 아예 거리가 머니 황당할 수밖에…. 지금 내 일상은 여유롭지 못하다. 그저 하루의 업무, 일년의 과제, 평생의 우환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하루를 어떻게 유익하게 창조적인 활동으로 보낼까 하는 게 하루의 고민거리다. 또한 최소한 1년 단위라도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모하는 것이 중간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 1년이 쌓여서 개인의 평생이 된다. 어떤 선각자는 '하루 우환은 낮술'이라고 했다. 낮술의 폐해를 겪어 본 이는 잘 알 것이다. 그 선각자는 또 '일년 우환은 쓴 장맛이고, 평생 우환은 성질 사나운 배우자'라고 규정지었다. 놀라운 통찰력이다. 거듭 되새기며 감탄하고 있다. 각자 다른 우환도 많을 터이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스위스의 철학자 카를 힐티는 '인생의 단계'론에서 주장했다. 인생의 시기마다 그 시기 고유의 성과를 축적해 인격속에 남겨야 한다고. 그러려면 어린 시절에는 어린이다운 천진함을 남겨야 하고, 청년 시대에는 신선한 활동력과 고양된 정신을 남겨야 하고, 장년 시대에는 원숙한 감정과 견실한 성격을 남겨야 한다고 했다. 어떤 노년이 정답일까? 각자의 노년은 과거를 조용히 긍정하고 장래를 달관하는 시기가 돼야 한다. 그래야 노년의 잘 쌓아온 나이가 아름답게 평가될 수 있다고 한다. 삶의 먼지를 떨쳐 내는 건 좋지만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와 같은 너무 거창한 목표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은근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버킷 리스트도 마찬가지다. 실행에 옮기기 쉬운 내용이어야 한다.원도혁 논설위원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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