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어주고 자전거도 고쳐주는 '동네삼촌'…박성원 그나라어린이도서관장

  • 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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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05   |  발행일 2020-08-05 제12면   |  수정 2020-09-08
도서관 열기 전엔 10년간 목사
코로나로 국공립 도서관 문 닫자
아이들 위해 그림책 배달하기도

동네삼촌1
박성원 그나라어린이도서관장이 지난 6월 대구 북구 동천동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서 열린 '반짝예술시장'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동화책 버스킹을 하고 있다.

박성원(46·대구 북구 동천동) 그나라어린이도서관장은 '동네 삼촌'으로 통한다. 어린이, 그림책, 마을 이 세 가지는 그의 키워드다. 동네 행사장에서 아이들을 옹기종기 앉혀 놓고 그림책을 읽어주는 그림책 버스킹을 한다. 또 낡은 자전거를 닦고 고치고 기름칠을 해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에게 연습용으로 나누어 준다. 그런가 하면 장화를 신고 팔거천에서 아이들과 함께 쓰레기를 줍는다. 말 그대로 놀아주는 동네 삼촌이다.

10년 동안 목회자의 길을 걷던 박 관장은 교회 밖을 나오자 갈 데가 없었다.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정체성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책방을 하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목사가 장사하면 안된다며 말렸다. 그래서 생각한 게 도서관을 차리는 것이었다. 책을 모으기 시작했고, 기증받은 책더미에서 박 관장은 그림책을 만나게 된다. 그때 박 관장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그림책이 '무릎 딱지'(글 샤를로트 문드리크, 그림 올리비에 탈레크)였다. 그림책을 만나면서 박 관장은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가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박 관장은 그림책에 관련된 일이라면 강원 원주·삼척, 서울, 전남 순천 등 어디든 달려갔다.

박 관장이 그나라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한 지는 4년째다. 도서관이 막 걸음마를 할 시기에 코로나19를 만나 고비를 겪게 됐지만 좋은 점도 많았다. 국공립도서관이 문을 닫고 아이들이 학교에도 갈 수 없을 때 박 관장은 그림책을 배달했다. 엄마들이 책 제목을 박 관장에게 보내면 오토바이에 책을 싣고 찾아갔다. 물론 비대면이라 아파트 문손잡이에 살짝 걸어두고 돌아왔다. 그는 "코로나19로 활동이 제한된 아이들이 그림책을 받고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은 듯 기뻐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뿌듯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도서관을 이용하는 회원이 좀 더 많아졌고 도서관이 조금 더 인정받게 된 계기가 됐다.

그나라어린이도서관은 그림책 도서관이지만 아이들보다 젊은 엄마들이 더 많이 드나든다. 박 관장은 "젊은 엄마들의 양육 기간은 침체나 경력 단절 기간이 아니라 경력 보유기간이다. 자녀 양육 기간에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자기계발을 하며 더욱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책과 도서관을 통해 활동가로 연결되는 것이 마을에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목적"이라며 아이들은 그냥 엄마를 따라와서 노는 곳이 그림책 도서관이라고 강조했다.

그나라어린이도서관은 매월 문화가 있는 날 그림책을 정해 함께 읽는다. 때론 그림책 작가가 직접 동참하기도 한다. 지난 6월24일에는 '우리 옛이야기의 힘과 매력'의 저자 서정오 작가가 함께했다. 도서관은 또 '엄마들의 책 모임' '엄마들을 위한 캘리그래피' 등 성인강좌도 많다. 박 관장은 "엄마가 책을 읽고 힘을 얻으면 아이들은 절로 힘을 얻는다"며 "그림책은 0~100세 책이라고 하는데 어른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관장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다. 그는 "그나라어린이도서관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아 드리려 한다"며 "그 책을 그나라어린이도서관에 배가(정리된 자료를 도서관에 배치하는 것)하고 소장하고 싶은 분에게는 판매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이어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 어떤 방법이라도 좋다. 글이나 그림, 사진도 좋고 나만의 다른 방법이 있다면 뭐든지 좋다. 분명히 이야기는 자라서 나와 이웃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관장은 신적인 존재를 만난 것 이후로 그림책을 만난 것이 기적이며 행운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동네 삼촌의 역할' 또한 목회 활동의 하나라고 했다.

글·사진=조경희시민기자 ilikelake@hanmail.net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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