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확증편향과 인지부조화

  • 송필경 범어 송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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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16   |  발행일 2022-02-16 제25면   |  수정 2022-02-16 08:15

[기고] 확증편향과 인지부조화
송필경 (범어 송치과 원장)

최근에 유튜브 방송을 듣다가 팝송치고는 웅장한 노래를 들었다. 1992년에 개봉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발견 500주년 기념작인 영화 '낙원의 정복(Conquest of Paradise)' 주제곡이었다.

중세 유럽인들은 인도를 금과 향료가 가득한 꿈의 파랑새 나라로 보았다. 인도로 가려면 동쪽으로 가야 하는데, 중간 중동지역을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장악하고 있어 가기 힘들었다. 평민인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항해 길을 기발하게 계획했다. 서쪽으로 거꾸로 돌아 항해를 하다 보면 인도에 도달하리라 생각했다. 스페인 여왕 이사벨라를 찾아 항해 후원을 요구했다. 성공할 경우 귀족 칭호도 받고, 식민지 총독 자리를 받고, 그 지역에서 나오는 이익의 10%를 받기로 했다. 콜럼버스는 천신만고 끝에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한 섬에 도착했다. 순수한 원주민 부족을 만났지만 금을 찾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콜럼버스는 자신의 궁극적인 꿈인 계층 상승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다.

콜럼버스가 첫발을 디딘 섬은 인도가 아니라 쿠바였다. 콜럼버스에 이어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정복자들은 쿠바를 시작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장악했다. 저항하는 원주민을 야만인으로 보고 참혹하게 학살하거나, 전염병을 퍼트려 거의 말살하다시피 했다. 원주민이 격감하자 식민지배자들은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데려와 말하는 가축인 노예로 만들었다.

서구 사회가 부르짖는 이상인 '자유·평등·박애'가 결국은 피상적이며 단순한 장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쿠바의 국부 호세 마르티(1853~1895)는 깨달았다. 20세기에는 미국이 쿠바를 지배했다. 쿠바는 마약·매춘·알코올이 춤추는 마피아의 뒷마당 놀이터였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땅 쿠바는 스페인과 미국이 재물을 마음껏 가져다 쓸 수 있는 파랑새였는지 모르지만 쿠바인에게는 기나긴 악몽이었다.

호세 마르티의 충실한 후배 카스트로(1926~2016)는 멕시코에서 망명 중에 만난 아르헨티나 젊은 의사 체 게바라(1928~1967)와 함께 쿠바로 가서 1959년 1월1일 혁명 정부를 수립했다. 쿠바는 500여 년의 악몽에서 깨어났다. 영화는 침략자인 콜럼버스를 시대를 앞선 고독한 선구자로 미화했다. 영화 주제곡 '낙원의 정복'은 벨기에 가수 다나 위너(Dana Winner)가 불렀다. 주제곡 가사의 일부다.

"우리의 낙원은 바로 거기에 있어요/ 모든 사람이 마음의 자유를 찾게 되면/ 그 낙원은 바로 우리 눈앞에 있어요/ 우리 모두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이에요."

이 가사처럼 서구인들은 아직 식민 지배 시절을 낙원으로 묘사하고 그 낙원의 자유와 평화를 그리워하고 있다. 미국이 걸프전쟁(1990), 이라크전쟁(2003)을 벌이자 서구 대다수 국가가 참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반성하는 데 모범을 보였던 독일마저 참전했다. 서구는 제국주의를 아직도 진정하게 반성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영화 '낙원의 정복'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정복에 깊은 향수를 느끼고 있는 속마음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쿠바섬 동쪽 끝에 관타나모란 아름다운 항구에 1903년 이래 미국이 주권을 행사하는 미국의 해군기지가 있다. 관타나모 미군 기지에는 전쟁 포로와 반미(反美) 인사들의 수용소가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 존재와 영화 '낙원의 정복'이 상징하는 서구 제국의 인권 인식은 아직도 북한을 비롯한 제3세계에 대한 확증편향, 인지부조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풀어야 할 남북문제 정책이 도드라지게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특히 2030 세대가 서구 인식에 편향돼 남북문제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런 생각이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송필경 (범어 송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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