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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2030 세대가 이끄는 독서트렌드(2) 유튜버가 요약한 영상시청 '간접독서'…연예인 추천도서 따라읽기 '모방독서'
디지털에 익숙한 요즘 젊은 세대는 책을 잘 안 읽을 거란 예상과 다르게 이들 사이에서 독서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18일 발표한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가운데 일반 도서를 단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종합독서율은 20대가 1위로 74.5%, 30대가 68.0%로 뒤를 이었다. 오히려 디지털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독서 문화도 활성화되는 분위기다.◆전자책 즐겨 쓰고, 영상 시청도 독서로 여겨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선 SNS 등을 통해 책을 읽는 유행이 퍼지면서 독서가 '힙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런 분위기로 독서 시장의 주류가 된 젊은 층 사이에서는 독서를 즐기는 색다른 방식이 생겨났다. 종이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책을 찾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전자책(e-book)이다. 문체부에 따르면 20대 청년층을 중심으로 전자책 이용률이 많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20대 전자책 독서율은 58.3%로 2021년에 비해 7.8%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이는 실용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현상으로 풀이된다. 대학생 정모(여·19)씨는 "학교와 집 사이의 거리가 멀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간이 긴데, 그때마다 학교 전자도서관 앱으로 전자책을 읽는다. 별도의 짐을 챙길 필요 없이 스마트폰만 소지하고 있으면 터치 몇 번으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는 시간에 독서를 즐기니 알차다"고 말했다.유튜브를 통해서도 책을 접하고 있다. 전형적인 독서 방식은 아니지만, 매체 환경의 변화로 독서의 범위에 대한 인식이 다양해지면서 영상 시청도 독서의 일부로 여기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독서=종이책'이라는 공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규정한 방식으로 독서를 즐기는 것. 지난해 서울기술연구원이 서울시민 1천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독서 실태 결과에 따르면, 10대의 19.6%, 20대의 13.5%가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매체 시청까지 독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유튜브 채널 tvN 스토리에서 설민석 강사가 진행하는 강독 '#책읽어드립니다' 시리즈는 사피엔스, 인간관계론, 멋진 신세계, 데미안 등 여러 유명 서적을 다루는데, 인기 있는 영상은 300만회가 넘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직장인 박모(27)씨도 출퇴근 시간 유튜브를 통해 책 요약 영상을 즐겨 본다며 영상 시청도 독서의 일부라고 밝혔다. 박씨는 "종이책을 읽는 것만큼 능동적인 행위는 아니지만, 전반적인 책 줄거리를 접하고 지식을 습득한다는 점에서 책을 읽는 많은 방식 중 하나라고 본다. 미디어 환경이 변하고 지식을 얻는 방법이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꼭 활자를 읽는 것만이 독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도 "얻는 정보의 깊이가 달라 정식 독서와 비교하긴 어렵지만 책의 내용, 지식을 습득한다는 면에 있어서는 영상 시청도 넓은 의미의 독서라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SNS 활용…독서 일상 공유·모방하기도이들은 독서 일상을 남들과 공유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영상 플랫폼 틱톡에선 최근 해시태그 '북톡(BookTok)' 챌린지가 인기다. 참가자들은 좋아하는 작가나 책을 소개하는 등 책과 관련된 일상을 짧은 영상으로 올린다. 틱톡에 따르면 북톡 해시태그가 달린 콘텐츠는 매일 1만9천400개씩 올라온다. 이 챌린지는 출판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영국출판협회(PA)가 16~25세 2천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8%가 '북톡에서 본 책을 구입하기 위해 서점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연예인이나 유튜버 등 유명인이 추천한 책을 읽는 모방 독서도 흔하게 나타난다. 지난 1월 보이그룹 NCT의 재민은 팬들과의 소통 플랫폼에서 '자존감 수업'을 읽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후 팬들의 책 구매 후기가 올라오고 전월 대비 판매량이 114% 증가했다. 오래전 나온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1998년 첫 출간된 양귀자의 '모순'은 광고, 마케팅 없이 책 유튜버들의 추천 등 입소문만으로 역주행했다. 알라딘에 따르면 모순은 2014년부터 꾸준히 판매가 늘기 시작하면서 2020년에 전년 대비 2배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구매 독자 67%는 2030 여성이다. 얼마 전 모순을 구매한 조모(여·24)씨는 "소설이 읽고 싶어 유튜브에서 추천 영상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많은 책 유튜버가 모순을 '인생책'으로 꼽아 구매했다. 읽어보니 추천이 많은 이유를 알 듯하다. 앞으로도 책을 구매하는 데 유튜버들의 영상을 어느 정도 참고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의 특성이 독서 문화에도 반영된 것이라 분석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원래 젊은 세대는 유행에 민감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더 그렇다. 인터넷에 무엇이 뜨는지 관심이 많고 SNS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며 "유명인이 읽은 책을 따라 사거나, 자신의 독서 일상을 올리는 등의 최근 독서 트렌드도 이런 특성을 기반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게티이미지뱅크〉그래픽=장수현기자지난 9일 오후 경기 수원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잔디밭에서 열린 '북 피크닉' 행사가 열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책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유튜브 채널 tvN 스토리에서 설민석 강사가 진행하는 강독 '#책읽어드립니다' 시리즈.
2024.05.24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2030 세대가 이끄는 독서트렌드(1) 독서도 음악처럼 신나고 힙하게
기자는 책을 사랑한다. 고전 서적은 평생 소장할 인생의 길잡이라 생각해 무조건 구매하는 편이며 집 근처 맛집보다 도서관에 더 자주 간다. 혼자 사는 집 책꽂이에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한 책은 이제 100권이 넘는다. 친구들과 감상평을 나누는 일을 즐기며 쓸데없는 공상에 사로잡혀 자기 전에도 소설의 결말을 곱씹을 정도다.그러던 중 최근 속상한 소식을 접했다. 지난해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18일 발표한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가운데 일반 도서를 단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종합독서율이 43.0%에 그쳤다. 직전 조사 시점인 2021년보다 4.5%포인트나 감소한 수치다. 1994년 독서 실태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다. 종합독서율은 1994년까지만 하더라도 86.8%에 달했다고 한다. 30년간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워낙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니 씁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다. 문체부 조사에 따르면 독서 장애요인으로는 24.4%가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를 꼽았다. 스마트폰의 보급도 한몫한다. '스마트폰이나 게임 등 책 이외의 매체를 이용해서'도 23.4%로 뒤를 이었다. 어릴 적엔 길에서도 활자를 읽는 이들을 종종 본 적이 있지만 요즘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모두 소형 전자기기로 메신저 대화를 주고받거나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이런 통계를 봤을 때, 책을 멀리하는 현상은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보였다. 태어날 적부터 인터넷을 접한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것은 물론,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도 대단하다. 뚝딱뚝딱 터치 몇 번으로 양질의 정보를 빠른 시간에 얻어낸다.하지만 이런 예상과 다르게, 연령별로 보니 젊은 층에서 종합독서율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20대가 74.5%로 가장 높았고 30대가 68.0%로 뒤를 이었다. 40·50대는 각각 47.9%, 36.9%에 그쳤다. 이는 젊은 세대가 독서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특히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인 만큼 디지털 시대의 특성과 함께 독서의 개념과 방식을 바꿔나가고 있다. 전통적인 종이책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 책 읽는 방식을 확장하고 있다. 전자책(e-book)을 즐겨 읽으며, 영상 시청도 독서로 여기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책의 내용이 담긴 영상을 보는 것도 넓은 의미의 독서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이 독서 문화에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유행에 민감한 세대인 만큼 SNS를 통해 독서 일상을 남들과 공유하는 일도 흔하게 나타난다. 이들에게 독서는 이제 따분하고 재미없는 자기계발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적이면서도 '힙한' 취미가 됐다. 기자도 MZ세대로 불리는 나이에 속하는데, 요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책과 관련된 게시물이 자주 올라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이처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독서 문화가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는 가운데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출판사 등 관련 업계도 이들의 행보에 주목하며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분위기다. 이에 이번 호 위클리포유에서는 요즘 젊은 세대의 독서 문화에 대해 살펴봤다. 조현희기자
[세계를 보는 창] 반발 커지는 팁문화…미국인도 이젠 부담
최근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A씨는 미국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집까지 우버(Uber)를 이용했다. 자차를 이용할 경우 공항 주차장 이용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무사히 집에 도착한 A씨는 우버에서 날아온 모바일 안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운전기사에게 얼마의 팁을 주겠느냐?'는 메시지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없었던 안내문이다.미국에선 이처럼 이른바 '팁플레이션(Tipflation, 팁+인플레이션)'이 소비자의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미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현재 미국 내에서 부과되는 팁 비용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포브스 어드바이저(Forbes Adviser)는 올 상반기 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31%가 팁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26%는 '현재 수준이 과하다'고 밝혔다. '당연하다'는 응답자는 23%에 불과했다.이미 '길트 티핑(guilt tipping, 죄책감으로 주는 팁)' '팁 피로' '팁 크립(tip creep)' '팁 수치심(팁의 인색함으로 인해 생기는 수치심)' '팁플레이션' 등의 신조어가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여기에 다수의 업소가 최근 테이크아웃 등에도 팁을 요구하면서 소비자들의 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점점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노팁(No Tip) 식당이 늘어나는 추세다. 사실 미국만큼 팁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도 드물다. 팁을 주지 않는 게 무례한 행동으로 인식될 정도다. 음식점의 경우 보통 점심 10%, 저녁 15% 정도 수준의 팁을 추가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요즘 부쩍 늘어났다. 계산서 금액에 18~25%를 추가하는 것이 다반사다. 게다가 점점 더 많은 소매업체가 단순 서비스에도 팁을 추가하고 있다. 과거엔 식당 혹은 바(Bar)에서 통용됐던 팁을 거의 모든 서비스 업종에서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자동 세차장, 보톡스 시술, 스무디를 만드는 로봇 카페 등에서도 팁을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 기업, 특히 서비스 업종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살인적 인플레이션으로 각종 비용이 뛰는 상황에서 소매업자들은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부족하다. 대신 직원들이 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셈이다.팁플레이션은 고용주 입장에선 '손 안 대고 코 푸는' 좋은 방법이다. 스타벅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최근 드라이브 스루(차를 탄 채로 이용) 매장에서도 팁을 받는다. 지난해 9월부터 '신용카드 팁 시스템'을 새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시스템 도입 이후 신용카드 구매 건수의 거의 절반에서 팁이 포함됐다. 로봇카페·테이크 아웃도 팁 요구청구액 늘어 18~25% 추가 다반사미국사회 내서 부정적 시각 확산비대면 태블릿 결제 시스템 도입소비자 선택권 제한 교묘히 받아피로도 누적 평균 팁비율 감소세◆디지털 팁의 '넛지 효과'팁플레이션의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태블릿 결제' 시스템 확산이다. 과거엔 팁을 보통 현금으로 지불했다. 식사 후 테이블에 지폐를 남기거나 결제할 때 'Tips'라고 쓰인 유리병에 돈을 넣는 식이었다.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도 소비자들은 영수증에 팁 액수를 따로 쓰는 것으로 결제 금액이 결정됐다. 그렇지만 요즘 미국에선 대부분 업소가 터치스크린 형태 단말기나 휴대용 태블릿을 사용한다. POS 시스템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는 코로나 팬데믹 영향이 컸다. 가급적 대면 접촉을 줄이려다 보니 이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당당하게 그리고 교묘하고 끈질기게 팁을 달라고 고객에게 요구한다. 팁을 얼마 줄 건지를 묻고, 고객이 입력을 마쳐야만 결제가 완료되는 식이다.문제는 이 같은 '디지털 팁' 도입으로 이전보다 팁을 주는 비율도 은근슬쩍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넛지 효과'(Nudge effect,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다. POS 시스템에선 보통 고객의 편의를 위해(?) 객관식으로 팁 비율을 제시한다. 레스토랑의 경우 그 최소비율이 일반적으로 18% 또는 20%부터 시작한다. 최대 30%까지 제시하는 곳도 있다. 물론 업주가 비율을 설정한다. 만약 10%만 팁으로 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입력하는 창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찾기 어렵다. "입력 버튼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그냥 18%를 눌러요"라는 것이 대다수 고객들의 답변이다. 팁 비율 상승보다 소비자를 더 당황스럽게 하는 건 디지털 팁을 요구하는 매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웬만하면 팁을 안 주고 넘어갔을 매장에서도 디지털 결제 과정에 팁 선택 버튼이 있다. 실제 테이크아웃이 주를 이루는 커피숍이나 샌드위치 가게에서도 무조건 팁 버튼을 눌러야 결제가 끝난다. "'팁 없음'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바로 앞에서 웃는 얼굴로 직원이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쉽지 않다." 대다수 소비자들의 볼멘 반응이다. 구매가가 저렴한 일부 매장은 백분율이 아닌 일정 금액으로 팁 선택지를 제시하기도 한다. 예컨대 3.75달러(약 5천170원)짜리 빵을 사는데 팁을 '1달러, 2달러, 3달러' 중 선택하게 하는 식이다. 비율로 치면 엄청나다.◆미국 팁 문화의 유래미국의 팁 문화는 언제부터 유래됐을까. 17세기 영국과 유럽 상류층의 문화였던 팁은 이후 미국으로 넘어왔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이 서비스업에 대거 종사하면서 팁 문화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낮은 임금을 주는 대신 팁에 의존하게 한 것이다.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임금을 책정할 때 연방정부가 정한 연방 최저임금과 각 주가 정한 주별 최저임금 가운데 더 높은 것을 적용한다. 그런데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팁을 받는 근로자와 받지 않는 근로자가 다르다. 팁을 받지 않는 일반 근로자는 시간당 7.25달러(약 9천995원), 팁을 받는 근로자는 시간당 2.13달러(약 2천936원)이다. 주별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50개 주 가운데 단 8개 주에서만 팁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한다. 나머지 42개 주에선 팁을 받는 근로자에겐 더 적은 최저임금을 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렇다 보니 팁을 받는 종업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팁 수준 예전으로 회귀하나이처럼 인플레이션과 소비자들의 팁에 대한 피로도가 누적되자 최근 평균 팁 비율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수준으로 회귀하는 조짐을 보인다. 클라우드 기반 POS 시스템 관리 업체인 '토스트'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2분기 소비자들이 식당에서 준 팁 비율은 평균 19.4%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초기인 2020년 2분기의 19.4%와 같은 수준이다.평균 팁의 비율은 2021년 1분기 19.9%로 상승했다가 2021년 4분기 19.8%, 2022년 3분기 19.6%, 2023년 2분기에는 19.4%로 내리면서 연이어 감소세를 보였다. 2018년 1분기 평균 식당 팁 비율이 19.7%였던 점을 고려할 때, 최근 소비자들이 물가 상승과 더불어 팁에 대한 스트레스가 급증하면서 팁을 줄인 것으로 분석된다. 디지털 결제 서비스 기업들은 "팬데믹 기간 소비 지출 감소 및 지원금 지급 등으로 소비자들의 재정 상황이 안정돼 팁이 증가했다"며, "하지만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팁 비율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그럼에도 팁 비용이 하방경직성이 강한 만큼 예전으로 돌아가는 데는 저항선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권영일〈경북 수출지원 해외서포터스(미국)〉〈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한 고객이 매장에서 물건을 산 후 POS시스템을 이용해 결제를 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디지털 팁을 도입했다. 그 결과 기존의 팁 액수가 크게 올라 소비자들의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2024.05.17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중장년층의 새 도전 '시니어 모델'(2)흰머리도 나잇살도 패션 아이콘…숨겨온 열정 폭발
"제 어릴 적 꿈은 패션모델이었어요. 젊은 모델은 여성 기준으로 키가 175㎝는 돼야 할 수 있는데, 키가 그만큼은 안 크더라고요(웃음). 모델의 꿈은 마음속에만 묻어두고 가정주부로 몇십 년을 살아 왔는데, 시니어 모델이란 직업을 알게 되고 꿈을 펼치게 됐어요." '시니어 모델' 전성시대다. 주부였던 박세영(56)씨는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했다. 뒤늦게 어릴 적 꿈꿨던 모델로 데뷔하면서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빠른 고령화와 함께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최근 액티버 시니어(활동하는 시니어)가 뜨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을 받는 직업군이 시니어 모델이다. 누구나 원하고 마음만 먹으면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신체조건 무관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 바른 자세·워킹 연습은 '최적화된 운동' 건강 UP 패션쇼 등 특별한 무대경험 통해 노후생활 활력 모델활동하다 광고·영화 분야로 진출영역 넓혀가◆키 작아도, 나이 많아도…자신감만 있으면 OK'시니어'라 하면 통상 65세 이상의 사람을 가리키지만 이들 세계에선 그렇지 않다. '시니어'란 단어가 폭넓은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적게는 40대, 많게는 90대의 노인도 시니어로 칭해지며 모델로 활동한다. 이 말인즉슨 시니어 모델에게 나이는 많든 적든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7일 찾은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 '모델라인'의 모델 연령대도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도하영 모델라인 원장은 "일반적으로 시니어라 하면 백발의 노인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니어'와 '모델'이란 단어가 만나면 그런 이미지가 옅어진다. 시니어 모델이 된 순간부터 몸도 마음도 젊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체형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키가 크고 슬림해야 하는 젊은 패션모델에 비해 신체적 조건이 덜 까다롭다. 일반적인 모델 기준보다 키가 작거나 마르지 않아도 된다. 도 원장은 "키가 작더라도, 살집이 있더라도, 신체에 불편한 곳이 있더라도 자신감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든 시작할 수 있다. '시니어'나 '모델'이란 단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사람이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 시니어 모델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매력으로 시니어 모델이란 직업군이 주목을 받으면서 최근엔 흰머리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이 되기도 했다. 흰머리가 이들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가 된 것. 시니어 모델이라서 더 '힙하게' 보일 수 있는 시대가 된 셈이다.◆진출 분야 폭넓어…광고·영화로도 진출이처럼 시니어 모델은 진입 장벽이 낮아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노력과 투자는 필요하다. 모델이기 때문에 워킹부터 시작해 자세, 표정 연기, 무대 동선, 무용까지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개인마다 편차는 있지만 기본 8개월 이상은 배워야 첫 패션쇼 무대에 설 수 있다. 얼마 전 시니어 모델에 도전한 김우람(43)씨도 "키가 큰 편이라 가족의 추천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배울 게 많다. 표정처럼 디테일한 부분 하나하나 신경 쓰고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워킹과 자세다. 이날 모델라인에서 만난 시니어 모델들도 인터뷰 내내 올곧은 자세를 유지했다. 6년 차로 활동 중인 박보겸(57)씨는 "이전에는 8자 걸음으로 걷고 다리도 오다리였는데, 시니어 모델 활동을 하면서 그런 나쁜 자세들을 전부 교정했다. 평소 집에서도 다리를 줄로 묶고, 앉아 있을 때도 허리를 펴는 것을 습관화했다"고 말했다.다양한 것을 배우는 만큼 진출 분야도 폭넓다. 크고 작은 패션쇼뿐만 아니라 지면·방송 광고를 찍기도 하며 영화배우가 되기도 한다. 패션쇼에 서기 위해 배운 자세, 연기 등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기 때문이다. 김경미(65)씨도 시니어 모델 활동을 하다 최근 상업 영화에서 조연을 맡게 됐다. 과거 영화 촬영에선 노인 배역을 맡을 사람이 많지 않아 중년 배우가 분장을 하고 노인 역을 맡는 경우도 있었는데, 최근엔 시니어 모델이 많이 캐스팅되는 추세다. 김씨는 "영화배우라도 워킹 연습, 바른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니어 모델의 쓰임새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전문적으로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작품에 임하기 위해 모델 워킹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한다.SNS 활동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들 사이에선 활발하다. 요즘 시니어 모델이 자신을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인스타그램 등의 SNS이기 때문이다. 패션쇼 캐스팅도 SNS 메시지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시니어 모델들은 포트폴리오가 될 만한 활동들을 자신의 SNS에 수시로 기록하며 자기 PR(홍보)를 한다. 이를 잘 활용하는 모델의 계정은 팔로어 수도 많다. 자신은 적은 편이라고 밝힌 박세영씨의 계정만 해도 7천이 훌쩍 넘는다.◆건강·동안 비결 되기도…"더 늙어서도 할래요"이곳에 모여 땀을 흘리는 사연은 다양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감이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모델 활동을 시작한 후 철저한 자기 관리로 몸과 마음 모두 20대만큼 건강해졌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모델 워킹은 바른 자세로 걸음을 걷게 해주는 최적화된 운동으로 중장년 세대에게 모델 활동은 건강을 챙기는 좋은 취미가 되기도 한다. 5년 차로 활동 중인 도순희(68)씨는 나이가 들면서 무릎 연골이 닳아 수술 직전까지 갔었는데, 시니어 모델이 되고 무릎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가끔 하이힐을 신지만 바른 자세를 습관화한 것이 무릎에 도움이 된 듯하다고 밝혔다.과거 대다수 시니어가 여생을 소일거리를 하며 보내거나 집에서 손주를 돌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시니어 모델들은 외적인 젊음을 추구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지광준(52)씨는 주업이 남초 직군인 건설기계 분야다. 처음 시니어 모델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는 '남자가 과연 할 수 있겠냐' 등의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패션쇼에 나가고 잠깐 외출할 때 입는 옷도 신경 쓰는 등 모델 활동에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고 나니 주변 반응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백보현(64)씨도 "예전에 백화점에 가면 '저 옷을 내가 입을 수 있을까' 하며 지나치곤 했는데, 이제는 독특한 디자인의 옷도 마음에 들면 입어보는 편이다. 그만큼 모델 활동을 하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며 당당해졌다"고 밝혔다.다이애나 애실은 '어떻게 늙을까'에서 노년에 일어나는 일들은 그 자체로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하니 뜻밖의 도전을 즐기라고 썼다. 새로운 도전으로 늦깎이 나이에 인생 2막을 연 이들도 가능한 오랫동안 모델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박지육(50)씨는 "60~70대가 되어도 지금처럼 (패션쇼) 무대에 서는 등 특별한 경험들로 즐겁게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2022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1회 대구 시니어 패션 페스티벌에서 모델라인의 시니어 모델들이 무대에 서 있다. 대구 수성구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 모델라인의 도하영(가운데) 원장과 모델들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조현희기자〉지난해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2회 대구 시니어 패션 페스티벌의 참가자들이 행사가 끝난 뒤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중장년층의 새 도전 '시니어 모델'(1) 우아한 자태, 당당한 워킹…런웨이서 눈부신 인생 2막
기자는 '안정추구형' 투자자다. 재태크를 할 때 큰 수익을 기대하는 것보단 원금손실 가능성이 적은 상품에 투자한다. 아마 평소 성격이 반영돼 그런 듯하다. 겁이 많은 성격이다. 불확실한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도전이란 짜릿하면서도 두려운 행위다. 경험하지 못한 일을 한다는 점에선 기대되고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잘해 낼 수 있을까'와 같은 걱정도 크게 든다. 낯설고 복잡한 것들보다 익숙하고 잘해 낼 수 있는 것들을 찾게 될 때가 많다.나이를 먹을수록 편한 것들을 찾게 된다는 말이 있던가. 나도 그런 사람으로 남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최근 도전에 대한 자극을 받았다. 단어로만 접한 100세 시대를 실감하게 됐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일로 즐겁게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분위기로 활동하는 중장년층을 의미하는 '액티브 시니어'란 단어도 자주 언급된다. 액티브 시니어는 단순히 새로운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으로만 볼 수 없다. 전문성까지 갖춘 경우가 많아 때론 젊은 세대와도 경쟁한다. 인생의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만이 가진 강력한 개성을 보여준다. 급변하는 시대지만 시니어들의 열정만큼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들은 요리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랩에도 도전한다. 그중에서도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시니어 모델'이다. 바꿀 수 없는 조건에 구애를 덜 받기 때문이다. 젊은 패션 모델의 경우 뼈가 길고 슬림한 사람이 대다수다. 하지만 시니어 모델은 나이, 사이즈,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도전할 수 있다. 나이가 많아도, 키가 작아도, 살집이 있어도, 남성이어도, 여성이어도 그 자체로 아름다움의 대상이 된다. 이런 매력이 알려지면서 오래전부터 모델을 꿈꿔 온 중장년 세대가 하나둘씩 시니어 모델로 데뷔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시니어 모델을 치면 관련된 정보뿐 아니라 현재 활동 중인 모델들의 프로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개성과 자신감으로 패션계의 런웨이에 오르고 있다.하지만 시니어 모델의 등장은 단순히 패션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세상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도전하고 꿈을 이루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고 있다. 동년배들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에게도 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다. 도전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2030 여성이 주로 사용하는 패션앱 '지그재그'는 2021년 원로 배우 윤여정을 모델로 발탁해 큰 화제를 모았다. 오픈서베이가 'MZ세대 패션앱 트렌드 리포트 2021'에서 15∼39세 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4.0%가 "지그재그의 윤여정 모델 발탁은 앱의 이미지 변화 및 구입 의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 이는 배우 유아인을 모델로 한 무신사(52.0%), 김태리를 앞세운 에이블리(57.0%)보다 높은 수치다.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고 노년층에 대한 인식도 바뀌면서 시니어 모델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니어 모델 산업이 주목을 받는 것에 비해 데뷔 과정, 활동 영역 등 이들의 자세한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이번 호 위클리포유에선 현역으로 활동 중인 시니어 모델들을 만나 그들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작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2회 대구 시니어 패션 페스티벌에서 모델라인의 시니어 모델이 워킹을 선보이고 있다. 대구 수성구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 모델라인의 모델들이 음악에 맞춰 워킹을 선보이고 있다. 조현희기자
[사람의 서재] 조지 오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스탈린 시대 공산주의 독재를 풍자한 소설 '동물농장'의 한 문장이다. 오늘날까지 신문 칼럼에 인용될 만큼 명문이다. 당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저자인 조지 오웰<사진>의 통찰력과 깊은 식견은 빛나고 있다.조지 오웰은 1903년 인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 영국령 인도행정부 아편부 소속인 아버지의 근무지인 모티하리에서 태어났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영국으로 건너갔다. 성적이 우수해 1917년에는 학비를 면제받고 상류층의 학교로 알려진 이튼칼리지에 입학했다. 하지만 졸업 후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인도 제국경찰에 지원해 1922년 미얀마로 떠났다. 5년간 경찰관으로 일하며 자신이 꿈꿨던 동양에 대한 동경이 착각임을 깨닫고 영국 제국주의가 저지른 식민지악(植民地惡)을 통감하게 된다. 영국으로 돌아가 1928년 경찰직을 사직하고 이때부터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다.이후 불황 속의 파리 빈민가와 런던 부랑자들의 극빈 생활을 실제로 체험했다. 1933년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첫 작품 르포르타주 '파리와 런던의 바닥생활'을 발표했고 필명은 조지 오웰로 했다. 1936년 12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자원 입대했다. 하지만 스페인 혁명을 가로막는 세력이 오히려 좌익임을 발견했으며 자신이 소속된 통일노동자당이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아내와 함께 스페인을 탈출해 프랑스로 건너갔으며 직접 느꼈던 이데올로기에 대한 환멸을 '카탈로니아 찬가'로 출간했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적인 성향이 짙은 작가로 알려지게 됐다.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전쟁특파원으로 근무를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와 1945년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둔 정치우화 '동물농장'〈작은 사진〉을 펴내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이후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있는 주라 섬에 머물며 집필에만 전념했고 1949년 그의 최대 걸작인 '1984'를 완성했다. 이 책은 현대 사회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도달하게 될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공포의 미래소설이다.1984를 출간하고 바로 다음 해인 1950년 1월 오랫동안 앓아온 결핵이 악화되면서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2024.05.10
[동 추 거문고 이야기] 〈9〉형체 없는 거문고
'줄 없는 거문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형체 없는 거문고'를 이야기한 선비가 있다. 안동(풍산) 출신으로 대구부사를 지낸 동리(東籬) 김윤안(1560~1622)의 '무형금(無形琴)'이다. 그는 도연명에게 줄 없는 거문고(無絃琴)가 있었다면 자신에겐 형체 없는 거문고(無形琴)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김윤안은 작은 초당을 하나 마련한 뒤 적은 글 '소우당기(消憂堂記)'에서 이렇게 말했다."나는 어려서부터 매우 가난하였는데 늘그막에 구산(龜山) 아래에 집을 빌려 살았다. 집 둘레는 휑하여 바람과 햇빛조차 가릴 수 없었다. 손님이 오면 늘 마당에 앉아서 맞았다. 10년을 경영하여 초당 한 채를 지었는데, 한 해가 가고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초당은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면에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초당에는 빈 땅이 없어서 대나무나 꽃 따위를 심을 수 없었다. 다만 국화 몇 포기가 있어서 때가 되면 피었다. 창은 '남창'이라 하고, 뜰은 '면가(眄柯)'라 하고, 문은 '상관(常關)'이라 불렀다. 초당 동쪽에 나지막한 울타리가 있었는데 '동리(東籬)'라 하였다. 이 모두를 합한 초당의 이름을 '소우당(消憂堂)'이라 하였다. 모두 도연명의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근심은 마음의 병이다. 풀어서 없어지게 하여 즐겁게 된다면, 천지 만물이 모두 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어떤 손님이 물었다. '사모할 만한 옛 성현이 한둘이 아닌데 그대는 초당의 창, 문, 뜰, 울타리를 모두 도연명의 말에서 가져와 이름 붙였소. 그대는 어째서 오로지 도연명만 별나게 흠모하시오?'내가 말했다. '그를 흠모하는 게 아니라 우연히 그와 같았을 뿐이오. 내가 가난한 것이 도연명과 같고, 초당에 책이 있는 것이 도연명과 같고, 남쪽에 창이 있고 동쪽에 울타리가 있는 것이 도연명과 같고, 문이 늘 잠겨 있어서 쓸쓸한 것이 도연명과 같소이다. 그래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지 구차하게 흠모하는 것이 아니라오.' 손님이 또 말했다. '그대의 말은 그럴듯하오. 도연명은 거문고(琴)와 책을 즐기며 근심을 씻는다고 하였는데, 그대의 초당에는 책은 있으나 거문고가 없으니 어찌 된 일이오?' 내가 '도연명은 줄 없는 거문고인 무현금(無絃琴·원 안)을 가졌고 나는 형체 없는 거문고인 무형금(無形琴)이 있으니, 어찌 거문고가 없다고 하시오'라고 대답했다. 손님이 웃으면서 떠나갔다."김윤안은 이 기문에서 도연명의 '무현금'을 넘어 '무형금'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줄 없는 거문고가 아니라, 아예 거문고 자체가 없이 거문고의 세계에 노닐 것을 꿈꾸고 있다. ◆도연명을 흠모한 김윤안의 '무형금'김윤안의 호 동리(東籬)는 도연명의 시에서 따와 스스로 아호로 삼은 이름이다. 김윤안은 이 글에서 보듯이 초당의 창과 문, 울타리, 뜰의 이름을 모두 도연명의 시 구절에서 따올 정도로 도연명을 지극히 사랑한 인물이다. 김윤안은 소고 박승임,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의병에 참여하여 김해(金垓)의 막하에서 문서 수발을 도맡았고, 영남 유생들이 회재 이언적을 변호하고 오현(五賢)의 문묘 종사 운동을 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선조 후반과 광해군 때 관직에 나아가기도 하였지만, 대구부사를 마지막으로 귀향해 소우당을 짓고 은거했다.많은 선비들이 도연명을 사모하고 그의 시풍을 본받으려 했다. 퇴계 이황은 도연명의 시를 읽고 맛을 보면 속세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만물 가운데 홀로 초탈하게 서 있는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했다. 김윤안은 류운용과 류성룡 등을 통해 이황의 학맥을 이었다. 도연명은 열심히 공부해서 벼슬길로 나아가 이상적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뜻을 펼칠 상황이 안 되면 미련 없이 물러나는 출처진퇴(出處進退)의 모범을 보인 상징적인 인물이다. 김윤안은 소우당 곳곳에 도연명의 시 구절을 끌어들여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형체마저도 없는 무형금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음을 잘 다스리고 단속할 힘이 충분하다면 유현금이나 무현금 모두 필요 없을 것이다. 마음속에 무형금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 탈 수 있을 것 아닌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조선 후기 문신인 귀와(龜窩) 김굉(1739~1816)은 1811년 12월 동리선생문집 발문(跋文)에서 김윤안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동리(東籬)라는 자호(自號)로 집에 편액을 단 뜻은 도연명의 풍류를 듣고서 흥기한 것이다. 바야흐로 그 남창에 기대어 노닐고 동쪽 언덕에서 시를 읊조리며, 거문고와 책을 통해 온갖 근심을 없애고, 구름과 새에게 한가한 심정을 부치고, 소나무 오솔길을 거닐고 국화꽃을 따며 지냈다. 그 그윽한 운치와 구함이 없는 뜻은 시대는 달라도 흥취는 같으니, 천년 세월이 아침저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찌 선생이 다만 그 적적하고 한가한 취미를 좋아해서 아름다운 겉모습만 표방하고자 한 것이겠는가. 아마도 반드시 분발한 바가 있어 뜻을 부친 것이 그 사이에 있을 것이다.'김윤안은 54세 때인 1613년 봄부터 1615년 겨울까지 대구부사로 재임했는데, 당시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태고정(太古亭)을 위해 시를 한 수 남겼던 것 같다. 태고정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박팽년(1417~1456)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그의 손자인 박일산이 1497년에 처음 건립한, 사당인 절의묘(節義廟)가 딸린 종택의 별당 건물로 지은 정자다. 지금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일부만 남은 것을 1614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김윤안은 1614년 태고정이 재건된 후 이 정자를 찾아 시를 남겼을 것으로 보인다. 태고정에 오르면 김윤안의 시판이 걸려 있다.'정자 이름이 어찌하여 태고인고(亭名何太古)/ 주인의 마음이 태고라네(主人心太古)/ 원컨대 태고의 마음으로(願得太古心)/ 일마다 모두 태고이기를(事事皆太古)'. '태고'를 구절마다 사용해 지은 시다. 이 시 현판의 글씨는 전서로 되어 있는데, '태고(太古)' 글자 모두를 각기 다른 전서로 써서 눈길을 끈다. 글·사진=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5290@naver.com〈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MZ세대 사로잡은 재밌는 불교문화 (2) 승복 입고 디제잉·스님이 커플 매칭 '재밌어진 불교'
"전엔 엄숙한 종교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힙하고 재미있게 느껴져요." 다소 엄숙하고 어려운 이미지로 여겨졌던 불교가 이제 MZ세대 사이에서 '힙'한 종교로 통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재미'와 '의외성'으로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불교 특유의 포용적 교리와 메시지가 SNS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흥미를 가질 만한 이색적인 이벤트가 최근 많이 열리고 있다.'서울국제불교박람회' 파격 시도 호응EDM 입힌 뉴진스님의 찬불가 열광방문객 전년비 3배…10~30세대가 80%커플매칭 예능 패러디한 '나는 절로'재미·신선함 더한 이색 콘텐츠 각광엄숙한 종교 이미지 벗은 행사 '속속' ◆디제잉 파티·짝 찾기…불교 행사의 변신지난달 4일부터 나흘간 열린 '2024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재밌는 불교'를 주제로 진행됐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이 행사는 이번 회에 파격적 변신을 하며 젊은 세대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행사를 주최한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박람회 방문객은 지난해보다 약 3배 정도 늘었는데, 80%가 10~30대였다. 메타버스 사찰 체험, 출가 상담, 차(茶) 시음회, 디제잉 파티 등 젊은 세대의 문화를 적극 수용한 콘텐츠로 눈길을 끌었다. AI 부처의 고민 상담,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팔로어 3만1천명 '꽃스님' 화엄사 범정스님의 강연, 남은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임종체험'도 진행됐다.그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모은 건 '뉴진스님'의 DJ 네트워킹 파티였다. '뉴진스님'은 개그맨 윤성호의 이른바 '부캐'다. 이름은 '뉴미디어 시대에 발맞춰 새롭게 나아간다(進·진)'의 뜻을 담고 있으며 걸그룹 뉴진스의 이름도 차용한 것이다. 이번 박람회에서 스님으로 변신한 그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입힌 찬불가를 디제잉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유쾌한 춤사위와 함께 "이 또한 지나가리, 이 또한 지나가리, 고통을 이겨내 극락왕생!" 등을 노래해 관객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무대가 담긴 영상이 널리 퍼져 온라인상에서도 화제가 됐다. 누리꾼들은 "보수적일 것 같았던 불교가 가장 멋있다" "부처핸섭!" "정말 재밌다. 종교가 무조건 고요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교리가 참 와닿는다. 불교는 젊은 사람이 입문하기 힘든데 이런 식으로 더 친근감 있는 생활 종교가 됐으면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대한불교조계종은 올 하반기 대구와 부산에서도 같은 행사를 열 예정이다. 김현준(25·대구 중구)씨는 "SNS를 통해 이번 불교박람회 영상과 후기를 접했다. 대학교 축제 같았다. 종교 행사는 따분하고 재미없을 거란 편견이 깨졌다"며 "어렵게만 보였던 불교가 친숙해졌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곧 대구에서도 열린다고 하니 꼭 한번 가볼 계획"이라고 말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인천의 전등사에서는 지난달 6일 짝 찾기 프로그램 '나는 절로'가 열렸다. 방송 프로그램 '나는 솔로'가 모티프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결혼 기피나 저출산 등을 해소하는 방안의 하나로 실시하는 미혼 남녀 템플스테이다. 스님이 매니저로 나서 30대 미혼 남녀 20명의 커플 매칭을 돕는다. 남녀 각 10명을 모집했는데, 남성 147명·여성 190명이 지원해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다.◆쉬어가는 이색 체험 '템플스테이'도 인기한국의 불교문화를 알리기 위해 등장한 '템플스테이'도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다. '템플스테이'란 절에 머물면서 불교문화와 사찰 생활을 체험하는 일이다. 속세를 떠나 불교와 관련된 이색 활동을 즐길 수 있다. 경북 지역 한 사찰 관계자는 "체험을 하러 오는 사람 중 80%는 MZ세대다. 그중에서도 여성이 대다수"라고 했다.프로그램은 주로 체험형과 휴식형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대구 동구 도학동에 위치한 동화사의 경우 체험형은 사찰음식 만들기와 차 마시기, 오는 15일까지 부처님 오신 날 기간에 한정해 연꽃등 만들기가 있다. 휴식형은 오리엔테이션과 절에서 음식을 먹는 공양, 순례를 마치는 회향식을 제외하곤 모두 자율로 이뤄진다. 동화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경북대 김민정(20)씨는 "종교가 없고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혼자 쉴 수 있고 절의 독특한 분위기까지 만끽할 수 있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사찰음식도 템플스테이의 인기 요인 중 하나다. 기존에 사찰 음식은 부실하고 맛 없을 거란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젊은 층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과 함께 비건 선호도 늘어나면서 채식인 사찰 음식에 대한 궁금증이 증가했다. 이에 사찰에서도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5일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사찰음식'을 검색하니 약 3만3천개의 게시물이 나왔는데, 두부 완자 미역국, 두릅전, 우엉전병, 가지전 등의 음식 사진이 담겨 있었다. 김씨가 방문한 동화사에서도 나물반찬과 두부조림, 버섯요리, 야채 고명이 올라간 국수 등이 나왔다.이런 인기로 불교 문화에 관심을 갖는 청년들의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대학생이면 단돈 1만원에 템플스테이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오는 30일까지 '청춘'을 주제로 '청춘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학업과 취업, 경쟁 스트레스에 지친 청년들이 전국 100여 곳의 사찰에서 심신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한다. 대구 지역은 동화사, 경북 지역은 △고운사 △골굴사 △보경사 △봉정사 △선본사 △심원사 △용문사 △은해사 △자비선사 △직지사 △축서사 등에서 진행한다.◆"가르침 위로돼" "강요 없어서 좋아" 교리에도 긍정적최근 MZ세대에서 불교가 사랑받는 이유에는 이색 체험도 있지만 교리도 한몫한다. SNS 등을 통해 불교 특유의 포용적 메시지가 널리 알려지면서 보이는 것과 경쟁에 지친 청년들의 마음을 저격한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박선영(25)씨는 "유튜브를 통해 한 강연에서 스님이 대학생의 고민에 대해 조언해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큰 위로가 됐다. 취업 준비로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쉬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삶을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어 불교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다른 종교에 비해 종교 강요가 없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혔다. 김현준씨는 "종교가 심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아 신앙 활동을 하고 싶어도 엄격한 규율, 강요 등으로 입문하기 쉽지 않았는데 불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 같다. 불교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해보고 괜찮으면 종교로 삼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격식에 얽매이는 것을 꺼리는 젊은 세대에게 불교 문화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한다. 송재룡 경희대 교수(사회학과)는 "정기 예배나 헌금 등에 대한 부담이 없고, 누구나 일상적 수련과 명상으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다른 종교에 비해 젊은 층의 거부감이 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이 지난달 4일 서울국제불교박람회 무대에서 디제잉 공연을 하고 있다. 서울국제불교박람회 제공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지난달 6일 인천 강화군 소재 전등사에서 진행한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서 남녀 참가자들이 묘장스님 등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MZ세대 사로잡은 재밌는 불교문화 (1) MZ는 불교도 '힙하게'
기자는 가톨릭 신자다. 모태신앙 신자는 아니고, 성인이 되고 나서 세례받았다. 지난 3월 부활절에 받았으니 비교적 최근이다. 큰 고난이 닥쳤을 때 신앙이 있으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종교를 갖게 됐다. 천주교를 택한 건 살면서 만난 가톨릭 신자들이 하나같이 다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고,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내 신앙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은 크게 없는 편이다.그런 종교 중 대표적인 게 불교다. 체질적으로 경쟁과는 맞지 않는 성격이지만 어릴 적부터 무한한 경쟁에 치여 살아왔다. 그러니 번 아웃, 지치는 순간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스님의 말씀이 담긴 문구를 보면서 편안함을 얻었다. 조금은 쉬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였을 뿐, 불교에 더 이상의 관심을 가지긴 쉽지 않았다. 다소 엄숙하고 근엄한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진입 장벽이 느껴졌다.그러다 최근 한 행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또한 지나가리, 이 또한 지나가리, 고통을 이겨내 극락왕생!" 서울국제불교박람회라는 행사가 지난달 열렸는데, 한 스님이 EDM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었다. 관객도 중·노년층일 거란 생각과 다르게 대다수가 젊은 청년들이었다. 진지하고 보수적일 것 같았던 불교 행사가 청년들의 놀이터였다. 이뿐만 아니라 AI 부처의 고민 상담, 인스타그램 스타 스님의 강연 등 최근 트렌드가 결합된 프로그램도 다수 진행됐다.'그렇지. 종교 행사가 무조건 진중할 필요는 없지.' 이 행사를 접한 후 기존에 갖고 있던 불교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불교라는 종교가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온라인상에도 기자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네티즌들이 많았다. "세상 힙한 불교" "시대의 흐름을 탈 줄 아는 유연한 종교" "중요한 건 형태가 아니라 본질" 등의 댓글이 쏟아져 나왔다. 후기를 살펴봐도 불교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행사를 둘러보니 재미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이외에도 다양한 이색 프로그램들이 열리고 있어 불교의 인기는 더욱 뜨거워지는 모양새다. 그중에서도 MZ세대의 반응이 뜨겁다. 국제불교박람회 행사 주최 측도 불교 신자가 감소하는 시대에 무종교 인구가 많은 젊은 세대에 친숙하게 접근하기 위해 '재밌는 불교'를 콘셉트로 잡았고, 실제 방문객도 대다수가 청년이었다고 한다. 사찰을 방문하는 이들도 늘어나면서 대학생이면 단돈 1만원에 1박2일 동안 사찰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최근 마련됐다.불교는 어떻게 젊은 세대를 사로잡았을까. 젊은 세대는 어쩌다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무슨 일이든 '강요'가 뒤따르면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붙잡고 포교하면 관심을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아주 성공적인 포교 사례다. 강요 대신 '재미'와 '의외성'으로 이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연령대에 맞춘 포교 방법, 종교와 그들의 문화를 적절히 결합한 새로운 콘텐츠를 잘 활용했다. 이에 이번 위클리포유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MZ세대에서 불교 문화가 인기를 끄는 현상에 대해 다뤄본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제656회
■ 가로열쇠 1. ○○ 문고리 잡기. 2. ○○ 높은 줄만 모르고 땅 넓은 줄은 모른다. 3. ○ ○ 쓰고 똥 누기. 5. ○○ ○○ 솜틀은 소리만 요란하다. 7. ○ ○○ 원앙. 8. ○○ 들고 마시겠다. 9. 돌절구도 밑 빠질 때가 ○○. 10. 배 썩은 것은 딸을 주고 밤 썩은 것은 ○○○ 준다. 11. 내 말은 남이 ○○ 남 말은 내가 한다. 12. 큰 벙거지 ○ 짐작. 13. ○ 심은 데 ○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14. 가갸 ○○○도 모른다. 15. 집도 ○도 없다. 16. ○ ○에 난 고기. 17. ○○이 멍석인 듯. 19. 죽은 자식 ○○ 세기. 20. ○도 안 뜯고 먹겠다 한다. 21. ○○에 물 탄 격. ■ 세로열쇠 1. ○○○○ 가는 놈이 불알 떼어 놓고 간다. 2. 남의 말 ○○○ 식은 죽 먹기. 3. ○○○ 버리듯.(관용구) 4. 꿩 구워 ○○ ○○. 6. 돌쩌귀에 녹이 슬지 ○○○. 8. ○○ 가슴에 말뚝 박듯. 9. 도둑에도 의리가 ○○ 딴꾼에도 꼭지가 있다. 10. 고양이 덕과 ○○○ ○은 알지 못한다. 11. ○○ ○○이 열흘 간다. 14. 마냥모 판에는 ○○ 처녀도 나선다. *마냥모 : 제철보다 늦게 내는 모. 18. ○○의 재물도 하루아침. <연재 공지>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는 656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제656회 '임무출(한글학회 회원)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해답은 우편엽서를 이용해 6월5일까지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휴대폰 번호를 반드시 적어주세요) ▨655·656회 당첨자는 지면에 발표하지 않고 개별 연락 후 상품을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제654회 당첨자> ▶한재연(대구광역시 달서구 조암남로) ▶김소은(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 ▶홍옥순(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최병웅(대구광역시 동구 아양로) ▶류충기(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박문길(대구광역시 수성구 무열로) ▶김헌(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상품협찬> ▲ 워터파크 스파밸리 자유이용권 1688-8511 ▲ 교감형 생태동물원 네이처 파크 이용권 1688-8511 ▲ 에코테마파크 대구 숲 이용권 (053)761-7400, 7401 ▲ 팔공산온천관광호텔 입욕권 (053)985-8080 ▲ 〈주〉아모레퍼시픽 아이오페 레티놀 엑스퍼트 0.1% ▲ 청도용암온천 대온천장 초대권 (054)371-5500 ▲ 청도 프로방스 포토랜드 초대권 (054)372-5050 ▲ 〈주〉그린기프트 레디엠 반전립스틱세트 1588-8480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당첨자에게는 협찬 상품 중 한 가지를 우송해 드립니다.
2024.05.07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K팝 문화의 이면 '악플'(1) 압박과 악플에… 영혼까지 갉아먹힌 ☆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대상에 따라 이성 간의 애정뿐만 아니라 우애, 모·부성애, 인류애, 조국애, 진리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 등 여러 가지 사랑이 있다. 기자 또한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오늘 얘기하고 싶은 건 아티스트에 대한 사랑이다.기자는 K팝 팬이다. 2PM, B1A4, 엑소, 레드벨벳, 지금은 NCT DREAM과 에스파까지. 여러 아이돌 가수를 '덕질'(무언가에 파고 드는 일) 했고, 하고 있다. 덕질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든 매혹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처음엔 아이돌을 왜 좋아하나 싶었다. 헛짓이라 생각했다. 자주 만나기도, 가수가 나를 기억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을 텐데. 뒷모습이 어떤지도 모르고, 잘 꾸며진 이미지에 속아 넘어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감겨버렸다. '너무 멋지다.' 이후 오랜 기간 K팝을 덕질 하고 있지만 아티스트에 대한 팬들의 마음은 여전히 형용하기 어렵다. 동경이라 하기엔 부족하고 사랑이라 하기엔 조금 과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가장 가까운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가까이서 관계를 형성하진 않지만 함께 행복을 나누고 가수를 응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은 단지 K팝 산업이 만들어낸 상품이라는 말로 환원할 수 없는 복잡한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단순히 구매자와 상품이 아닌 이상적인 관계로 본다.하지만 이제 이런 사랑을 '좋은 것'만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몇몇 팬들은 자신의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과 지지를 표현하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과도한 잣대를 들이밀기 때문이다. 최근 수많은 논란과 사과가 반복됐다. 대표적으로 열애설이 공개된 모 아이돌이 이로 인한 자필 사과문을 올리는 일이 발생했다. 일부 팬들이 '배신 당했다'는 비난과 함께 돌아섰기 때문이다. 외신들도 이를 지적했다. 영국 BBC는 "한국과 일본의 팝스타들은 압박이 심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며 "불과 10년 전만 해도 신인의 연애는 물론 개인 휴대전화도 금지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었다"고 했다. 이어 "지금도 연애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팬들에게 스캔들로 여겨지게 한다"고 꼬집었다.이런 일들은 아이돌 산업 구조가 얼마나 기형적이고 상호 의존적인지를 보여준다. 팬들은 가수에게 자신의 사랑을 투자한 만큼 아티스트도 그에 맞는 언행을 하기 바란다. 문제는 그런 바람이 지나친 요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범법적인 행위나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일은 충분히 피드백을 요청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행동들도 '논란'이 되어 화살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들도 아이돌이기 전에 하나의 인격체다. 보이는 직업이기에 대중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사적인 영역과 개인의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얼마 전 좋아하는 가수가 악플로 인한 불안 증세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K팝 산업이 오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팬덤 문화가 선행돼야 한다. 이는 아티스트와 팬 간의 상호 존중과 이해를 기반으로 시작된다. 이런 노력이 함께 이뤄질 때 K팝 산업은 더욱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라면서 이번 위클리포유에선 K팝 문화의 이면에 대해 다룬다.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그래픽=장수현기자
2024.05.03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K팝 문화의 이면 '악플'(2) 무섭고 이기적인 팬덤 문화
"아이돌들 몇억씩 벌면서 징징대는 거 듣기 싫다. 똑같이 힘든데 주 5일 출근에 월 200만원 버는 직장인들도 있다."요즘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K팝 산업과 관련해 자주 보이는 게시글 내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K팝이 흥하고 있지만 산업의 뒤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두운 이면이 존재한다. K팝 아티스트들은 '보이는 직업' 특성상 대중의 사랑을 기반으로 돈을 버는데, 이로 인해 과도한 잣대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모 아이돌의 열애설이 논란으로 떠오르면서 아티스트가 자필 사과문을 올리는 일까지 발생했다.악플 고충 내비친 NCT드림 런쥔 팬들 비난에 불안증세로 활동 중단 에스파 카리나 열애에 극성팬 분노트럭 시위까지 이어지자 사과문 "팬들이 뒷받침해주는 아이돌 문화'보상 심리'로 과도한 잣대 들이대K팝 산업 오래 유지되기 위해선건강한 팬덤 문화부터 선행돼야" K팝 스타인 아이돌은 엔터사의 기획을 통해 만들어진다. 아이돌의 인기를 형성하는 요소는 아티스트들의 재능도 있지만 주로 문화자본, 엔터기획사의 규모, 팬덤 등이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아이돌들은 대중에게 전문적인 아티스트보다는 보이는 직업 또는 엔터사의 상품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며 악플, 감정 착취, 과도한 품평 등 객체화·대상화라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사람들의 관심을 통해 돈을 벌기에 '그래도 되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 K팝 산업과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론장을 새로운 눈으로 풀이하는 책 '망설이는 사랑'에서 저자 안희제도 "아이돌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노래나 춤과 같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일보다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일'로 이해된다"고 했다.이로 인해 최근 K팝 아티스트들의 호소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지난달 7일 그룹 엔시티 드림(NCT DREAM)의 런쥔은 자신이 받은 악성 메시지를 팬소통 플랫폼에 공개하며 고충을 토로했다. 해당 메시지에는 '아이돌들 살기 너무 편해졌다'는 말과 함께 외모와 실력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면서 런쥔은 "아이돌도 사람이고 힘듦을 느낀다. 보이는 건 당연히 예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접한 네티즌들 중에는 런쥔의 입장에 동의하는 이들이 나오는 한편 "굳이 왜 부정적인 메시지를 팬과의 소통 창구에 올리며 징징대는지 모르겠다" "팬들이 감정 쓰레기통인가" 등의 반응도 적지 않았다. 런쥔은 결국 컨디션 난조와 불안 증세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열애설이 논란이 된 경우도 있다. 지난 3월5일 그룹 에스파의 카리나는 자신의 SNS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저를 응원해준 마이(공식 팬덤)들이 얼마나 실망했을지, 그리고 우리가 같이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속상해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마이들이 상처받은 부분 앞으로 잘 메워나가고 싶다." 일주일 전 배우 이재욱과의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는데, 그사이 여러 팬들이 배신 당했다는 비난을 온·오프라인으로 표출하면서 뒤돌아섰기 때문이다. 카리나 소속사 인근엔 해외팬들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트럭 시위가 등장하기도 했다. 트럭에는 "팬이 너에게 주는 사랑이 부족하니? 당신은 왜 팬을 배신하기로 선택했습니까"라는 멘트가 적혀 있었다.런쥔도, 카리나도 스타들이 이렇게 엄격한 잣대에 직면하는 근본적인 이유에는 아이돌은 대중에게 보여줘야 하는 영역과 숨겨야 하는 영역을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10년째 K팝을 덕질(무언가에 파고 드는 일) 하고 있다는 이세영(26)씨는 "아이돌은 보이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긍정적이지만 수동적인 모습만 보여줘야 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듯하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 않는 '아바타'처럼 말이다"라면서 "그런 점에서 고충 토로나 열애설은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는 점에서 숨겨야 하는 영역에 해당한다. '우리의 사랑으로 돈을 버는 네가 감히?'식의 생각이 사람들의 무의식에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팬과 가수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보상 심리'로 풀이되기도 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팬들이 가수를 뒷받침하고 밀어준다고 생각하기에 유사 제작자 마인드가 있는 듯하다. 자신들이 스타에게 해주는 만큼 스타도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열정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 스타로서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기대한다"면서 "그러니 연애를 한다든지, 푸념을 한다든지 하는 건 이들에게 열심히 하려는 마음가짐이 없는 것으로 비친다. 그런 심리가 있어서 아이돌들을 팬들이 다그치는 일들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단순히 상대를 좋아하는 걸 넘어서 과도한 것을 요구하고 이래라저래라하는 건 팬의 위치에 맞지 않는 건강하지 못한 행동"이라며 "스타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응원해주는 선에서 그치는 게 가장 팬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K팝을 좋아하는 대중 사이에서 확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에스파 카리나엔시티 드림 런쥔
[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중국 축구와 아레오파지티카
1644년, 영국 의회가 출판물의 사전 검열에 해당되는 '출판 허가제'를 부활시키려 하자, 문호 존 밀턴은 '아레오파지티카'라 불리는 짧은 팸플릿을 통해 그것을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밀턴은 자유 경쟁만이 '진짜'를 판별해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을 강력하게 설파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오픈된 장에서는 절대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신념은 이어진다. "일견 거짓으로 보이는 것에게도 공평하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을 사전 차단하는 것은 악(惡)이다." 밀턴의 저 통찰은 21세기가 된 지금 모든 정상 국가에서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항상 보편칙은 지켰을 때보다는 지키지 않았을 때 그 위력을 통감하게 된다.지난 1월에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3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1골도 넣지 못한 채로 조기 탈락했다. 얼마 전 치러진 U-23 아시안컵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한 명이 퇴장당한 일본에게 0-1로 패배하는가 하면, 우리와 맞붙은 경기에서도 수많은 기회들을 놓치며 결국 0-2로 패배하고는 조기에 짐을 싸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 중국이 첫 출전한 그 대회에서 내리 3연패로 탈락하게 되었을 때만 해도 중국 축구를 대놓고 무시하는 한국인은 없었다. "지금은 경험이 적어서 저렇지만 20년 뒤가 되면 아마 우리가 이기기 힘든 팀이 되어 있을 거야." 그러나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 축구의 굴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실력이 그 당시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중국 축구가 이 모양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연역적으로 보자면 핵심은 결국 '밀턴의 통찰'과 맞닿아있을 터다. 그 나라에서는 선수 선발의 장(場)이 오픈 된 자유 경쟁 시스템이 아닌 것이다. 즉, 중국의 '아레오파고스(고대 그리스의 법정)'는 철저하게 '특정 선수'만을 뽑을 뿐, '기타 선수'는 아예 배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중국에서 활약했던 유소년 코치들의 인터뷰를 보면 심증은 확신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애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화를 냈어요. 이렇게 게으르니까 니들이 못하는 거다. 그런데 나중에 애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돈 많고, '빽' 센 아이들이 이미 뽑히기로 '내정'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희망이 없는 애들은 열심히 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죠."그렇게 '간택'된 선수들이 가게 되는 프로축구의 환경도 중국 축구의 몰락에 한몫 했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선수들이 기량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중국의 톱 선수들은 이제 자국 리그에 등 따습게 안주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순지하이, 판즈이, 리티에, 양첸 등의 선배들이 유럽에서 고군분투했던 것을 생각하면 기가 찰 노릇이다. 이렇다 할 경쟁 없이 손쉽게 프로가 된 도련님들이, 쿼터로 자리가 보장되는 팀에서 편안하게 백만장자로 늙어가고 있는 낙원. 나라의 리그가 그래서야 국대의 경쟁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나는 중국 축구가 망하든 흥하든 별 관심이 없다. 내게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스포츠 문화다. 과연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돈과 인맥을 초월하여 유소년들을 키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이제 올림픽도 못 나가는 우리네 농구, 배구 선수들은 대체 해외의 그 어떤 리그에서 지금 받고 있는 그 엄청난 연봉을 받을 수 있을까? 밀턴으로 돌아가자.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외국인들에게도 더 크게 문호를 열어라. 스스로 낙원을 버리고, 다시 투쟁으로 나아가자. 14억이 고작 5천만에게 공포를 느끼는, 그 한심한 그들 축구의 무기력을 비웃기 전에. 문화평론가지난달 19일 오후(현지시각) 카타르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조별리그 B조 2차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 연합뉴스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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