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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자의 혼삶꿀팁] 자취방 구하기, 채광·방음·수압·배수 체크 필수…대중교통 이용 편의성도 따져봐야
1인가구 삶의 시작은 공간이다. 혼자 살 자취방을 마련하면서부터 시작되기에 이사갈 집을 체크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공간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집에 사는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좋은 자취방을 구하기 위해 확인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채광만큼은 꼭 보자. 집 안 창을 통해 햇빛이 잘 들어오는지 알아봐야 한다. 대낮에 확인하면 가장 좋다. 가까이에 건물이 없고 남향일수록 좋다. 다만 창문이 큰 오피스텔의 경우 정남향은 추천하지 않는다. 햇빛이 상당히 강해 여름에 아주 더울 수 있다. 경험담으로, 블라인드 사이를 뚫고 쨍한 햇빛이 들어온다. 방음이 잘 되는지 테스트하는 것도 필수다. 벽을 쳐보자. 얇은 벽이나 가벽의 경우 '쿵' 소리가 크게 난다. 이 경우 방음이 잘 안 되는 집이다. 신축 원룸일수록 심하다. 주변에 어떤 건물이 있는지도 보자. 치킨집·중국집 등이 많거나 대학가 원룸촌이면 배달이 자주 이뤄져 오토바이 소리가 들릴 수 있다. 큰 병원도 마찬가지다. 새벽에 앰뷸런스 소리가 자주 들릴 가능성이 높다. 화장실도 들어가보자. 화장실에도 창문이 있으면 좋다. 환기가 쉬워 곰팡이 생기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수압 체크도 필수다. 간혹 샤워기 물이 잘 나오지 않거나 배수구에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우 자주 막혀 언젠가 업체를 불러서 수리해야 할 수 있다. 돈도 들고 귀찮아진다. 운전을 하지 않는다면 교통편도 확인하자. 근처 지하철 역이나 버스 정류장이 몇 분 거리에 있는지 보자. 교통이 편리하면 생활 반경이 넓어지고 기동력도 챙길 수 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2158868670 혼자 살 자취방을 마련할 계획이라면 이사갈 집의 채광, 방음, 수압, 교통편 등을 체크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2024.07.26
[동 추 거문고 이야기] <14> 김홍도와 거문고
너무나 유명한 조선시대 화가 단원 김홍도. 풍속화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산수화, 인물화, 신선도, 화조화, 불화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독자적인 회화를 구축한 화가이다. 강세황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된 후 영조와 정조 등의 초상화를 그린 어진화가로도 활약했다. 그런 그가 여러 악기에도 뛰어난 인물임은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시서(詩書)에도 능했던 그는 풍류인이었다. 퉁소, 생황, 비파 등 악기도 잘 다뤘는데, 거문고 타는 것도 매우 즐겼다.강세황은 자신의 시문집인 '표암유고(豹菴遺稿)' 중 '단원기'에서 김홍도의 그림 실력에 대해 '못 그리는 것이 없다. 인물, 산수, 신선, 부처, 꽃과 과일, 동물과 벌레, 물고기와 게 등이 모두 묘한 경지에 이르러, 옛날의 대가들과 비교해도 그에 필적할 만한 자가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풍모와 풍류에 대해서는 '김홍도의 품격은 얼굴이 맑고 정신이 깨끗하여, 고상하며 세속을 초월한 듯 평범하지 않다. 성품 또한 거문고와 피리의 맑은 소리를 좋아했고, 꽃 피고 달 밝은 밤이면 가끔 두어 곡 연주하기를 즐겼다. 그의 연주 솜씨는 옛 사람에 못지않고,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아 진이나 송나라의 고매한 인물에서 그와 같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김홍도가 거문고를 정말 좋아하고 그 연주를 즐겼음을 알 수 있는 대표적 그림이 있다. 김홍도가 그린 단원도(檀園圖)인데, 그가 직접 거문고를 연주하며 풍류를 즐기는 그림이다. 김홍도의 아호는 여럿이지만, 그 중에 제일 많이 쓴 게 단원(檀園)이다. 단구(丹邱), 서호(西湖), 고면거사(高眠居士), 취화사(醉화士), 첩취옹(輒醉翁) 등을 사용했다. 그중에 단원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의 아호이다. 그런데 이 아호는 단순히 이름의 별칭인 아호로서만 기능했던 건 아니었다. 그가 살았던 초당의 이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1781년 4월 김홍도 살던 초당 '단원'서선배 화가 강희언-여행가 정란과 풍류강희언 세상 뜬 후 재회 추억을 화폭에그림 상단엔 사연·소회 등 담아낸 화제당시 정란이 읊은 詩 두 편도 적어 넣어김홍도 거문고 사랑 짐작되는 대표작품◆김홍도 그림 '단원도'단원도(檀園圖)는 1781년 4월 뜻이 맞는 세 사람이 김홍도의 집 단원에서 가진 모임을 추억하며 1784년에 그린 작품이다. 그린 이는 김홍도. 모임 구성원은 김홍도, 강희언, 정란이다. 세 사람은 당시 단원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784년 12월, 뜻밖에 정란이 영남 지방 안기역 찰방(察訪)으로 있는 김홍도를 유랑 중에 찾아왔다. 객지에서 벼슬을 하는 김홍도에게 정란의 방문은 가뭄에 단비 같이 반가운 일이었다. 당시 강희언은 저 세상의 사람이 된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그 옛날의 일을 회상하며 닷새 동안 술로 회포를 푼 후, 김홍도가 예전 자신의 집에서 모였던 일을 떠올려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그 소회를 화제로 남겼다. 세 사람이 단원에서 가졌던 즐거운 시간을 회상하고,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과 소회 등을 담았다. 정란이 그날 지은 시도 함께 적어 넣었다.김홍도가 단원도 상단에 남긴 글인 화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창해(滄海:정란) 선생께서 북으로 백두산에 올라 변경까지 다다랐다가 동편 금강산으로부터 누추한 단원(김홍도의 집)으로 나를 찾아주셨다. 때는 신축년(1781) 청화절(4월1일)이었다. 들의 나무에는 햇볕이 따스하고, 바야흐로 만물이 화창한 봄날이었다. 나는 거문고를 타고, 담졸(澹拙) 강희언은 술잔을 권하고, 선생께서는 모임의 어른이 되셨다. 이렇게 참되고 질박한 술자리를 가졌다. 어언 간에 해가 다섯 차례나 바뀌어 강희언은 지금 세상에 없는 옛사람이 되고, 가을 측백나무에는 이미 열매가 열렸다. 나는 궁색하여 집안을 돌보지 못하고, 산남에 머물며 역마를 맡은 관청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해가 한 차례 돌아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홀연히 선생을 만나게 되니 수염, 눈썹, 머리칼 사이에는 구름 같은 흰 기운이 모였으되, 그 기력은 늙어서도 쇠하지 않으셨다.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올봄에는 제주도의 한라산을 향하리라 하니 참으로 장하신 일이다. 다섯 밤낮으로 실컷 술을 마시고 원 없이 이야기하기를 단원에서 예전에 놀던 것처럼 하였더니 슬픈 느낌이 그 뒤를 따르는지라, 끝으로 단원도 한 폭을 그려 선생에게 드린다. 그림은 그 당시의 광경이고, 윗면의 시 두 편은 이날 선생께서 읊으신 것이다. 갑진년(1784) 12월 단원 주인 김사능이 그린다.'화제 앞에 쓴 정란의 시 두 편은 이런 내용이다. '금성 동편에 지친 노새 쉬게 하고(錦城東畔歇蹇驢)/ 석자 거문고로 처음 만남 노래했네(三尺玄琴識面初)/ 잔설 남은 따사로운 봄날 한 곡 뜯으니(白雪陽春彈一曲)/ 푸른 하늘 아득해 하늘과 바다 텅 빈듯하네(碧天寥廓海天虛)' '단원 거사는 풍채가 좋고 자세가 바르며(檀園居士好風儀)/ 담졸 그 사람은 장대하고 기이했네(澹拙其人偉且奇)/ 누가 흰 머리 늙은 나그네를 영남 땅으로 이끌어(誰敎白首山南客)/ 술잔 부딪히고 거문고 타 미치게 만들었나(拍酒衝琴作許癡)'.그림을 보면 김홍도의 집이 자리 잡은 터는 계곡의 거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산자락인 듯하다. 초옥(草屋)은 그 전체적인 규모를 다 드러내진 않았고, 세 사람의 주인공과 시중을 드는 시자가 있는 마루가 화면의 중심이다. 그 안쪽으로 단원의 방이 연결되어 있고, 그 방 벽에는 당비파로 보이는 악기가 걸려 있다. 방 한쪽에는 서책이 쌓여있고, 화병에는 꽃 대신 공작의 깃털이 조화처럼 꽂혀 있다. 연이 자라는 연못이 있는 마당에는 오동나무, 소나무, 대나무, 파초 등이 심겨져 있다. 또 풍란이 깃든 괴석도 자리하고 있고, 마당 귀퉁이에는 돌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평상이 나무 아래 놓여있다. 고고한 자태의 학 한 마리가 앞마당이 제집인 양 노닐고 있고, 담장 앞에는 큰 수양버들이 수많은 연둣빛 줄기를 운치 있게 드리우고 있다. 사립문 밖에는 말과 함께 마부 한 명이 무릎에 턱을 괴고 앉아 쉬고 있다. 정란이 타고 온 말일 것이다. 늦은 봄날, 마당의 학이 거문고 소리를 듣고 있는 가운데, 마루에 앉아 풍류를 즐기고 있는 주인공 세 사람을 보자. 거문고 타는 이는 단원 김홍도이고, 기둥에 기대고 앉아 부채를 살살 부치고 있는 이가 담졸 강희언이다. 그 옆에 정란이 거문고 가락을 감상하며 시를 구상하고 있는 듯하다. '인왕산도' '석공도' 등을 남긴 화가 강희언은 대선배 화가인 겸재 정선과 이웃하여 지내면서 그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7세 아래인 김홍도와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다. 정란은 당대 최고의 여행가였다. 그는 서른 살부터 조선 팔도를 구석구석 탐방했는데, 김홍도와 각별한 인연을 나누었던 모양이다. 화제에서도 밝혔듯이 김홍도의 '단원도'는 정란을 위해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봉규〈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김홍도가 자신의 집에서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 그림인 단원도(壇園圖). 1781년 뜻이 맞는 강희언, 정란과 함께 가진 즐거운 자리를 추억하며 김홍도가 1784년에 그린 작품이다.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제공〉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홍하상의 기업인 열전] 삼성가 이야기 〈12〉 사업 성공의 시작
◆메모로 하루일과 시작세간에 일부 알려진 대로 이병철은 메모광이다. 그는 살아 생전에 어떤 사업을 하든지 떠오른 구상이나 전문가의 조언, 해야 할 일 등을 언제나 메모로 정리했다. 그 메모 습관이 시작된 것이 바로 제일모직 건설 때부터였다. 당시 조선일보 선우휘 주필과의 1984년도 인터뷰를 본다. "제가 기상이 여섯시 전후입니다. 꼭 같은 시간에 일어나죠. 시계같이 화요일엔 글씨 쓰고 수·금·일요일에는 꼭 골프를 치지요. 일어나서 제일 먼저 목욕을 하지요. 목욕을 하고 정신이 깨끗해지면 그날 할 일을 메모를 합니다. 열다섯가지, 열여섯가지가 저절로 생각납니다. 어제 메모했던 것을 찾아와서 대조하여 보충을 합니다."즉 큰 틀을 그리고 작은 일은 메모를 통해 실천해나갔던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최우석 소장은 이병철의 메모를 이렇게 증언했다. "선대 회장의 메모수첩에는 그날 챙겨야 할 일, 미결 과제, 알아봐야 할 일, 재확인해야 할 일, 만날 사람과의 약속, 점심식사를 같이 할 사람, 전화해야 할 곳, 방문할 곳, 구입할 물건, 상을 줄 사람, 벌을 줄 사람, 구입할 책의 제목,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본 자료 요약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이른아침 사업구상·미결과제 등 기록출근 후엔 메모 펴놓고 하루 일과 진행시간 분초로 나눠쓰며 정확한 일처리그의 메모 경영 삼성 매뉴얼로 정착사업성 검토·기술도입 점검에 적용치밀하고 세세한 지침 성장 원동력이병철은 그런 메모를 토대로 삼성 본관 28층 집무실에 출근하면 준비된 메모를 펴놓고 그날의 일과를 진행해나갔다. 전경련 부회장을 지냈던 손병두의 증언에 따르면 이병철은 '손군 20분'이라고 메모에 적어 놓았으면 반드시 20분만 면담을 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병철은 정확하게 일했으며 메모를 통해 시간을 분초로 나눠 아껴 썼다. 그리고 퇴근 무렵엔 메모의 내용 중에 실천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다시 수첩에 옮겨써서 집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이병철의 메모 정신은 오늘날에는 삼성의 경영 매뉴얼로 완전히 정착했다. 삼성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사업을 벌일 때 점검하는 '90항목의 사업성 검토'로 자리 잡은 것이다.◆90항목의 사업성 검토그가 제시한 사업성 검토 지침은 대략 대항목 20개와 소항목 90개다. 그것을 크게 나누면 4가지로 압축할 수있다. 첫 번째는 사업성 검토 지침, 두 번째는 환경분석, 세 번째는 자금 소요 규모 및 조달, 네 번째는 시너지 효과 등이다. 먼저 사업의 내용 검토를 보면 새로 벌이는 사업이 삼성의 경영이념과 합치하고 있는가, 기업의 목적과도 부합하고 있는가의 여부와 기존의 제품보다 품질 향상의 효과가 있는가, 또 제품이 생산되고 난 후 가격인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국민경제에는 기여할 수 있는가 등의 소항목으로 구분돼 점검된다. 또한 기존의 시장규모와 향후 시장규모전망이 검토되고, 대기업으로서 과연 이러한 사업을 해야 하는지의 적합성도 검토된다.두 번째는 환경분석이다. 여기에서는 과거 10년 전부터 향후 10년에 걸친 국내외 수급실적 및 전망 등이 집중 검토된다. 현재의 경기, 투자동향, 기호의 변화, 대체상품의 동향 등 제반 요인들이 구체적인 데이터에 근거해서 평가된다. 또 경쟁사와 자사의 제품비교를 통한 강점과 약점, 시장의 특성과 구조파악, 요소기술의 개발 및 도입 가능성 등 기술적 요인 분석도 검토의 대상으로 그에 따른 분석보고서가 작성된다.세 번째는 투자에 따른 자금소요 규모 및 그의 조달이다. 말하자면 설비구매는 최적의 염가로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용수의 공급이나 전력의 조달, 항만이나 거점 도시로부터의 소요시간 등 입지조건이 검토된다. 또 원료공급의 안정적 확보 여부와 유사시의 공급선 다변화, 작업자의 안전성, 폐수처리, 공해문제 및 작업환경 요인 등이 검토되고, 여기에 다시 시장점유계획과 판촉, 수출대상국의 수입 및 산업정책, 핵심인력의 확보 가능성과 경영자의 확보 여부도 판단해야 한다.네 번째는 시너지 효과의 문제, 즉 기존에 추진 중인 사업과 수평·수직적인 결합성을 고려해서 생산·기술·판매·조직·인력·활용 면에서의 시너지 효과가 있는가가 검토된다. 또 공정 거래를 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 각종 인허가 시 문제는 없는지도 검토된다. 이어 외국회사와의 합작이나 사업을 신규로 인수할 경우에는 그 대상회사의 현황과 경영상태가 객관적으로 평가돼야 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조사분석이 끝나면 다시 원점으로 가서 신규 사업에 대한 최종점검을 한다.그것을 보면 ①스스로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서 원인을 분석하고, 향후 경쟁관계에 대해 세밀히 검토한다. ②사원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대로 따른다. 오늘날에도 삼성은 담당자의 권한이 사장보다 더 셀 때가 많고 사원들의 중지가 곧 회사의 견해로 채택되기도 한다. 이는 이병철 회장 시대 때부터의 오랜 전통이다. 이병철은 '중지수렴이 곧 합리판단'이라고 생각했다.이는 이병철의 중요한 경영철학 중의 하나다. 이병철이 중지를 모아 판단하게 된 것은 사업의 규모가 커지고 다양화되면서 기술이 혁신되지 않으면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는 추세를 보고 내린 나름대로의 방법이었다. 이병철은 평소에 결단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결단이라는 말은 회장 자신의 독단적인 결심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즉 그는 스스로의 결단을 통해 사업의 돌파구를 찾기보다는 충분한 조사를 거치고 여러 사람의 의견과 지혜를 모아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을 썼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도 모르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이 걸어가면 문수보살의 지혜가 나온다는 말처럼 이병철은 실무를 담당하는 현장 전문가들과의 충분한 토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했던 것이다.③100%의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착수하지 말아야 한다. 사업을 추진할 때 이병철이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는 착수하는 용기와 물러서는 용기였다. 사업을 추진할 때는 돌다리를 두드리는 듯한 검토와 검토를 계속하지만 일단 사업 계획이 확정되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과감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 이병철의 생각이었다. 이병철은 늘 그렇게 말해왔다. 어떤 사업이든 위험은 있다. 그러나 위험하다고 느낄 때는 무언가 문제점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제거하고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백퍼센트의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착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 속에 불안감이 있으면 전력투구를 못하게 됩니다. 배수진을 치고 백척간두에서 단호히 결행해도 예기치 못한 장애에 부딪히는데 하물며 출발부터 의심하고 망설이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입니다." 삼성은 초창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신규사업에 진출할 때 외국의 선진기업이나 기술보유회사와 손을 잡아왔다. 그 경우 삼성의 사원들이 검토해야 할 매뉴얼이 이병철 시대에 이미 만들어졌다. 이른바 '기술도입의 4원칙'이 그것이다.이병철은 1981년 일본의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의 회견에서 그 내용의 일부를 밝힌 바 있다. 그때의 인터뷰 내용의 핵심은 한마디로 '기술은 돈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보다 중요한 기술이라 하더라도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도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을 보면 ①최고경영자는 솔선수범해서 적극적으로 기술을 도입하되 그것을 효율적으로 살려야 한다. ②도입의 거점을 도쿄에 두고 세계특허 등 고급자료를 입수해서 활용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③삼성 내부의 힘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기존의 연구단체인 카이스트 등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④무조건 저자세로 도입하려 들지 말고 왜 그 기술에 접근하려는가 하는 목적을 명확히 해서 이익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런 세세한 지침은 오늘날 삼성을 만든 원동력 중 하나다. 이병철이 초기에 삼성의 계열사들을 하나씩 세워나가면서 썼던 메모는 훗날 삼성의 매뉴얼로 자리 잡아 전사원이 참고하고 검토해야 할 하나의 경영교과서가 된 것이다. 이런 좁쌀보다 더 치밀한 과정을 거쳐 이병철은 글로벌 대기업 삼성을 탄생시켰다. 작가·전경련 교수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그는 평생 독서광이었다. 직원들과 회의하는 이병철. 이병철은 메모가 습관이었다. 1950년 도쿄에서 이병철과 이건희 등 그의 3남. 홍하상 (작가·전경련 교수)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올 여름 패션 트렌드(2) 버뮤다 팬츠·링거티·레인부츠…편한 착용감·트렌디함 다 잡았다
양산·우산 기능 합친 '양우산'실용성 갖춘 초경량 3단 인기무릎 위 짧은 기장 '버뮤다 팬츠'K팝 스타 힙한 무드 연출로 이목복고바람 타고 재유행 '젤리슈즈'말랑한 소재로 장마철 신기 좋아목·소매 끝단 링 모양 배색 '링거티'티셔츠 매출은 전년 比 20% 증가남성도 사로잡은 잇템 '레인부츠'쇼트형 벗기 편해 맑은날에도 착용◆Y2K 바람으로 '젤리슈즈'도 유행패션계에 2000년대 복고풍 감성 'Y2K' 바람이 분 지 오래다. 헤드폰, 집게핀, 왕귀걸이까지…. 이런 추억의 아이템들은 어디까지 유행할까. 최근 2000년대 초 즐겨 신던 '젤리슈즈'도 재유행하기 시작했다. 2002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신발은 여름에 착용하기 좋은 형태로 고무나 폴리에틸렌 등의 말랑말랑한 소재로 만든 신발이다.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 레인부츠와 함께 장마철 활용하기 좋다.미니멀 패션 브랜드 '더로우'는 2024 서머 컬렉션으로 네트 모양의 젤리슈즈 상품들을 선보였는데, 출시 직후 모두 품절됐다. 젤리슈즈의 대표 브랜드인 '멜리사'도 1979년 창립된 이래 꾸준히 다양한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6월엔 갤러리아백화점 서울 명품관에서 팝업스토어도 진행했다. 그룹 블랙핑크 리사도 파리에서 멜리사의 '포지션 샌들'을 신은 사진을 공개해 화제가 된 바 있다.◆70년대 티셔츠의 귀환 '링거티'역시 유행은 돌고 돈다. 패션 플랫폼 W컨셉은 뉴트로(신복고) 열풍으로 '링거'(Ringer) 티셔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링거 티셔츠는 1970년 유행하던 패션으로 목과 소매 끝단에 링 모양 배색 디자인이 들어간 제품이다. 운동 경기에서 팀을 나누는 데 활용되던 디자인으로 1970년대엔 로큰롤 문화와 함께 유행했다. 당시 미국 드라마에도 종종 등장하는 아이템이다.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움으로 작용해 화제다.지난 1~13일 W컨셉에서 '링거티' 관련 검색량은전년 동기 대비 3배 늘었고, 티셔츠 카테고리 매출은 같은 기간 20% 증가했다. 최근 링거 티셔츠는 그래픽, 빈티지 프린트 등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으로 출시되고 있다. FRRW와 반원아틀리에, 씨타, 로브로브 등의 브랜드 제품이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올해도 인기…맑은 날도 '레인부츠' 신는다작년에 이어 올해도 레인부츠가 인기다. 다만 올해는 비가 오지 않아도 신기 좋은 짧은 길이의 실용적인 상품이 주목 받고 있다. 최근 레인부츠를 구매한 박모(24)씨는 "신고 벗기 편하고 쨍쨍한 날에도 패션용으로 신을 수 있어 쇼트 버전의 레인부츠를 구매했다"고 밝혔다.주로 여성들이 신던 레인부츠는 길어지는 장마에 남성에게까지 사랑을 받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운영하는 빈폴액세서리는 최근 2030층을 겨냥해 양산과 레인부츠 등으로 구성된 '애니웨어' 시리즈를 출시했다. 젠더리스(Genderless) 유행을 반영해 블랙, 카키, 베이지 등 어느 성별이나 무난하게 착용할 수 있는 컬러로 배치했다. 삼성물산에 따르면 레인부츠와 양산 모두 남성 고객의 구매액이 누적 매출의 20%를 넘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K팝 그룹 '에스파'의 윈터가 대학 축제 공연에서 착용한 버뮤다 팬츠. W컨셉 판매 링거 티셔츠.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복날 어떻게 보내시나요 (2) 육식·채식·휴식…입맛대로 지친 체력 끌어올-려!
전통적으로 복날엔 육류가 든 국물 요리로 몸보신을 한다. 하지만 최근엔 각자에게 복날의 의미가 다양해지면서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15일 초복 시기 만난 시민들은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복날을 즐기고 있었다. 오는 25일 중복, 다음 달 14일 말복에도 비슷한 풍경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크게 '육식파' '채식파' '휴식파'로 나눠 그 일상을 살펴봤다. ◆ 육식파 기존 복날 대표 메뉴는 삼계탕과 개장국이다. 전근대시대까지는 주로 개장국을 즐겼다. 하지만 개고기 식용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올해 초 개식용금지법도 통과되면서 '복날의 개고기'는 옛말이 됐다. 대신 삼계탕집이 북적인다. 치킨, 닭볶음탕 등도 꾸준히 인기다.젊은 세대에선 찾는 메뉴가 전보다 다양해졌다. 닭요리뿐만 아니라 피자, 짬뽕, 소고기국밥, 갈비 등 다양한 고열량의 음식을 즐기는 이들도 나온다. 대구 중구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 15일 초복에 평일 저녁인데도 테이블이 거의 다 찼다. 이제 복날이라 해서 꼭 삼계탕이나 닭고기를 먹는 건 아닌 것 같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그런 듯하다. 20~30대로 보이는 손님이 많이 왔다"고 했다. 대학생 강지원(21)씨도 이날 중식당에 가려다 소고기국밥 전문점을 방문했다. 강씨는 "복날은 여름을 맞이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음식을 먹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지만 주변 또래들은 입맛에 맞는 든든한 음식을 먹는 것 자체로 여름을 이겨내고자 하더라. 그래서 자연스레 한식, 중식, 양식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식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복날 대표 보양식은 삼계탕·개장국개식용금지법 통과에 개고기는 옛말고물가에 삼계탕 반값 HMR도 인기 집에서 복날을 기념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고물가 속 치솟는 외식물가로 보양식에서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찾기 위해서다. 지난 14일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영계와 수삼·찹쌀·마늘·밤 등 삼계탕에 들어가는 재료 7개 품목의 전체 재료비는 4인분 기준으로 3만2천260원이 필요하다. 1인분 기준으로 8천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다. 반면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대구 소재 음식점의 삼계탕 1인분 평균 가격은 1만6천167원, 경북 지역은 1만5천231원으로 나타났다. 5년 전인 2019년 6월에 각각 1만3천33원, 1만2천615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오른 가격이다.이런 분위기로 가정 간편식(HMR)도 인기다. 이마트는 지난 12~15일 생닭 매출이 지난해 초복 동기 대비 7% 증가한 가운데 삼계탕 HMR은 37% 증가했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에서도 삼계탕 HMR 매출이 40% 증가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간편식 매출이 꾸준히 상승했는데 올해는 생닭과 간편식 매출 증가율 격차가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채식파 주류는 아니지만 채식을 즐기는 이들도 나온다. 최근 몇 년 간 친환경과 동물권, 가치소비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건'(Vegan, 채식주의)을 지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2022년 200만명으로 추산됐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향후 채식주의를 실천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37%로 전년 대비 14%포인트 증가했다.비건을 실천하는 이들은 복날에도 채식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실천 정도에 따라 다른 메뉴를 꼽았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육류는 먹지 않지만 해산물·유제품은 섭취하는 채식주의자)인 조모(여·38)씨는 "복날에도 채식주의를 실천할 예정이다. 다만 그래도 보양식이니 너무 간단하지는 않은 장어 등의 메뉴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락토오보 베지터리언(육류·해산물은 먹지 않지만 유제품은 섭취하는 채식주의자) 김진명(28)씨는 지난 15일 초복을 칼국수로 기념했다고 밝혔다. 그는 "육류보다 영양가는 떨어지겠지만 중복, 말복에도 야채 위주의 음식을 먹으려 한다. 부족한 영양소는 콩이나 영양제 등으로 보충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SNS에 '비건복날' '비건보양식'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니 팥죽, 버섯전골, 스프,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개장국, 미역국 등이 나왔다.국내 채식 인구 2022년 기준 200만명 추산팥죽·버섯전골·콩국수 등 여름별미로 보신동물보호단체들 '채식 섭취' 권장 목소리 채식 캠페인을 벌이는 움직임도 있다. 해마다 복날이 있는 7~8월은 닭고기 등 육류 수요가 특히 증가한다. 올해도 이달 닭 도축 마릿수만 약 7천마리로 추정된다. 이에 불교환경연대는 복날을 맞아 육류 대신 채식으로 지구 생태계를 지키자는 취지로 말복인 다음 달 14일까지 '2024 복날 채식 캠페인'을 진행한다. '맛있게 즐겁게 지구를 위한 한걸음'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름철 채소 요리 레시피 영상과 채식의 장점을 담은 카드뉴스, 채식 권장 쇼트폼 영상 등의 콘텐츠를 SNS를 통해 제작·배포한다.동물보호단체들도 복날을 맞아 채식 섭취를 권장하는 목소리를 낸다. 동물권단체 카라는 "치킨과 삼계탕이라 불리는 닭은 실제로 30일 된 병아리"라며 "복날에 동물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버섯이나 제철 나물, 콩국수와 화채와 같은 여름 별미로 보신할 수 있다"고 했다. ◆ 휴식파 많은 이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복날을 보내는 가운데 음식 섭취에 의의를 두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뭘 먹으며 기력을 채우려 하기보다 휴식을 통해 '힐링'하고자 한다. 대구의 2년차 직장인 유모(25)씨는 "복날이라 해서 꼭 뭘 챙겨 먹고 거창하게 보내야 할까. 건강을 챙기는 데 의의를 두면 되지 않을까"라며 "그런 의미에서 편히 쉬는 것도 복날을 보내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음식 섭취 대신에 휴식 통해 기력 보충나홀로 카페 찾아 독서·공원 산책…피서철 맞아 근교로 여행을 떠나기도휴식파는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여유를 찾고자 한다. 소박하지만 특별한 하루를 보낸다. '집콕파'도 나오며 조용하고 감성적인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공원에서 산책을 한다. 유모씨는 "초복날 연차를 내고 혼자 카페에 방문해 독서를 즐겼는데, 몸과 정신이 평화로워지는 그 자체가 몸보신이었다"고 했다.또 다른 휴식파는 여행을 가기도 한다. 직장인 방모(여·47)씨도 오는 25일 중복 겸 휴가철을 맞아 가깝지만 한적한 곳으로 떠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방모씨는 "군위, 청도, 경산 등 대구 근교로 떠나 자연을 즐길 계획"이라며 "복날이 아닌 평소 이미 잘 먹고 다니기에 마음에 여유를 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지역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지난 12일 발행된 영남일보의 힐링여행 기사를 참고해도 좋다.문화 생활을 즐기는 것도 힐링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시기 대구에서도 각종 공연과 전시가 열린다. 먼저 극장 무대에 흥미진진한 연극들이 오른다. 불행한 가정의 이야기를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끝내주는 해결사'가 다음 달 4일까지 대구 아트플러스씨어터에서 진행되며, 다음 달 11일까지 대명동 우전소극장에서는 재난 상황에서 홀로 생존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최후의 남자'가 공연된다. 전시의 경우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제7회 키똑전(키다리 갤러리 신진 작가 소개전- 똑.똑.똑)' 등이 개최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그래픽=장수현기자 〈게티이미지뱅크〉
2024.07.19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복날 어떻게 보내시나요 (1)삼복엔 무조건 삼계탕?…채식 보양식도 든든·휴식으로 기력 충전
좋은 삶이란 뭘까.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삶?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삶? 사랑하는 사람과 일상을 보내는 삶? 모두 답이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있다. 건강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못하다면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면역력이 저하되는 요즘, 삼복(三伏)에는 특히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매년 7월 중순을 지나면서 맞이하는 삼복은 24절기나 4대 명절에는 속하지 않지만 한국인이 여름철 잘 챙기는 절일이다. 초복(初伏)·중복(中伏)·말복(末伏)을 합쳐 부르는 말이며 장마철이 끝나고 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다. 엎드릴 복(伏)자를 써 '여름 불기운에 눌려 기운이 엎드려 있는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상들은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어 사람들이 지칠 때로 여겼다. 땀을 많이 흘려 속이 냉해지고 소화력이 떨어진다.예로부터 이 시기에 사람들은 기력 회복을 위해 보양식을 통해 복날을 기념했다. 약해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고칼로리의 육류를 섭취하고, 수분 보충이 되도록 뜨거운 국물이 있는 요리를 주로 먹었다. 전근대시대까지는 주로 개장국을 즐겨 먹었다. 조선 후기 문인 홍석모(洪錫謨, 1781~1857)가 쓴 '동국세시기'를 보면 복날에 개장국을 먹으면서 보허(補虛)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복날에 개고기'는 이제 옛말이 됐다. 개고기 식용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올해 초 개식용금지법이 통과되면서 더욱 찾지 않는 분위기다. 대신 개장국과 함께 대표적인 보양식인 삼계탕이 꾸준히 팔리며, 치킨·피자·소고기국밥 등도 인기다.여전히 육류 보양식 식당을 찾는 사람이 많지만, 최근 복날의 풍경은 비교적 다채로운 모습을 띤다. 친환경과 가치소비, 동물권을 중시하는 비건(Vegan, 채식주의)이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떠오르면서 채식으로 몸을 보신하는 이들이 나온다. 불교환경연대는 작년에 이어 말복인 다음 달 14일까지 '복날 채식 캠페인'을 진행한다. '맛있게 즐겁게 지구를 위한 한걸음'이라는 슬로건으로 채식의 장점을 담은 콘텐츠를 제작·배포하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피케팅도 펼친다.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보양식에서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찾는 사람도 늘어났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대구 소재 음식점의 삼계탕 1인분 평균 가격은 1만6천167원이다. 치솟는 외식물가로 편의점, 대형마트 등의 간편식을 구매해 집에서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복날은 단순히 먹고 기운을 북돋우는 날일 뿐만 아니라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휴가를 쓰고 '집콕'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음식 섭취로 몸보신에 의의를 두기보다 쉬면서 힐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삼복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모두 복날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각자 어떤 방식으로 기력을 충전하는지 그 일상을 들여다봤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동 추 거문고 이야기] 〈13〉봉래금(蓬萊琴)
조선 전기 문신인 양사언(1517∼1584)은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로 시작되는 유명 시조를 남긴 시인이며, 안평대군·김구·한호와 더불어 조선 전기 4대 명필에 속하는 서예가이다. 특히 그의 초서는 최고로 인정받았다. 금강산을 누구보다도 사랑해 자신의 호를 '봉래(蓬萊)'라 했다. 양사언은 서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신분 제한이 엄격했던 조선 시대에 정식으로 과거에 급제해 평생을 관료로 살았던 인물이다. 젊은 시절에는 주로 경기도 포천지역에서 궁핍한 가운데 시서(詩書)와 거문고를 벗하며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다. 중년 이후에는 관동지방의 수령으로 재임하며 선정을 베풀었고, 산수를 돌아다니며 도가적 흥취에 몰입하기도 했다.'태산이 높다하되…' 지은 시조 작가영평 8경의 명소인 정자 자주 찾아양사언이 애용한 거문고 '봉래금'세속 벗어난 천진하고 청아한 시풍詩는 바위에 새겨 도가적 흥취 몰입◆거문고 즐겼던 선풍도골 양사언성호(星湖) 이익(1629~1690)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양사언에 대해 '신선과 같은 인물'이라고 하면서 '그 글씨 또한 그 인물과 같은데, 사람들이 그 글씨가 진속(塵俗)을 벗어난 줄은 알아도 그 시가 세상 사람의 말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라고 표현하면서 세속을 벗어난 천진하고도 청아한 시풍을 높이 평가했다. 조경(趙絅)이 쓴 양사언의 묘갈명 글에서는 '그는 유학자이면서도 불교를 가까이하였고, 만년에는 선도에 빠졌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를 일러 선풍도골(仙風道骨)이라 말하고, 그의 작품은 탈속한 정취가 빼어나다'라고 했다.양사언은 고향 포천에서 시서와 거문고 등을 벗 삼아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예로부터 영평 8경으로 불리는 명소였던 정자, 영평천 가에 있는 금수정(金水亭)을 자주 찾았다. 영평천에는 지금도 바위에 새긴 그의 글씨 '경도(瓊島)'가 남아 있다. 이 글씨의 의미는 '옥 바위섬'이라는 뜻으로, 중국 베이징 북해공원의 호수 안에 있는 섬의 이름이기도 하다. 1546년 문과에 급제, 대동승(大同升)을 거쳐 삼등(三登)현감, 평창군수, 강릉부사, 함흥부윤 등을 역임한 후 회양(淮陽)군수와 철원군수를 지냈다. 회양군수로 있을 때 금강산에 자주 들어가 대자연을 즐겼고, 금강산 만폭동(萬瀑洞)의 바위에는 지금도 그가 새긴 '봉래풍악 원화동천(蓬萊楓嶽 元化洞天)'이라는 글귀가 남아 있다. 이어서 안변(安邊)군수로 부임했는데, 일을 잘해 그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를 받았다.양사언은 비상한 천재인 데다가 노력을 더해 읽지 않은 책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었다. 과거에 급제한 후 40년 동안 다스린 고을은 8군데나 되었는데, 단 한 가지의 부정이 없었고, 처자를 위해 재산을 마련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의 시는 작위(作爲) 없이 천의무봉(天衣無縫)하고 기발하였다는 평을 들었다.◆양사언의 거문고 봉래금양사언이 애용한 거문고는 봉래금(蓬萊琴)이라 불리었다. 그는 자신의 거문고를 허엽(허난설헌 남매의 아버지)의 외손자 박종현(朴宗賢)에게 선물로 주었다. 박종현은 거문고 명인이었다. 실학자 홍대용의 '담헌서' 중 '봉래금사적'에 봉래금 이야기가 나온다."첨지(僉知) 박종현은 우리 고조모 박부인의 조고(祖考)이니, 공(公: 첨지공)은 곧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외손이다. 초당은 음을 잘 알고 거문고도 잘 탔다. 공은 늘 곁에 있으면서 가만히 듣곤 하였다. 초당이 일찍이 밖에서 들어오다가 방안에서 밝고 높은 거문고 소리가 들리므로 한참 후에 문을 열고 보니 외손인 첨지공이었다. 이때 그는 나이 아홉 살이었다. 초당은 크게 기이하게 여기고 자기가 배운 바를 모두 전해 주었다. 첨지공은 천부의 재질에다 초당의 가르침을 얻게 되자, 드디어 악(樂)에 있어서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특히 거문고에 정통하였다. 비축한 거문고 중 명기도 많았으니. 봉래금이 그중의 하나다. 공은 일찍이 봉래(蓬萊) 양사언과 거문고 친구가 되어 친히 지냈다. 봉래가 거문고 배에 글 두 편을 적고 지락가(至樂歌)라 했는데, 세상에서 봉래금으로 일컫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공은 죽고 자손은 쇠퇴하여 가업을 지키지 못해 박부인이 봉래금과 단금(短琴) 하나를 집에 간직해 두었는데, 언젠가 말하기를 '내 자손 중에 만일 거문고를 아는 자가 있다면 이를 전해 주겠다'라고 하였다. 중종조(仲從祖) 유수공(留守公)이 초년에 배우다가 중단하고 능히 끝마치지 못하였다.봉래금은 비록 종가에 잘 간직되어 있었건만, 단금은 남에게 빌려 주었다가 잃어버렸다. 괘 좌우에 새긴 오언(五言) 20자는 첨지공의 시와 글씨라 한다. 병자(丙子) 9월에 중종조부께 듣고 기록한다. 양봉래의 글 한 편에 '녹기금 소리는 백아의 마음이요(綠綺琴伯牙心)/ 종자기만이 비로소 그 마음 아네(鍾子始知音)/ 한 곡 탈 때마다 한 수 읊조리니(一鼓複一吟)/ 청량한 허뢰(바람)가 먼 봉우리에서 일어나고(冷冷虛 起遙岑)/ 강에 비친 달은 곱디고우며 강물은 깊어라(江月娟娟江水深)'고 하였다. 또 한 편에는 '영롱한 돌 위의 오동, 한번 치고 한번 읊으매 삼십 년이 봄이로다. 그 옛날 종자기(鍾子期) 나를 버리고 가니, 옥진(玉軫)과 금휘(金徽)에 흰 티끌이 생겼네. 양춘(陽春)과 백설(白雪) 또 광릉산(廣陵散)을 봉래 산수 사람에게 붙여 줄거나'라고 하였다. 이것을 세상에서 모각한 것이 많으나 간혹 진면(眞面)을 어지럽힌 것이 있다. 거문고 품수가 자못 높은데, 큰 것이 더욱 웅혼하여 평조(平調)에 더욱 알맞다. 옛 악사(樂師) 함덕형(咸德亨)이 항상 즐겨 타고 상품이라 일컬었다. 그 후에 속된 악사들은 오직 손에 편리하게 곱고 부드러운 것만 취하고 크고 억센 것을 괴롭게 여겼으니, 조금만 쳐도 손가락이 아프기 때문이다."이 글에서 '녹기금 소리는 백아의 마음이요~'라는 시가 양사언이 '증금옹(贈琴翁)'이라는 시다. 양사언이 거문고를 즐겼던 금수정은 경기도 포천군 창수면 오가리 546번지, 한탄강 상류(영평천)에 있는 정자이다. 금수정이란 이름은 양사언이 우두정(牛頭亭)이라는 정자의 기존 이름을 금수정으로 고친 이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유지되다가 6·25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1989년에 현재 모습으로 복원했다. 우두정은 세종 때 김명리가 지었는데, 양사언은 김명리의 아들 김윤복과 매우 친하게 지냈다. 두 사람은 금수정에서 거문고를 타고 시를 지으며 원림 문화를 향유했다. 양사언의 시 '증금옹(贈琴翁)'이라는 제목에서 '금옹'은 김윤복을 말한다. 김윤복은 양사언의 장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거문고를 타며 풍류를 즐겼는데, 달이 뜬 밤이면 정자 위에서 거문고를 타고 시를 지었다. 지은 시를 석벽에 새기기도 했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양사언이 거문고를 연주하고 시를 짓던 금수정(金水亭·강원도 포천군 창수면) 풍경. 〈출처:네이버 블로그 '위즈덤 아이즈 풍경여행'〉조선 전기 문신인 양사언의 초서. 그의 초서는 최고로 인정받았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2024.07.05
[사람의 서재] 노벨문학상 작가 '알베르 카뮈'…실존주의 작품으로 평균화·기계화된 현대사회에 파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개인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실존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다. 인간이 개성을 잃고 평균화·기계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이 같은 물음을 던짐으로써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가 있다. 프랑스의 언론인 출신 작가 '알베르 카뮈'<사진> 이야기다.1913년 알제리의 몽드비에서 태어난 카뮈는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면서 청각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알제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졸업 후 교수가 되려고 했지만 결핵이 재발해 진보 성향 일간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1935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는데, 이듬해 알제리 공산당이 수립되면서 알제리 공산당에 가입했다.1937년 첫 번째 작품 '안과 겉'을 출간했다. 1942년엔 실존주의 철학을 담은 그의 첫 소설 '이방인'을 출간했는데, 당시 문학계는 물론이고 지식 사회에 일대 파란을 일으킬 만큼 극찬을 받으면서 철학 작가로 인정받게 된다. 이어 발표한 희곡 '오해'(1944), '칼리굴라'(1945) 등에서도 인간의 부조리(不條理)를 역설하면서 실존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1947년 발표한 '페스트'로 비평가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고, 1957년 44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평소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없다"고 말한 그는 불과 47세라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숨졌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혐오 부추기는 사회 (1) 노OO존…권리인가, 차별인가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그냥 서바이벌은 아니고, 일종의 사회실험입니다. 12명의 젊은 남녀가 나와 9일 동안 작은 커뮤니티 내에서 리더를 선발하고 상금을 분배합니다. 이 실험은 현실 정치 과정과 닮았습니다. 공존할 수 없는 이념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출연진들은 정치, 젠더, 계급, 사회윤리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이들은 자신이 가진 사상을 숨긴 채 커뮤니티 활동을 진행합니다. 사상을 드러낼 수 있을 때는 익명 토론과 제작진과의 인터뷰로 한정됩니다.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여기서 다양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빈곤의 가장 큰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최저임금은 인간을 더 나약하게 만들 뿐이다, 대중매체 속 조선족 범죄자 묘사는 사라져야 한다, 국가 발전에는 유능한 독재자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 등….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한 여성 출연진의 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하지 않아서, 현실과는 먼 이야기라 와닿았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어떤 세상을 상상할 때 내가 어떤 인간이 되어도 너무 불행하지 않은, 그 세상이 너무 두렵지 않은 세상이 되길 바라요."현재 세상은 병을 앓고 있는 듯합니다. 이 병은 혐오와 배제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노OO존'이라는 현상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동부터 노인, 중년 여성, 교수, 유튜버까지. 특정 집단의 출입을 금지하는 시설이 늘고 있습니다. 주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소란을 피우거나 가게의 분위기를 해친다. 노OO존에 찬성하는 이용객 입장도 비슷할 것입니다. 쉬는 날 카페에 방문해 휴식을 만끽하는데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어떤 이는 소리를 질러가며 통화를 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들이 여기서 몽땅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장이라면 이들을 가게에서 내보낼 거란 상상을 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누구나 타인에게 무례를 당하고, 범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든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운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노인을 욕하던 내가 어느덧 노인이 되거나, 유튜버를 욕하던 내가 새로운 꿈을 찾아 유튜버가 됐는데, 일부 식당이나 카페에 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진부하지만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심각한 이야기입니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존 롤스가 고안한 무지의 베일 이론이 떠오릅니다. 출신 배경, 사회적 위치 등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처할 것을 우려해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하더군요. 앞서 언급한 여성 출연진의 말처럼, 모두가 어떤 인간이 되어도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혐오와 배제가 아닌 공생으로 합의점을 도출해나갈 수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 변화와 정책적 지원도 뒷받침돼야 하겠지만요.하버드대 마이클 센델 교수는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공동체의 정의는 모든 구성원의 권리와 존엄을 존중하는 데 달려 있다"고 썼습니다. 앞으로 어떤 공동체에서 살아갈지에 대한 답은 우리 선택의 몫입니다. 이번 기사를 통해 독자께서도 그 답을 함께 고민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혐오 부추기는 사회 (2) OOO 출입 금지? 다음은 당신이 될 수 있습니다'에서 계속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어린이날 대구 한 카페 앞에 '노키즈존'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영남일보 DB인천의 한 헬스장에 부착돼 논란이 된 안내문.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옛 그림으로 품는 수박들
똑똑똑. 두드리면 맑은 폭포소리가 들린다. 짙은 녹색 바탕에 검은 줄이 추상화 같다. 줄무늬가 선명할수록 속은 더 붉다. 채소의 한 종이지만 사람들은 흔히 과일이라고 부른다. 쪼개면 시원한 물 냄새가 난다. 붉은 과육에 점점이 박힌 검은 씨가 물속의 피라미 같아 청량감을 선사한다. 수박은 예부터 귀한 과일이었다. 화가들은 수박을 눈으로 먹고 그림으로 남겼다. 무더운 여름날 선조들이 남긴 수박 그림을 감상하며 더위를 피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자연 속의 수박과 그릇 속의 수박수박을 그린 여성 화가로 조선시대 초기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이 있다. 여성의 섬세한 눈으로 수박을 관찰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작품 '수박과 들쥐'는 한여름 대낮에 쥐가 수박 서리를 하는 장면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박 먹방'에 빠진 쥐의 모습이 천진하다. 단맛에 이끌려 주인 몰래 먹는 수박은 꿀맛이다. 유학자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몽유도원도'의 화가 안견(安堅, ?~?)에게 산수화를 배웠다고 전한다. '초충도'를 비롯해 다양한 소재의 그림을 그렸다. 여성들의 생활터전인 후원에서 키우는 채소나 가지, 수박, 꽃 등과 곤충이나 벌레, 나비들이 어울려 노니는 소소한 풍경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묘사했다. '초충도'는 간결한 구도와 섬세한 기법으로 우리의 정서를 맑게 밝혀준다.'초충도' 8폭 병풍 중 한 폭인 '수박과 들쥐'는 푹푹 찌는 더위에 지친 들쥐 두 마리가 수박으로 영양보충을 하고 있는 광경이다. 무르익어 터지기 직전인 꿀수박을 들쥐들도 지나칠 수 없었다. 결국 수박의 아래쪽을 파헤쳐 과육을 빛의 속도로 먹는 중이다. 귀를 쫑긋 세워 인기척까지 감지한다. 서로 마주보며 망을 봐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주인이 오면 줄행랑을 칠 태세이다. 넝쿨 식물인 수박은 잎이 둥글게 휘어져 화면을 가로질렀다. 잘 익은 큰 수박과 알맞게 익은 수박, 무럭무럭 자라는 작은 수박, 넝쿨 끝에는 노란 꽃이 나비처럼 앉아 있다. 수박의 성장과정을 기록하듯이 표현했다. 밝은 녹색 잎이 선명하고, 하늘에는 붉은 나비가 수박 쪽으로 하강 중이다. 그 옆에 희고 검은 날개를 펼친 나비가 붉은 나비를 향해 날아든다. 모두가 수박의 향기에 취했다. 수박 옆에는 두 그루의 붉은 패랭이꽃이 활짝 피어 운치를 더한다. 녹색과 붉은색이 대비돼 화면이 밝고 명랑하다. 여성 특유의 세심한 관찰력이 작품을 살렸다.윤두서 '채과' 현대적 감각 풍기는 수묵정물화농담 조절로 과일의 질감 맑고 생생하게 표현더위에 지친 들쥐가 수박서리하는 모습 담은신사임당 '수박과 들쥐' 섬세한 관찰력 돋보여정선 '서과투서' 위로 솟은 넝쿨 기운찬 느낌고희동·이도영 '기명절지' 과일 특징 잘 살려밝은 색채와 사실적 표현 근대회화 방향 제시무더위 잊게 하는 선조들의 수박 그림에 눈길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기는 수박 작품도 있다. 조선시대 중기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채과(菜果)'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그릇에 큼직한 수박과 귤, 가지, 참외가 가득 담겨있는 수묵 정물화이다. 농담의 기법이 맑아 과일의 풍부한 질감이 생생하다. 커다란 수박은 강한 먹으로 덧칠했지만 붉은 속살이 내비칠 듯 기법이 투명하다. 몸통의 검은 줄무늬가 신선함을 북돋운다. 보라색 가지는 은은하게 표현했다. 참외는 골을 실감나게 그려서 먹음직스럽다. 세 개의 귤을 배치해 구도에 아기자기한 변화를 주었다. 채소와 과일의 줄기가 노출된 것으로 보아 갓 따온 것 같다. 윤두서는 작품 '채과'와 비슷하게 또 다른 정물화 '석류매지(石榴梅枝)'를 그렸다. 볼륨을 강조한 도자기 그릇에는 큰 석류를 모과와 함께 배치하고, 익어서 껍질이 벌어진 석류는 영롱한 붉은 알이 돋보이도록 처리했다. 그 사이 연두색 모과가 있다. 주황색 표면이 울퉁불퉁한 한라봉 같은 남도 과일도 있다. 밭에서 바로 공수해 온 듯 잎사귀가 싱그럽다. 여기에 활짝 핀 매화 가지를 곁들였다. 금상첨화다. 이들 수묵 정물화는 윤두서가 서양화풍의 시각을 구사한 것이어서 더 눈길을 끈다.◆쥐마저 홀린 수박과 근대회화 속의 수박조선 후기가 되면, 신사임당의 '수박과 들쥐'를 다른 버전으로 그린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서과투서(西瓜偸鼠)'가 등장한다. 화면에는 풍성한 잎 사이로 짙은 청색 수박이 중앙을 차지한다. 수박 넝쿨이 위로 올라 기운차다. 수박 주위로 점을 찍듯 풀을 묘사해 안정감을 자아낸다. 조그마한 쥐가 몇 배로 큰 수박을 파헤치며 분홍빛 물이 들 만큼 몸을 부비며 수박을 먹고 있다. 앞쪽의 쥐가 고개를 올려 망을 보는 중이다. 서로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지혜롭다. 앞에는 달개비가 쥐의 움직임을 감춰주듯 무성하게 피었다. 남색 꽃이 핀 달개비가 한여름의 열기를 식혀준다. 정선은 주로 진경산수화를 그렸는데, 특이하게도 '서과투서'와 비슷한 작품 '과전전계(瓜田田鷄)'를 남겼다. 넝쿨 식물인 오이를 그린 한여름의 풍경이다. 물기 가득 품은 연두색 오이와 참개구리가 주인공이다. 땡볕이 내리쬐는 날, 개구리가 오이 밭을 방문했다. 개구리는 오이의 큰 이파리 밑에서 더위를 식힌다. 하늘에는 나비가 비행 중이다. 붉은 패랭이꽃이 연녹색의 오이와 조화를 이룬다. 붓질이 공간에 변화를 주어 그림의 맛이 풍성하다.근대가 되면, 여러 종류의 과일이 나타난다. 고희동(高羲東, 1886~1965)과 이도영(李道榮, 1884~1933)이 합작한 '기명절지(器皿折枝)'에는 당시 유행한 과일이 소복하다. 수박과 복숭아, 산딸기, 고추, 물고기, 무 등 다양한 과일과 기물이 있어 채소가게를 연상케 한다. 화가가 좋아한 과일과 희귀한 주전자를 나열하듯 그려 놓았다. 선면(扇面)에 그려서 매끈하진 않지만 사물의 특징을 살려 그림이 화사하다. 1915년 5월에 이 그림을 완성해 스승인 안중식(安中植, 1861~1919)에게 보여 주었다. 안중식은 제자를 위해서 글 한 줄을 써 준다. "술이 오고 생선도 익었으며 순무도 맛이 알맞게 들었다. 정결한 다섯 가지 과일을 꼭꼭 씹어 먹으면 백발이 머리로 올라오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화면 오른쪽 위에 "상영풍미(觴詠風味)"라는 글이 있다. "술을 마시며 시를 노래하고 음식의 맛을 음미한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들이 모임을 가진 후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기명절지'에는 왼쪽과 오른쪽의 그림 기법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수박은 짙은 청색에 검은 줄무늬가 선명하다. 윗부분이 잘린 곳에는 검은 씨가 점점이 박혀 있다. 음영법을 사용하여 표현한 옥수수 사이로 산딸기를 배치해 놓았다. 분홍빛 복숭아가 탐스럽다. 이 부분은 서양화를 전공한 고희동의 솜씨로 보인다. 반면에 오른쪽의 주전자와 물고기, 무는 이도영의 동양화 기법을 사용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과 전통화를 계승한 이도영의 희귀한 컬래버 작품이다. 색채가 밝고 사실적인 사물의 표현은 근대화로 가는 순수회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다.올해는 무더위가 일주일이나 빨리 찾아왔다. 몸의 리듬이 깨져 허우적거린다. 잘 생긴 수박 한 통을 사서 앞에 두었다. 쩍 갈라지는 수박 소리가 시원하다. 먹기 전에 나도 신사임당처럼 수박 그림을 그렸다. 짙은 녹색 잎이 무성한 고목을 크게 그리고, 그 아래 수박 한통과 붉은 속살에 검은 씨가 박힌 수박 반쪽을 옆에 두었다. 바람이 일렁이는 그늘에 앉아 수박을 먹는다. 그림 속을 거닐며 더위를 식힌다. 김남희 화가윤두서, '채과', 종이에 수묵, 30.1×24㎝, 조선 중기, 해남군 윤영선 소장신사임당, '수박과 들쥐', 종이에 채색, 34×28.3㎝, 1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정선, '서과투서', 비단에 채색, 30.5×20.8㎝, 간송미술관 소장고희동·이도영 합작, '기명절지', 비단에 채색, 21.2×48.2㎝, 191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김남희 화가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혐오 부추기는 사회 (2) OOO 출입 금지? 다음은 당신이 될 수 있습니다
노키즈존, 노실버존, 이제는 노아줌마존까지….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특정 집단의 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노OO존'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이 배제의 바람의 중심엔 무엇이 있을까. 편리함을 위한 선택인가, 아니면 차별의 또 다른 얼굴인가. 여러 목소리가 뒤엉키며 논란의 중심이 된 가운데 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살펴본다.최근 '아줌마 출입금지' 인천 헬스장 이어대구 피트니스센터 '노약자 입장 불가' 논란◆만 76세 이상·아줌마 출입 금지…노OO존의 확대지난달 대구 수성구의 한 호텔 피트니스센터에선 노약자 출입을 제한하기로 해 논란이 일었다. 센터 입구에 '만 76세 이상인 고객은 회원 등록과 일일 입장이 불가하다'는 안내문이 붙었는데, 센터 측은 "센터 내에서 쓰러지거나 미끄러지는 안전사고로 인한 분쟁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회원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모두 충족시키기엔 한계가 있고 안전사고 문제도 있어 센터의 운영 방침을 전환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노인들은 어디서 운동을 해야 하나" "안전사고를 왜 이용객에게만 묻나" 등 '노인 차별'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한편 "보호 차원 같다" "헬스장은 무거운 기구가 많아 고령자에겐 위험하다" 등 센터의 조치를 이해한다는 반응도 나오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앞서 지난달 7일 인천의 한 헬스장도 '노아줌마존' 논란이 됐다. 헬스장은 업소에 '아줌마 출입 금지' '교양 있고 우아한 여성만 출입 가능'이라는 내용의 공지를 붙였다. 아줌마와 교양 있고 우아한 여성을 구별하는 업주만의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했다. △나이를 떠나 공짜 좋아하면 △어딜 가나 욕먹는데 왜 욕먹는지 본인만 모르면 △대중교통 이용 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서 가면 △커피숍 둘이 가서 한 잔 시키고 컵 달라고 하면 △음식물 쓰레기 몰래 공중화장실 변기에 버리면 △자기 돈은 아까워하면서 남의 돈은 아까운 줄 모르면 △기억력과 판단력이 부족해했던 말 하고 또 하면 등의 경우를 '아줌마'라고 정의했다. 사업주 측은 일부 고객을 향해 자제해 달라는 경고의 의미일 뿐이라며 "아주머니들이나 여자분들한테 혐오적인 발언을 하려 한 건 아니다. 저거 보고 막 화내시고 이러는 분들이 저는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업주 자유" "특정집단 차별" 갑론을박 여론 외신 "노키즈존 韓, 아동 혐오국 인상 받아"◆영업의 자유 vs 차별행위 의견 분분공공장소 이용에서 특정 집단이 배제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OO존의 시작은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유아와 어린이의 매장 출입을 제한하는 '노키즈존'이 등장·확산하면서 노실버존, 노아줌마존까지 나왔다. 이런 방침의 주된 이유는 특정 구성원이 가게를 지저분하게 만들고 간다거나 다른 이용객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쟁점은 이렇다. 차별로 볼 수 있는가. '사업주의 권리'라는 의견과 '특정 집단을 향한 차별'이라는 지적으로 찬반양론이 나뉜다.노OO존은 사실상 법적으로 처벌받는 게 아니기에 사업주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노OO존을 찬성하는 이들은 노OO존을 두는 것은 가게 주인의 자유이며 편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주장한다. 찬성하는 사업주들도 자신의 업소에서 어떤 고객을 받을지는 가게에서 결정할 자율권이 있으며 이는 정당한 경영 방침이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안전사고 발생 시 업주가 과도하게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노키즈존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주 2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노키즈존을 유지하는 이유로 '아동 안전사고 발생 시 사업주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해서'라는 응답이 68.0%로 가장 많았다. 대구에서 노키즈존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가게를 뛰어다니는데 보호자의 제재가 안 되어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다치는 모습을 보고 노키즈존 운영을 결정했다"며 "차별이 아닌 장사의 문제"라고 밝혔다.다만 사업주들이 누리는 영업의 자유가 누군가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보다 중요한지 고민해볼 여지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노키즈존이 차별행위라고 판단하면서 제주도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사업주에게 13세 이하 아동을 이용대상에서 일률적으로 배제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상업시설의 운영자들은 최대한의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이들에게는 헌법 제15조에 따라 영업의 자유가 보장된다. 이 같은 자유는 무제한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며, 문제가 된 이탈리아 음식점의 경우 이용자에게 시설 이용상 특별한 능력이나 주의가 요구되는 곳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사업주인 피진정인이 일부 아동의 산만한 행동이나 보호자의 무례한 행동을 이유로 모든 아동 및 아동을 동반한 보호자의 식당 이용을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일부의 사례를 객관적·합리적 이유 없이 일반화한 것에 해당한다"고 했다. 영업시설의 운용은 업주의 자유지만 이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인정된다는 것.문화평론가 "'노키즈존 방지법' 입안보다 사회적 관용 흐르면 자연스레 NO 지양"◆노키즈존이 쏘아 올린 혐오…"관용적 분위기 형성돼야"서구 외신들은 일찍부터 한국의 노키즈존 문화에 대해 우려를 표해왔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도 2019년 "한국은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지적하며 "노키즈존이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차별의 장이 될 수 있다. 관용이 사라진 사회 분위기는 성장기 어린이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배타적 성격은 사회 전반에 확산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3%가 '노키즈존 운영은 업장 주인 자유'라고 답했다. 노키즈존 운영에 대해 10명 중 7명이 동의한 것이다.출입이 제한되는 경우와 대상도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노실버존, 노아줌마존을 비롯해 노중년존, 노유튜버존, 노교수존, 노스터디존 등 연령대와 직업, 특정 상황 등을 이유로 이용을 막는 가게가 최근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사회학을 전공한 조모(여·25)씨는 "가게나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막는 것과 피해를 주는 소수의 이들을 집단으로 일반화해 출입을 금지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며 "이런 가게들이 늘어날수록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이런 분위기로 지난 총선에서는 '노키즈존 방지법'도 공약으로 제시됐다. 정병기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독일에서도 10여년 살았지만 노키즈존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처음 들어본다. 갈수록 한국 사회가 이윤만 중시하는 사회로 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사회가 보호해야 할 대상인 아이들을 차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서 출발해 이 같은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했다.법적 제재보다 공감대 확산이 먼저라는 목소리도 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으로 상황을 해결하려는 것은 조금 지양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소통과 대화가 먼저돼야 하며 법은 최후에 선택해야 될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초반에 노키즈존이 허용된다는 주장이 나올 때부터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일들이 터져나오고 혐오로 이어질 거란 분석이 있었다"며 "사회적으로 관용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으면 자연스레 노OO를 하지 않게 돼 있다. 그런 식의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그래픽=최은지기자 〈게티이미지뱅크〉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아이돌 굿즈의 세계 : 소장용 넘어 생활용품으로 제작…앨범 대량 구매 후 '포카'만 빼고 버리기도
K팝이 세계를 휩쓸면서 아이돌 굿즈(MD 상품)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K팝 아이돌 팬덤산업(팬더스트리)의 규모는 8조원에 달한다. 증권가 컨센서스를 종합하면 올해 4대(YG·SM·JYP·HYBE) 엔터사 MD매출 합계는 7천473억원으로 전년 대비 20%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분석된다. 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해 다양한 굿즈를 구매·수집하며, 희귀한 상품은 중고로 천문학적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아이돌 굿즈는 단순한 상품이 아닌 팬과 가수를 잇는 특별한 매개체이며 팬덤 문화를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애칭 붙는 응원봉…포토카드는 수십만원에 거래도지난달 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은 형광 초록색의 물결로 뒤덮였다. 그룹 엔시티 드림(NCT DREAM)의 콘서트 공연이 열렸는데 팬들이 노래에 맞춰 단체로 형광 초록색 '응원봉'을 흔들며 가수를 응원한 것이다. 응원봉은 가장 대표적인 아이돌 굿즈다. 엔시티의 응원봉은 그룹을 상징하는 색인 형광 초록색이다. 과거에는 풍선이나 스스로 빛을 내는 야광봉을 많이 썼지만 현재는 대다수가 휴대용 램프로 제작된다. 블루투스가 탑재돼 공연장 분위기나 곡에 따라 응원봉 색깔이 바뀌며 카드섹션 같은 화려한 효과를 연출하기도 한다.응원봉은 각자 특유의 디자인을 가졌다. 팬들이 붙인 특별한 애칭도 있다. 네모난 망치처럼 생겼다고 하여 '믐뭔봄'(엔시티), 막대사탕 모양이라고 '캔디봉'(트와이스), 무처럼 생겼다고 해 '무봉'(마마무), 뿅망치 형태를 가졌다고 '뿅봉'(블랙핑크) 등으로 불린다. 쓰임새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트와이스의 응원봉은 응원용뿐만 아니라 LED, 무드등 형태로 생활용품으로 사용 가능하다. 램프를 직접 열고 닫을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기도 하여 램프 안에 인형을 넣거나 이미지를 붙이는 등 자신만의 응원봉으로 개조하는 경우도 있다.또 다른 응원 도구로 부채와 슬로건도 있다. 소속 엔터사의 공식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공식 상품뿐만 아니라 팬들이 원하는 사진과 문구를 넣어 자체 제작한 비공식 굿즈까지 종류, 디자인도 다양하다. 비공식 굿즈의 경우 개인이 자체 제작해 혼자 사용하는 한편 다른 팬이 만든 굿즈를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콘서트, 팬미팅 등 공연이 열리기 전 일정 기간 내 온라인 판매 페이지에서 주문해 공연 당일 공연장 근처에서 수령하는 식이다. 소량의 재고를 무료로 나눔하거나 추첨하는 경우도 많아 공연 때마다 새로운 아이템을 모으는 재미도 있다.몇 년째 인기를 끌고 있는 상품 '포토카드(포카)'도 있다. 포토카드는 신용카드보다 조금 큰 크기로 가수의 셀카 사진이 담겨 있다. 주로 앨범을 사면 받을 수 있으며 대부분 랜덤으로 들어 있다. 앨범 판매 음반사마다 사진도 모두 달라 종류도 수십 종이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K팝 음반 구매자 중 절반 이상인 52.7%가 '포토카드 등 굿즈를 모으려고 앨범을 샀다'고 응답했다. 팬들은 원하는 포토카드를 갖기 위해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기도 하며 웃돈을 얹어 거래하기도 한다. 이런 수요로 '포카마켓' 등 온라인 포토카드 거래 플랫폼도 따로 있다. 100원부터 1만원 단위까지 다양한 가격에 판매되며 잘 나온 희귀한 셀카는 10만원 단위까지 올라간다.◆텀블러·가방 등 실용적 상품 등장…팝업 스토어도 인기아이돌 굿즈 시장은 계속 진화 중이다. 흔히 알려진 굿즈인 응원 도구, 앨범, 인형뿐만 아니라 최근엔 실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상품도 출시된다. 텀블러, 휴대폰 케이스, 가방, 심지어는 주방용품까지 여러 굿즈가 나오고 있다. 연말연시에는 새해를 맞아 다이어리와 달력·사진·엽서 등이 들어 있는 굿즈 모음 세트인 '시즌 그리팅' 상품도 판매된다. 이런 상품들은 실용성과 팬심을 동시에 충족시켜 인기도 높다. 지난달 30일 스타벅스는 엔시티와 손잡고 가방, 머그컵, 텀블러 등 협업 상품을 온라인 스토어에서 0시부터 판매했는데 가방은 10분 만에 품절됐다. 머그컵도 당일 오전 완판됐다. 인기 아이돌의 팬 박정은(24)씨는 "응원 도구나 인형은 특정 상황에서만 사용이 가능하지만 텀블러, 가방 등의 굿즈는 일상 속 언제 어디서나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과 함께하는 듯한 느낌을 줌과 동시에 실용적이라 만족도가 더욱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팬 전모(여·20)씨도 "어차피 사야 했던 생활용품인데 좋아하는 가수가 담긴 물건을 사면 기분도 좋고 일석이조"라고 했다.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독특한 상품도 나오면서 팬이 아닌 이들 사이에서도 아이돌 굿즈에 대한 소장 욕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일례로 최근 K팝 산업에선 Y2K(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생활 양식) 복고 감성이 유행 중인데, 이런 경향에 맞춰 실물 음반에도 레트로 바람이 불고 있다. 그룹 에스파(aespa·원 안)는 지난달 첫 정규 앨범 '아마겟돈'을 발매하면서 시디 플레이어(CDP)가 포함된 음반 패키지를 냈다. 14만5천원이라는 비교적 비싼 가격에 출시됐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2차 예약 판매 물량이 순식간에 동났고, 재판매 요구가 쏟아져 지난 10일 3차 예약 판매를 진행했다. 대학생 김민정(여·20) 씨는 "팬이 아닌데도 사고 싶었다. 예쁘고 힙한데 실용적이기까지 하니 관심이 갔다"고 말했다.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도 에스파 팬뿐 아니라 일반인도 구매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고 귀띔했다.이런 인기로 짧은 기간 운영되는 오프라인 소매점인 팝업 스토어도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찾는 사람이 많아 요즘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예약 자체도 치열하다. 지난 3월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 엔시티 드림의 팝업 스토어 사전 예약도 당일 바로 마감됐다. 현장 예약을 걸고 세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품절된 상품도 많았다. 이곳에 방문한 박모(여·24)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굿즈를 구매하면 신상품의 경우 주문 후 한두 달 뒤에 받는 경우가 많은데 팝업 스토어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바로 받을 수 있다. 이런 장점으로 귀찮아도 팝업 스토어가 열리면 꼭 방문한다"고 했다. 뉴진스도 데뷔 당시 더현대 서울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면서 2주간 약 1만5천여명 이상 다녀가는 효과를 봤다.★색깔풍선서 LED응원봉 진화뿅봉·믐뭔봄 등 애칭으로 부르고공연 땐 노래별 색 바꿔 장관 연출★대기업 협업 상품 팝업 인기복고바람 탄 CDP, 고가에도 날개"힙하고 유용…팬 아닌데도 사고파"★빛만큼 그늘도 뚜렷해진 시장짝퉁상품 넘치며 저작권 문제 대두팬심 노리는 '리셀' 재테크도 등장◆과도한 상술 문제…시장성숙도도 '글쎄'아이돌 굿즈 시장이 커지며 국내 유통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시장 내 성숙도는 아직 낮다. 굿즈 판매 전략이 지나치다며 '팬심을 이용한 상술'이란 비판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지난 4월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앨범 대량 구매' 문제가 있다. 민 대표는 "아티스트의 초동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이미 앨범을 구입한 팬덤이 같은 앨범을 계속 사고 있다"며 "(음반 판매량이) 계속 우상승하기만 하면 팬들에게 다 부담이 전가된다. 연예인도 팬 사인회 계속해야 하고 너무 힘들다. 지금 음반 시장 너무 잘못됐다"고 했다.팬 사인회에 응모하기 위해선 앨범을 구매해야 하는데, 많이 사야 당첨 확률이 올라간다. 인기 아이돌의 경우 100장은 넘게 사야 당첨된다. 이런 판매 구조는 팬들의 부담을 높일 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로도 이어진다. 지난해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획사가 앨범 제작에 사용한 플라스틱은 2017년 55.8t에서 2022년 801.5t으로 급증했다. 다량의 앨범을 구입한 뒤 응모권 등만 챙기고 버리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30일 온라인상에서는 한 네티즌이 SNS에 올린 사진이 화제가 됐는데 사진 속엔 수십 개의 박스에 '마음껏 가져 가세요'란 메모와 함께 그룹 세븐틴의 앨범이 버려져 있기도 했다. 이는 팬 사인회 응모권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며 'K팝 팬덤 사이에선 익숙한 광경' 등의 반응이 나왔다. 굿즈의 중고거래 가격 문제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굿즈의 특성은 꾸준하게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굿즈는 가수의 활동에 따라 제작되고 그 시기 활동이 끝나면 구하기 힘들어진다. 이렇게 희소성을 지니고 있어 인기 상품의 경우 출시 몇 분 만에 품절되기도 하는데, 구매하지 못한 팬들은 중고로 웃돈을 얹어 두세 배 넘는 비싼 가격에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팬심을 노리고 팬이 아닌 이들이 굿즈를 구매해 되파는 재테크도 등장하고 있다. 김민정씨는 "유독 아이돌 굿즈 중고가가 높게 책정되는 듯하다. 좋아하는 마음을 이용해 수익을 노리는 게 기형적이다. 아무리 희소성 있는 상품이라 해도 너무하다고 느껴진다"고 밝혔다. K팝 팬덤의 주 연령대가 10·20대이기에 경제 관념이 약한 청소년들도 과소비의 지름길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중학생 1학년 아이를 둔 정모(45)씨는 "딸아이가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데 포토카드 한 장을 몇 만원에 거래하는 걸 보고 기겁했다"며 "좋아하는 마음으로 사는 거라 해도 잘못된 소비 습관을 가질까봐 걱정을 떨칠 수 없다. 필요성이 아닌 이미지에만 의존해 물건을 구매할까 봐 겁난다"고 말했다.짝퉁 굿즈의 범람도 저작권 문제로 대두된다. 팬들은 공식 굿즈를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짝퉁 제품을 사고팔기도 하는데 이런 영리 행위는 초상권이나 저작권, 퍼블리시티권 침해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불법 행위다. 하지만 짝퉁 굿즈 유포를 통한 홍보 효과를 노린 소속사들이 눈을 감아주는 경우가 많아 해결은 어려운 상황이다.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팬심을 볼모로 과도한 상술을 부리며 이득을 취하는 일은 지양돼야 한다. 팬들도 스타를 좋아하는 마음은 좋지만 어느 정도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며 "이런 노력들이 동시에 이뤄질 때 성숙한 K팝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사진=스타벅스 코리아, 각 아티스트 SNS·소속사 홈페이지〈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최은지기자지난달 30일 출시된 스타벅스와 NCT 협업 상품.(왼쪽) 엔시티 공식 응원봉과 팬이 제작한 응원 부채.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지난 4월30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그룹 세븐틴의 새 앨범이 버려져 있는 사진.
2024.06.28
[세계를 보는 창] 저출산에 직면한 스페인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마드리드에선 '30세 미만 출산 月 500유로' 지원
작년 스페인 평균 합계출산율 1.19명OECD 출산율 꼴찌 한국 바로 위물가 상승 등 경제적 부담 주요인평균 출산 연령도 높아지는 추세지난 10년간 40대 산모 19% 늘어지역 중 마드리드 출산율 2.7% ↑난자은행 운영 등 공격적 대책 주효대한민국은 2023년 합계출산율 0.72명을 기록하며 세계 출산율 최하위 국가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을 보면 꼴찌인 한국 바로 위에 있는 나라가 스페인이다. 인구 4천859만여 명으로 한국 인구 수와 비슷한 스페인은 합계출산율이 1.19명으로 한국만큼 심각한 저출산 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2023년 스페인의 출생아 수는 32만2천75명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 10년 동안 출생아 수는 약 24% 감소했으며, 전년 대비 2% 줄었다. 또 스페인의 평균 출산 연령이 점점 높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스페인 언론에 따르면 1981년 평균 출산 연령은 28.2세였던 반면, 2021년 평균 출산 연령은 32.6세로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40세 이상 산모의 출산은 19.3% 증가했다. 작년 기준으로 25세 미만의 산모(9.4%)보다 40세 이상의 산모(10.7%)의 출산이 더 많았는데 이를 통해 스페인의 임신, 출산 연령이 늦춰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페인의 저출산 원인은 무엇일까. 주된 이유로 경제적인 문제를 꼽을 수 있다. 2021년 스페인 통계청(INE)에서 발표한 평균 연봉은 2만5천896유로(약 3천819만원)다. 같은 해 국세청에서 발표한 한국 직장인 평균 연봉은 4천24만원이었다. 한국과 스페인은 직장인 평균 급여 수준도 비슷하지만, 명목 국내총생산(GDP) 순위도 거의 같을 정도로 경제 규모가 비슷하다. 평균 연봉에 있어서도 큰 차이는 없으나 스페인의 생활 물가는 예상보다 비싸다. 한국의 부가가치세는 10%지만, 스페인의 부가가치세는 21%나 된다.스페인의 외식 가격, 교통비, 숙박 요금 등을 전반적으로 한국과 비교해 보면 숨이 막힐 정도이다. 일례로 한국 맥도날드의 빅맥 세트 가격이 7천200원인데, 스페인 배달 플랫폼 글로보(Glovo)에서의 빅맥 세트는 9.4유로, 약 1만3천원이 넘는다. 또 스페인 현지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점심 특선인 '메누 델 디아'의 지난해 평균 가격은 13.2유로(약 1만9천470원)이다. 사람들이 그나마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점심 특선 가격이 2만원이나 되는 것이다. 교통비의 경우 수도 마드리드에서 약 200㎞ 떨어진 지역을 기차로 가려면 편도 35~45유로(5만~6만5천원)가 소요되며, 스페인 호텔의 1일 평균 숙박 요금은 135.8유로(약 20만원) 정도다.물가뿐만 아니라 고질적인 주택 임대료 문제 역시 출산율을 낮추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스페인 부동산 정보 업체 '포토까사'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80㎡(24평) 주택의 평균 임대료는 984유로(약 145만원)로 나타났다. 가장 비싼 마드리드는 1천466유로(약 216만원), 가장 저렴한 지역인 엑스트레마두라는 529유로(약 78만원)였다. 대학생은 물론,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조차 혼자 거주할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독립은 물론, 결혼과 출산이 어려워진 것이다. 고용 불안 문제도 심각하다. 일간지 '라 라손'에 따르면 2023년 4분기 OECD 국가의 평균 실업률은 4.8%, 유로존 평균 실업률은 6.4%였다. 하지만 스페인의 실업률은 무려 11.7%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상황이다. 참고로, 청년 실업률은 무려 28.6%였다. '리브레 메르까도'는 이러한 이유로 16~29세의 스페인 청년 중 15.9%만이 부모에게서 독립해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페인에서는 독립과 보금자리 마련이 늦어지다 보니 결혼과 출산은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비싼 주택 임대료 부담을 줄여 청년들이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주택 관련 지원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스페인 정부와 지자체는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인한 저출산 현상을 해결하고자 출산과 육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출산 지원금, 출산 휴가 등의 제도 마련에 꾸준히 힘써 왔다. 산모와 배우자가 마음 놓고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스페인 근로기준법에서는 산모와 배우자에게 16주의 유급 출산 휴가를 부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근 페드로 산체스 정부는 기존 16주였던 유급 출산 휴가를 20주로 늘리는 사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8세 미만의 자녀가 있는 경우 연간 8주의 육아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데, 이 중 4주를 유급 휴가로 전환해 육아 부담을 줄이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더불어 12세 미만의 자녀가 있거나 장애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 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다. 2023년 스페인의 출산율은 역대 최저였으나, 유일하게 전년 대비 출산율이 높아진 지역이 있는데 바로 마드리드(2.7% 증가)와 엑스트레마두라(0.6% 증가)였다. 다양한 혜택을 통해 출산율 감소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마드리드는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지역이 됐다. 마드리드 주지사인 '이사벨 아유소'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산모와 배우자를 지원하기 위한 80개의 이니셔티브를 발표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연 소득 3만 유로(약 4천400만원) 미만인 30세 미만의 여성이 출산하는 경우, 임신 5개월 차부터 아이가 두 살이 될 때까지 산모에게 월 500유로(약 73만 원)를 지원한다. 모든 부모는 자녀 혹은 입양 자녀가 있을 때 소득세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마드리드 주 정부는 임신과 출산, 산후조리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불임 부부에게는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클리닉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최적의 조건에서 난자를 보관할 수 있도록 난자 은행 운영을 강화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여겨 많은 지자체에서 관련 대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출산과 인구 감소에 대해 대서특필하는 한국 언론과는 달리 스페인 내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심각한 이슈로 다루지 않는다.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으나 스페인 인구 수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라디오 방송국 COPE의 보도에 따르면, 2024년 스페인 인구의 18%는 이민자다. 스페인 밖에서 태어난 850만명의 아이는 스페인 국적을 취득했으며, 이민자 인구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페드로 산체스 정부는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으나, 이것이 저출산을 해결할 방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스페인의 출산율 감소는 사회·경제적 어려움, 고용 불안, 관습과 사고방식의 변화, 주택 가격, 저출산에 대한 인식 부족 등 복합적인 원인의 결과이다. 우선 정부와 지자체, 전문가들은 저출산의 심각성을 국민이 인지할 수 있도록 관련 캠페인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리고 월급 대비 비싼 주택 임대료와 물가 상승으로 인해 독립과 결혼, 출산을 꿈꾸지 못하는 청년들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점진적으로 출산율 회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최지윤 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스페인)그래픽=장수현기자
[조기자의 혼삶꿀팁] 중소기업 청년 전세대출, 80% 대출은 대출자의 신용·100% 대출은 해당매물의 상태 중시
'1인 가구 전성시대'다. 2016년 539만에 불과했던 1인가구 수는 2019년 614만, 2022년 750만가구로 매년 증가 추세다. 이런 추세에 맞춰 '자취 5년 차'인 기자가 혼자 살면서 터득한 생활의 꿀팁들을 소개한다. 청소, 인테리어, 있으면 좋은 물건부터 은행 상품, 정부 지원 제도까지 나 홀로 사는 이들의 일상 전반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기자는 자취를 월세로 시작했다. 직장에 자리 잡은 이후 생활비를 직접 부담하니 다달이 나가는 고정비용이 조금 부담스러워졌다. 월세방 계약이 끝날 때쯤 전셋집으로 이사하면서 '중소기업 청년 전세대출'(이하 중기청)을 받았다.시중에 청년을 위한 전세대출 상품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 '중소기업 청년 전세대출'과 '버팀목 청년 전세자금대출'이다. 금리가 낮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1.5%, 후자는 1.8%~2.7%다. 기자는 두 상품 모두 신청 가능한 요건을 충족했고 금리가 조금 더 낮은 중기청을 택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기금이 운영하는 이 상품은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만 19~34세 무주택자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다. 병역 의무를 이행한 경우 복무기간에 비례해 만 39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 대출 한도는 최대 1억원 이내, 대출 기간은 최초 2년이다. 4회까지 연장, 최장 10년 이용할 수 있다. 우리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농협은행, 아이엠뱅크(대구은행), 부산은행에서 실행 가능하다. 대출 비율은 전세금액의 80%, 100%다. 대출 심사 기준도 다르다. 80%는 해당 매물의 대출상태보다 대출자의 신용과 재직기간·소득을, 100%는 해당 매물의 대출상태를 우선적으로 본다. 즉 100%의 경우 대출자가 임대하려는 주택의 근저당이 없거나 대출 실행 시 삭제돼야 한다. 기자는 농협은행에서 100%로 대출받았다. 80%보다 승인 조건이 까다롭기에 심사받고자 하는 주택의 등기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은행에서 가심사를 받아도 좋다. 소유주가 법인이 아닌 개인이어야 하며, 오피스텔의 경우 전세가가 KB시세의 매매 하한가(90%) 이내여야 한다. 기자가 심사받으려 했던 집도 하한가를 초과해 집주인과의 협의로 전세금을 일부 낮췄다. 계약금은 전세금의 5% 이상을 지급하면 되는데, 통상 10%로 계약한다. 대출이 거절돼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해 계약 시 '대출 거절 시 계약금 반환' 내용이 담긴 특약을 걸어놓길 추천한다. 대출 심사부터 대출금 실행까지 2~3주가 걸리므로 잔금 치르는 날을 넉넉하게 잡는 것도 필수다.계약 후에는 관할 행정복지센터에서 확정일자 받는 것을 잊지 말자. 법률상 효력이 생긴다. 대출 심사 전 은행에 제출할 몇 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주택도시기금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류 제출 시에는 전세사기에 대비해 전세보증보험도 함께 신청하길 추천한다. 단, 100% 상품은 필수로 해야 한다. 기자는 서류 제출 이틀 후 심사 적격 메시지를 받았다. 대출금 실행까지는 약 2주가 걸렸다. 잔금 치르는 날 오전에 전세금 전액이 들어왔고 부동산에 가계약금을 제외한 잔금을 송금했다. 이후 전입신고를 하면서 이사 준비를 마쳤다. 글·사진=조현희기자농협은행의 중기청 대출 실행 안내 메시지. 심사부터 실행까지 약 2주가 걸렸다.
2024.06.21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특별함 가득 '타이베이 골목여행'…용캉제·보피랴오제·베이먼 샹지제
엔데믹 이후 국제선 이용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대구시민에게 가장 사랑받은 해외 여행지는 대만 타이베이다. 21만8천여 명이 방문했는데, 한 시간 더 가까운 일본 오사카(17만6천여 명)보다 약 5만명이 많은 수치다. 주변에서 너도나도 타이베이로 여행을 떠나면서 도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타이베이는 대만의 수도로 풍부한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다. 전통과 현대적 삶이 공존하는 곳으로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기자도 지난해 타이베이에 다녀왔다. 그런데 남들 다 가는 명소만 둘러 보는 뻔한 코스는 싫었다. '나만의 여행'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유명 관광지보단 한적한 골목길 구석구석을 누볐는데, 숨 쉬는 작은 보물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 좁은 거리에도 특유의 역사와 문화가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하고 현지인이 된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하고 번잡한 곳들이 아닌 소박하고 조용한 곳에서 색다른 매력을 즐기고 싶다면 '골목 여행'은 어떨까. 타이베이의 이색적인 골목 3곳을 소개한다. 용캉제 '미식가 천국'서 식도락 즐기고감성 넘치는 길 거니는 재미를타이베이로 유학을 오게 된다면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MRT(타이베이 도시철도) 동먼(東門)역 5번 출구에서 나와 선메리(Sunmerry)가 있는 골목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젊은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뒤섞인 개성 넘치는 거리가 나온다. 타이베이 중심부에 위치한 '용캉제(永康街)'다. 용캉제는 과거 일본 문관이 거주했던 동네다. 원래 농촌이었던 이 지역은 일본 통치 시기 처음 개발이 시작돼 일본의 영향을 받아 지어진 건축물들이 많다. 이후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이전하면서 많은 중국 본토 출신들이 타이베이로 이주했는데, 이들 중 일부가 용캉제에 정착하게 되면서 다문화적 요소를 띠게 됐다.현재 다안(大安)구 주택가 사이로 상권이 형성돼 있으며 인근에 대만 사범대가 있어 대학생들이 수업 후 많이 찾는 곳이다. 우육면, 샤오롱바오, 망고 빙수 등의 맛집들이 인기를 끌면서 유명해졌다. 미식가들에게 천국과도 같은 이곳에선 대만 전통 음식부터 현대적인 퓨전 요리까지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샤오롱바오 맛집으로 알려진 세계적인 딤섬 전문점 '딘타이펑' 본점도 이곳에 있다. 누가 크래커, 펑리수(파인애플 과자) 등 유명 디저트를 파는 상점도 많아 기념품을 사기도 좋다.거리를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용캉제는 대만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 일본식 건물과 현대적인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식당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한 카페와 소품 가게들도 곳곳에 많은데, 대만 특유의 이국적인 감성에 세련된 인테리어가 더해져 감성적인 분위기를 낸다. 보피랴오제 청나라 섬유산업 중심지의 운치일본식 건축 섞여 독특한 분위기'보피랴오제(剝皮寮街)'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거리다. 대만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여행객들에게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보피랴오제는 청나라 시대부터 시작된 오래된 거리로,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타이베이의 상업 중심지였다. '보피랴오'라는 거리 이름은 과거 이곳에서 거래되던 목재의 껍질이나 짐승의 가죽을 벗긴 곳(剝皮)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으로 보피랴오제가 섬유 산업의 중심지였음을 암시한다. 일본 통치 시기 동안에는 일본이 대만의 도시 계획과 건축 양식을 일본식으로 개조하고 새 인프라를 도입하면서 보피랴오제에도 일본식 건축물이 세워졌다. 이런 변화에 따라 청나라 시대의 전통 가옥부터 일본 식민지 시대의 건물, 중화민국 시기의 건축물이 혼재된 독특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20세기 중후반 타이베이가 급속한 경제 성장과 도시화를 겪으며 오래된 전통 건물들이 현대적 건축물로 대체됐고 보피랴오제도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6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복원 공사를 통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공개됐다. 원형의 보존을 원칙으로 일부 건축물의 모습과 가곽(街廓)을 남겼다. 교육 분야용 사용허가증도 취득하면서 2009년 개방된 이후부터 예술 전시·교육 행사가 개최되는 등 문화·역사 교육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각계의 주목을 받으며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룽산사(龍山寺)가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있어 여행 동선을 짠다면 룽산사와 함께 넣어도 좋다. 베이먼 샹지제 길게 늘어선 필름형 간판 명물"빈티지 카메라 덕후들 다 모여"타이베이 메인역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카메라 필름 콘셉트의 간판이 줄지어져 있는 골목이 나온다. 수많은 카메라 전문점들이 들어서 있다. 대만에서 카메라 기자재 상점이 가장 밀집한 거리 '베이먼 샹지제(北門相機街)'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카메라 상업의 군집지라고 한다. 인근에 공공기관과 언론기관이 다수 분포해 촬영 기자재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타이베이시의 교통 중추인 타이베이 메인역과도 가까워 1958년 첫 카메라 점포 개점 후 점차 상권을 이루게 됐다. 현재 캐논, 니콘, 소니, 올림푸스 등 다양한 브랜드들이 자리해 있으며 중고·빈티지 카메라를 취급하는 상점도 있어 희귀한 제품을 찾기에도 좋다.한때 전성기를 누렸지만 상가조직의 부재, 온라인 판매로 인한 소비자 유실 등으로 상권이 침체된 적이 있다. 이 같은 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타이베이시에서 2003년부터 3년간 지역의 문제점들을 짚어내고 해결하기 위한 가로정비사업을 추진했다. 이를 계기로 '베이먼카메라거리발전위원회'가 조직됐다. 위원회는 거리 간판 로고 디자인 공모를 개최했는데, 여기서 선정된 작품이 현재의 카메라 필름 콘셉트의 간판이다. 위원회 출범 이후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장소를 넘어 사진 관련 전시, 모임 등 사진 애호가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문화적인 장소로도 자리 잡았다. 2019년엔 거리 입구에 위치한 삼각형 모양의 건축물 '삼각집(三角屋)'이 시 지정 문화자산으로 등록됐다. 타이베이의 중심지인 타이베이 메인역, 시먼딩역 사이에 있어 번화가로 이동 중 구경하기도 괜찮다. 글·사진=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용캉제 골목. 오래된 아파트와 현대식 건물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용캉제에 위치한 딤섬 전문점 '딘타이펑' 본점. 샤오롱바오(왼쪽)와 우육면.오래된 건축물들을 보존한 보피랴오제. 현재는 문화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보피랴오제 인근에 위치한 룽산사.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카메라 기자재 상점이 밀집한 베이먼 샹지제. 필름 디자인 간판이 줄지어 있는 모습.타이베이의 카메라 거리 베이먼 샹지제 가는 길. 타이베이 메인역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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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증원 청원 5만 명 돌파…'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 운영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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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당·봉산·두류 지하도상가 점포 '일반경쟁입찰'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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