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이준석의 '이유 있는' 돌풍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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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03   |  발행일 2021-06-03 제23면   |  수정 2021-06-0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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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사회부장

재밌는 판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준석 돌풍'으로 관심이 뜨겁다. 박근혜 정권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쓰레기' 취급받던 야당이 언제 이런 관심을 받았는가 싶다. 실제 민주화세력을 자처하는 집권 여당의 일부 인사들은 툭하면 '쓰레기'라는 표현을 써가며 야당을 무시했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쓰레기'라고 불렀다.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찬 표현이다. 그랬던 민주당이 '이준석 돌풍'으로 긴장하고 있다. 장유유서(정세균 전 국무총리)라는 '꼰대스러운' 말까지 등장했다. 친노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민주당 내에서 내년 대선 끝난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뿐만이 아니다. 국민의힘 내부도 충격이다. 30대인 이준석 후보가 대표로 선출된다면 대한민국 정당사 초유의 일이 된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준석 돌풍'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세대교체, 정권교체의 열망, 정치권의 혁신이라는 말들이 떠돈다. 다 맞다. 그리고 모든 해석이 다다르는 지점은 '미래'다. 새로운 미래, 새로운 질서에 대한 희망을 온전히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사실 지난 4년간 대한민국은 '과거'에 갇혀 살았다. 집권 세력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칼이 적폐청산이었다. 적폐청산이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여온 악습의 청산을 의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고 선언했다. 모두 박수를 쳤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기도 했다. 현실은 어떤가. 문재인 정권은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결별하는 것으로만 인식했다. '쓰레기'라는 악담을 퍼부으며 야당을 적폐세력으로 몰아붙였다. 그게 다였다. 구시대의 관행은 여전히 계속됐다. 문 대통령은 인사 5대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낙하산 인사'도 그대로다. 미래를 향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셈이다.

일본과의 문제도 그렇다. 집권 세력은 극일(克日)이 아닌 반일(反日)에 집착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죽창가'를 언급하며 반일 감정을 선동하기도 했다.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읽기'라는 책을 통해 "친일의 문제가 특정 진영의 정치 어젠다로 전락했다. 한 정치 집단을 친일로 규정하고 그 규정을 근거로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통성을 부정하려 한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과 사악함이 있다"고 밝혔다. 과거를 발판으로 '극일'이라는 미래를 열어가기보다 과거를 정략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이다.

'이준석 돌풍'은 '시대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 의식은 새로운 미래와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신뢰 회복'과도 맞닿아 있다. 정치권의 말은 이미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게 일상이 됐다. 대통령부터 그렇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나고 대통령은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며 부동산 정책 실패를 자인했지만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말부터 신뢰를 잃은 꼴이다.

새로운 시대 의식은 '프레임 씌우기' 같은 낡은 문법으로 생기지 않는다. 신뢰도 얻기 어렵다. '이준석 돌풍'은 낡은 문법을 버리고 신뢰를 회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달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조진범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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