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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개강 봄바람 실종 그늘진 대학 상권(1) '개강 특수' 끊긴 대학가 상권
개인적으로 '봄학기'란 단어를 좋아합니다. 3월의 새 학기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벚꽃 핀 풍경과 함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고 어울리는 모습이 봄처럼 따뜻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대학에 다닐 적에도 9월보다 3월을, 가을학기보단 봄학기를 더 좋아했었던 것 같습니다.그런 봄학기에도 추운 계절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기간입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대학 생활을 비대면으로만 하게 되면서 캠퍼스엔 한산한 공기만 감돌았습니다. 대학가 상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매년 3월이면 사람으로 붐볐던 이곳은 코로나 기간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젊음의 거리'란 명칭은 옛말이 되고 유령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됐습니다. 이로 인해 상인들은 큰 시름을 앓았습니다. 경기 침체를 이기지 못한 식당들은 결국 폐업에까지 이르렀습니다.길었던 혹한기가 끝나고, 캠퍼스에 다시 봄이 찾아왔습니다. 엔데믹을 맞이하고 대면 활동이 재개되면서 청춘들의 웃음꽃이 활짝 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고, 새로운 연인을 사귀는 등 학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따뜻한 봄학기를 즐기고 있습니다.캠퍼스가 활기를 띠며 대학가 상권에도 다시 봄이 올 거라는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대학가에는 '개강 특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파가 가장 몰리는 개강철에 매출이 크게 뛰어 맞이하는 특수란 의미입니다. 많은 학생이 학교에 오게 되면서 다시 '개강 특수'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여러 상인들이 그동안의 적자를 메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하지만 '개강 특수'는 기대로만 그쳤습니다. 최근 기자가 찾은 대학가는 사람으로 가득한 캠퍼스와 달리 인근 상권은 여전히 침체돼 있었습니다. 학교로 돌아온 대학생들은 캠퍼스 내 저렴한 학생식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학생식당은 점심시간 전부터 북적북적했지만, 대학가 식당 골목은 한두 곳을 제외하곤 점심시간에도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3월이면 늘 만석이었던 식당 내부도 상당히 비어 있었습니다.술집 등 저녁 시간대 영업하는 가게들은 사정이 다를까 싶어 밤에 다시 찾았습니다.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캠퍼스 앞에는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모여 있었지만, 술집 골목에는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그나마 지나가는 학생들마저도 원룸촌으로 향하며 집에 가는 분위기였습니다. 상인들은 하나같이 코로나 이전보다 매출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대학가 상권은 주 소비층이 지갑이 얇은 학생들이다 보니 다른 번화가보다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의 참가격 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외식비 중 자장면 평균 물가는 지난달 기준 대구 6천250원, 경북은 6천원입니다. 지난 18일 기준 경북대 인근 중식당의 자장면은 4천500원, 영남대 인근 중식당은 4천원으로 평균 물가보다 각각 1.38배, 1.5배 저렴했습니다. 그나마 오는 학생들의 발걸음마저 줄어들까 봐 식당들은 가격 인상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라 합니다.그럼에도 아직 침체돼 있는 이유가 뭘까 궁금증을 가지며 이번 주 위클리포유에서는 '개강 특수' 끊긴 대학가 상권의 최근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2024.03.22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제655회
■ 가로열쇠 1. 가시덤불이 우거진 길. 3. 오고 가는 발자취. 찾아오거나 찾아가거나 하는 발걸음. (참고) 발김. *○○○○도 들여놓지 않다.(관용어) 7. 호접지몽은 ○○에 관한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이지요. 8. 바지 따위에서 다리가 들어가도록 된 부분. *촉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 찢어진다. (속담) 9. 목숨이 끊어지다. 숨지다. *조국을 위하여 명예롭게 ○○. 12. 자랏과의 동물. *○○ 보고 놀란 가슴 소댕 보고 놀란다. (속담) 13. 입의 가장자리. =구변. *○○에 미소를 띠다. 17. 어떤 물체에 다른 물건이 닿거나 하여 생긴 자리. *손톱 ○○이 뚜렷하다. 18. 마음속으로 치는 대중. (참고) 속가량. 19. 일이 어찌 될 어름이나 그러한 무렵. (준말) 즘. *졸업식 날이 가까워 올 ○○에 갑자기 병이 났다. 22. 음료·음식 본디의 맛이나 향기가 없어지다. (참고) 김새다. *뚜껑을 열고 오래 둔 맥주나 콜라는 쉽게 ○○○○. 23.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걷는 걸음걸이. *우리는 체육 시간에 ○○○○으로 빨리 가기 시합을 했다. ■ 세로열쇠 1. 가시가 있는 나무. *○○○○에 가시가 난다. (속담) 2. 밭에 심어 기르는 벼. *할아버지는 보리를 수확하고 난 자리에 ○○를 심으셨다 4. (그릇이나 어떤 범위에) 분량·수효 등이 넘칠 듯이 차 있는 모양. 이것의 작은 말은 '가득'이지요. *독에 물을 ○○ 채우다. 5. 좋은 지위나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일. 6. (제대로 굵게 자라지 못하고) 밑동이 두셋으로 가랑이진 무. 10. 잎의 일부로서, 잎몸을 줄기나 가지에 붙어 있게 하는 자루 모양의 꼭지. =엽병. 11. 쌀을 빻아 만든 가루. =미분. 백분. 14. 감자를 썰어서 물에 푼 밀가루 따위를 묻히어 기름에 튀긴 음식. 15. 겉으로만 보아서 어림친 대중. 겉으로만 보고 미루어 헤아리는 짐작. (참고) 겉가량. 16. 개인끼리 서로 아는 관계. *그들은 ○○○○으로 회원을 모았다. 20. (전통 혼례식에서, 시집가는 새색시가 단장할 때) 이마에 연지로 찍는 붉은 점. 21. 물체가 진동했을 때, 청각으로 느끼게 되는 것. =음. <응모요령> ▨제655회 '임무출(한글학회 회원)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해답은 우편엽서를 이용해 4월11일까지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휴대폰 번호를 반드시 적어주세요) ▨보내실 곳 : 대구시 동구 동대구로 441 영남일보 편집국 문화부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담당자 앞 ▨우편번호 : 41260 <제653회 당첨자> ▶김문숙(대구광역시 달서구 학산로) ▶홍종수(대구광역시 수성구 지범로) ▶이수민(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남로) ▶김소은(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 ▶정재수(경북 칠곡군 왜관읍 중앙로) ▶오희진(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정원용(대구광역시 달서구 대명천로) <상품협찬> ▲ 워터파크 스파밸리 자유이용권 1688-8511 ▲ 교감형 생태동물원 네이처 파크 이용권1688-8511 ▲ 에코테마파크 대구 숲 이용권 (053)761-7400, 7401 ▲ 팔공산온천관광호텔 입욕권 (053)985-8080 ▲ 〈주〉아모레퍼시픽 아이오페 레티놀 엑스퍼트 0.1% ▲ 청도용암온천 대온천장 초대권 (054)371-5500 ▲ 청도 프로방스 포토랜드 초대권 (054)372-5050 ▲ 〈주〉그린기프트 레디엠 반전립스틱세트 1588-8480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당첨자에게는 협찬 상품 중 한 가지를 우송해 드립니다.
2024.03.15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3월의 설국 울릉도 여행(2) 설산이 감싼 나리분지, 푸른 파도 부서지는 관음도…발 닿는 곳마다 장관
봄이 다가오지만 아직 설국(雪國)인 곳이 있다. 전국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울릉도다. 울릉도는 약 140만년 전부터 1만년 전까지 다섯 단계의 화산활동을 거치며 탄생한 섬으로, 포항에서 북동쪽으로 직선거리 210㎞ 떨어져 있다. 지난 7~9일 찾은 울릉도는 3월인데도 시시때때로 눈이 내렸다. ◆도착 전부터 놀 거리 가득 '울릉크루즈'울릉도에 가기 위해선 배편을 이용해야 하는데, 기자는 포항 영일만항에서 울릉크루즈를 타고 떠나기로 했다. 느린 대신 흔들림이 적어 멀미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출항은 밤 11시30분. 도착까지는 7시간 정도 소요돼 아침 7시쯤 도착하는 일정이다. 크루즈 안엔 식당, 카페, 편의점, 오락실, 노래방 등 없는 게 없어 심심하지 않았다. 밤 11시쯤 식당에선 선상공연이 한창이었는데,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보니 그제야 울릉도에 가는 것이 실감됐다. 크루즈 안을 둘러보다 취침을 위해 객실로 올라갔다. 기자가 이용한 객실은 작은 창문이 딸린 4인실이었다. 침대, 소파, TV, 화장실 등을 갖춘 방으로 작은 숙소 같았다. 몇 시간 뒤 차가운 공기에 눈을 떴는데, 목적지에 도착할 참이었다. 일출을 보러 갑판으로 나가니 섬의 모습도 보였다. 뾰족한 산꼭대기와 해안 절벽이 화산섬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했다.크루즈서 내려 아침을 먹기 위해 나섰다. 저동항 인근에 아침 식사가 가능한 식당이 있다 하여 해안길을 따라갔다. 육지에선 볼 수 없었던 맑지만 짙은 푸른색의 바다가 보였다. 제주도 바다와는 또 다른 매력을 만끽하며 달리던 중 웅장한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바위의 이름은 '거북바위'. 새끼 거북을 업고 있는 거북의 모습을 닮아 명명됐다고 한다.식사 후 봉래폭포를 보기 위해 나섰다. 울릉도의 최고봉인 성인봉으로 오르는 길목인 주삿길 안쪽에 있다. 수량이 풍부해 1년 내내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입구 앞에 도착하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럴수가. 기상악화로 출입이 통제됐다는 방송이 나온다. 다음 코스로 생각해둔 관음도로 출발했다. 울릉 3경 중 하나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지만 2012년 다리가 놓여 도보로 탐방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관음도에 도착하니 사람이 나밖에 없다. 불길한 마음으로 매표소에 물어보니 관음도도 출입이 통제됐다고 한다. 두 번째 허탕.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외경만 카메라에 담고 떠났다. 이때 느낀 건 겨울의 울릉도 날씨는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단단히 채비해야 한다는 것. ◆3월의 크리스마스 '나리분지'그렇게 겨우 찾은 세 번째 코스는 '나리분지'. 울릉도 내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으로 눈꽃 여행의 중심지라고 한다. 나리분지는 해발 약 500m에 위치한 평원으로 섬 내 유일한 평지다. 동서 1.5㎞, 남북 2㎞로 면적이 198만㎡에 이른다. 1만5천~2만년 전에 일어난 울릉도 화산 폭발때 중앙의 분화구가 함몰돼 형성된 칼데라 분지로 성인봉 아래 해발 700~987m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분지에 들어가기 전 전망대에 올라가 마을을 한눈에 담았는데, 절경이었다. 소설 '설국'의 배경을 표현한다면 아마 이런 풍경이 아닐까. 눈 이불을 덮은 듯한 마을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을 사방을 눈으로 덮인 설산이 감싸고 있었는데, 어떤 설경을 내놓아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2월부터 4월까지 이어지는 겨울철에 3∼4m 이상의 폭설이 자주 내린다고 하는데, 3월에 이런 눈을 즐길 수 있다니. 한겨울에도 눈을 찾아보기 힘든 곳에서 자란 기자에겐 행운이었다.본격적으로 설국(雪國)을 즐기기 시작했다.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마을에 내려가니 총 4구간의 탐방로에 들어갈 수 있었다. 탐방로 인근엔 산채비빔밥 등 울릉도에서만 나는 산나물로 구성된 음식들을 파는 식당들이 모여 있었는데, 관광객이 자주 찾는 명소라 식당도 많은 듯했다. 성인봉 등산로 트레킹 코스도 있었는데, 시간 관계로 2구간까지만 걷기로 했다. 1구간엔 어린이 놀이시설과 휴게쉼터가 있어 눈사람을 만드는 어린이들을 볼 수 있었다. 2구간엔 다목적 잔디광장과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었는데,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며 걷기 좋았다.◆'대풍감 전망대' 탁 트인 바다 한눈에다음 날 울릉도 시내 부근에 위치한 '독도전망대'에 방문했다. 이날도 역시 눈이 내렸다. 전망대로 가기 위해선 케이블카를 이용해야 하는데, 15분 간격으로 운영된다. 2분 정도 타고 올라가니 시가지 전망대와 해안 전망대로 가는 길이 있었다. 해안 전망대는 출입이 막혀 있었다. 시가지 전망대에 도착했을 땐 독도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었는데, 전망대로부터 87.4㎞였다. 날씨가 좋은 날엔 독도도 육안으로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도 눈이 내리고 조금 흐린 탓에 인근에 위치한 도동항과 마을 전경만 볼 수 있었다.전망대 인근에도 볼거리가 가득했다. 전망대 매표소 옆에 자리한 '독도박물관'에서는 독도와 관련된 다양한 전시를 진행 중이었다. 관람료는 무료. 독도박물관·한국사진작가협회 사진전 '울릉도·독도 동해를 품다', 독도박물관,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경북대 울릉도·독도연구소 공동기획전 '울릉도' 등을 선보였다. 저녁이 다가올때 쯤에는 일몰을 보기 위해 '대한민국 10대 비경' 중 한 곳으로 떠났다. 독도전망대만큼 유명한 전망대인 '대풍감 전망대'다. 대풍감은 '바람을 기다리던 절벽'이란 의미로, 과거 돛단배가 항해를 위해 바람을 기다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대풍감 전망대까지는 약 6분 정도 소요되는 태하항목관광모노레일을 이용해 올라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기자는 매표 시간을 놓쳐 1시간40분 걸리는 트레킹 코스로 올라갔다. 태하해안산책로를 지나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은 '등산 초보'인 기자에겐 다소 무섭고 위험하게 느껴졌는데, 이동 중 바다와 산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매력이었다.전망대에 도착하니 오후 6시였다. 이날 울릉도의 일몰 시간은 6시15분이었으니 딱 시기적절하게 잘 도착한 것. 해지는 붉은 하늘을 보며 사방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어딜 봐도 경이로웠다. 파도에 맞서는 듯 늠름하게 서 있는 해안 절벽과 탁 트인 바다…. 울릉도의 마지막 여행 코스를 이곳으로 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장관이었다. 옛적 바람을 기다리던 이들은 어떻게 두 눈으로만 이 풍경을 담을 수 있었을까 하며 카메라 셔터를 몇 번이고 눌렀다. 이 섬에 올 때 크루즈에서 본 일출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넋을 놓고 바라봤다. 글·사진=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해안도로에서 바라본 관음도 외경.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지만 2012년 다리가 놓여 도보로 탐방할 수 있게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독도전망대에서 바라본 독도 방향 바다.독도전망대 입구. 이곳 오른쪽은 해안 전망대, 왼쪽은 시가지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나리분지 탐방로 입구.
[동 추 거문고 이야기] <5> 선비와 거문고(상), 거문고는 '금(琴)'이다
한국의 거문고와 중국의 금(琴·칠현금)은 다른 악기이지만, 옛날에는 '금(琴)'으로 동일하게 표기되어 왔다. 거문고와 칠현금을 지칭한 금(琴)은 선비들에게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었다. 마음 수양을 위한 평생의 반려로 삼았던 특별한 악기였다. 거문고(칠현금 포함)가 이처럼 선비에게 각별한 대접을 받았던 역사의 뿌리는 매우 깊다.사마천은 중국 역사서 '사기'에서 '공자가 사양(師襄)에게 거문고 타는 법을 배웠는데, 거문고를 배우는 것은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라고 했다. 모든 선비들의 스승인 공자가 거문고를 어떻게 대했는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거문고를 잘 탔고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공자는 또한 음악을 통해 인과 예를 설명하고 가르쳤다. 공자가 행단(杏亶)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행단고슬(杏亶鼓瑟) 고사에도 금(琴)을 타는 공자가 등장한다. ◆거문고를 마음 수양의 도구로 삼았던 선비우리나라 악기 중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탁영금(濯纓琴)의 주인공 탁영 김일손(1464~1498)이 이 거문고를 걸어두는 시렁에 새긴 글인 금가명(琴架銘)이 있다. '거문고는 내 마음을 단속하는 것이다. 시렁을 만들어 높이 걸어두는 것은 소리가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琴者 禁吾心也 架以尊 非爲音也).'김일손이 이런 글을 지어 새기게 된 데는 연원이 있다. 거문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공자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중국 후한 말기 학자 응소가 편찬한 '풍속통의(風俗通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거문고를 금(琴)이라고 하는 것은 군자가 바른 것을 지켜서 스스로 금(禁)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즉 거문고 소리가 울려 퍼지면, 바른 뜻을 감동시키기 때문에 선한 마음이 스스로 우러나서 사악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아준다. 그래서 성현 군자들은 거문고를 타면서 항상 조심하고 스스로 사악한 것과 금할 것을 조절하였다고 한다.' '풍속통의'는 당시의 풍속, 음악, 지리, 종교, 민속, 명물, 전례, 악기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희(주자)는 거문고에 새긴 금명(琴銘)에서 이렇게 읊었다. '그대 중화의 바른 성품을 길러서(養君中和之正性)/ 분노와 탐욕의 사심을 물리치네(禁爾忿欲之邪心)/ 천지는 말이 없고 만물에는 법칙이 있으니(乾坤無言物有則)/ 내 오직 그대(거문고)와 그 심오함을 찾으리(我獨與子鉤其深).' 선비들이 존경하며 그 삶을 본받고자 한 대표적 선비이자 시인인 도연명(365~427)은 '무현금(無絃琴)'의 세계를 드러내 보였다. '줄 없는 거문고'를 말하는 무현금의 정신과 가치관은 선비들이 유교 경서와 함께 거문고를 필수 반려로 삼게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김일손을 비롯한 우리나라 선비들도 이와 같은 가치관을 이어받고 심화시켰다. 반계(磻溪) 류형원(1622~1673)도 거문고에 새긴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마음은 소리로 나타나고(心形聲)/ 소리는 마음을 감동시키네(聲感心)/ 담박하면서도 조화로우며(淡乃和)/ 정중하고 지나치지 않노라(莊不淫)/ 마음과 어울리고 기와 어울리며 천지와 어울리니(心和氣和天地和)/ 아 금(琴)이란 금할 금(禁)자의 뜻이 있으니(嗚乎琴者禁也)/ 금지한다는 것은 사심(邪心)을 금함이로다(禁其邪也).' 이 글에서도 거문고를 통해 나쁜 마음인 사심을 금하면서 인(仁)의 마음을 함양하고자 하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악학궤범'을 편찬한 용재(용齋)성현(1439~1504)은 거문고를 좋아하고 연주도 잘했는데, 거문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음을 교묘하게 하지 말고 음률을 고르자는 것이다. 음탕하고 안일할 정도로 방종하지 말고 중화(中和)의 덕을 이루려고 하네. 그저 읊고 노래하는 데 그치지 말고 가슴속의 사특하고 더러운 기운을 씻어내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날 군자들이 까닭 없이는 거문고를 곁에서 떼어두지 않았던 뜻이라네."그리고 심신을 닦는 도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담담하여 아무런 경영이 없고 공평하며 사심도 없고, 궁해도 불만이 없고 곤해도 주린 빛이 없고, 한가해서 생각도 수고로움도 없고, 자유로워 칭찬도 허물함도 없으며, 욕심도 사사로운 정도 없고, 옳음도 그름도 없으며, 형(形)도 상(象)도 없이 한다면 거의 도에 이르러서 지인(至人)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네.' 선비들이 거문고를 가까이 두며 사랑한 것은 사특한 마음과 나쁜 기운을 멀리해 덕이 높은 경지에 이르고자 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오능(五能)과 오불탄(五不彈)이런 거문고인 만큼 거문고를 함부로 다루지 않고 연주하지도 않았다. 거문고를 탈 때는 연주해서는 안 되는 상황과 연주할 수 있는 조건 등 원칙을 정해놓고 지켰다. '오불탄(五不彈)' '오능(五能)'이 그것이다. 거문고 악보집인 '한금신보(韓琴新譜)'(1724)를 비롯한 옛 기록에 많이 실려 있다.거문고 명인이자 학자인 노주(老洲) 오희상(1763∼1833)은 특히 오불탄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거문고를 탈 때 오불탄의 원칙을 반드시 지켰다고 한다. 오불탄(五不彈)은 거문고를 연주해서는 안 되는 다섯 가지 상황을 말한다. 강한 바람이 불고 비가 심하게 올 때, 속된 사람을 대할 때, 저잣거리에 있을 때, 앉은 자세가 적당하지 못할 때,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을 때이다. 반면 자세가 편안하고(坐欲安), 똑바로 볼 수 있고(視欲專), 마음이 한가하고(欲閑), 정신이 맑으며(神欲鮮), 손가락이 온전할 때(指欲堅)라야 연주에 임했다. 이를 오능(五能)이라 한다.오희상은 '거문고의 묘함은 정신에 있지, 소리에 있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삿된 마음을 금하고 자신을 이기는 방법 중에 거문고 연주가 으뜸이라고도 했다. 이는 선비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선비들이 거문고를 가까이 두고 즐긴 주목적은 마음의 도를 깨닫고 길러가는 데 있었던 것이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성협 '탄금도'(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제 중 '세상의 아름다운 우리 이야기를 알아줄 이 적지만,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우리를 알아주는 구나'라는 구절이 있다.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위클리 키워드] Z세대 74% "직장 동료 간 연봉공개 하지 않겠다"
Z세대 10명 중 7명은 동료 간 연봉 공개에 반대했다. 연봉을 공개할 수 있는 범위로는 가족까지로, 절반 이상은 연인 사이에도 공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AI 매칭 채용콘텐츠 플랫폼 캐치가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2천437명을 대상으로 '직장 동료 간 연봉 공개'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74%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한다'고 답한 비중은 26%에 그쳤다.반대하는 이유로는 '개인 정보라 부담스러워서'가 61%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는 '불화가 생길 수 있어서'(14%), '타인이 불편할 것 같아서'(13.6%), '경쟁 등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11%) 순으로 나타났다.찬성하는 이유로는 '숨길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가 64%로 1위를 차지했으며, '이직, 연봉 협상 시 참고하기 위해서'가 23%로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는 '평가가 공정한지 확인하기 위해서'(7%), '동기부여로 삼기 위해서'(5%) 순이었다.자신의 연봉을 공개할 수 있는 범위는 '가족'(75%)까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인'은 48%로 절반에 약간 못 미쳤고, 이외에는 △친구(30%) △친척(7%) △직장동료(4%) △직장 상사·후배(2%) 순으로 나타났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3월의 설국 울릉도 여행(1)긴 바다끝、雪國이 있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雪國)이었다."일본 문학사상 중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이 아닐까 싶다. 책의 한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열차 속에서 보이는 눈 덮인 마을이 그려졌다. 다 읽고 나서도 이 서두 문구로 모든 배경이 설명 가능했다.이 책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서정소설 '설국'이다. 1968년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으로 선정됐다. 뛰어난 감각적인 문체와 인물들의 감정 묘사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한다. 특히 자연 풍경과 풍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정교하게 담겼는데, 작가는 작품의 모티프를 주로 풍경에서 얻어 12년에 걸친 기간 다듬었다고 한다.설국의 배경은 일본 니가타현이다. 니가타현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주인공 시마무라는 터널을 통해 도쿄에서 니가타현을 세 번 방문한다. 첫 문장의 '국경의 긴 터널'에서 '국경'이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나라 간의 경계를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지역 간의 경계란 의미로도 쓴다. 여기서도 지방의 경계를 말한다. 따라서 터널은 이쪽 세계(도쿄)와 저쪽 세계(설국·니가타현)의 경계를 가르는 역할을 하며 일상과 비현실의 세계, 도시화와 전통의 세계를 구분한다. 시마무라가 터널을 빠져나와 설국에 들어설 때 차창에 비친 소녀의 모습과 겨울 풍경은 이 소설이 그려내는 미(美)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이처럼 니가타현은 설국으로 표현돼 눈 덮인 신비로운 마을로 묘사된다. 눈으로 둘러싸인 눈앞의 정경, 코가 빨개진 시골 사람들, 순백색의 순수함…. 이 모든 묘사를 관통한 표현이 책의 첫 문장이다. 이 책에 대해 많은 사람이 눈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라 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했다. 이런 강렬한 힘으로 설국의 첫 문장은 현재도 끊임없이 패러디되고 있다. 오늘처럼.이번 위클리포유에서도 서두에 설국의 첫 문장을 인용했다. 3월의 절반이 지나가고 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아직 설국인 신비로운 곳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다녀온 울릉도다. 포항에서 긴 바다를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약 7시간 동안 크루즈를 탄 뒤 섬에 도착하니 한겨울의 추위가 느껴졌다.차를 타고 해안길을 따라 달리니 아직 추운 날씨로 높은 파도도 볼 수 있었다. 억센 파도로 물방울이 차창에 튀기도 했다. 짙은 푸른색의 바다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하니 강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가만히 놔주지 않았다. 그렇게 'B급'으로 시작된 사진들을 간직하며 설국 여행을 시작했다.식당에 들어가면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서 오이소"라는 구수한 경북 사투리가 손님을 반겨준다. 인기 있는 맛집들의 메뉴는 이곳의 특산물인 오징어와 부지깽이·명이나물 등의 산나물. 몸에 좋은 건 꼭 챙겨 먹는다는 한국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음식들이다.전국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답게 여행하는 내내 눈이 내렸다. 눈으로 인한 기상 악화로 출입이 통제된 곳들이 많았다. 최대 다설지인 나리분지는 3월에도 일본 삿포로 못지않게 많은 눈이 쌓여 있었는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마을 전체가 설경이었다. 아름다운 장관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믿기지 않는 풍경에 다른 나라에 온 것만 같았다.봄이 오던 육지와 달리 눈의 고장이었던 울릉도. 비현실적인 눈의 고장 설국. 이번 주 위클리포유 커버스토리는 '3월의 설국(雪國)' 울릉도 여행기다. 글·사진=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나리분지 전망대에서 본 울릉도 나리분지 전경. 마을 전체가 눈으로 뒤덮여 있다.
[홍하상의 기업인 열전] 삼성가 이야기 <9> 제일제당과 현대건설
◆ 웬, 검은 액체?기계가 굉음을 내면서 돌기 시작했다. 검은 액체가 줄줄이 쏟아졌다. 지켜보던 일행은 아연실색했다. 이게 대체 뭔일인가? 기술자 한 사람이 "아니 웬놈의 원료를 이렇게 많이 넣는 거요. 원당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넣어서 기계가 균형을 잃은 거요" 하고 말했다. 이병철이 기술자들에게 원료를 조금만 넣고 균형을 맞추면서 기계를 돌려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얼마 후부터 순백색의 설탕가루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1953년 11월5일의 일이었다.어렵게 설탕이 생산되었으나 문제가 또 있었다. 설탕을 담을 부대가 없었던 것이다. 요즘엔 비닐봉지를 쓰지만 비닐이 없던 시절에는 흰 천으로 설탕 부대를 만들어 썼다. 문제는 국내에서 생산된 흰 천에 설탕을 담으면 설탕 가루가 줄줄이 새어버리는 것이었다. 설탕을 담을 천은 공기가 통하면서도 설탕이 새지 않아야 한다. 미군이 쓰다 버린 낙하산으로 여성들의 블라우스를 만들어 입던 시절이다. 결국 일본에 기술자를 보내 설탕 부대를 만들 직조기계를 구입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설탕 부대용 천을 꿰맬 수 있는 재봉틀이 없었다. 재봉틀 구하기에 나섰다. 결국 설탕 부대 제작용 재봉틀은 일본에서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수소문 끝에 중고품을 구해 미군 군용기에 실어왔다. 첫날 생산된 설탕은 6천300㎏이었다. 설탕은 근당 100원에 부산 총판인 신일상회로 넘어갔다. 당시 수입 설탕은 근당 300원이었으므로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싼값이었다. 그러나 뜻밖에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외국산 설탕과 마찬가지로 순도 99.9%이며 색깔도 똑같은데 팔리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이유를 알아보니 국산품은 싸고 나쁜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잠시, 불과 보름이 지나자 설탕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먹어본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품질에 아무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값은 3분의 1밖에 되지 않으므로 모두들 칭찬했기 때문이었다.'국산=저질' 편견에 첫 시장반응 냉담보름 지나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동종업 난립 제당 전국시대 열렸지만선발기업 경영합리화로 점유율 70%물건이 달리자 공장은 24시간 가동되었다. 아침에 설탕을 한 트럭 싣고 나가면 저녁에는 돈을 한 트럭 싣고 돌아온다고 할 정도였다. 하루에 6.3t 생산되던 설비를 2년 만에 그 여덟 배 가까운 50t 규모로 늘렸다. 제일제당이 설립되기 전 한국은 설탕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일제당이 설탕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수입 의존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1954년에는 수입량이 전 해에 비해 절반인 51%로 떨어졌고, 55년에는 다시 그 절반인 27% 수준이 되었으며, 56년에는 수입량이 국내 소비시장의 7%까지 떨어졌다. 설탕의 자급자족이 달성된 것이다.이병철은 설탕의 수요가 급속히 국산품으로 대체됨에 따라 시설을 계속 확장하고 원가절감을 위한 최신기계를 도입했다. 제일제당은 당시의 삼성그룹이 최초로 시도한 근대적 기업으로서의 첫 성공이다. 53년 첫해에 하루 6.3t씩 생산되던 설탕은 6개월 후에는 50t으로 늘어났고, 1956년에는 하루 150t(연산 5만t), 57년에는 하루 200t(연산 7만t)으로 시설이 늘어났다. 매출도 설탕이 생산된 첫해엔 7억2천2백만환이던 것이 1958년에는 그 여덟 배인 56억환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에 따라 순이익도 엄청나게 발생했다. 54년의 순이익은 1억6천200만환이었다.제일제당이 설탕 사업에서 성공하자 국내에는 그 이듬해에 서울 용산에 동양제당에 이어 한국정당(서울 영등포), 삼양사(경남 울산), 금성제당(서울 용산), 해태제과(서울 영등포), 대동제당(경기도 시흥) 등이 설립되어 한국의 제당업계는 춘추전국시대로 들어간다. 시장이 난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의 설탕 공급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 당시 제일제당을 비롯한 국내업체의 연간 생산량은 15만t이나 되었다. 그에 비해 연간 소비량은 5만t에 불과했다. 따라서 공급이 수요보다 3배나 많게 되자 덤핑이 시작된다. 이른바 제당 전국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제일제당은 선발기업으로서 이미 기반을 닦았고 경영 합리화를 추진해 나가면서 국내 설탕시장의 70%를 점유했다.제일제당이 설립되어 설탕이 공급되자 가정 문화도 바뀐다. 반가운 손님이 집에 찾아오면 설탕물을 타줬던 것이다. 주스나 커피 등이 없던 시절이어서 손님에게 설탕물을 타 주는 게 당시엔 최상의 대접이었다. 이병철이 성공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 정주영은 고령교 공사를 하면서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정주영은 고령교에서 파산1954년 4월, 조폐공사에서 발주한 고령교 복구 공사에서 엄청난 적자가 생기는 바람에 현대건설은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 고령교는 대구와 거창을 잇는 다리였으나 그 당시 교각은 기초만 남아있고 상부 구조물은 물에 처박혀 있었다. 정부에서는 지리산 공비 토벌을 위해 시급히 교량을 복구해야 했다. 고령교 공사는 당시 정부공사로서는 최대규모였다. 당시의 공사 금액은 5천457만환. 24개월 만에 공사를 끝내야 하는 토목공사였다. 이 다리 공사에서 정주영은 6천500여만환 넘는 적자를 보고 만 것이다. 그 전해에 설립된 제일제당의 자본금이 2천만환이었으니 그 세 배 넘는 돈을 적자를 본 것이다.국내 최대의 토목공사이니만큼 정주영은 이 다리공사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말이 복구공사지, 거의 전파된 다리여서 차라리 새로 다리를 건설하는 편이 더 쉬울 정도였다. 겨울에는 물이 말라 흰 모래가 드러났으나 여름철엔 그 반대로 낙동강 물이 불어 갑자기 수심이 몇 배 깊어지는 곳이었다. 당시 정주영이 가지고 있던 장비는 크레인 한 대, 믹서기 한 대, 컴프레서 한 대가 전부였다. 장비가 부실하다 보니 공사 대부분이 사람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교각 한 개를 철근을 넣고 콘크리트를 쳐서 세워 놓고, 또 다시 한 개를 세우고 하는 식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지면서 강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교각은 번번이 강물 속으로 떠내려가 버렸다. 결국 정주영과 현대건설은 교각을 채 한 개도 박지 못했는데, 그사이 물가는 120배 뛰어버렸다. 엄청난 인플레였다.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계약은 했으나 공사를 끝내지 못했으니 대금은 당연히 나오질 않았고, 인부들은 임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쳤다. 정주영은 동생 정순영이 살던 삼선동의 20평짜리 기와집을 팔도록 하고, 매제 김영주가 살던 돈암동 종점 근처의 20평짜리 집도 팔았다. 그 외에 임원들의 집도 팔아서 모자라는 공사비에 충당하였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 자신이 운영하던 초동자동차 공장부지까지 팔았고, 거기다가 월 18%나 되는 이잣돈을 내서 그 돈으로 임금을 주고 공사대금 1억여환을 마련했다. 결국 고령교 공사는 당초 계약기간보다 2개월 늦게 완공되었다. 공사 대금을 다 받아봤자 그보다 더 큰 빚이 남았다. 공사가 끝났지만 현장에서 장비를 철수시킬 기력도 남아있지 않은 지경이었다. 빚쟁이들은 아우성을 치고 동종 업자들의 질시도 극심해졌다. 소학교밖에 안 나온 정주영이 인플레가 뭔지 알겠느냐, 정주영이는 이제 끝났다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가 계약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손해보면서까지 공사를 감행한 것은 '신용' 때문이었다. 신용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생각이어서 밀어붙였던 것이다.'이것은 시련이지 실패는 아니다. 내가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결코 실패가 아니다.' 정주영은 고령교 공사 실패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달랬다. 실패를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나 실패의 뿌리를 끝까지 붙들고 재기의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 정주영은 '채근담'에 나오는 '득의지시 편생실의지비(得意之時 便生失意之悲)' 즉 '뜻을 이룰 때 실패의 뿌리가 생긴다'라는 의미의 글귀를 좋아한다. 그는 실패를 해도 그 뿌리를 결코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 뿌리의 싹은 '신용'이라는 재산이었다.오늘날 현대건설 사옥에는 아래와 같은 휘호가 걸려있다. '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 고령교 공사의 실패를 통해 얻은 정주영의 교훈을 적은 것이다. 담담한 마음으로 정주영은 누워서 자기의 쓸개를 쓰다듬는 와신상담의 긴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고령교 공사로 인한 빚 6천500만환을 갚는 데는 그후 20년이 걸렸다. 현대건설은 고령교 복구공사로 큰 손해를 보았으나 그때 쌓은 신용 덕분에 2년 뒤인 1957년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를 따내는 데 성공, 다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다.이병철과 정주영 두 사람은 이후 한국경제를 이끄는 양대 기관차이자 라이벌이 된다. 홍하상 작가·전경련 교수제일제당 창업 무렵의 이병철. 제일제당 공장의 설탕 포장 모습. 홍하상 작가·전경련 교수
2024.03.08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미디어의 사투리 왜곡,오해와 진실(2)'미디어 속 사투리 붐' 희화화된 방언에 부정적 인식 재점화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 사투리 특강 인기드라마 속 애매한 억양 꼬집어 공감 얻어사투리 편견이 지역에 대한 고정관념으로"안녕하시소. 대구경북 사투리 가르치러 온 강민지라예."최근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에서 강민지씨는 미디어 속 사투리를 바로잡겠다며 '경상도 사투리 강의' 콘텐츠를 올렸다. 대구경북 출신인 강씨는 영상 미디어에서 어설프게 재현되는 사투리를 시원하게 꼬집었다. 지난달 20일 종영한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배우 이기광은 경상도 인물 배역을 맡았는데, 사투리도 표준어도 아닌 애매모호한 억양을 사용했다. 이를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몰입도가 깨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강씨는 배우의 연기를 지적하면서 "미디어가 사투리를 너무 과장되게 표현한다. 모든 말에 리듬을 넣지 말고, 던지듯 가볍게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이 영상은 경상도 네티즌들의 많은 공감을 사며 호응을 얻는 중이다. 지난 4일 기준 영상의 조회 수는 169만회에 달했다. 다른 사투리 강의 영상들도 190만회, 67만회를 기록했다. 네티즌들은 "대구 토박이로서 속이 시원하다" "사투리 일타강사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해당 영상이 인기를 끌자 사투리를 사용하며 겪은 편견 등을 밝히는 이들도 나오면서 경상도 사투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재점화되는 상황이다.◆미디어에서 재현된 경상도 사투리사투리는 특정 지역의 문화와 지역민들의 특성을 나타내는 고유하고 독특한 언어다. 그렇기에 미디어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사투리를 잘 다루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영화, 드라마 등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재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구에서 25년을 생활한 김모(25)씨는 "대구 말투만 해도 '무뚝뚝함'을 기본으로 하며 간결하고 가볍게 던지는 말이 많다. 그런데 미디어에서는 부자연스러운 억양을 재현하거나 과하게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등 경상도 사투리를 다루는 방식이 과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면서 "경상도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진 않다"고 밝혔다.이정복 대구대 교수(문화예술학부)도 "방언은 재밌거나 우스꽝스러운 말이 아니라 모든 감정을 표현하고 모든 상황에서 쓰는 해당 지역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말"이라며 "방언은 어느 지역에나 존재하고, 모든 상황에서 쓰이는 일상 언어인 만큼 어떤 방언의 한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과장해서 표현하는 것은 방언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사투리를 쓰는 인물들이 촌스럽게 표현되기도 한다. 영화 '해운대'에는 고층빌딩이 들어선 첨단 공간과 개발 이전의 옛 모습을 간직한 공간이 교차돼 나오는데, 이는 오늘날 부산 해운대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인물은 자신이 쓰는 언어에 따라 공간이 구획된다. 서울말을 하는 사람들은 최신 유행의 옷을 입고 첨단 공간에 거주하며, 부산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은 허름한 옷을 입고 낡은 공간에 산다. 류지석·김충국 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의 논문 '영화 속의 부산 방언 배치 양상과 장소성'에 따르면, 이는 언어에 따른 차이를 신분적으로 위계화해 놓은 것으로 영화에 부산사람들이 나오지만 이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보다는 기존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언어에도 권력이 개입돼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박승희 영남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서울말도 원래 중부지역의 방언인데 대중에게는 표준어로 여겨진다. 이는 언어 사용에서도 서울 중심적 사고가 내재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서울에서 쓰는 말은 중앙 언어로, 다른 지역의 방언은 하위 언어, 소위 말해 수준이 낮은 언어로 인식해 나타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방언은 해당 지역색 반영된 자연스러운 말언어 사용에서도 수도권 중심적 사고 내재사투리 소멸 막기 위해 '지역학 교육' 확대를"◆왜곡된 인식 퍼져…고칠 언어 된 사투리이로 인해 사투리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생산·확대되는 상황이다. 사투리를 촌스럽다고 여기는 분위기로 사투리 화자들은 말투 지적을 받기도 한다. 경남 김해가 고향인 김모(여·22)씨는 "서울에 놀러 갔을 때 지하철에서 친구와 대화하는데 주변에서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걸 본 친구가 사투리를 쓰니까 쳐다보는 거라며 작게 말하라며 창피하다고 했다"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경상도 말투를 숨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뜬금없이 사투리를 시키는 일들도 등장한다. 일례로 지난 몇 년간 온라인상에서 관심을 받았던 '블루베리 스무디'는 타 지역과 경상도 억양이 확연히 차이 나는 단어다. 그런데 '블루베리 스무디'를 따라 해 보라는 등의 말들을 듣는 것. 대구에서 상경한 신영주(28)씨는 "서울 친구들이 카페 메뉴판에 적힌 블루베리 스무디를 읽어보라 한 적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읽었는데 자기들끼리 웃었다. 왜 웃냐고 물어보니 실제 경상도 억양이 궁금했다 하더라"며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너무 황당하고 무례한 경험이었다"고 털어놨다.표현에 대한 오해도 있다. 경상도 사투리 중에는 '오빠야' '언니야' '이모야' 등 윗사람에게 '야'를 붙여 친근하게 부르는 용법이 있다. 대표적으로 '오빠야'는 여성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친근한 남성에게 가볍게 쓰는 말이다. 하지만 타 지역에서는 이를 '여성의 애교·애정 표현'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울산에서 상경한 이모(여·27) 씨는 "서울 생활 중 친오빠랑 통화하며 '오빠야'란 말을 쓴 적이 있는데,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들은 서울 친구들이 '오빠야'란 말이 생각보다 건조하다며 놀라더라. 그래서 일상적으로 쓰는 단순한 호칭 정도라고 알려줬다"고 밝혔다. 하말넘많의 강씨도 자신의 영상에서 "말이 오빠야지 보통 오빠야라 하지 않는다. 오빠! 오빠! 오빠야! 이렇게 그냥 말을 던진다"며 익살스럽게 쓰는 표현이 아님을 설명한다.이 같은 분위기로 지역 청년들 중에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말투를 '서울말'에 맞게 억지로 고치려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에 따르면 취업준비생 절반 이상(58.9%)이 사투리 교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80%가 '표준어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으며, 그 뒤로는 '면접에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어서'(15.7%)로 나타났다. 2022년 국립국어연구원이 실시한 '국어 사용 실태 조사'에서도 경상 방언을 사용한다는 의견은 2005년 27.9%에서 2020년 22.5%로 5.4%포인트 줄었으며, 표준어를 사용한다는 의견은 같은 기간 47.6%에서 56.7%로 9.1%포인트 증가했다.◆지역학 교육·이중 방언 능력 필요미디어의 왜곡된 사투리 재현과 사투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역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사투리 소멸을 막기 위해선 '지역학' 교육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승희 교수는 "언어·역사·문화 등 지역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외지 사람들에게는 지역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 지역에 연고를 둔 사람들에겐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야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사투리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구경북 대학에서도 교양 강의를 통해 지역학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지역 사투리 보존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28일까지 대구시는 '사투리, 이쁘다 아이가'라는 전시행사를 통해 이상화·현진건·상희구 등 지역 출신 작가들이 사투리로 집필한 작품을 중심으로 작가의 서재를 구현했다. 또 지역 청년 예술가의 사투리를 활용한 팝아트 전시·사투리 시 낭송회 등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했다.상호 소통을 위해 '이중 방언'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정복 교수는 "언어는 효과적인 소통을 위한 것이기에 특정 지역 방언을 고집하기보다 출신 지역의 말과 거주지의 말을 상황에 따라 적절히 골라 쓸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며 "이는 서울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 살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의 강민지씨. 미디어에서 어설프게 재현되는 사투리를 시원하게 꼬집었다.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의 강민지씨. 미디어에서 어설프게 재현되는 사투리를 시원하게 꼬집었다.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출연한 배우 이기광. 극중 경상도 인물 역을 맡았다.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출연한 배우 이기광. 극중 경상도 인물 역을 맡았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미디어의 사투리 왜곡, 오해와 진실 (1) 경상도식 애교 아닙니다 단순한 호칭입니다
한때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즐겨 봤다. 특히 첫 번째 시리즈인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을 재미있게 봤다. 응칠은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를 주제로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당대 부산의 분위기와 지역민들의 특성을 잘 담고 있다는 점이 재미 요소였다. 평생을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지역에 대한 애정을 자극했다. 몇 번이고 정주행을 했다.응칠의 훌륭한 연출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뇌리에 박히는 것은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다. 그동안 많은 배우의 어설픈 사투리 연기에 신물이 나던 참이었다. 그런데 응칠에서는 지역 출신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모두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경남지역 살 적에 듣던 억양 그 자체였다. 알아보니 응칠의 첫 캐스팅 조건은 경상도 사투리 구사 능력이었다고 한다. 남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서인국은 "감독님이 드라마를 기획했을 때 주인공들이 사투리를 본토 발음으로 하는 사람을 바랐다"고 했다. 서인국도 극 중 명장면·명대사로 꼽히는 "만나지 마까?"라는 대사를 오디션에서 잘 소화해내 드라마에 합류하게 됐다고 한다.배우들이 구수한 사투리를 재현할 수 있었던 것에는 피나는 노력과 재능도 뒷받침됐겠지만 그 지역에 대한 이해도도 한몫했을 것이다. 서인국은 울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여주인공 역을 맡은 정은지도 부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경상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사투리도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지 않을까. 그들에게 극 중 언어는 이방인의 언어가 아니다. 말하고 듣고 자란 이미 익숙한 언어다. 이런 덕에 응칠은 부산이란 지역의 매력을 알리는 데 충분했다. 부산에 연고를 둔 사람들에게는 친근함과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연고를 두지 않은 이들에게는 부산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를 높였다. 그렇게 응칠은 '응답하라 신드롬'을 쏘아 올린 첫 신호탄이 됐다.이처럼 잘 쓴 사투리는 극의 현장감을 높이고 흥행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모 배우가 경상도 인물 역을 맡았는데, 부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로 비판을 받았다. 몰입감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배우는 고향이 전라도라 경상도 사투리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무래도 그 지역에 연고가 없기에 언어 등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낮아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전라도와 연이 없기에 호남 방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이해가 간다. 아무리 배우라도 과하게 비판받는 일은 안타깝다.그렇지만 미디어에서 사투리를 잘 다루는 것은 중요하다. 사투리는 특정 지역의 문화와 지역민들을 나타내는 고유하고 독특한 언어인데, 미디어의 파급력을 생각하면 잘못된 사투리 재현은 그 지역 문화에 대한 오해를 부르기 쉽기 때문이다. 일례로 경상도 말투는 '무뚝뚝함'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자, 아나' '어어어' 등처럼 건조하게 던지는 표현이 많다. 하지만 미디어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과하게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오빠야'가 대표적이다. 실제 이 말은 여성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친근한 남성에게 가볍게 쓰는 말인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경상도 여성을 수동적으로 나타내거나 애교 많은 모습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쓰일 때가 있다. 이런 탓에 경상도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 중에는 '오빠야'를 단순한 호칭이 아닌 '여성의 애교 표현'으로 인식하는 이들도 있다.언어의 속성 중 '사회성'이란 것이 있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한다. 언어와 사회는 동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다. 미디어가 사투리를 왜곡해 재현하는 현상도 사회 구조적인 원인이 있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경상도 사투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여러 사례와 다각적인 분석을 제시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오마카세(2) 셰프가 직접 손님 응대·음식 설명 '대접받는 느낌'
양질의 서비스 '高價 오마카세'오마카세는 정해진 메뉴가 따로 없이 그날의 음식을 주방장이 알아서 만들어 내놓는 일본식 코스 요리(가게)다. 브랜드나 간판보다는 셰프의 명성을 내걸어 운영한다. 오마카세를 제공하는 식당에서 손님이 셰프에게 메뉴 선택을 온전히 맡기면 셰프는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한 음식을 내놓는다. 오마카세라는 단어는 본래 일본의 초밥 매장 등에서 '요리사의 추천 메뉴'라는 뜻으로 사용됐는데, 현재는 오마카세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양식·한우 등 다양한 외식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오마카세는 전문성을 가진 셰프가 운영하며 메뉴 구성, 음식 설명, 손님과의 대화 등 식사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높은 가격대를 형성한다. 대구지역 식사 오마카세의 경우 1인 점심 기준 4만원이 넘는 곳이 대다수며 저녁에 이용할 경우 약 1.5배 더 비싸다. 점심·저녁 모두 10만원이 넘는 곳도 많다. 대구 중구에서 오마카세를 운영하는 A씨는 "오마카세 가격은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식재료뿐 아니라 질 높은 손님 응대 서비스가 포함되기에 일반 음식점보다 높게 책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예약도 필수다. 그날그날 공수해온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메뉴를 제공하고 손님 한명 한명을 정성스레 응대하기 위해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해 소수의 정해진 손님만 받는다.'맡긴다'는 뜻 일본어서 유래주로 '스시가게' 예약 치열해'스강신청' 신조어 생기기도팬데믹·SNS로 대중화 바람'커마카세' '티마카세'도 등장이처럼 고급 레스토랑에 속하는 오마카세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음식점 또는 중·장년층의 비즈니스용 식당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SNS와 코로나19의 영향, 비교적 작은 제품에서 사치를 부리는 스몰 럭셔리 유행 등으로 적은 손님만을 받는 고급 식당이 인기를 끌면서 대중화되고 있다. 2022년 네이버 데이터랩의 검색어 트렌드에 따르면 2020년 8월부터 2022년 9월까지 2년간 '오마카세' 검색량은 2배가량 증가했다."인증샷 찍기 좋아"…MZ 인기오마카세 열풍은 특히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에서 두드러진다. 지난달 25일 오후 8시 대구 범어동에 위치한 돼지고기 오마카세 '현방'. 10명의 손님이 식사를 즐기고 있었는데 대다수가 20·30대였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사진을 찍는 손님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날 기준 젊은 세대에서 이용이 활발한 SNS '인스타그램'에도 해시태그 '오마카세'를 검색하니 약 71만5천개의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상대적으로 지갑이 얇은 MZ세대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오마카세를 찾는 이유는 뭘까. 이들은 특별한 경험을 이유로 들었다. 지난해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소비자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2.7%가 오마카세 등 고급 레스토랑에 방문하는 것이 경험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고 답했으며 20대(84.4%), 30대(76.0%)에서 응답 비율이 가장 높았다. 사회초년생 김모(여·25)씨는 "SNS를 통해 오마카세를 알게 됐는데, 처음엔 가격 때문에 망설였지만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해 방문했다"며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 나에게 주는 특별한 이벤트 같았다. 자주 가기는 힘들겠지만 기념일이나 기분을 내고 싶은 날 다시 가볼 만하다"고 말했다.MZ세대가 중시하는 'SNS 인증'과 '현재형 소비' 문화와 맞아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태경 영남대 교수(경영학과)는 "오마카세는 고급 음식으로 일상적인 소비와는 거리가 있다. SNS 이용률이 높은 젊은 세대에게 오마카세의 높은 가격과 특별함은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고자 하는 과시욕을 자극할 것"이라고 했다. 또 "MZ세대는 미래보다는 현재에 초점을 맞춰 소비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격보다는 현재의 만족, 유행을 중요시 여기는 특성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가성비 좋은 전문점 등장대중화에 힘입어 오마카세는 스시·한우·양식 등의 식당뿐만 아니라 카페·디저트 전문점으로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커피'와 '오마카세'를 합친 '커마카세'라는 신조어도 등장해 온라인상에서 언급된다.커피·디저트 등의 오마카세는 비싸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식사 오마카세보다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어 더욱 주목받는 모양새다. 1인 기준 2만~4만원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지만 코스별로 맞춤 음료와 디저트를 제공 받는 등 식사 오마카세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공간을 사용할 목적이나 친목의 장소로 이용되는 일반적인 카페와 달리 각 코스에 대한 바리스타의 설명을 들으며 음식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직장인 박모(28)씨는 "스시·한우 오마카세는 비용의 부담이 크고 이젠 너무 대중화돼 전보다 특색이 떨어진다고 느꼈다"며 "커피 오마카세는 그보다 저렴한 가격에 코스별로 여러 커피를 즐길 수 있어 이색적"이라고 했다.최근에는 건강 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차(tea)'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티 오마카세'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부산 전통찻집 비비비당 원소윤 대표는 "차에 관한 시장 조사를 하면 최근 차가 인기를 끌면서 티 오마카세도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다는 걸 느낀다"면서 "티 오마카세는 아니지만 비비비당에도 시그니처 메뉴로 구성된 코스 메뉴가 있는데 젊은 연인들이 자주 찾는다"고 했다. 티 오마카세는 1인당 평균 3만~5만원대의 가격으로 다양한 차와 전통 다과를 맛볼 수 있다. 실제 서울 강남, 신사동, 성수동 일대 티 오마카세는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2024.03.01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돼지고기·디저트…대구지역 '이색 오마카세' 모아보기
가심비 좋은 돼지고기 요리 '현방 '스시와 소고기는 진부하다면 돼지고기 오마카세로 눈을 돌려봐도 좋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현방'은 대구 최초 돼지고기 오마카세로 돼지의 여러 부위를 다양한 조리법을 통해 내놓는다. 1인 기준 런치 3만9천원, 디너 5만9천원으로 가격도 합리적이라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가 좋다.런치는 8종, 디너는 10종의 음식으로 구성돼 있으며 식사 완료까지는 각각 1시간 내외,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지난달에는 △앞다릿살 냉제육 △뒷다릿살 타르트 △목살·가부리살·갈매기살 숯불구이 △솥밥 삼겹살 등을 선보였다. 특히 삼겹살 솥밥〈작은 사진〉은 현방의 시그니처 메뉴로 삼겹살을 이용한 불향 가득한 솥밥에 된장·바지락이 들어간 국이 입맛을 돋운다. 현방은 주류도 판매하는데 와인의 종류가 다양하니 반주를 즐긴다면 눈여겨볼 만하다. 예약은 네이버, 캐치테이블, 전화로 가능하다. 친절한 디저트 전문 '문화시민 대구'대구 중구 삼덕동에 위치한 '문화시민 대구'는 디저트 오마카세다. 디저트 전문점답게 입구에서부터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손님을 반긴다. 3~4가지의 디저트를 코스로 즐길 수 있으며 커피·음료, 다른 디저트도 추가로 주문 가능하다. 일반적인 오마카세와 달리 예약을 하지 않아도 코스 메뉴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가게 측의 친절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예약도 1시간 단위로 받고 있어 방문 시간 선택의 폭이 넓다.지난달 코스 메뉴로는 딸기철과 발렌타인데이 주간을 맞아 △딸기 샐러리 파블로바〈작은 사진〉 △들기름·김 △초콜릿 트리오 △라즈베리 마카롱·트러플 쿠키슈·데일리 소르베 등을 내놓았다. 오는 2일에는 파인다이닝 '셀리우'와 협업해 셀리우에서 컬래버 디너 메뉴를 선보인다. 셀리우의 메인 메뉴 두 가지, 문화시민 대구의 디저트 메뉴 두 가지다.레트로 감성 자극 카페 '소명커피바'대구 중구 남산동 '소명커피바'는 '레트로' 한 커피 오마카세다. 세탁소 건물을 개조한 곳으로 세탁소의 오래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낡은 미닫이문 등 독특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카페 내부도 오래된 타자기와 시계 등 빈티지한 소품들로 가득해 '감성샷' 찍는 재미도 쏠쏠하다.오마카세는 주 1~2회 소수정예로 운영되기에 예약이 필수다. 예약은 인스타그램 메시지로만 받고 있다. 매달 하나의 주제가 정해지며 주제에 맞게 커피와 디저트가 제공된다. 지난달에는 '버섯'을 주제로 △표고 캐러멜 라테 △트러플 파인애플 피즈 △발효 버섯을 곁들인 크림·아몬드 밀크티 △부드러운 브루잉 커피 △시나몬·정향을 곁들인 브라우니로 메뉴가 구성됐다. 글·사진=조현희기자지난달 25일 오후 8시 돼지고기 오마카세 '현방'. 20·30대 손님이 주를 이뤘다.대구 중구 삼덕동 디저트 오마카세 '문화시민 대구' 바 좌석.대구 중구 남산동 '소명커피바'는 커피 오마카세를 주 1~2회 소수정예로 운영한다.
[위클리 키워드] Z세대 취준생 10명 중 6명 "연봉 낮아도 야근·스트레스 적으면 OK"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10명 중 6명은 연봉이 낮아도 스트레스와 야근이 적은 직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진학사 캐치가 Z세대 취업준비생 1천7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야근 제로·스트레스 제로, 그러나 초봉은 3천만원'과 '매일 야근·스트레스 가득, 그러나 초봉은 5천만원'이라는 두 가지 항목 중 62%가 전자를 선택했다.회사가 직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를 시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90%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서'가 36%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업무 효율이 향상되기 때문에'(34%), '육체적·심리적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해서'(16%),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아서'(14%)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응답자의 41%는 최근 무기력증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기업이 해주길 바라는 '웰니스(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양호한 상태) 복지' 형태로는 '영양제나 운동시설 제공'이라는 응답이 45%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워케이션·장기휴가'(43%), '심리치료·명상'(39%), '아침·건강 식단 제공'(36%), '개인 시간 보장'(23%) 등이 뒤를 이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동 추 거문고 이야기] 〈4〉거문고와 중국 칠현금, '선비의 악기' 거문고…진나라가 고구려에 전한 칠현금이 시초
중국의 금(琴)은 악기가 차지하는 위상이나 상징성 등에서 우리나라의 거문고와 자주 나란히 거론된다. 금과 거문고는 단순히 그 선율을 즐기기 위한 악기가 아니라, 지식인들이 마음수행의 도구이자 반려로 삼았던 악기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금을 군자(君子)의 악기로 떠받들었고, 우리나라의 거문고는 선비의 악기로 대접받았다. 그리고 우리의 옛 기록에는 거문고를 한자로 표현할 때 '금(琴)'으로 표기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중국의 금인 칠현금 역시 '금(琴)'으로 표기했다.◆중국 금(琴), 칠현금중국의 대표적 전통 악기인 금(琴)은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현악기인데, 일곱 줄로 된 칠현금(七絃琴)이다. '고금(古琴)'이라고도 불린다. 금의 길이는 110㎝ 정도. 거문고의 3분의 2 정도 된다. 금은 일곱 줄로 되어 있어서 '칠현금(七絃琴)'이라 불린다. 고대의 다섯 줄 금은 '오현금(五絃琴)'으로 불리었다.오현금은 4천300년 전 중국 고대의 태평성대 시대로 일컬어지는 요순시대의 순임금이 처음 만들어 연주했다고 한다. 칠현금의 전신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옛날 그림 '남훈전탄금(南薰殿彈琴)'은 순임금이 황제의 처소인 남훈전에서 오현금을 타면서 노래로 백성의 고단함을 달랜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 중앙에는 소박한 초옥이 있고, 초옥 안에서 순임금이 오현금을 타면서 노래를 부른다. 신하들은 방 안과 섬돌 아래에 서서 순임금이 연주하는 오현금 소리를 듣고 있다.순임금은 '오현금을 타면서, 남풍이란 시를 노래하며 천하를 다스렸다(彈五絃之琴 歌南風之詩 而天下治)'고 전한다. '남풍(南風)' 시는 다음과 같다. '훈훈한 남풍이 불어오니, 우리 백성들의 시름을 풀어줄 만하네/ 남풍이 때맞춰 불 때 우리 백성들의 재물도 넘쳐나겠구나(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칠현금은 오현금에 중국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 각각 문현(文絃)과 무현(武絃)을 한 줄씩 더하여 칠현의 금이 되었다고 한다. 즉 순임금 시절에는 오현금이었고, 주나라 때 칠현금이 나와 이후로 유행하게 된 것이다. 중국 진(晉)나라가 고구려에 전해준 거문고도 칠현금이었다. 금의 앞판은 오동나무, 뒤판은 밤나무로 만든다. 보통 검은 칠을 한다. 줄은 따로 기러기발 등으로 받치지 않고, 대신 몸통 위 한쪽에 흰 조개껍질 등으로 만든 지판(徽)을 표시하고 그 자리를 왼손으로 짚어 소리 낸다.동양의 전통적 세계관이던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반영하여, 위판은 곡면으로 둥글게 하고 아래판은 평평하게 만든다. 악기의 모든 치수에는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금은 거문고와 같이 같은 줄에서도 어느 곳을 짚느냐에 따라 음이 달라진다. 삼국사기의 '거문고는 중국의 금을 본떠 만들었다'라는 기록이 아주 신빙성 없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구조는 확실히 다를지라도 줄을 집는 방식인 안현법을 비롯한 연주법 등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금을 연주할 때는 보통 악기를 받침대인 탁자에 올려놓고 손으로 짚으면서 뜯는다.◆차이점과 영향거문고와 중국 금은 많은 차이가 있다. 줄의 수만 다른 것이 아니다. 거문고는 괘와 안족이 있는데 반해, 중국 금은 이런 음 높이 조절용 부속품이 따로 없다. 그리고 일곱 줄 모두 악기 위판에 직접 닿도록 손가락으로 짚어 연주한다. 줄을 짚을 위치를 가늠하기 편하도록 몸통 위 한 편에 자개나 옥돌 등으로 만든 '휘(徽)'를 일렬로 박아 놓았다.거문고는 연주할 때 술대를 사용하지만, 중국 금은 다른 도구 없이 맨 손가락으로만 탄다. 거문고는 대체로 바닥에 앉아, 악기 한쪽 끝을 무릎 위에 걸치고 반대쪽 끝을 바닥에 닿도록 놓고 연주한다. 하지만 중국 금은 탁자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연주하는 것이 원칙이다. 거문고 여섯 줄의 조율은 음 높이 순이 아니지만, 중국 금의 일곱 줄은 가장 바깥 줄을 최저음으로 하여 안쪽(연주자 몸쪽)으로 올수록 높아지도록 조율한다.금은 중국 문명과 역사를 같이할 정도로 오래되었고, 상류층과 지식인 계층에게 특히 사랑받은 악기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는 '악기의 아버지' '성인(聖人)의 악기' 대접을 받아 왔다. 한국 전통음악에서 거문고가 누리는 지위와 상징성은 이런 중국 금의 지위를 많이 물려받았다. 중국 한나라 때인 서력기원 전후부터 쓰인 '금(琴)이란 사악함을 금(禁)하는 것이다(琴者 禁也)'라는 말도 그대로 수용되었다. 악기 구조에서 위판이 곡면이고 아래판이 평평한 것은 하늘이 둥글고 땅이 반듯함을 각각 상징하고, 거문고의 문현과 무현은 중국 고대 성인들인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이름에서 유래한 점 등은 중국 금의 영향이다.한국의 풍류방(風流房) 음악에 중국 금이나 금론(琴論)이 들어온 예도 있다. 중국 금의 덕목인 '오능(五能, 연주해도 되는 다섯 가지 상황)' '오불탄(五不彈, 연주하면 안 되는 다섯 가지 상황)' 등은 17세기 말부터 한국의 거문고 악보들에 마치 거문고의 덕목처럼 인용되어 왔다.◆'금(琴)'자의 해석우리나라 옛 한문 기록에서 그냥 '금(琴)'이라고만 한 경우 정확히 무슨 악기를 지칭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같은 '금(琴)'자로 표현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의 금인지 한국의 거문고인지 가려서 읽을 필요도 있다. 악기의 구조나 연주 방식 등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고 분명히 다른 악기이지만, 거문고와 금이 한국과 중국에서 차지하는 문화적인 위치가 비슷해 혼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 기록에서 거문고, 가야금 등의 현악기를 가리킬 때 그냥 '금(琴)'이라고만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부분은 앞뒤 문맥에 의해 무슨 악기를 말하는지 알 수 있다. 분명하지 않고 혼란스러울 때도 있는데, 앞뒤 맥락이나 그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 김봉규<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중국 청나라 선양고궁(瀋陽古宮)에서 궁정악기로 사용하던 흑칠(黑漆) 칠현금. 건륭 8년(1743년) 제작, 길이 101.2㎝. '금합자보(琴合字譜)'에 실린 거문고 그림. 금합자보는 16세기 문신이자 음악이론가인 안상이 1572년에 편찬한 거문고 악보이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오마카세 (1) 전문 셰프가 준비한 나만을 위한 테이블
그런 날이 있다. 고단한 하루, 퇴근 후 혼자 맛있는 음식에 맥주 한 잔을 걸치고 싶은 날. 고생한 나에게 주는 보상이랄까. 맥주 값까지 합하면 한 끼에 몇만 원을 호가하지만 이상하게 아깝지 않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되니까.가끔 근사한 식당에 가거나 이색 음식을 먹을 땐 단순히 음식만 즐기지 않는다. 이 특별한 경험을 기록하고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감성적인 인테리어나 예쁜 공간이 있으면 그것도 함께 찍는다. 식사가 끝나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찍은 사진을 올리며 지인들과 소통한다.이제 소비자들은 식당을 고를 때 음식의 맛과 가격만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대접받는 느낌이 드는 레스토랑에 방문하는 등 서비스의 질까지 중시하는 이들도 나온다. 젊은 세대에서는 SNS에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인테리어가 예쁜 식당을 찾는 이들도 많다.최근 몇 년간 대중을 깜짝 놀라게 한 F&B 트렌드가 있다. 바로 '오마카세'다. 오마카세는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정해진 메뉴가 따로 없이 그날의 음식을 주방장이 알아서 만들어 내놓는 일본식 코스 요리다. 요즘은 코스 요리 식당이란 의미로도 쓰인다. 고급 요리에 속하다 보니 한 끼에 몇십만 원을 호가하는 곳들이 많은데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대부분의 오마카세는 소수의 손님만 받아 예약이 필순데, 찾는 이들이 상당히 많아 '스강신청'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오마카세 중에는 스시를 메인으로 한 곳이 많은데, '스강신청'은 스시와 수강신청을 붙인 단어로 대학 수강신청만큼 오마카세 예약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의미다.더 놀라운 건 오마카세 열풍이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 사이에서 거세다는 점이다. 수입이 비교적 적은 세대에서 비싼 식당이 인기를 끄는 현상이 아이러니하다. 이들은 회식 장소로도 선호했다. 캐치가 지난해 12월 Z세대 2천6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선호하는 회식유형은 '딱 1시간만 진행하는 간단한 회식'이 33%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다음으로 '오마카세·와인바 등 맛집 회식'(30%)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하지만 오마카세 열풍은 금방 끝날 것 같았다. 지난해 9월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 대비 3.4포인트 하락한 99.7을 기록했다. 주 메뉴로 스시가 많은 특성상 같은 해 8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도 수산물 소비에 영향을 미쳐 오마카세는 금방 사라질 것으로 보였다.하지만 이를 대신하는 듯 비교적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오마카세가 곳곳에서 등장하면서 오마카세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식사보다 부담이 적은 카페·디저트 전문점·찻집 등 다양한 업종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구 곳곳에도 다양한 이색 오마카세가 등장하고 있다. 디저트 오마카세에 방문하기 위해 포털에 '대구 디저트 오마카세'란 키워드를 검색하니 여덟 곳이 떴다.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오마카세가 꾸준히 사랑 받는 이유는 뭘까. 특히 지갑이 얇은 젊은 세대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가 궁금해 기자가 직접 식사 오마카세에 가봤다. 또 최근 등장하는 이색 오마카세들도 함께 살펴봤다. 이를 바탕으로 고물가 시대에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채울 수 있는 대구 오마카세 몇 곳도 소개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오마카세 〈게티이미지뱅크〉
[세계를 보는 창] 쪼그라드는 경제대국, 日 '엔저 역풍'에 소비 감소… 경기 침체 수렁
현재 일본은 수출의 증가와 외국인 여행객의 증가라는 엔(円)저 현상의 장점보다 소비·투자의 감소라는 엔저 현상의 단점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은 지난해 상반기 증가를 기록하자마자 3분기에 바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렇듯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로 인한 수입품의 가격 상승, 이로 인한 물가·비용의 상승과 소비·투자의 감소라는 단점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는 애초에 국내총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한 국가의 경제적 기반이라고 볼 수 있는 소비·투자가 탄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엔저로 원자잿값 상승하며 기업투자 감소연공서열에 젊은층 저임금 개인소비 '뚝'기시다 총리 경제대책 '성장·분배 호순환''젊은층 과감한 금전 지원' 빠져 효과 없어그렇다면 일본의 경제적 기반을 탄탄하지 않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인지,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있는지, 또한 현재 세계 3위인 일본의 경제 규모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갈지 한 번 알아보자.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실질 국내총생산 기준 2023년 3분기 일본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마이너스 0.5%를 기록하면서 두 분기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이 감소한 배경에는 개인소비의 위축과 기업투자의 부진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선 기업투자가 감소한 원인으로 엔저 현상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상승 등 비용 부담이 꼽힌다. 또 개인소비가 줄어든 데는 공급 감소에 따른 물가 상승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부분은 일본 국내총생산의 55%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개인소비 감소다. 개인소비가 감소한 이유는 연령에 따른 임금 격차라는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로 이어지는 일본 노동시장의 문제가 배경에 깔리고 있다. ◆낮은 임금에 시달리는 일본의 젊은 층일본 기업들은 1991년 부동산 버블이 붕괴한 이래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라는 색채가 많이 옅어지고 있다. 하지만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은 일본 기업들 속에서 여전히 관행으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종신고용을 하는 일본 기업들은 위기 상황에 대비해 직원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고 있다. 이와 함께 장기 불황과 엔고 현상으로 인한 디플레이션으로 일본 기업들은 비용 상승을 쉽게 가격으로 전가하지 못했고, 비정규직의 증가도 한몫하며 젊은 층의 임금은 오늘날까지도 유난히 낮은 편이다.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3월에 발표한 '임금구조 기본 통계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만20~24세 일본인의 월급은 21만 8천500엔(약 191만 원)에 그쳤고, 만25~29세의 월급도 25만 1천200엔(약 220만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13년부터 오르기 시작한 맨션의 가격은 2022년 기준 한 채당 평균 5천121만엔(약 4억 5천만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일본의 젊은 노동자가 20대 동안 일을 해 번 돈을 모두 저축해도 구매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다.맞벌이를 통해서 가정을 이루려 해도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로 인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남성은 연령이 올라갈수록 그나마 임금이 올라가지만 여성의 경우 연령이 올라가도 임금의 상승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임금구조 기본 통계조사'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 모두 만55~59세에 가장 높은 월급을 받게 되는데 남성의 경우 월급이 41만 6천500엔(약 364만원)이었던 반면 여성은 28만엔(약 245만원)에 그쳤다. 임금 격차와 함께 직장 내 보이지 않는 연령·성별에 따른 차별까지 고려한다면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해진다. 한마디로 노동시장에서의 연령·성별 등에 따른 임금 격차와 차별로 인해 일본은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가 만연한 국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는 자연스레 소비의 감소로 이어지고 현재까지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의 대책…아베 전 총리의 복사판?그렇다면 현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어떤 해결책을 내놓고 있을까. 기시다 총리의 경제 대책의 큰 틀은 '성장과 분배의 호(好)순환'이다. 여기서 분배란 임금의 상승을 말한다. 임금의 상승을 통해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상승시키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의 상승을 통해 물가를 적절하게 상승시키고 물가의 적절한 상승을 통해 기업의 실적 강화와 기업의 신규 투자를 끌어내고 이것이 또다시 임금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호순환을 말하는 것이다. 첫 단추인 임금의 상승을 제대로 꿰기 위해 기시다 총리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 인상을 단행한 기업에 법인세를 감세해 주는 등 각종 혜택을 주고 적자에 시달리는 중소·영세기업도 임금의 인상을 단행할 수 있도록 이월공제조치 등 각종 대책을 펼치고 있다.하지만 기시다 총리가 시행하고 있는 경제 대책은 대부분 과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시행했던 대책이다. 아베 전 총리의 경제 대책이 분배는 없고 성장만 있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베 전 총리 집권 2기(2012~2020년) 때의 경제 대책으로는 2013년에 발표한 '3개의 화살(대담한 통화정책, 기동적 재정정책, 민간투자를 환기하는 성장전략)'도 있지만 이어 2015년에 발표한 '신 3개의 화살(희망을 만들어내는 강한 경제, 꿈을 잇는 아이 키우기 지원, 안심되는 사회보장)'도 있다. 그리고 '신 3개의 화살'에 이미 '임금의 인상과 수요의 확대를 통한 성장과 분배의 호순환'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임금을 인상하는 방법 또한 임금의 인상에 적극적인 기업에 세액공제를 해 주는 등 기시다 총리와 유사한 방법이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의 경제 대책으로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일본의 경제성장률 반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기시다 총리는 '연공서열의 타파'나 '젊은 층에 대한 과감한 금전적 지원' 등이 빠진 이미 한 번 실패한 경제 대책을 되풀이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성장뿐만 아니라 분배도 있고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시한다는 구호만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저출산 대책에 있어서는 저출산 대책 자체가 어디까지나 사후 대책인 측면이 있고, 기시다 총리가 시행 중인 저출산 대책(조건 없는 보육원 입소와 유아 무상교육의 확대 등) 또한 아베 전 총리의 저출산 대책(보육원의 확대와 유아 무상교육의 확대 등)처럼 젊은 층이 출산에 대한 생각을 바꿀 만큼 매력적인 것이 아니기에 저출산 대책을 통한 출산율의 반등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아베 전 총리 집권 때처럼 기시다 총리의 집권 때도 경제성장률의 반등은 크게 없을 것으로 보이고 국내총생산의 축소 경향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제통화기금은 지난 10월 2023년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이 독일에 역전돼 세계 4위로 한 계단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2023년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은 전년보다 0.2% 감소한 4조2천308억달러로 예상되지만, 얼마 전에 발표된 2023년 독일의 명목 국내총생산은 4조5천억달러 수준으로 일본을 웃돌 거라는 것이다. 엔저 현상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일본 국내총생산의 수량 자체가 감소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2010년 중국에 밀려 3위가 된 데 이어, 이제 독일에 밀려 4위가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은 2026년에는 올해 세계 1위의 인구 대국이 된 인도의 명목 국내총생산이 3위로 오르면서 일본은 5위로 주저앉을 것이라고도 전망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젊은 층의 빈곤으로 일본보다 더욱 극심한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가 진행 중인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현재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정민욱 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스(일본)대구 수성구 대구은행 본점 영업부 행원이 환전을 위해 엔화를 세고 있다.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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