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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다카의 꿈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은 내가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모든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정치적이길 원하지 않지만, 내 존재 자체는 내가 어찌할 수 없이 정치적이다.” 한국계 대학생이 불법체류자로 추방 당할 위험을 느끼고 자신의 처지를 뉴욕타임즈 인터넷판에 기고한 내용의 일부다. 최근 뉴욕타임즈는 이 학생과 같은 처지에 놓인 125명의 젊은 아메리칸 드리머(American Dreamer)의 개인적 스토리를 인터넷에 대대적으로 업로드했다. 사연은 이렇다. 텍사스 휴스턴의 연방지방법원이 일주일 전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제도(DACA)에 대해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 법은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재직 당시 만들어졌다. 하지만 연방지방법원은 의회가 불법 이민자의 추방을 유예하는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하지 않았는데, 행정부가 마음대로 다카를 추진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동안 다카의 혜택을 받으려면 부모와 함께 미국에 올 당시 나이가 16세 미만이고, 2007년 이후 미국에 계속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또한 고교를 졸업했거나 군 복무자여야 하며 범죄경력이 없어야 한다. 즉 다카는 불법체류자 중에서 미국에 이미 적응하고 사회화된 젊은 세대 약 80만명을 추방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거주하도록 배려한 제도였다. 미국 사법부의 판결은 종종 일관적이지 않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직 당시인 2017년 다카를 폐지하려 했을 때는 연방법원이 오히려 이를 제지하고 효력을 인정했다. 이에 미국 보수의 심장인 텍사스가 다른 8개 주와 협력해 다카 폐지에 앞장섰고, 결국 이번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앤드류 해넌(Andrew Hanen) 연방지방법원 판사가 이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다만 상급심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다카 혜택은 유지된다. 이제 공은 바이든 행정부로 넘어 왔다. 의회를 통해 다른 대체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상급법원에 항소해야 한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고려하면 항소해도 전망은 밝지 않다. 보수적 대법관이 6명, 진보적 대법관이 3명이어서 다카의 폐지로 결론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시민은 다카를 어떻게 생각할까.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74%의 미국인이 다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자는 91%, 공화당 지지자는 54%가 젊은 미국의 꿈이 유지되길 바랐다. 또 69%의 백인, 82%의 흑인, 72%의 아시아인, 88%의 중남미인이 추방 유예를 지지했다. 물론 미국 사법부나 보수적 정치세력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법적인 판단은 시민 의견(여론)을 무조건 추종할 수 없다. 본질적으로 이민자 사회인 미국이 시대적 조건에 따라 이민자 수나 자격 요건을 꼼꼼히 따져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보수적 의견도 자연스럽다. 이들의 관점에선 모든 불법체류자는 당연히 추방되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불법체류가 본질적 특성이 된 지 오래다. 수많은 농업자본, 식당과 숙박업, 중소기업, 건설업, 자영업은 이들로 인해 유지되고 수익을 얻는다. 가령 2009년 이민법을 엄격히 강화했을 때 조지아주에선 농작물의 절반이 수확되지 못해 들판에서 썩는 것을 그냥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이로 인해 10억 달러(약 1조 2천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 2011년 알라바마 주정부가 불법체류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해 약 8만명의 불법체류자가 추방됐을 때도 경제적 손실은 약 110억 달러(약 13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됐다.흔히 불법체류자는 마약·폭력 등의 범죄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러나 다카가 선별하는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다. 고교 졸업 이상의 양호한 학력과 노동력을 가지며 범죄경력도 전혀 없다. 불법체류자의 합법화에 다소 유보적인 미국 시민도 이를 잘 안다. 이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선량한 마음씨다.로마제국은 군사력으로 유럽을 지배했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제국의 시민권이었다. 로마에 충성하는 외국인이나 10년 이상 노예생활을 한 자는 자유민의 자격을 주었다. 더 나아가 이들의 자식에겐 시민권을 부여했다. 로마제국의 인접국은 높은 수준의 로마문명에 편입되길 원했다. 이것이 로마제국의 힘이었다. 다카는 미국이라는 이민자 사회가 관용과 합법성의 칼날 위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에 관한 문제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이미 모든 선진국이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된 지 한참 지났다. 이민자 수용 문제는 곧 우리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사회도 이민자 수용의 범위와 관용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정치학 박사>
2021.07.26
[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朝中조약 60년…덫에 걸린 北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우호조약 체결 60년이 된 북·중 관계는 여전히 변함없이 굳건한가. 지난 11일 북한과 중국은 ‘조중 우호 및 상호원조 조약(中朝友好合作互助条约)’ 체결 60주년을 맞아 친서를 주고받았다. 양측은 코로나19 상황을 이유로 고위급 인사나 물자의 교류 없이 친서를 주고받는 수준에서 기념행사를 정리했다.6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중국 내에서는 조약 연장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지만 중국 외교부 대변인 왕원빈(汪文斌)은 ‘쌍방이 해당 조약을 수정 또는 폐기할 것에 합의하지 않는 한 계속 유효하다’는 조약 제7조를 근거로 내세우며 "자동 연장된다"고 발표했다. 중국 내에서 비등하던 북중 관계에 대한 회의론을 공개적으로 잠재운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60주년을 기념해 교환한 양측의 친서를 보면 상당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먼저 중국 측은 "지난 60년간 쌍방은 조약의 정신에 따라 굳건히 지지하고 어깨 걸고 투쟁하면서 형제적인 친선을 강화해 왔다"며 다소 원론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보기에 따라서는 느긋하기까지 하다. 반면 북측은 “조약은 적대세력들의 도전과 방해 책동이 보다 악랄해지고 있는 오늘, 두 나라의 사회주의 위업을 수호하고 추동하는 데서 더욱 강한 생활력이 있다”면서 중국에 대한 절대적 지지와 혈맹관계를 강조했다. 북한이 저자세를 취하며 드러낸 이러한 ‘다급함’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경봉쇄, 미국의 경제제재, 자연재해 등 3중고를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약 제3조에 “쌍방은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집단과도 어떠한 행동을 하거나 조치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모른 척한 것은 자존심을 넘어 자학의 수준이다. 겉으로는 자주와 주체를 내세우고 스스로 국경봉쇄까지 감행했다지만 중국 앞에만 서면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다. 돌이켜보면 중국의 북한 무시는 한두 번 나온 일도 아니다. 1971년 북한이 전 인민을 동원해 미제타도를 외치며 군사훈련에 매진할 때 중국은 슬그머니 만리장성을 열고 미국 탁구선수 15명을 불러 핑퐁외교를 펼쳤다. 1972년에는 닉슨을 초청해 마오타이주를 먹이며 데탕트를 추구했다. 당시 '친구의 적은 적'이라던 피아와 동지 구분의 공식을 무시한 이 같은 중국의 처사에 김일성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중국은 완전히 무시했다. 한술 더 떠 중국은 한국의 북방외교에 호응해 86서울아시안게임 때 20개 종목에 520명의 선수단을 파견했으며, 이어 88서울올림픽에도 참가해 금5, 은11, 동12개를 획득했다. 급기야 냉전이 해체된 1992년에는 한국과 수교까지 단행했다. 이 같은 일련의 ‘중국 변심’에 김일성은 분을 못 이기고 결국 사망(1994년)에 이르게 됐지만, 개혁개방의 조타수인 덩샤오핑은 냉정했다. 김일성 사망 후 1997년까지 최악의 ‘고난의 행군’을 겪던 김정일의 북한을 덩샤오핑은 모른 척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편하고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핵을 개발한다고 고집 피우는 김정일이나 아사 직전에 놓인 북한주민을 동맹이나 형제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정치인에게 북중 우호조약 제7조는 그냥 조문의 한 줄일 뿐이다. 중국이 말하는 피로 맺은 혈맹외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덩샤오핑의 ‘실사구시(實事求是)’ ‘흑묘백묘(黑猫白猫)’를 보면 된다. 철저히 계산적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중국의 외교이고 중국의 동맹관리 방법이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미사일을 쏘고 핵무기를 준비할 때는 기특한 우방이고 혈맹이지만, 미국과 직접 거래하고 미국모델을 따르면 배신자이고 폐기물이 되는 것이다. 체결 60주년을 맞은 ‘조중우호 및 상호원조 조약’을 원점에서 복기해 보자. 이 조약은 1961년 7월11일 김일성과 저우언라이의 서명으로 발효된 북중 관계의 법적 근원이다. 핵심조항인 조약 제2조를 보면 “일방이 무력침공을 당하거나 개전 상태에 놓이면 상대방도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돼 있다. 과연 실현 가능한 내용일까. 북한과 중국 간에 상호 군사파견이 가능할까. 북한 유사사태 때는 당연히 중국이 자동개입할 수 있겠지만 중국 유사사태 때도 북한이 중국 땅에 군대를 보낼 수 있을까. 또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교전을 벌이면 북한은 자동개입 조항에 따라 잠수함이나 전함을 남중국해에 파견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한반도 남부지역의 미군기지라도 타격해야 할까. 결국 북중 우호조약의 실체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권리를 보장한 서약서에 불과하고 북한지역을 선점할 명분을 주는 종속계약일 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북한은 중국에 대해 일편단심 구애로 일관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신의주경제특구를 계획하다가 실패한 아버지 김정일의 경험을 학습한 때문일 수도 있고, 진짜 시진핑이 두려워서일 수도 있다. 중국의 도움이 유일한 희망이고 돌파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중국의 의심을 피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장 배고픈 주민을 생각해 면종복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가 그렇듯 외교와 국가관계도 역발상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왕 코로나로 북중 국경이 막힌 상황이라면 금단의 열매를 따서 에덴동산의 멍에를 벗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김정은의 북한은 이미 세 차례에 걸쳐 트럼프의 미국과 만남을 가졌다. 바이든과의 만남도 김정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중국의 ‘혹’이나 ‘계륵’이 되지 말고 과감히 ‘조중 우호조약 60년’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권한다. ‘동상이몽’보다는 ‘적과의 동침’에서 생존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 연구원(2003~2005)>이정태 교수
2021.07.19
[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팬데믹과 민주주의
“방역을 위해 누구를 어떻게 추적하고 격리할 것인지, 어떤 공간과 업종을 얼마나 통제할 것인지 판단하는 데에는 정치로부터 분리된 과학이 아니라 정치와 세심하게 결합한 과학이 필요했다. 백신을 누구에게 어떤 순서로 접종할지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도 과학적 사실과 행정적 역량을 동시에 고려해야만 가능한 정치적 행위였다.”한국과학기술대(KAIST) 전치형 교수가 최근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의 일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과학과 사회의 유기성, 즉 복잡하게 얽힌 사회·정치적 맥락 속에서 과학의 원리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지적하고 있다.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는 지식과 기술은 당연히 의료계나 바이오 엔지니어의 열정과 헌신에서 나온다. 사실 방역전문가 입장에선 모든 지역과 도시를 봉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겠지만 부작용이 너무 큰 게 문제다.정책결정자의 고민도 깊다. 다양한 방역 및 사회적 조치들 예컨대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격리, 백신 접종, 재난지원금, 코로나 실업대책 등을 어떻게 정치공동체에 적용하고, 시민의 동의와 순응을 끌어낼지 고민해야 한다.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시민,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어깨를 토닥이며 뒤처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도 공동체 전체의 또 다른 책임이다.정치학자 입장에선 G2 등 정치체제를 달리하는 국가 간 방역 성과가 궁금하다. 비교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월드오미터(Worldometer)에 따르면 7월5일 현재 미국의 누적 확진자 수는 약 3천406만명, 누적 사망자 수는 약 62만명이다. 인구 100만명 당 확진자 수는 약 10만명, 사망자 수는 약 1천900명이다. 그마나 바이든 행정부 들어 적극적인 방역조치를 취한 덕분에 이 정도 피해로 그쳤다는 게 미국내 평가다.그럼 중국 상황은 어떨까. 7월5일 현재 중국의 누적 확진자는 약 9만명이고 사망자는 약 4천600명이다. 인구 100만명 당 확진자는 64명, 사망자는 약 3명이다. 중국 인구가 14억 명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방역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확진자 추이 역시 흥미롭다. 지난해 1월22일 570명이던 확진자는 3월1일 약 8만명으로 140%가량 급증했지만, 그 후 그다지 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 전쟁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효과적인 방역조치를 실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 같은 결과는 정치체제 측면에서 매우 예외적인 사례다. 150여개 국가의 코로나19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우선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인구 100만명 당 확진자 수가 많았다.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많고 지방자치가 발달한 점이 신속한 방역에는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일사분란한 정치체제에 비해 전국적 방역조치의 결정이 느리게 진행되는 취약점을 드러낸 셈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만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시민 보건과 안녕에 민감한 편이다. 이에 코로나 검사를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다. 확진율이 높은 또 다른 이유다. 다만, 확진자가 일단 의료기관 안으로 수용되면 적절한 치료가 이뤄져 사망률이 낮아지는 특징을 보였다.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이 발달한 나라 역시 인구 100만명 당 확진자 수가 많았다. 세계보건기구의 지난 1년간 누적 확진자 데이터를 보면 지방분권이 발달한 상위 20개국의 100만명당 확진자 수 평균은 3만6천명에 달했지만, 하위 20개국 확진자 수는 약 8천5백명 수준에 그쳤다. 자치제도가 발달한 지방정부의 저항이나 소극적 태도가 중앙정부 수준에서 추진되는 전국적 방역 조치의 효과를 떨어뜨렸다고 볼 수 있다. 유럽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할 때 이탈리아는 동일한 라틴계 문화를 가진 스페인보다 초기 대응을 상대적으로 더 잘했다. 이탈리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적극 협력했지만 스페인 자치정부는 중앙정부의 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높고 의료보험과 보건 인프라가 발달한 나라는 어떨까. 역시 인구 대비 확진자 수가 많았지만 사망자 수는 적었다. 진단검사소 설치, 보건의료 인력 확충, 각종 행정 지원으로 감염자를 찾아내기 때문에 확진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병원 접근성, 선진 의료기술과 보험제도 덕분에 덜 죽는다.개인적 자유를 만끽하는 사회와 공동체 의식이 강한 사회는 어떨까. 지난해 유럽·미국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했을 때 한국·일본·대만·싱가포르에서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이를 두고 일부 지식인은 서구 개인주의보다 동아시아의 공동체주의가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계적 수준에서 보면 이는 오해다. 시민적 자유는 확진율 증가와 무관했다. 가령 시민적 자유가 높은 나라 중에는 확진율이 높은 나라(체코, 룩셈부르그, 포르투갈, 스위스 등)도 있고 확진율이 낮은 나라(뉴질랜드, 호주, 핀란드, 인도네시아, 케냐 등)도 있다. 단, 시민적 자유가 높은 나라는 사망률이 낮은 특성을 보였다. 확진자 수 증가에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 바이러스의 고약한 확산 때문이지만, 감염자를 찾아내려는 적극적인 검사 결과 때문이기도 하다. 보건 인프라와 의료인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소극적 검사는 확진자 수를 오히려 줄인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동료 시민의 어깨를 토닥이며 함께 팬데믹을 견디어 내면 된다. 이것이 민주적 공동체의 힘이다. 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정치학 박사>
2021.07.07
[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창당 100주년 중국공산당, 그리고 반격·복수·인민
중국공산당이 창당 100주년을 맞았다.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열린 제1차 전국대표대회를 시작으로 중국대륙에 뿌리를 박은 중국공산당이 '5천년 묵은' 중국을 차지한 것은 창당 28년만인 1949년 10월1일이다. 반(反)자본주의, 반(反)제국주의, 반(反)봉건의 기치를 걸고 천안문에 오른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인민에게 고깃국을 배불리 먹이고 싶다고 소망했다. 1929년 상하이에서 발간된 잡지 ‘생활주간’에 나타난 참으로 배고프고 비참한 중국이 20년이 흘렀어도 전혀 개선되지 않음에 대한 통탄이나 다름없었다. 국민의 배를 채우기 위해선 미곡생산, 식량 자급자족, 기아탈피 등 생존과 직결된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했다. 하지만 신중국 초기인 1952년 중국의 1인당 GDP는 119위안이었고 중공업 비중은 35.5%에 불과했다. 산업이 낙후했으니 먹고 살길은 막막했다. 마오쩌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지금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의자와 탁자, 찻주전자와 찻잔, 약간의 식량과 국수 몇 가락, 종이 몇 장이 전부다. 자동차나 비행기, 탱크 어느 것 하나 만들지 못한다”고 한숨지었다. 그러던 중국공산당 정부가 이젠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달로,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내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은 중국인의 소감을 들어보면 '우리 조국이 살 만해졌다. 어제보다 오늘이 좋고 내일은 더 좋을 것'이라고 한다. 안도감과 자신감이 물씬 풍기는 내용이다. 이제 중국에는 펄벅이 소설 ‘대지’에서 이야기한 '굶어 죽는 것은 다반사이고 심지어 인육을 먹는' 그런 중국인은 더 이상 없다. 물론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시기 고통과 희생, 개혁·개방의 부작용이 남아 있지만 그들은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은원관계를 정리했다. 그리고 중국공산당의 영원한 주석 마오쩌둥의 초상을 위안화 전면에 안치시켰다. 이로써 100년(1921~2021) 풍상을 겪은 중국 공산당의 정치실험은 성공했다. 오늘(7월1일) 중국공산당은 창당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기념식이 열리는 베이징은 삼엄한 경계가 펼쳐진 가운데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기념식 행사에 앞서 지난달 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는 ‘7·1훈장’ 수여식이 열렸다. 29명의 수상자 명단에는 남중국해 민병 우수당원, 항미원조 전쟁 참가 우수당원, 신장 위구르 종교분열에 대항하는 우수당원, 티베트 수호 우수당원, 중국인도분쟁에 희생된 단장 등이 포함됐다. 그런데 선정대상과 이유가 상당히 선동적이다. ‘당과 인민을 위해 공헌한 당원으로 이상과 신념이 확고하고 당에 충성한 자, 그리고 중국혁명, 건설, 개혁과 전면적 소강사회 건설, 탈빈곤 등에 걸출한 공헌을 한 자’들이다. 6·25전쟁(항미원조) 참전군인 3명이 포함됐고, 한족을 포함해 회족, 만주족, 티베트족, 타지크족, 위구르족, 몽고족, 장족, 조선족 등 소수민족 인사도 포함됐다. 선정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중국이 구상하는 새로운 100년의 목표가 보인다. 그들의 말처럼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승리의 자축연이고 그 영웅을 포상한 것이라면 중국공산당의 새로운 100년은 분명 ‘반격과 복수의 100년’이 목표임을 알 수 있다. 항미원조 전쟁의 참전자와 불법조업 선단을 이끌고 세계해양을 누비는 해상민병대를 앞세운 것은 미국과 제국주의 해양세력에 대한 맞대응을 암시하고, 아편전쟁의 치욕과 냉전에 대한 복수의 다짐이다. 그러면서 중국공산당은 지난 100년 동안 종합국력, 국제적 영향력, 소프트파워, 인민생활, 경제사회발전에서 기적을 만들었다고 자평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구세계를 타파해 신중국을 건설하고 신세기와 신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연 그리될까. 중국과 중국공산당이 복수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르크스주의와 중국특색사회주의에 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일대일로'가 연결되고 인류운명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우려스러운 것은 공산당의 변질이다. 창당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14만7000㎡ 규모의 ‘중국공산당 역사전시관’을 보면 그 이유가 보인다. 세계 최대 규모로 건설된 역사전시관에는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전시관 배치를 제1단계부터 4단계로 구분했는데 1~2단계는 마오쩌둥 시기, 3단계는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시기, 4단계는 시진핑 시기로 나눈 점이다. 마오쩌둥과 시진핑을 동급으로 배분하고,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를 한 단계로 묶어 평가절하한 것이다. 만약 시간이 지나 지금처럼 시진핑의 집권이 계속된다면 짜오즈양·후야오방·리펑처럼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3인의 지도자도 역사책의 행간에 묻히고, 시진핑의 공간만 점점 더 확대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면 중국공산당은 위험해진다. 중국공산당이 창당 100년 만에 15억 중국인민의 굶주린 배를 채우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민의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9천500만 공산당원과 15억 중국인민의 공산당'에서 '특정 개인의 공산당'으로 바뀌는 순간 더 이상 중국공산당은 없다. 창당 100주년을 맞은 중국 공산당, 새로운 100년 전쟁을 알리는 선전포고도 좋다. 빈곤과의 전쟁,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와의 전쟁, 분열과 봉건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자평하는 것도 좋다. 그들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중국공산당 스스로 대의명분으로 내세운 ‘인민’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정치할 자격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공산당이 하늘로 섬긴다는 인민은 안락한 집에서 배부르고 편안하게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때문에 인민의 배와 지갑을 채워야 공산당도 있고 중국도 존재할 수 있다. 한편으론 창당 100주년을 맞은 중국 공산당이 부럽기도 하다. 1백살이 된 정당, 15억 인구를 대표하는 정당, 당원과 지지자의 수가 우리 인구만큼이나 많은 정당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부럽다. 선거 때마다 우후죽순처럼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이합집산해 개명하는 대한민국 정당을 보면 민주주의가 심히 부끄럽다. 민의를 반영해 국정에 투입하고, 전환과정에 개입해 관련 법령을 만들고, 정부의 집행을 감시하는 대한민국의 ‘정정당당한 정당’은 어디에 있는가.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 연구원(2003~2005)>
2021.07.01
[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백신 정치
세계 최초로 백신을 개발한 사람은 영국의 의사이자 과학자인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다. 제너가 백신 실험에 성공한 때는 1796년으로, 당시 영국 시민은 우두 환자의 고름을 멀쩡한 사람의 몸에 주입한다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졌다. 백신 접종에 대한 불신과 저항도 컸다. 이 때문에 45년이 지난 1840년이 돼서야 영국 정부 차원에서 무료 접종을 실시하게 된다. 그로부터 200년이 흐른 지금도 백신에 대한 불신감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지구촌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이길 유일한 방법으로 백신을 갈구하고 있다. 아우어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에 따르면 6월18일 기준 미국인 2명 중 1명(52.6%)이 1회 이상 코로나 접종을 받았다. 이는 이스라엘(63.4%)을 제외하면 유럽(37.5%), 한국(26.9%), 일본(15.8%), 인도(14.9%)보다 높은 접종율이다. 화이자·모더나·얀센 등 첨단 백신 제약사를 보유한 미국이 코로나19 백신 개발 초기 수출을 제한하고 자국 내 공급에 몰두한 결과다. 이제 바이든 행정부는 넘쳐 나는 백신을 개발도상국에 원조할 계획이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백신을 창고 안에서 그냥 상하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 자국 내에서 백신을 배분하고 있을까. 첨단 기술패권을 가진 국가답게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하고 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연방정부의 알고리즘은 주별 18세 이상 인구수를 기준으로 주정부에 백신을 배당한다. 주정부는 이를 다시 지방정부(시·카운티)와 병원에 배분한다. 문제는 연방제 특성상 각급 정부와 보건당국이 다른 배분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의료윤리 문제나 정치적 고려 등이 다양하게 개입되는데, 한 마디로 미국인은 백신 접종에 관한 한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레곤주는 노인보다 교사가 우선 접종 대상이다. 반면 뉴저지주는 교사보다 흡연자를 대상으로 먼저 접종한다.연방정부가 설계한 알고리즘은 미국 인구통계국(U.S. Census Bureau)의 서베이 데이터를 이용한다. 이 데이터는 불법 이민자나 빈곤층 등 특정한 집단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 소수 집단에 대한 방역과 접종이 충분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몇몇 주는 연방정부의 백신 배분이 특정 주에 과잉 공급되거나 종종 배분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고 불평한다. 주정부, 시 당국, 의료기관 역시 각자의 기준으로 알고리즘을 설계해 백신을 배분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우선 접종하는 노령층의 기준이 주별로 다르고, 접종대상에 따라 가중치를 달리 둔다. 종종 알고리즘이 사고를 내기도 한다. 작년 12월 캘리포니아 스탠포드병원이 설계한 알고리즘은 의사를 우선 접종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 문제는 또 있다. 각급 주정부와 당국이 운용하는 알고리즘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인은 보건정책 결정자와 방역전문가, 그리고 IT기술자가 설계한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되고, 어떻게 데이터를 가공·분석하는지 모른다. 필자가 지난해 1년간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확진자 통계를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지방분권이 잘된 나라일수록 확진자 수가 많다는 점이다. 지방정부 권한이 강하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행하는 방역조치가 지방 곳곳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렇다고 지방자치를 폐지하는 것이 대책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 협치 거버넌스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백신 배분을 둘러싼 우여곡절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미국은 백신 접종에서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작년 내내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백신에 대한 불신과 저항을 키웠고 자신도 코로나에 걸렸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에 힘입어(?) 집권한 바이든 행정부는 백신 접종과 방역정책에 적극적이다. 제약업계와 보험자본이 장악한 최악의 의료보험제도를 가진 미국이 백신 접종에서 성공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의료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시민에게 백신접종 서비스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은 다른 질병과 달리 코로나 예방접종을 받기 위해 보험사 직원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됐다. 2019년 개봉한 영화 ‘조커’에서 주인공 아서 플렉이 ‘광대’에서 ‘조커’로 변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실 어처구니없다. 예산 부족을 내세운 고담시 보건당국이 아서의 우울증 치료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시민 건강은 정치인과 정책결정자의 책임이다. 그걸 하라고 권력을 준 것이다. 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정치학 박사>1796년 영국 과학자 에드워드 제너가 세계 최초로 백신을 개발했지만 백신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은 의외로 컸다. 1802년 제임스 길레이는 백신 접종자의 몸에서 소가 튀어 나오는 모습을 담은 만평을 내놓기도 했다. 출처: 위키피디아최근 7개월 동안 1회 이상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주요 국가 접종자 비율. 이스라엘이 가장 높은 접종률을 보였고 미국, 유럽, 한국, 일본, 인도, 러시아 순으로 나타났다. 출처: 아우어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
2021.06.21
[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G7으로의 초대, 복인가 덫인가
대한민국이 G7 정상회의에 초대받았다. 세계 최강의 부국(富國) 클럽인 G7 정상회의는 제국주의 주체세력인 서구열강의 모임이나 다름없다. 서구문명의 수호그룹이고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백인 국가다. 그런 모임에 한국 대통령 부부가 초청받았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손님대접도 제대로 받았다. 회의가 열린 영국 콘월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보면 G7은 문재인 대통령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이에 세웠다. 위치도 첫 줄 중간이다. 그 만큼 귀한 손님이라는 의미이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격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출 수 없는 이 찜찜함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코로나19가 여전히 지구촌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모디 인도 총리는 초청을 받고도 참석하지 못했다. 인도만이 심각한 것은 아니다. 온 세상이 아비규환이다. 백신을 구하지 못한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대부분의 세계는 '죽음' 앞에 속수무책이다. 한국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G7 정상은 마스크를 벗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그 자리에 한국을 불렀다.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의 말처럼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B3W)’에 한국이 유용해서일까. 혹시 한국이 G7의 공동 적(敵)인 중국으로 달려갈 것을 우려해서는 아닐까. 지난 5월21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은 당근을 주며 한국을 미국 ‘편’으로 끌여들였다. 그리고 보란 듯이 한국을 대동하고 G7에 등장해서 3C(China, Covid19, Climate Change)를 ‘인류가 극복해야 할 공동의 적’이라고 발표했다. 얼떨결에 한국은 최고의 무역 상대국인 중국을 적으로 삼게 될 상황에 직면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휩쓸린 일이라 변명하기엔 궁색하다. 미국이 손을 꼭 쥐고 한국을 서구 민주주의 핵심 진영으로 데리고 간 것은 마치 게임이론의 하나인 '루소의 사슴사냥'에 비유된다. 중국사냥에 한국을 참여시켜 칼잡이로 만들 속셈이다. 3C를 적이라 했지만 핵심은 중국에 있다. 코로나도 중국 탓, 탄소배출량 1위도 중국임을 감안하면 이번 G7 정상회담은 위안화 억제에 몰두했던 2008년 이전 G7의 '7대 1' 협공작전으로 복귀하는 셈이다. 패거리 정치를 이용한 일종의 ‘중국 왕따 전략’을 위한 포석이다. 지원군으로 한국을 비롯해 호주·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을 초청했다. G20대신 G7이 중심이 되고 D10(Democracy10, 민주주의 10개국)으로 재결집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칼로 중국의 일대일로 노선을 자르겠다는 의지다. 러시아 푸틴은 따로 초청했다. 동서양 문명충돌 구도를 잣대로 대면 러시아는 G8에 포함된다. 결국 중국과 싸움판은 12대 1 구도가 된다. 바이든정부 입장에서는 중국의 부상을 막지 못한 것을 공화당의 실책 탓이라 여길 수 있다. 부시정부가 2003년 '사스(호흡기 질환)'라는 호기가 있었음에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막지 못했고 결국 중국의 부상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중국은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으며, 상대적으로 미국은 금융위기라는 역풍을 맞아 유럽시장까지 초토화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 틈에 중국은 G20 정상회의체에 진입했고, IMF특별인출권(SDR)을 확보해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편입시켰다. 바이든정부가 노리는 것은 공화당 부시정부의 실책을 2008년 이전으로 만회하는 것이다. 2009년 오바마정부가 미국을 금융위기에서 구한 경험을 재현하고 싶은 것이다. 공화당 정부가 택했던 G20이나 관세폭탄정책 대신 G7체제와 동맹을 중심으로 중국 공격의 진영을 재정비하려는 것이다. 한국을 선봉장으로 선택한 것은 G20 정상회의 결성 당시 구도와 같다. 다용도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격의 전위대인 동시에 미·중 간 완충지대,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국제정치의 핵심세력인 G7에 초청된 것은 의미가 크다. '전시 작전 통제권'도 없는 불완전 독립국가 한국이 선진 7개국 그룹의 '편'이 된 것은 그 만큼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 시대의 반도체·배터리·바이오 전쟁에서 한국이 능력자로 부각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산 휴대폰·세탁기·자동차는 이제 미국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고, 맥도날드의 햄버그 세트마저 BTS(방탄소년단)가 함께하게 됐다. 한국이 아시아 변방에서 세계사의 주역으로 부상한 것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G7의 한국 초청은 복이다. 그러나 회의 출발 직전 걸려온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전화가 마음에 걸린다. 그는 “한국이 남의 장단에 끌려가선 안된다”며 “냉전적 사고로 가득 차 집단대결을 부추기고 지역 평화를 해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아주 무례한 외교적 결례이지만 중국의 답답함과 간절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국이 G7에 초청받았는데 중국이 안달하는 이유는 뭘까. G7은 자기들의 잔칫상에서 왜 중국만 성토했을까. 언제부터 G7 국가들이 중국의 신장위구르의 인권을 걱정했던가. 한국을 초청한 진의는 무엇일까.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혹시 한국이 덫에 걸린 것은 아닐까. 복잡해 보이는 국제정치의 답은 항상 ‘국가이익’과 ‘돈’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G7으로의 초대에도 분명 복선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B3W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개발도상국을 위해 10억 회분의 백신을 제공하며, 인프라 건설 사업비 40조 달러를 투입한다고 하지만, 실은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시샘이다. 일대일로를 실패한 정책이라 비난하면서도 중국의 사업 성공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당면한 일본의 올림픽 개최를 지원하려는 속셈이다. G7성명에 '7월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 개최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G7의 자금줄인 일본이 올림픽 개최 여부로 궁지에 처해 있고, 도쿄올림픽이 무산되면 B3W사업 추진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을 비난하고, 도쿄올림픽 개최를 보이콧하려는 한국을 부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과 푸틴의 가운데에 앉았다가 탄핵된 전임 한국 대통령의 전력처럼 문재인정부도 미국과 일본이 친 덫에 걸린 것 같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 연구원(2003~2005)>이정태 교수
2021.06.14
[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포디즘과 멋진 신세계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1936)는 영화사에 빛나는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찰리 채플린이 각본에서부터 감독, 주연, 프로듀서, 음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혼자 도맡아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20대 중반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두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부품 나사 조이는 작업을 반복하던 채플린(공장 노동자 찰리役)이 거대한 기계 바퀴에 끼어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영화 감상 당시엔 장면 그 자체로 충격을 받았지만, 나중에 이 컨베이어벨트가 20세기 미국 문명을 지탱한 산업공학의 빛나는 성과였음을 알게 됐을 땐 또 다른 전율이 느껴졌다. 원래 컨베이어시스템은 도살한 소를 이동시키며 부위별로 고기를 발라내는 축산가공 공장에서 사용됐다. 이를 우연히 목격한 헨리 포드(1863~1947, 미국의 자동차 왕으로 '포드' 창설자)가 자신의 공장에 적용하면서 혁명적 라인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포드가 컨베이어벨트로 연결된 조립 라인을 완성하게 된 시기는 1915년이다. 그렇다면 연속 조립 공정이라는 생산방식, 즉 포디즘(Fordism)은 무엇을 혁신했을까. 가장 먼저 생산과 노동 방식의 변화가 눈에 띤다. 전통적인 수공업 방식에 따르면 숙련노동자 2~5명 정도가 공구나 부품을 들고 다니면서 자동차 한 대 전체를 조립했다. 반면 포디즘은 차체(혹은 주요 부품)가 라인을 따라 이동하면 정해진 위치에 서 있던 노동자가 각기 특정한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했다.포드 공장의 공학자들은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생산공정을 세밀한 시퀀스로 구분했으며, 정밀도가 높고 호환성 있는 부품을 조립하도록 설계했다.생산방식의 변화는 자동차라는 상품의 가치도 완전히 바꿔 놓았다. 1888년 칼 벤츠가 마차 비슷한 우스꽝스러운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처음 만들 당시만 해도 자동차는 기술장인들이 부자들의 주문에 따라 공들여 만드는 고급스러운 수공예 사치품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포드가 연속 조립 공정을 채택하면서 자동차의 대중소비시대가 열렸다. 포드의 ‘T모델’은 연간 최대 2백만 대까지 생산됐고, 가격은 1927년 360달러(현재 가치로 약 5천 달러)로 저렴했다. “나는 수많은 일반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생산할 것이다. 최고의 재료를 쓰고 최고의 기술자를 고용해 현대 공학이 고안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한 디자인으로 만들 것이다. 그렇지만 가격을 저렴하게 해 적당한 봉급을 받는 사람이면 누구나 구입해서 신이 내려주신 드넓은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할 것이다” (이상욱 외, ‘욕망하는 테크놀로지’ p.223 재인용) 포드는 ‘생산물이 판매, 소비돼야 이윤을 창출한다’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경영철학을 가지기도 했다. 아무리 많은 자동차를 만들어도 노동자와 시민이 구매하지 않으면 회사는 망한다든가, 노동자의 고임금과 소득이 회사의 이윤을 만든다는 것 등이다. 포드는 당시 미국 노동자의 하루 9시간 일당인 2.4달러의 두 배가 넘는 5달러를 임금으로 지급했다. 매년 400% 임금 인상을 통해 노동자의 충성심과 노동규율을 확보했다. 포드 공장은 오늘날 구글처럼 미국 노동대중이 선망하는 직장이 됐다.포디즘이 노동 분업을 극대화하자 고급 숙련기술을 독점하던 장인과 숙련노동자의 설 자리가 사라졌다. 노동시장의 개방과 민주화가 시작됐고 가용 노동자층이 크게 확대됐다. 포드는 가난한 농민, 유럽 이민자, 흑인, 여성, 전과자도 흔쾌히 채용하는 당시로선 계몽적인 고용정책을 채택했다.포디즘은 기술, 임금노동, 대량소비를 연결하는 기술공학의 ‘멋진 신세계’를 탄생시켰다. 20세기 미국 산업문명의 비전을 제시했던 포디즘은 덩치만 큰 후발산업국 미국을 엄청난 생산력과 대량소비가 실현되는 세계제국으로 부상시켰다.그 결과 포디즘은 모든 산업국가가 모방하고 학습하는 시스템이 됐다. 전(前) 자본주의적 유산과 숙련 장인의 태업 관행을 거대한 기계 톱니바퀴로 으깨어 버리는 포디즘에 유럽 자본가는 흥분했다. 이탈리아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포디즘이란 용어를 만들고 저작 ‘옥중수고’에서 미국 문명의 핵심으로 설명했다. 급기야 히틀러는 1938년 포드에게 최고훈장을 수여하기에 이른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과 스탈린도 포디즘에 열광해 계획경제의 기초로 삼았다.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적 소설 ‘멋진 신세계’(1932)에서 사람들은 성호를 긋지 않고 T모델에 따라 ‘T’를 그린다. “오, 주여(Lord)” 대신에 “오, 포드(Ford)”라고 말한다.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다. 노동하는 인간은 공학의 대상이 돼 버렸고, 하루종일 볼트를 죄는 단순 작업은 노동의 성취감마저 빼앗았다. 포드는 1차, 2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와 전후 재건 과정의 혜택에 안주하면서 소비자의 다양해진 욕구를 무시했다.결국 포드는 제너럴 모터스의 시보레(Chevrolet)와 토요타의 추격에 밀렸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컨베이어벨트는 인공지능(AI)으로 변주되고 있다. AI 로봇이 작업하는 첨단 자동차 공장은 포디즘의 기술공학 유산이다. ‘기술’이 ‘노동’을 소외시키는 이 불편한 진실을 덮은 채 ‘멋진 신세계’는 다시 열릴 것인가. 올해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전기차, 반도체, 정보통신 등 제조업을 살리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유럽연합, 인도, 호주 등 민주국가들과의 전략적 동맹도 강화해 중국을 압박하는 등 기술패권전쟁에 돌입했다. 미국이 실행하려는 기술동맹이 포디즘처럼 '기술-일자리-노동/임금'의 선순환을 만들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정치학 박사>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포스터. 출처: 위키피디아1913년 포드공장의 조립공정. 출처: 위키피디아포드자동차의 T모델. 출처: 위키피디아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 출처: 위키피디아포드가 소유한 디어본 인디펜던트(Dearborn Independent)가 발간한 책자 표지. 제목에서 보듯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포드를 반유대주의자로 칭송했다. 전 세계 포드 자동차 자회사들은 이 책자를 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반유대주의 비방 소송에 휘말린 포드는 결국 사과했다. 출처: 위키피디아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1.06.08
[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안심과 괘심 사이...한미 정상회담을 보는 중국의 눈
“한국이 루비콘강을 건넜다. 파부침주(破釜沉舟)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무조건 미국의 귀책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서가 발표된 직후 중국 당국의 반응이다. 중국은 이에 덧붙여 “앞선 4월16일에 있었던 미·일 정상회담 연합성명의 중국에 대한 날 선 비평과 달리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결론적으로는 한국이 미국의 중국견제행동에 평소와 다른 특별한(不寻常) 행보를 디뎠다. 지금까지 강 건너 불구경하던 한국이 중국의 남해와 대만 등 고도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 대화하는 수준까지 승급했는데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반응을 감성적 수준에서 평가해보면 ‘안심’과 ‘괘심’이 혼재하는 모양새다. 우선 북한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 군사행동이 유보될 수 있다는 신호에 안심하는 듯하다. 미국 외교가의 평가처럼 한국은 미국 쪽으로 한걸음 다가간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판문점 선언 및 싱가포르 합의를 존중한다는 표현'과 '남북 간 대화·협력에 대한 지지' 등을 받아냈다. 이는 오바마정부 시기 '참수작전'이나 클린턴정부 시절 '대북 핵공격 계획' 등 이전 미 민주당 정권의 스탠스와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중국으로선 북한문제를 외교로 풀겠다는 바이든정부의 입장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안심이다. 만약 미군의 대북 군사행동이 현실화한다면 중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 역할을 하는 혈맹국 북한을 방관할 수 없을 것이고, 부득불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최악이다. 만약 한반도에서 군사충돌이 발생하면 시진핑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과 '인류운명공동체'의 꿈이 좌초될 수밖에 없다. 인접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자본의 이탈과 시장의 단절뿐 아니라 난민문제라는 직접적인 부담도 떠안게 된다. 특히 핵과 생화학무기를 가진 북한이 분쟁 당사국이 된다면 중국도 무사할 수 없다. 인류 역사를 보면 큰 전쟁을 겪은 후에는 반드시 작은 전쟁이나 분쟁이 연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회·경제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각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탈과 침략을 자행하게 된다는 의미다. 지금의 지구촌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전쟁을 치르느라 피로도가 임계점에 달한 상태이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천문학적 액수의 통화를 발행해 임시처방을 하고 있지만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때문에 현실주의자들의 논리처럼 코로나전쟁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피해를 입은 미국이 복구를 위해 또 다른 전쟁을 위한 희생양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렇다면 가장 민감하고 폭발력 있는 화약고인 북한이 가장 먼저 대상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문제를 외교적 수단으로 풀겠다는 미국의 입장 표명은 중국으로선 다행스럽고 안심되는 신호인 것이다. 또한 외교를 통해 북핵문제를 다루게 되면 중국이 주도했던 6자회담체제가 재가동될 수도 있기 때문에 중국은 자연스럽게 미국과 대화·공조할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하게 된다. 반면, 바이든정부가 '남북한 간 대화·협상'을 북핵문제 해결의 단일경로로 활용할 경우 중국은 한반도게임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우려하는 지점이다. 트럼프정부는 시진핑정부에 북핵문제의 책임을 분담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는 북한관리의 권한을 중국에 위임한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정부는 '남북한 간 협력'에 지지를 표명하면서 북한관리의 권한이 중국이 아닌 한국정부에 있음을 사실상 천명했다. 미국이 한국에 '미사일 사거리 800km 제한'을 해제해 준 것도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한국의 지정학적·전략적 역할을 기존 사회주의 방어를 위한 ‘방패’에서 중국 공격을 위한 ‘창’으로 전환시킨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정부는 이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고, 한국정부 역시 우주개발에 방점을 찍는 방식으로 살짝 비켜가는 영리함을 보였다. 앞서 문재인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미군의 주문대로 경북 성주 사드기지에 장비 및 물자보강에 협력했고, 시기와 상관없이 조건이 충족될 때 전작권을 전환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팔레스타인 로켓포 공격의 90%를 막아낸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을 10년 내로 배치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정상회담 직전 한국정부가 취한 이 같은 일련의 조치를 보면,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의 한 축이 되는 것은 물론 미국이 추진하는 사드-패트리어트 통합추진 계획에 공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미국 MD의 잠재적인 적이 중국이고, 사드의 잠재적 표적 역시 중국임이 분명하다고 보면 사실상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미국의 중국견제 전략에 한국이 동참한다는 서약의 자리나 다름없다. 이번 회담을 ‘한미동맹의 복원’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이고, 중국이 미사일 사거리 제한 철폐, 즉 미사일 지침 종료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중국 입장에서는 괘심할 수밖에 없다. 중국봉쇄망을 구축하려는 것을 비롯해 애써 공들인 북한을 가로채려는 것이나 대만·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한 것도 불쾌하다. 중국의 원래 계획은 일대일로의 한반도노선을 건설하면서 자연스럽게 6.25전쟁을 매듭짓고,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질서인 샌프란시스코체제를 종식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 신중국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49년에 소득수준 5만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되거나 최소한 동아시아의 규칙제정자로 거듭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그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바이든정부가 동맹강화 전략을 구사하면서 한국을 중국공격의 전위대로 역할 전환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사족을 달 여지가 없다. 국경이 장벽으로 가로막힌 멕시코가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어 백신을 구하려는 것이나 사드보복을 당한 한국이 태평양 건너 미국을 찾는 것은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책임을 강조했지만 보복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도 중국의 고민이다. 사드 때와 달리 한국이 반도체와 전기차배터리 공급사슬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고, 미국은 이러한 한국을 위한 고산흘산(靠山吃山)의 든든한 뒷배가 될 것임을 자처한 상황이다. 더욱이 바이든 정부는 한미관계를 단순 방위동맹에서 지역과 세계문제의 핵심축(linchpin)이 되는 '세계동맹'으로 승급시키겠다고 공언까지 했다. 중국은 '미국 일변도(一邊倒)'로 급변하는 듯한 문재인정부의 행보에도 아쉬워하고 있다. 마오의 홍위병과 혁명노선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몽상을 가졌던 한국 좌파가 중국에 크게 실망하면서 결국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로 이어지게 됐다는 판단을 중국정부가 하고 있는 듯하다. 나아가 중국식 발전모델에 대한 불신의 표시이고, 이는 결국 한국발전을 지켜보는 세계의 많은 개발도상국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처한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면 한미관계가 돈독해진 것만큼 한중관계도 협력할 여지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부도 이왕 루비콘강을 건넌 김에 생사결단의 각오로 미래를 향해 36계 줄행랑치는 것이 최고의 묘수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 연구원(2003~2005)>
2021.05.31
[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아메리칸 드림은 유효한가? 미국의 매력과 불안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꿀 수 없는 꿈이 됐는가. 미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동경’에서 ‘불안’으로 바뀌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1. 자유민의 탄생현대문명은 전통적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오는 근대화 과정의 결과물로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경험은 흥미롭다 하겠다. 정치적 근대화를 위해선 제왕의 권력을 시민과 그 대변자인 의회로 이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순순히 권력을 넘겨줄 리 없다. 이 때문에 피지배자의 저항과 폭력은 필연적이고 자연스럽다. 파리 시민은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루이 16세를 처형했다. 영국은 명예혁명을 통해 의회 권력을 강화함으로써 왕권을 제한했다. 러시아 혁명은 니콜라이 2세를 처형하고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했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영국 출신 이주자들이 식민지 독립을 위한 혁명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조지 3세의 억압적 통치를 종식시켰다. 근대화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권력 이동이 불가피하다. 산업자본가는 토지 귀족에게 봉건적 권력을 넘길 것을 요구했다. 서유럽은 대체로 1750년부터 1850년까지 약 100년의 산업화를 통해 토지에 묶인 농업경제를 도시 공장이 주도하는 산업경제로 탈바꿈시켰다. 예컨대 영국의 도시산업가들은 당시 외국 농산물 수입을 제한하는 곡물법을 폐지함으로써 토지 귀족의 경제적 기반을 붕괴시켰다.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는 사회주의적 토지 개혁을 통해 지주의 토지를 몰수했다. 반면 미국은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신대륙에 펼쳐진 무한한 땅을 개발하면 됐기 때문에 애초에 토지에 기반한 봉건적 구질서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노예노동과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을 바탕으로 발달한 남부 지주세력은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 세력과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결국 서부 세력과 동맹을 맺은 북부군이 남북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미국은 일종의 산업국가를 선포할 수 있었다. 2. 최초의 정치적 실험과 성공 혁명적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인은 세계사에 유례 없는 국가 건설의 방향과 내용을 두고 고민했다. 왕정 복고는 이미 식민지 독립전쟁을 통해 역사적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분절적이고 협소한 도시국가에 한정됐던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역시 엄청난 수의 시민이 광활한 땅에 모여 사는 미국에는 걸맞지 않았다. 미국의 계몽 엘리트는 봉건적 구속이 없는 새로운 백지에 정교하게 설계된 권력장치를 그려 넣는 최초의 정치적 실험을 감행했다. 이 거대한 정치공동체는 '인민주권'과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틀 위에 연방정부와 주정부, 큰 주와 작은 주, 상원과 하원, 그리고 입법·사법·행정 간의 견제와 균형을 장착했다. 각 주정부가 파견한 대표들은 오랜 토론과 타협을 통해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제정회의에서 헌법을 완성했다. '최초의 신생국가(first new nation)'라 할 미국은 국가 형성 과정에서 계급투쟁의 산물인 급진적 상처나 보수적 반동의 결과도 없었다. 3. 정치·경제의 양극화그렇다면 근대화의 보편적 경로를 걸어와 20세기부터 지구촌을 지배해 온 미국의 매력은 무엇인가. 봉건적 구(舊)체제 없이 비교적 자유롭게 건설된 미국은 집단이나 계급적 정체성에 구속되지 않는 '개인주의'와 이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 평등주의'가 오랫동안, 그리고 강하게 지배해 왔다. 여기에 더해 거대한 대지, 계층상승의 이동성, 경제적 풍요 등은 미국을 그야말로 ‘기회의 땅’으로 만들었다. 동부지역 저소득층은 미개척 상태에 있던 중부와 서부의 땅을 개간하기 위해 ‘Go West’를 외쳤다. 경제적 불평등은 언제나 넓은 대지에 의해 희석됐다. 이를 지켜본 세계는 미국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등 구세계의 건강하고 열정적인 노동력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이민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면서 ‘드림’은 급속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실제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 75%가 ‘아메리칸 드림’은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무엇보다도 불평등 심화가 결정타였다. 미국의 최근 몇 년간 지니계수(소득 불균형 상태를 나타내는 계수로,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포가 평등한 것으로 판단함)는 가장 높은 0.39를 기록했다. 이는 주요 선진국 클럽 중 최악 수준이다. 제조업과 조직노동의 쇠락, 글로벌화와 금융자본주의의 부상, 복지체제와 재분배정책의 미흡 등은 미국 불평등을 더욱 부추겼다. 보수적 정치인은 차별과 혐오의 레토릭으로 백인 저소득층의 불안을 조직하는 데 열을 올렸고 결국 성공했다. 개혁적 엘리트조차 말로만 분배정책을 떠들었을 뿐이다. 그 결과 클린턴·오바마 민주당 정부 하에서도 불평등은 전혀 개선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했다. 경제적 양극화는 정치적 양극화와 동시에 발생했다. 상원(Senate)과 하원(House)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의 이념적 거리는 199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하게 벌어졌다. 정치 엘리트의 양극화는 타협과 협력을 어렵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시민과 지지자에게 오해와 불신을 조장하는 기제가 됐다. 민주당원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모두 노인, 부자, 백인우월주의자, 기독교 근본주의자, 마초주의자, 혐오주의자로 가득 차 있다고 믿게 됐다. 반면 공화당원은 민주당이 동성연애자, 급진사회주의자, 노동조합원, 무신론자에 기반한다고 믿는다. 지난해 말 연방의회에 난입했던 트럼프 지지자들의 폭동은 정치적 양극화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지금 미국은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불안하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인들 빛과 어둠이 공존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미국이 더 궁금해진다. 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정치학 박사>보스턴 티 파티 사건(Boston Tea Party, 1773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식민지 미국에 수출한 차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였던 ‘자유의 아들들’(Sons of Liberty)이 인디언 복장으로 위장하고 차 상자를 바다에 버렸다. 이는 미국 독립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출처: 위키피디아총을 든 흑인병사들= 약 20만명의 흑인병사들이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북부군에 가담해 싸웠다. 출처: 미국의 목소리(Voice of America)미국 헌법 선포(1787년)= 1787년 9월17일 조지 워싱턴이 사회를 본 필라델피아 헌법제정회의에서 미국 헌법이 선포됐다. 출처: 위키피디아아메리칸 드림= 백인 중산층, 4인 가족, 넘치는 식료품, 바비큐 그릴, 잔디 깍는 기계, 요트, 여성 가사노동으로 가득한 미국의 꿈이다. 노동이 끝난 휴일의 여유와 행복이 다소 과잉된 노란 색 톤에 스며 있다. 출처: 마켓워치OECD 회원국 지니계수= 2019년을 전후한 OECD 회원국의 지니계수를 보면 칠레(0.46), 멕시코(0.458), 미국(0.39), 영국(0.366), 한국(0.345) 순으로 불평등이 심하다. 반면 슬로베니아(0.249), 벨기에(0.258), 스웨덴(0.275), 독일(0.289)은 불평등이 약한 편이다. 중간 수준의 불평등에 해당되는 국가는 프랑스(0.301), 호주(0.325) 포르투갈(0.317), 캐나다(0.303) 등이다. 출처: OECD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념적 거리= 1929년 대공황 이전에는 양당 간의 정치 양극화가 심했지만, 대공황에 직면한 정치권의 대응으로 양극화는 상당히 해소되었고 이후 2차 대전과 냉전, 아메리칸 드림 시기 동안 지속되었다. 1990년대 중반 공화당 깅그리치 하원의장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이념 대립이 심각해졌다. 상원(Senate)이 하원(House)보다 정치양극화가 다소 약한 것은, 상원은 당파적 열정에 빠지기 쉬운 하원을 견제하는 계몽적 귀족주의 분위기가 있어 정치사회의 대치와 갈등을 조정 및 완충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출처: Jeff Lewis, 2020, Polarization in Congress
2021.05.24
[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미국이 두려워하는 '빠링허우'
미국이 조급해졌다. 바이든정부 출범 이후 노골적으로 중국을 '적(敵)'이라 칭하는 것은 물론, 동맹을 끌어모아 반(反)중국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신장위구르, 홍콩, 대만 문제를 일부러 자극하고 나섰다. 왜 그럴까.중·미 G2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중국의 추격에 겁먹은 것이다. 과거 미·소 G2시대(냉전시대) 당시 소련은 미사일과 핵을 빼면 전 분야에서 미국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기 직전까지 와 있다. 역사와 인구 면에서는 오히려 미국을 압도할 정도로 우위에 있다. 이러한 중국에 대해 미국은 공개적으로 ‘기술도둑’ ‘국제질서를 파괴하는 국가’라고 규정하면서 중국봉쇄의 당위성을 설파한다. 그러면서 첨단기술, 우주기술, 군사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도전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미국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첨단기술을 주도하는 화웨이나 샤오미, 하이얼이 아니다. 미국의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 할로윈데이, 크리스마스축제는 언제부터인가 미국이 아닌 중국이 준비하고 있다. 축제에 필요한 소품과 장식품, 화려한 등불과 조명, 장난감과 인형 등 대부분이 중국산인 것. 최근에는 중국산 붉은 소원등, 풍등까지 미국 축제의 밤하늘을 밝히고 있다. 미국인의 일상을 파고든 중국의 영향력은 미국 전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부에서 서부로 이어지는 40번 국도를 여행하다 보면 휴게소에서 심심찮게 만나는 것이 중국산 인형뽑기 게임기다. 게임기 앞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미국인들이 줄줄이 서 있고, 바구니 가득 인형을 뽑아간다. 중국제 게임기 안에는 중국제 인형이 가득하지만 일상의 즐거움이 된 이들에게 인형의 '국적'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10달러짜리 중국뷔페식당도 미국인의 단골집이 됐다. 그동안 피자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던 미국의 장삼이사들은 색다르고 다양한 음식을, 그것도 배부르도록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국식당과 음식이 주는 일상의 즐거움을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중국제품이 미국인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혹자는 '25%의 관세폭탄'을 거론한다. 그렇다고 미국인의 일상을 바꿀 수 있을까. 오히려 관세전쟁이 시작되면 추가비용은 인형뽑는 사람과 뷔페먹는 사람이 부담해야 할지 모른다. 몇 년 전 ‘중국제 없이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 있다. 한국·미국·일본 3개국 일반 가정에서 중국제를 빼고 얼마나 생활할 수 있을지 실험하는 내용이다.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각 가정에서 장난감, 학용품, 게임기, 우산, 라이터, 이쑤시개 등 이것저것 중국제를 없애고 나니 별로 남는 게 없었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일상의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고 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이것이 중국의 힘이다. G2시대의 주도권을 미국이 쥔 듯 보이지만, 미국인의 일상을 볼모로 잡은 중국이 과연 열세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 두려워하고 바이든이 긴장하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중국제품에 있지 않다. 오히려 본질은 미국의 속살을 헤집고 스멀스멀 스며드는 ‘중국인’에 있다 하겠다. 지금은 폭죽을 팔고 인형과 장난감을 만드는 중국인을 무서워하지만 더 무서운 ‘미래의 중국인’이 기다리고 있다. 양적 팽창이 질적 변화를 초래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지금 중국에선 14억 인구의 질적 전환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사이버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춘 중국인이 미국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말이다. 중국사회 핵심축으로, 1980년 이후 출생한 30~40대 청년층이 바로 그들이다. 소위 ‘빠링허우(80後) 세대’인 이들은 대략 2억 명에 달한다. 앞선 세대와 비교하면 학력이 높고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의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새로운 형태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자리매김한 '디지털 노마드'이기도 하다. 전환기에 출생한 이들 특수세대는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고 자신한다. 빠링허우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푸념’에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출생할 당시엔 중국정부가 ‘계획생육’이라는 프로젝트를 가동해 ‘한 가정 한 자녀 낳기’라는 산아제한을 강제했다. 이 때문에 형제자매 없이 독생자(獨生子)로 성장했고 '샤오황디(小皇帝·소황제)'가 됐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결혼을 하게 되자 부부가 양측 부모 4명을 부양해야 되는 상황이 됐다. 더욱이 최근 산아제한 정책이 폐지되면서 자녀도 2명 이상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시대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는 방증은 이뿐이 아니다. 이들이 출생하면서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됐고, 철이 들 무렵에는 냉전이 해체되고 본격적인 개방개혁이 시작됐다. 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대학 학비가 없었지만, 이들이 자라 대학에 다닐 때가 되자 대학 학비가 부과됐다. 대신 초·중등학교는 의무교육이 돼 학비가 없어졌다. 그들이 학생일 때는 국가가 직장을 배분했는데 그들이 졸업해서 구직할 때는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졌다. 그들이 돈을 벌 수 없을 때는 주택이 분배됐지만 그들이 돈을 벌게 되자 집값이 너무 올라 집을 살 수 없게 됐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처럼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전환되면서 혜택은 사라지고 부담만 가중된 것이다. 중국에선 억울해도 너무 억울한 세대가 됐다. 그럼에도 빠링허우는 부모세대가 겪은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혼란에 비하면 조건이 좋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적극적이고 낙관적이 되었다며 뿌리 강한 나무처럼 어느 곳에 이식하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세대는 갇혀 있지도 않았다. 개방된 세계로 적극 진출한 것이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빠링호우의 해외유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억 여명의 자유로운 빠링허우는 생산자이면서 소비자로서, 사업주이자 구매자로서 세계 곳곳에 스며들었고 온라인 쇼핑시장을 주도했다. 미국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지난 4월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핑퐁외교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왕치산 국가부주석은 "과거 작은 공으로 큰 공을 움직여 중·미 관계 정상화라는 역사적 과정을 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곱씹어보면 왕치산의 이번 언급은 ‘1971년 중·미 관계가 작은 탁구공 정도였는데도 지구를 움직일 수 있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미 관계가 농구공으로 격상된 상황에서 양국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문이 아닐 수 없다. 왕치산은 트럼프정부가 행한 무역전쟁을 비난하면서 바이든정부에게 새로운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애국적인 빠링허우 세대를 홍위병으로 앞세운 중국과 농구공에 걸맞는 거래를 하자고!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 연구원(2003~2005)>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1.05.20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더 미루기 힘들어"…계명대·영남대 의대, 13일부터 임상실습 수업
대구경북권 의대 신입생 중 '지역 학생' 인원 현재보다 2배 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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