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섭기자의 스타인터뷰] 영화 '핸드폰' 박용우

  • 입력 2009-02-20   |  발행일 2009-02-20 제41면   |  수정 2009-02-20
학창시절엔 감정표현 많이 서툴렀어요…그래서 언젠가는 심리학 공부하고 싶어
[윤용섭기자의 스타인터뷰] 영화

영화 '핸드폰' 속 박용우는 영화 시작 30분이 지나도록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간간히 핸드폰을 통해서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뿐 관객들은 그가 누구인지, 또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그의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는 그 실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어떤 이미지보다 강한 울림과 존재감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영화 '핸드폰'은 1분 1초도 핸드폰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연예기획사 대표 승민(엄태웅)과 우연히 그의 핸드폰을 습득한 정이규(박용우)와의 사투를 그린다. 핸드폰이라는 단순한 명제지만 두 사람은 이 매개체를 통해 현실과 맞닿아 있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시종 강하게 표출한다. 승민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정보가 저장돼 있는 핸드폰이 세상밖으로 노출되면 안되는 상황이고, 직업상 예스맨으로 살아야 하는 정이규는 그동안 꾹꾹 억눌러져 있던 자신의 감정을 승민의 핸드폰을 통해 해소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전날 지인들과 모처럼 진하게 술잔을 기울였다는 약간은 푸석해진 모습의 박용우를 지난 12일 만났다.

"어제 태웅씨와 내가 주도해서 그동안 고생했던 감독님 포함 관계자들과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였어요. 사실 촬영하는 동안은 너무 시간에 쫓기면서 했던 터라 술먹을 시간이 없었거든요. 덕분에 숙취가 완전히 가시진 않은 것 같네요.(웃음)"

박용우는 대형 마트의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자 '감정노동자'인 정이규를 연기했다. '감정노동자'란 고객의 감정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채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 대부분을 감정노동자로 살아야했던 정이규가 익명성에 취해 쌓여있던 감정을 폭발시키는 모습에선 충분히 공감대를 불러 일으킬 만했다. 박용우 역시 이에 맞장구를 친다. "맞아요. 왠지 내 얘기 같고, 누구나 한번씩은 경험해 본 것 같은, 그런 공통분모가 형성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감정노동자라 할 수 있죠. 이 영화의 매력도 핸드폰이라는 단순한 소재로 다양한 감정들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박용우는 정이규를 통해 자신의 학창시절을 투영해보는 듯한 묘한 매력을 느꼈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한명도 없었다고 단언할 만큼 남들이 보기에 그는 조금 특별했다. "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그럴때면 스스로 위안하죠. 내가 너무 남생각을 많이했다고 말이죠. 적어도 스스럼 없이 감정을 표출했으면 사람들과 일상적인 관계를 가졌을텐데 저는 감정 표현의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내 얘기에 다른 사람들이 오해 받고 상처받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그가 막연히 연기자의 길을 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결국은 사람에 대한 탐구를 너무나 해보고 싶었던 박용우의 당연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요즘도 시간만 허락된다면 따로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접해보고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도 할 수 있는 연기자라는 직업은 그에게 천직과 같았다. 1996년 영화 데뷔작 '아파트' 이후 그가 잰걸음을 계속해왔던 것도 그런 이유. 자연스럽게 스타덤도 뒤따랐다. 바로 영화 '혈의누'(2005년)를 기점으로 2006년 한해에만 '달콤, 살벌한 연인' '호로비츠를 위하여' '조용한 세상'이 잇따라 스크린을 두드릴 만큼 충무로의 사랑받는 연기자로 자리매김했다.

캐릭터에 연민 느껴지는 작품 고집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했다. 그는 "먼저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느껴져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시나리오를 많이 읽는다고 느껴질 수 있는 감정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저는 좀 심층적으로 다가가는 편입니다. 컷과 배역의 의미와 비중을 떠나서 시나리오를 읽었을때 그 사람에게서 느껴질 수 있는 진심어린 공감대를 먼저 생각합니다. 즉 그 인물이 보여주고자 하는 감정들을 내가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느냐, 또 얼마만큼 이해하느냐에 따라 욕심이 나는 캐릭터들이 보이게 되고 그런 작품을 주로 선택하는 편이죠."

연기할 때마다 혼란스러워요

그래서일까. 그가 연기했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판타지보다는 현실에 발을 내디뎠다. "사실 판타지는 연구하고 연기하기가 쉬워요. 왜냐하면 정답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시원시원하게 행동하고 말을 하면 연기하는 본인도 같은 느낌이 됩니다. 하지만 저는 감정을 안으로 삭히는 캐릭터들을 주로 해왔기 때문에 항상 연기를 하면서도 이것이 적절한 수위인지 몰라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극 중 정이규 역시 나름 생각과 고민 끝에 완성된 캐릭터였다. 무엇보다 '이 친구는 절대 멋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점 때문에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연민이 느껴진다고 했다.

연기자로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단지 "연기를 오래하고 싶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하는 박용우. 거기에는 '최대한 비굴하지 않게'라는 전제조건이 붙는다고 했다. "작은 배역을 맡을까봐 걱정하고, 집을 좀 더 넓히기 위해 연기를 해야하는 조바심이 나는 그런 모습이 아닌, 작은 역할이라도 울림을 줄 수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연기자체를 존경하고 좋아하면서 하고 싶은 거죠. 그런 면에서 '핸드폰'이 정이규의 탈출구였듯, 박용우의 탈출구는 연기입니다.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하긴 그렇고,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 할 수 있고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탈출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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